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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변신한 박소담이 지금 하고 싶은 말

긴긴밤을 지나, 박소담이 툭 하고 꺼내 놓은 마음들.

프로필 by BAZAAR 2023.12.25
셔츠는 Maison Margiela. 이너 톱은 Ee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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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곧 죽습니다> 파트 1 공개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어요. 어떤 마음으로 첫 방송을 기다리고 있나요?
작품을 함께한 (서)인국 오빠랑 앞부분을 먼저 봤는데 벌써 재밌던데요. 극 중에서 제가 주로 머무는 은신처는 대부분 CG를 입혀야 하는 곳이에요. 아직 은신처 장면까진 못 봤는데 그 장소가 어떻게 구현될지 제일 기대돼요.
이번에 연기한 캐릭터는 이름부터 ‘죽음’이에요. 스스로 죽음을 택한 최이재에게 그에 상응하는 벌로 열두 번의 죽음을 내리는, 결코 죽지 않는 존재죠. 나이는 몇 살인지, 능력치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속 시원히 밝혀진 게 없어요.
일단 인간은 아니에요. 근데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원하면 어떤 형태로도 변할 수 있고, 가진 힘도 무한하죠. 예고편에서도 보셨겠지만 이재를 집어 던져버리거나,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나 멱살을 잡고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기도 해요.
울고불고 소리치는 사람 앞에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죠.
‘죽음’은 그래요. 상대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흔들림이 없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가만히 서서 대사만 읊는데도 무슨 액션 신 찍은 것처럼 에너지 소모가 컸어요. 촬영 끝나고 집에 오면 온몸이 아팠을 정도로.
 
셔츠, 망사스타킹은 Maison Margiela. 이너 톱, 스커트는 Eenk.

셔츠, 망사스타킹은 Maison Margiela. 이너 톱, 스커트는 Eenk.

박소담은 확실히 죽음과 같은 냉혈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죠? 첫 대본 리딩 현장에서 울컥하는 모습을 보고 짐작했습니다.
제가 극 ‘F’에다가 ‘N’이거든요. 이재한테 벌을 주면서도 마음이 아팠어요. 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절박하게 우는 이재 앞에서 죽음이 “진작 그렇게 좀 살지 그랬어. 인간들은 꼭 죽고 난 다음에 그래”라는 말을 해요.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건데 죽음이라는 이유로 그 선택이 잘못됐다고 단정짓고 모진 말만 하니까. ‘아, 얘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던 순간이 많았어요.
한순간에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진 기분은 어때요?
내재된 힘은 어마어마한데 그걸 마구 발산하는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연기를 하면 할수록 에너지가 생기고 감정이 풍성해지는 게 신기했어요. 꾹꾹 누르기만 했는데 제 안에 엉켜있던 생각이나 감정이 정리된 듯 개운했거든요. 아마도 이 작품이 여러 이야깃거리를 던져줘서 그런 것 같아요. 내 삶을 돌아보게도 하지만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삶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만들어요.
티저 영상 속 표현을 빌리자면 ‘잘리고 썰리고 짓이기고 태워지는’ 죽음을 가차없이 휘두르면서 속으로는 줄곧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군요. 죽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어요?
제가 딱 재작년 이맘때 병원에 있었어요. 죽음에 대해서라면 그때 수없이 생각했죠.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이었는데.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되지만, 사실 못 깨어날 수도 있던 거잖아요. 그래서 수술하러 가기 전에 집 안에 있는 물건들도 다 정리하고 갔어요. 혹시나! 진짜 혹시나 해서요.(웃음) 수술하고 나서 한동안 목을 움직이지 못했을 땐 또 그때만의 생각이 많았어요. 이 작품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죽는 것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어본 거죠 저는.
 
코트는 Etro. 팬츠는 8 by Yoox. 안경은 Gentle Monster.

코트는 Etro. 팬츠는 8 by Yoox. 안경은 Gentle Monster.

영화 <기생충>이 개봉한 뒤 예능이며 연극, 드라마, 영화까지 안 하는 게 없었을 때죠. 배우로서 한창 속도를 내다 갑작스레 긴 휴식기를 갖게 됐어요. 2년이 지난 지금은 전에 비해 어떤 게 가장 달라진 것 같아요?
올해 초 <유령> 개봉과 함께 일 년 만에 활동을 시작했어요. 홍보 일정을 다녀보니 감독님이나 선배님, 팬들이 그동안 얼마나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셨는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습관처럼 괜찮다는 말을 하고 다녔어요. 실제로도 그런 줄 알았고요. 제가 저를 속인 거예요. 영화 홍보가 끝나고 뒤이어 <이재, 곧 죽습니다> 촬영도 들어가야 해서 저도 모르게 몰아붙였나 봐요. 제가 괜찮지 않다는 건 촬영을 다 끝내고서야 알았어요. 불과 몇 달 전이에요. 이제서야 진짜 저를 돌보고 회복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2년이 지나서야.
이제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졌나요?
요즘은 매일 매일 저한테 물어봐요. 너 진짜 괜찮냐고. (엄)정화 언니가 알려준 방법인데 포인트는 그 질문을 꼭 소리내서 뱉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걸 어떻게 하냐고 손사래를 쳤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하고 있어요. 제 몸에게 진심으로 사과도 했어요. 돌이켜보면 내가 왜 아팠는지, 어쩌다 나에게 이런 일이 온 건지에 대해서만 생각해봤지 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요만큼도 해본 적 없더라고요. 이제부터라도 저를 좀 제대로 돌봐주려고요. 물론 여전히 요동칠 때도 있지만 연습하고 있어요.
<이재, 곧 죽습니다>를 만들며 주고받은 대사나, 카메라 밖에서의 대화 안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요?
사실 이 작품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 상태였어요. 근데 하병훈 감독님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이 작품 하면서 몸도 마음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자기가 열심히 돕겠다고요. 배우 입장에서 감독이 이렇게 얘기하는데 어떻게 의지가 안 되겠어요. 그 한마디로 진짜 힘이 났어요. 더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
 
니트 베스트, 팬츠는 Loewe. 발라클라바는 Varzar.

니트 베스트, 팬츠는 Loewe. 발라클라바는 Varzar.

줄곧 붙어있었을 서인국 배우와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아! 오빠가 해준 말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첫 촬영날이었는데, 아마 인국 오빠 팬분들이 밥차를 보내주셨을 거예요. 촬영 끝나고 밝은 형광등 조명 아래서 같이 밥을 먹는데 저를 빤히 보더니 “너 지금 진짜 죽음 같애” 하더라고요.(웃음) 이상하게 그 말이 참 좋았어요. 어느 때보다 외적인 모습을 까다롭게 준비한 캐릭터라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많았는데 그 사이에서 긴장하던 마음을 딱 건드렸나 봐요.
역할의 경중을 떠나서,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되어 연기하는 시간을 겪고 나면 흔적이 남을 것 같아요. 지금 박소담에게 남아있는 죽음의 흔적은 뭔가요?
<검은 사제들> 오디션 보고 나서 한참 뒤에 감독님께 들었던 말인데요. 제가 가발망 쓰고 개 짖는 소리도 내다가 중국어, 라틴어 막 섞어가면서 연기를 했거든요. 근데 대사가 끝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박소담으로 돌아갔대요. 촬영장에서도 머리 빡빡 밀고 얼굴에 피 잔뜩 묻히고 있으면서도 컷 소리 나면 해맑게 웃으면서 “저 방금 괜찮았어요?” 하는 스타일이긴 했어요.(웃음) 확실히 역할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아요. 남아있는 흔적이라면 함께한 배우들의 기운이겠죠. 캐릭터의 빈자리는 동료들이 준 에너지로 채워요.
평소 그렇지 않은 사람도 한번쯤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때예요. 이맘때 꼭 만나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나요?
질문 듣자마자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요. 신구 선생님요. 때마침 조만간 뵙기로 했거든요. 다음 주부터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을 올리시는데 첫 공연날로 약속을 잡았어요. 수다나 왕창 떨려고요. 선생님이랑 대화하고 나면 저를 한 발짝 떨어져 보게 돼서 좋아요. 얘기하다 울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별 동요도 안 하시고 “뭘 울고 그래. 그냥 내일을 살어~” 하세요.(웃음) 그 말에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질까요. 연말엔 작품 홍보 잘 마무리하고 선생님 뵙고. 그러면 충분할 것 같아요.
 
재킷, 브라 톱, 사이하이 부츠는 모두 Dies Van Noten.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브라 톱, 사이하이 부츠는 모두 Dies Van Noten.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이 드는 일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때이기도 하죠. 어떻게 늙어가고 싶어요?
신구 선생님처럼?(웃음) 요즘 들어서 좋아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 거 보면 얼굴에 지나온 삶이 드러난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이렇게 기꺼이 기쁘게 나이 들어 갈래요.
그러고 보니 올해가 데뷔 10주년이 되는 해였죠?
맞아요. 제가 그동안 해온 작품이 40개 정도 되더라고요. 단편영화나 연극까지 다 합쳐서요. 열심히 살았죠?(웃음) 근데 신구 선생님처럼 하려면 이제 ‘고작’ 10년인 거잖아요. 시작에 가깝겠죠. 그래서 나이를 먹는 게 좋아요. 가끔씩 선생님을 볼 땐 조금만 천천히 나이 드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늙어가는 건 분명 기쁘고 멋있는 일이에요.
올해 어떤 일들이 일어났으면 하나요?
<이재, 곧 죽습니다>가 보신 많은 분들에게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라요.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이 작품과 함께 하는 건 분명 의미있는 일일 거예요. 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20대 때보다 더 좋은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 재충전 제대로 하려고요. 일단, 출발이 좋아요.
 

Credit

  • 에디터/ 고영진
  • 사진/ 김재훈
  • 헤어/ 영나(살롱하츠)
  • 메이크업/ 김수빈(살롱하츠)
  • 스타일리스트/ 김은주
  • 어시스턴트/ 허지수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