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올해의 작가상과 리움미술관이 픽한 작가, 갈라포러스김의 세계

“책거리를 포맷으로 활용”. 이토록 우주적인 시공간을 횡단하며 갈라 포라스-김이 탐구하는 것.

프로필 by BAZAAR 2023.12.08
 
포즈를 취한 갈라 포라스-김 뒤로 보이는 <국보 530점>(2023). 종이에 색연필, 플래시 물감, 패널 4개, 각 181x300cm. 재킷과 팬츠, 펌프스는 모두 Prada. 귀고리는 Gucci.

포즈를 취한 갈라 포라스-김 뒤로 보이는 <국보 530점>(2023). 종이에 색연필, 플래시 물감, 패널 4개, 각 181x300cm. 재킷과 팬츠, 펌프스는 모두 Prada. 귀고리는 Gucci.

나는 가로 300m, 세로 180m의 패널 4개로 이루어진 콜롬비아-한국계 작가 갈라 포라스-김의 드로잉 작품 <국보 530점> 앞에 서 있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테라코타 벽돌을 쌓아 올려 한국의 도자기를 형상화한 리움미술관 M1 꼭대기 층에서 고려청자, 조선백자, 서화 순으로 감상하며 로툰다를 돌아내려 와 마지막 전시실에 다다른 참이다. 이곳에서는 얼마 전 갈라 포라스-김의 신작 3점을 소개하는 개인전 «국보»가 개막해 내년 봄까지 계속된다. <국보 530점>은 역사적 유물에 관한 해석과 분류를 ‘색인화’하는 갈라 포라스-김 핵심 시리즈의 신작이다. 나는 휴대폰 화면에 대한민국과 북한의 국보 목록을 띄운 채 등재 순서대로 번갈아가며 그려진 작품의 제일 왼쪽 위부터 훑어내렸다. 남한 국보 1호 숭례문, 북한 국보 유적 1호 평양성, 남한 국보 2호 원각사지십층석탑, 북한 국보 유적 2호 안학궁 터…. 현재 남북한 국보의 유래는 1933년에 일제가 지정한 조선의 보물 목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그림 속 유물 대부분은 한국이 분단되기 전까지는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문화유산이었다. 그런데 해방 이후 그 목록이 둘로 갈라지게 된 것이다. <국보 530점>은 목록을 다시 합침으로써 여러 주체가 각자의 필요에 따라 문화유산을 관리해왔음을 상기시키며 식민과 분단의 현대사가 우리 문화유산에 부여한 특수한 맥락을 드러낸다. 
갈라 포라스‐김은 몇 년 전부터 이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실현하길 바랐다고 했다. “2015년부터 ‘국보’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에 관한 자료를 많이 읽었어요. 국보의 역사에 관해서도 알게 됐는데 국가가 계속 변화하는 상황에서 국보를 지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국보로 지정할 만큼 특정 유물이 중요하다는 판단은 어떤 기준에 근거하는지 하는 질문들이 떠올랐죠.” 작가는 이런 생각을 담아 2016년 뉴욕에서 열린 유엔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Art and the Measure of Liberty»에서 <국보 530점>의 전신이라고 해도 좋을 <National Treasure(국보)>(2015)를 선보였다. “당시에는 드로잉으로 제작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노트 낱장을 4m 가까이 이어 붙인 후 남북한의 국보를 수기로 적어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했어요.” 이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작업 시간을 확보하면서 <국보 530점>을 만들기 시작했고 마침 여러 점의 국보를 소장하고 있으며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공존하면서 서로의 관계성을 끊임없이 재정의하는 장으로 기능해 온 리움미술관의 초대로 선보이게 된 것. <국보 530점>을 위에서 아래로 살펴가다 보면 유물의 종류가 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위쪽에는 건축물이 많고 그 아래는 도자기, 그다음은 문서 순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곳곳이 비어 있는데, 이는 국보였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지정 해제된 유물들의 자리다. “‘나는 이제 필요 없어졌나 봐.’ 하는 유물의 한숨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웃음) <국보 530점>을 통해 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중요한 기준을 가지고 국보를 결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인간이 만든 구조와 제도의 유약함이 선명히 드러나죠.” 또, 몇몇 화면을 가로지르는 ‘평화문제연구소’라는 글자는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북한 관련 정보를 모아 놓은 데이터베이스 중 한 곳의 사진을 활용하면서 워터마크까지 그대로 묘사한 것으로 매우 학구적인 동시에 눈빛에 장난기가 다분한, 갈라 포라스‐김의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된 한국 유물 37점>, 2023, 종이에 색연필, 플래시 물감, 152.4x152.4 cm. 디트로이트 개인 소장가 소장.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된 한국 유물 37점>, 2023, 종이에 색연필, 플래시 물감, 152.4x152.4 cm. 디트로이트 개인 소장가 소장.

«국보»에서 갈라 포라스‐김이 선보이는 작품은 단 3점이지만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과 함께 전시함으로써 유물을 둘러싸고 미술관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떤 사회문화적 시사점이 발생하는지 등 다층적 관계를 보여주기에 조금의 아쉬움도 없다. 특히 일제강점기 혹은 그 이전 다양한 경로로 해외에 반출된 한국 유물 37점을 그린 갈라 포라스‐김의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된 한국 유물 37점> 옆에 나란히 놓인 국보 <아미타여래삼존도>를 바라보면서 역설적인 흥미가 샘솟았다. 임종의 순간에 아미타여래가 강림한 장면을 극도로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이 고려 불화는 삼성 이병철 창업 회장이 일본에서 어렵게 들여온 작품으로 민감한 이슈를 건드린다. “유물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상의 허점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제작하게 됐어요. 이와 같은 민감한 문제는 모든 미술관이 저마다 다른 주제로 갖고 있는데 이는 우리 세대가 아니라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경우가 많죠. 그래서 그 문제에 관해 기관 차원에서 어떻게 다루고 타협할 것인지 계속해서 살펴보고 싶어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3»에서도 갈라 포라스‐김의 대표작과 신작을 만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인덱스 드로잉과 설치 그리고 미국 피바디 뮤지엄 관장에게 보낸 이메일 프린트로 이뤄진 <피바디 박물관에 소장된 비를 위한 303점의 제물들>(2021) 역시 마찬가지다. 갈라 포라스‐김은 멕시코 중부에 있는 고대 마야족 도시의 유적인 치첸 이차(Chichen Itza)의 ‘신성한 세노테(Sacred Cenote)’라는 천연동굴에서 발굴되고 옮겨진 유물들을 살피면서 이 유물을 둘러싼 역사적·법적 소유권에 관해 고민한다. 20세기 초반, 세노테의 물 아래 잠겨 있었을 약 3만 점에 달하는 유물과 유해는 피바디 박물관에 옮겨지고 그 과정에서 본래 소유주인 비의 신 ‘차크(Chaac)’로부터 멀어져 박물관이라는 건조한 환경에 놓인다. 피바디 박물관 관장 제인 피커링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작가는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의 물리적 형태의 보존만 아닌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이며, 제의적인 기능들 또한 보존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한다. 나는 문화유산이 현대적 분류법에 따라 본래의 기능과 의미를 잃어버리는 지점에 의문을 두고 작업하는 갈라 포라스‐김의 이와 같은 활동을 오늘날 보호받지 못하는 영적인 가치를 옹호하고 그에 대항하는 행위라고 확대해석했다. “저는 그저 그 유물을 만들었던 고대인들이 봉헌물에 관해 영원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들의 영적인 믿음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현재 우리의 믿음이 미래에 어떻게 취급될지에 관한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기관은 유물을 보존하고 관리할 때 단 하나의 역사적 버전만 보고 있어요. 제가 믿는 건 각각의 유물과 관련한 여러 이해관계와 서로 다른 기능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이 있을 거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고요. 실제로 피바디 박물관에, 그에 관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첨부해 보냈어요.”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올해의 작가상 2023»은 선정 작가 4인의 신작 및 주요 구작을 통해 작업 세계 전반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바뀌었고, 이에 갈라 포라스‐김은 신작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를 선보였다. 신작은 고인돌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을 삼면화로 제작한 것으로 전북 고창에 위치한 고인돌 유적지에서 리서치한 작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삼면화의 첫 번째 화면은 이미 죽어서 고인돌에 묻혀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본 풍경, 두 번째 화면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역사 공원으로 분류된 고인돌의 상황, 마지막 화면은 인간과 역사를 벗어난 자연의 관점에서 고인돌을 바라본 것으로, 이끼의 드로잉 이미지입니다. 저는 고대사회 기반 시설에도 관심이 많은데, 특히 고인돌이 흥미로운 부분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암석, 즉 ‘발견된 오브제’를 재배열함으로써 영적인 표지가 되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현재는 유네스코에 의해서 역사적인 유산으로서 제의적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됐어요.”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 전경. 가운데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2023)가 자리한다. 종이에 납화법, 흑연과 색연필, 228.6x182.8cm.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 전경. 가운데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2023)가 자리한다. 종이에 납화법, 흑연과 색연필, 228.6x182.8cm.

인터뷰한 지 40여 분이 지났을까, 갈라 포라스‐김 예술세계의 반도 다루지 못한 것 같은데 마주앉은 우리는 멕시코의 마야 문명부터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까지 아득한 시공간을 유랑하고 있다. 갈라 포라스‐김의 작품들은 유물의 방대한 역사, 발굴 과정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 변화된 유물의 기능 등에 관해 전문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피부로 다가왔다. “다행히 저는 연구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일반적인 유형의 연구는 아니에요, 특정 규칙을 따르는 기존의 역사적 방법론이 있지만 제가 아카이브에 접근하는 방식은 흡사 게임과 같고, 게임처럼 시작해서 점점 진지해져요.” “리서치를 좋아한다”는 갈라 포라스‐김은 멕시코 식민시대의 문학을 연구하는 한국인 어머니와 콜롬비아인 역사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가 10대 초반일 때 아버지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이후 L.A에서 자라 현재 L.A와 런던을 오가며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의 어휘와 과정 그리고 형식을 관통하는 학구적인 스타일은 자란 환경과 불과분의 관계를 맺지 않을까? “콜롬비아에서는, 스페인 식민지시대(16~19세기)에 지어진 교회라면 스페인인들이 자신의 식민지에 관해 기록한 아카이브를 보관하고 있기 마련이에요. 어릴 적 그곳에 아버지와 함께 방문해 아카이브를 살피곤 했어요. 아버지는 ‘오늘 먹을 아이스크림 맛 고르기’를 보상으로 내걸고 아카이브에서 모든 종류의 음식이나 동물 찾기, 얼마나 많은 개가 나오는지 알아맞히기 같은 게임을 제안하곤 하셨죠. 어떻게 보면 그때와 유사한 걸 하고 있다고 느껴요. 동시에 지금은 좀 더 많은 연구의 도구를 갖게 된 것 같기도 하네요. 아마도 저는 일종의 가업을 잇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부모님과는 다르게 글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가 책으로 나오기는 힘들 거예요.(웃음)” 
나는 갈라 포라스‐김이 학자와 거의 같은 방법론으로 작품을 만들되 미술가이기 때문에 다른 결과물을 생산한다고 이해했다. 이때 그가 견지하는 미학적 태도랄지, 스타일 같은 게 있을 법했다. “가장 중요한 건 더 많은 사람이 내 작업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개념적인 작품을 볼 때 미술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작품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고 엄마나 엄마 친구들이 ‘이게 도대체 뭐야, 이해가 안 돼’라고 반응하는 걸 여러 번 접했거든요.(웃음) 그래서 저는 더 다양한 관람객이 제 작품을 보는 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작품의 표면 이면에 내재한 여러 레이어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요. 드로잉이라는 매체를 고집하는 이유도 드로잉이 그와 같은 관심이나 이해를 좀 더 쉽게 끌어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예요.” 생각해보니 작가는 종이에 색연필과 플래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작품을 두고 연신 ‘페인팅’이 아니라 ‘드로잉’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공부하고 싶은 것에 관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드로잉을 완성하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 유물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서 남북한의 국보 5백30점을 비롯해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많은 유물에 관해 배우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기는 힘들 것이기에 미술 작업이 좋은 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로잉은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실제로 모든 사람이 매일 일상에서 사용하는 매체라는 점 역시 마음에 들어요.”   
 
안동선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국보»를 더욱 풍성하게 감상하려면 리움미술관 로비에서 M1으로 가는 길 벽에 설치한 강서경 작가의 «버들 북 꾀꼬리» 출품작 <산>을 챙겨 보며 전통에서 길어올린 두 작가의 아득한 시간의 연결고리를 음미할 것을 추천한다.  

Credit

  • 글/ 안동선
  • 사진/ 이재안, ⓒ 커먼웰스 앤 카운슬,리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 스타일리스트/ 김지원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