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런던에서 펼쳐진 구찌의 세계

8개의 세계가 모여 하나의 우주가 되었다. 구찌 역사가 담긴 아카이브에 빠져들 시간.

프로필 by BAZAAR 2023.11.05
아카이브는 살아 움직인다. 오래될수록 존재감이 드러나고 생명력은 강해진다. 겹겹이 쌓아 올린 시간 사이는 영감과 경험, 결과물로 채워지며 이는 또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에너지를 피워낸다. 지난 6월 25일 창립 102주년을 맞아 상하이에서 최초로 선보였던 ≪구찌 코스모스(Gucci Cosmos)≫전이 끝났다. 아쉬움도 잠시, 구찌는 전시를 이어갈 두 번째 도시로 런던을 선택했다. 영국의 유명 현대미술가 에스 데블린(Es Devlin)이 기획과 디자인을 맡았으며 이탈리아 패션 이론가이자 비평가인 마리아 루이사 프리사(Maria Luisa Frisa)가 큐레이팅에 참여했다. 구찌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이번 전시회는 살아 숨 쉬는 보물 저장소와 같은 구찌 아카이브로부터 이제까지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보물들을 한 데 모아 만든 세계로 구성됐다. 아울러 하우스의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디자인은 물론 도시와의 깊은 유대감을 탐구한다. 아카이브에 아낌없는 경이와 찬사를 보내는 구찌의 ‘우주(Cosmos)’ 에 <바자>도 함께했다.
“현대 호텔의 역사는 사보이호텔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말이 있다. 공교롭게도 구찌의 역사도 같은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 1897년 런던에서 유일하게 전자식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호텔의 포터(porter)로 일하던 17세 소년은 그곳을 방문한 상류층 삶에 매료됐다. 더 넓은 시각과 영감을 얻은 소년 구찌오 구찌는 1921년 피렌체로 돌아와 가죽 제품을 만드는 공방을 설립했고 그렇게 구찌가 탄생했다. 전시는 그 시절의 사보이 로비와 빨간 엘리베이터(red lift)를 재현한 공간에서 시작한다.
 

ARCHIVIO

구찌의 상징적인 핸드백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고 싶다면 ‘아키비오’ 세계를 눈여겨볼 것. 피렌체의 구찌 아카이브를 연상시키는 미로 같은 공간과 거울은 무한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복도를 따라 설치된 캐비닛엔 ‘뱀부 1947’ 백부터 ‘재키 1961’, ‘홀스빗 1955’, ‘구찌 다이애나’와 ‘디오니서스’ 백까지 총 다섯 가지 디자인의 백들이 놓여있다. 오리지널 피스는 물론 새롭게 재해석한 버전을 함께 만날 수 있으며 빈티지 광고 캠페인을 재현한 파란 서랍을 열면 장인들의 스케치북과 도면 등 구찌의 아카이브 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 
 

CABINET OF WONDERS 

‘캐비닛 오브 원더스’는 영감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대담하게 향하는 구찌의 무한한 가능성을 담았다. 3m 높이의 모놀리식 큐브 속에서 특별한 기억을 간직한 의상과 액세서리들이 오브제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ZOETROPE 

어두운 원형 공간에서 조우한 ‘조이트로프’는 구찌의 오랜 영감의 원천, 승마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형 스크린에 등장한 말이 서서히 달리기 시작하고 말굽 소리와 연상되는 단어를 읊조리는 사운드가 눈과 귀를 매료시킨다. 일정하게 배치된 구찌 아카이브 피스에서 홀스빗의 모든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GUCCI ANCORA 

런던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구찌의 8번째 세계인 ‘구찌 앙코라’는 하우스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가 직접 구상했다. 이 공간은 새로운 로소 앙코라 레드 컬러로 전시의 마지막을 강렬히 장식한다. 벽면 전체를 둘러싼 단어 카드를 자유롭게 옮겨 자신만의 문구를 남길 수도 있다. 
 

TWO 

낙원을 지나면 마주하는 활기찬 새로움. 옆으로 누운 10m 길이의 거대한 화이트 컬러 ‘투’ 조각상이 시선을 압도한다. 성별을 알 수 없는 두 주인공에게 투영된 디지털 아트는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수트로 분해 구찌의 선구자적인 젠더리스 코드를 녹여냈다. 
 

EDEN 

새가 지저귀고 흰색 꽃과 곤충 모티프로 뒤덮인 세계는 바로 ‘에덴’.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를 위해 제작한 실크 스카프에 처음 등장한 ‘플로라’ 패턴에서 생명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연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는 구찌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CAROUSEL 

‘카루셀’의 세계에선 1970년대부터 사바토 데 사르노의 2024 S/S 데뷔 컬렉션까지 선보인 구찌 룩을 착용한 25개의 마네킹이 기다린다. 각기 다른 컬렉션의 룩이 조화를 이룬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구찌의 헤리티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컨베이어 벨트 주위를 맴도는 일러스트레이션은 런던 베이스의 아티스트들이 공동으로 작업했다고. 
 

PORTALS 

호텔 로비를 연상시키는 회전문을 통과하면 ‘포털’에 입장한다. 미니멀한 원형 설치물 위에는 구찌의 역사가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1920년대 후반, 구찌오 구찌가 디자인한 최초의 시그너처 수트케이스부터 1960년대에 선보인 GG 캔버스 수트케이스, 디즈니와 협업한 수트케이스까지 구찌의 러기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구찌 코스모스» 전시회는 10월 1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80 스트랜드(180 The Strand)에 위치한
180 스튜디오에서 선보인다. 올해 런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구찌가 창조한 우주를 오롯이 경험해보길 바란다.  
 

Credit

  • 글/ 한지연(런던 통신원)
  • 사진/ ⓒ Gucci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