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메가 갤러리 가고시안의 34살 큐레이터, 앤트완 사전트

신인류, 룰 브레이커, 내부자 앤트완 사전트

프로필 by BAZAAR 2023.09.29
 
2021년, 전 세계 19곳에 분점을 둔 갤러리 가고시안이 32살의 프리랜서 미술비평가 앤트완 사전트를 디렉터와 큐레이터로 발탁했을 때 그는 말그대로 ‘이슈’가 됐다. 상업성에 초연한 채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선별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역할이라 여겨온 이들은 도통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가 기획한 첫 번째 그룹전 «Social Works»는 분명 남달랐다. 흑인 퀴어 아티스트들이 이끈 1980년대 하우스 음악 신에 헌정하며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David Adjaye)가 만든 건축물부터 어반 파밍 단체와 협업해 전시장 안에 작은 농장을 만든 영화감독 린다 구드 브라이언트(Linda Goode Bryant)의 영상작업까지. 지금 흑인 예술가들이 어떻게 공동체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주제로 한 전시는 지루할 틈이 없는 시야를 보여줬다. 연이어 동명의 그룹전 2막을 연 다음 그는 타일러 미첼, 사이 개빈 같은 가고시안 소속 작가들의 전시에서 세일즈의 정점을 찍었다. 뿐만 아니라 15인의 흑인 포토그래퍼 사진전 «The New Black Vanguard»를 사치갤러리에서 열고 버질 아블로의 회고전 «Figures of Speech»를 큐레이팅하는 등 블랙 아트를 논하는 흥행 전시에 빼놓을 수 없는 기획자가 됐다. 그의 인스타그램(@sirsargent) 계정에는 마돈나와 저녁식사를 한 뒤 뉴요커 기자와 인터뷰하고, 제이지를 초청해 프라이빗 투어를 하는 스토리가 연일 업로드된다. 예술계에서 쉽사리 포개어지지 않던 아트 딜러와 큐레이터의 역할을 겸할 수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명료한 정의를 내렸다. “갤러리와 박물관 사이에는 실질적인 구분이 없다. 두 세계는 실제로 하나이며 서로 상호의존적인 관계다.”
가고시안의 큐레이터로 기획한 첫 그룹전 «Social Works 1».

가고시안의 큐레이터로 기획한 첫 그룹전 «Social Works 1».

박사 학위를 따거나 어시스턴트부터 단계를 밟지 않고 큐레이터 직을 맡게 됐다. 첫 전시를 열었을 때 감회가 어땠나? 
«Social Works» 전시를 큐레이팅한 일은 나와 갤러리, 아티스트들에게 분수령이 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갤러리 전시라는 맥락 안에서 사회참여적 예술 전시를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기 위해 몰두했다. 가고시안의 수장 래리는 전시가 완전히 의도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조언과 관점,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큐레이터들은 미술관이나 기관에 소속되고, 예술품 판매에는 관심이 적은 경향을 보였다. 상업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라는 업을 시작한 당신이 생각하는 이 직업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예술계는 그 어느 때보다 변화하고 있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대에 큐레이터의 역할은 아티스트의 작업의 깊이나 아이디어를 충분히 고려한 전시를 선보이는 것이지, 그 장소가 갤러리인지 미술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작가가 원하는 결과를 전시를 통해 달성하는 것이다.
 
가고시안 아테네 분점에서 열린, 아프리카 난민들의 커뮤니티 지형도를 캔버스에 담는 예술가 릭 로우(Rick Lowe)의 개인전 «Still Learning from Athens».

가고시안 아테네 분점에서 열린, 아프리카 난민들의 커뮤니티 지형도를 캔버스에 담는 예술가 릭 로우(Rick Lowe)의 개인전 «Still Learning from Athens».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는 당신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큐레이터”라고 말했다. 그와 같은 기성 큐레이터에게서 어떤 점을 배웠나? 
한스나 텔마 골든과 같은 큐레이터로부터 내가 깨달은 점은 아티스트와 예술의 관계를 충분한 맥락 안에서 파악하라는 것. 당연한 원칙이지만 매 전시마다 추구하는 목표다.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리서치. 나는 가능한 많은 시간을 예술가와 함께 보낸다.
패션과 예술에 대한 흑인 사진가들의 작업을 모은 «The New Black Vanguard»는 본래 사진집으로 먼저 출간된 다음 지난해 사치갤러리에서 물리적 전시로 구현되었다. 뉴욕, 요하네스버그, 라고스, 런던 등 다른 지역에서 활동해온 흑인 사진가들이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스타일리스트, 모델,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작업한 결과물이다. 
사진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사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생각을 통해 사진이라는 매체를 탐구하고 싶었다. 이미지를 통해 흑인 예술가들의 정체성, 공동체 및 욕망을 드러내고 싶었고, 그들이 만든 예술 사이에 느슨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했다. 박물관과 갤러리의 세계를 넘어선 예술가들의 활동에 대해 고찰할 수 있었다. 이들은 대중문화의 맥락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들이 이해한 관점을 공유한다. 새 시대의 이미지 제작자들을 보는 것은 흥미롭고 멋진 일이다.
 
2021년 아를 국제사진축제(Rencontres d’arles)에 전시된 «The New Black Vanguard».

2021년 아를 국제사진축제(Rencontres d’arles)에 전시된 «The New Black Vanguard».

전시에서 갤러리 안에 농장을 만들거나 건축물을 세우는 등 전시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했다. 단, 그 공간이 단순히 한 예술가의 자아 표현이 아니라 전체 흑인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어야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 바 있다. 
내 역할은 예술가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구조물과 조각은 작가들과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탄생했다. 무엇보다 관객이 작품과 즉각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식으로 작품을 배치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요즘 당신이 몰입하는 주제나 방법론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의 만트라는 항상 같다. “아티스트를 따르라”.
수 년째 예술계에서 새로운 블랙 아티스트의 이름이 발굴되고, 떠오르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예술계가 존재하는 한 블랙 아트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흑인 예술은 그 스펙트럼이 워낙 방대하고 관심사가 다양하기에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흑인 예술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반영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이다. 
 
1995년생 포토그래퍼 타일러 미첼(Tyler Mitchell)의 개인전 «Chrysalis»는 지난해 가고시안 런던 분점에서 열렸다.

1995년생 포토그래퍼 타일러 미첼(Tyler Mitchell)의 개인전 «Chrysalis»는 지난해 가고시안 런던 분점에서 열렸다.

예술에서 상업과 비상업을 나누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둘의 관계에 대한 당신만의 명료한 정의가 있나? 
갤러리와 박물관 사이에는 실질적인 구분이 없다. 두 세계는 실제로 하나이며 서로 상호의존적인 관계다.
당신이 방문했던 장소 중 가장 예술과 가까운 장소는 어디인가?
뉴욕.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전시 공간이 아닌, 비엔날레 혹은 디지털 분야에서의 전시를 기획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 적 있나?
흥미로운 장소 어디든 기꺼이 큐레이팅할 의향이 있고, 새로운 관객을 만나고 싶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만이 예술을 전시하는 공간이라 정의하는 걸 가만히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
궁극적으로 무엇이 당신을 예술세계에 머물게 만드나?
아티스트 캐리 메이 윔스(Carrie Mae Weems)의 말을 인용하겠다. Art has saved my life on a regular basis!
 
안서경은 피처 에디터다. 몇몇 아티스트의 이름만 낯익던 블랙 아트 신의 무궁무진한 영역을 탐구해보고 싶어졌다. 

Credit

  • 에디터/ 안서경
  • 사진/ ⓒ 가고시안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