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진출한 6팀 중 팀 ‘코드’가 대망의 우승팀으로 선정되었다. 시즌이 지나 버려지는 쇼핑백과 선물 박스의 쓰임을 다시 생각해 쓸모가 다양한 화분 케이스로 재탄생시켰다.
코드 팀, 우승을 축하합니다. 각자 자기 소개 해주세요.
최준명, 윤승현 국민대학교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는 단청, 자개, 도자기 등 한국 전통예술을 소재로 NFT 활동을 하는 탑시(Topcy) 최준명,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 학생이자 전시팀 ‘크레프트 토이’에 소속된 윤승현입니다.
밴드 동아리 ‘코드’에서 만난 사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팀명도 ‘코드’라고. 전공이 다른 둘이 한 팀을 이뤄 참가한 이유가 있나요?
윤승현 준명이가 3D 프린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타과 친구와 협업을 하고 싶었어요. 저에게는 당연한 과정이 상대방에게는 새로운 경험이고 저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다른 분야의 전공자와 작업할 때 생기는 시너지를 기대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죠. 제가 디테일에 강한 편이라면 준명이는 거시적 관점이 뛰어나요.
윤승현 종이 박스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모서리에 금속 장식을 사용했는데 전공자로서 디테일과 마감력에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빼자고 주장했지만 준명이가 여러 번 설득했고, 결과적으로 그 의견이 맞았어요. 작품 심사 때 전통공예 요소인 장석을 접목한 점을 좋게 평가받았거든요.
이번 공모전의 차별점은 록시땅 쇼핑백과 공병, 매거진의 새 활용이에요. 평소에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지.
최준명 NFT 활동 전에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계획할 만큼 관심이 큰 편이에요. 디자인이 쓰레기를 양산하는 일이라고 좌절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제품 디자이너는 플라스틱 쓰레기 생산가, 그래픽 디자이너는 지류 쓰레기 생산가, 패션 디자이너는 직물 쓰레기 생산가라고 농담 섞인 이야기를 했죠. 다양한 사람의 니즈와 재고를 완벽히 맞추는 건 불가능하고 결국 쓰레기가 되니까요. 이번 공모전이 저에게 의미가 큰 건 업사이클이라는 과제 아래 디자인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윤승현 졸업 전시 때 캔으로 브로치를 만들었어요. 음, 솔직히 말하면 재료비를 아끼려는 목적이었죠. 동네 길거리부터 분리수거장까지 뒤진 건 물론이고 4캔에 만원이던 맥주를 마시며 작업했죠. 그렇게 만든 작품을 계기로 이번 공모전을 제안받았고 우승까지 하게 되었네요.
업사이클링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최준명 학내에서는 업사이클 커리큘럼이 생기고 교내 프로젝트도 다양해졌어요. 졸업하고 학교에 갔는데 후배들이 광산의 노예인 양 쓰레기장에서 병뚜껑을 모으고 있더라고요.(웃음) 예전엔 업사이클을 한다면 그저 유별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일반적인 게 되었죠.
그래서 업사이클이 식상해졌다고 표현한 건가요?
최준명 네, 긍정적인 의미로요. 우리 삶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되었으니까. 윤승현 그러나 여전히 그린 워싱도 많아요. 업사이클 했다고 하지만 실체를 까보면 더 많은 쓰레기를 양산하는 경우도 있죠. 공정 과정은 물론 완성품의 처리까지 고민해야 해요.
‘코드’는 한지로 갑옷을 만들던 전통합지공예에서 영감을 받아 록시땅 쇼핑백과 선물 상자를 겹겹이 붙여 화분 케이스를 만들었다. 세 가지 작품에는 록시땅 쇼핑백 약 2백20장과 선물 박스 25개가 사용되었다.
코드가 앉은 의자는 그들의 멘토인 작가 김하늘이 제작한 폐마스크 업사이클링 작품.
(왼쪽) 윤승현이 착용한 톱은 Axelarigato. 데님 재킷, 팬츠는 Recto. 반지는 Wooyoungmi. 스니커즈는 Adidas. 최준명이 착용한 데님 재킷, 팬츠는 Recto.
반지는 Wooyoungmi. 스니커즈는 Adidas. 이너 티셔츠와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드’가 이번 공모전에서 우승한 이유이기도 해요. 이 작품은 “뒷산에 가져다 버려도 된다”는 자신감을 보였죠.
최준명 그 점을 깊이 고민했고, 모든 재료를 친환경으로 채택하려고 노력했어요. 록시땅 쇼핑백과 선물 박스를 친환경 물풀로 붙이고 친환경 도료인 옻칠로 마감했죠. 바닥면을 받치는 지지대는 사탕수수를 원료로 한 플라스틱을 사용했고요.
바닥에 있는 빨간색 지지대를 보고 ‘저 부조합은 뭐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지고 있던 재료를 활용했다는 걸 알고 생각이 바뀌었죠.
최준명 가장 친환경적인 행위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거니까. 쇼핑백 손잡이를 활용한 것도 동일해요. 모든 재료를 남김 없이 쓰기 위함도 있지만 나사를 대체해 지지대를 고정하는 역할을 하죠.
레이저 커팅기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재단을 손으로 한 것도 인상적이에요. 힘들었을 텐데.
윤승현 칼질을 천 번 이상 한 것 같아요. 지옥의 칼질이었죠.(웃음) 1학년 때 죽도록 하기 싫었던 톱질과 망치질이 도움이 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정말 싫었거든요. 디자인과 학생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업할 때 저희는 공구에 익숙해 지기 위해서 톱질부터 배웠어요. 그게 참 막막했죠. 그러다 공예가 심현석 작가님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선생님은 작업의 이유를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기기 보다 본인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사용자의 생활에 잘 쓰이는 것’ 그게 작업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싶네요. 그 후론 저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어요. 이번 화분 케이스도 다양하게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양과 크기를 달리했죠.
최준명 록시땅 매장에서 실제로 쓰이는 만큼 내구성을 높이는 데 공을 들였어요. 흔히들 업사이클 오브제라고 하면 ‘우린 착한 제품이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안일함을 갖곤 하는데 그런 게 참 싫어요. 업사이클이 완성도나 디자인이 떨어지는 걸 용서받을 이유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수차례 옻칠을 하고, 종이 외에 금속을 사용해 작품의 수명을 높였어요.
폐마스크를 재활용해 가구를 만드는 김하늘 작가가 멘토였어요. 어느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나요?
최준명 유기적인 형태를 제안해주셨어요. 처음 화분 케이스를 기획할 때는 전부 사각형의 박스 형태였어요. 윤승현 또 완벽한 마감을 위해 나이테처럼 보이는 윗면을 가리려고 했는데 그 부분이 핵심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직접 보지 않고는 종이를 겹쳐서 합지를 만들었다는 게 와닿지 않으니까요.
매장에서 작품이 쓰이기 전 독자들이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9월 10일부터 한남동에서 열려요. 감상 포인트를 소개한다면?
최준명 ‘월리를 찾아라’처럼 박스 곳곳에 숨어 있는 록시땅 로고를 찾아보세요. 윤승현 쉽게 해지고 구겨지는 종이의 물성이 달라진 점도 확인해보세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의 실제를 볼 수 있죠. 저희 팀의 작업 모토는 “물건의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하고 유머와 재치를 더하자”예요. 가벼운 물건을 담는 쇼핑백의 쓰임이 배가되는 재미. 또 종이는 나무를 분해한 소재인데 그걸 재결합해 나이테처럼 만들고 나무를 담는 케이스로 재탄생시켰다는 위트도 봐주시면 좋겠어요.
내년에도 동일한 공모전에 참여한다면 어떤 아이템을 만들고 싶은가요?
윤승현 공모전이 아니더라도 이번에 쓰고 남은 쇼핑백으로 딥 펜을 제작할 계획이에요. 실제로 쇼핑백을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를 모아서 아이디어 수첩을 만들어 사용 중이죠. 두 가지 아이템으로 기프트 세트를 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 최준명 ‘친환경’이라고 하면 대체로 모범생 이미지잖아요. 이를 깨고 쿨하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합지를 만들고 깎아서 연주가 가능한 기타나 베이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