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 벚꽃으로 물들었을 때〉
예술이 우리 삶에 주는 효능 가운데 하나는 현실 이면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화약을 활용해 퍼포먼스와 설치 미술, 회화 등 경계 없이 작업을 이어온 중국 예술가 차이 궈 창(CaiGuo-Qiang). 그는 바로 그 효능과 맞닿은 작품을 선보여왔다. 서예가의 아들로 자라 상하이희극학원에서 무대 디자인을 전공한 차이는 중국 현대미술이 태동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고유한 작업 세계를 구축해 세계적 아티스트로서 명성을 얻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식 시각 특수예술 분야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하늘이 벚꽃으로 물들었을 때〉
6월,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 요쓰쿠라 해변에서는 한 예술가의 ‘처음’을 목격할 수 있는 색다른 이벤트가 열렸다. 도쿄국립신미술관(NACT)에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 《우주 속의 산책 - 원초적 불덩이 그 이후, Ramble in the Cosmos - From Primal Fireball Onward》를 앞두고 작가에게 각별한 장소에서 아트 퍼포먼스가 열린 것. 형형색색의 폭죽이 한낮의 하늘에 각기 다른 형태를 띠며 풍경을 수놓았다. 〈하늘이 벚꽃으로 물들었을 때〉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생 로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가 의뢰하고, 이와키 집행위원회가 주관한 행사다. 작은 해안가 마을인 이와키 지역과 차이 궈 창 사이에는 각별한 관계성이 자리한다. 1988년부터 이와키에 정착해 9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그는 지역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며, 주민들과 함께 예술적 실험을 이어갔다.

차이 궈 창
특히 눈여겨볼 점은 이번 퍼포먼스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피해를 입었던 이와키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의도를 담아 연출되었다는 것. “예술 안에서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누구든 개방적일 수 있으며, 유대와 우정을 쌓아갈 수 있다. 폭발은, 폭력이나 파괴와 관련되어 보이지만 나는 예술로, 아름다움과 평화로운 상태를 위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폭죽을 사용한다. 우리는 파괴 안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볼 수 있다.” 라고 기자간담회에서 말하던 그의 철학을 실감할 수 있던 시간. 퍼포먼스는 폭 400m, 높이 130m의 공간을 메우며 약 30분에 걸쳐 4만여 발의 불꽃 탄으로 구성되었다. 장소와 시간을 온전히 점유하고, 장악하며 ‘희망’이라는 직관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우주 속의 산책 - 원초적 불덩이 그 이후》 전시 전경.
나아가 본무대인, 도쿄국립신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또다른 시공간이 펼쳐지는 듯한 경험을 마주할 수 있다. 신작과 LED와 NFT를 활용한 근작까지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에 존재하는 50여점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생 로랑과 도쿄국립신미술관이 공동 주관한 이번 개인전은 약 30여년 전인, 1991년 도쿄에서 선보인 개인전 《원초적 불덩이: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젝트》의 연장선이다. 고대 철학, 풍수와 점성술에 관심을 두고 우주와 이면의 세계를 탐구한 차이의 예술 세계를 아우른다. NACT의 총책임자 오사카 에리코(Eriko Osaka)는 “차이 궈 창의 작품은 우주의 작은 입자에 불과한 우리가 우주적 관점과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길 제안합니다”라고 말했다. 'Gunpowder Painting'이라 불리는 회화들은 폭발한 화약 가루들이 수묵화와 추상화 사이의 형태를 띠며, 탄생과 소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방대한 아카이브도 만나볼 수 있는데, 1993년 중국 만리장성에서 고비사막까지 10km가량 화약을 터뜨린 〈만리장성을 만 미터와 연장하다〉부터 하늘로 화약으로 만든 사다리를 세운 〈스카이 래더〉를 제작하는 과정도 전시되어 있다. 전시 오프닝 하루 전날, 생 로랑이 주최한 프리뷰 파티에는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미술계 인사들과 셀러브리티들이 자리를 빛냈다.

《우주 속의 산책 - 원초적 불덩이 그 이후》 전시 기념 애프터 파티에 참여한 위키미키 김도연.
전시를 둘러보며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업적을 뒤로 하고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건 한 젊은 예술가가 품어온 꿈이다. 오랜 시간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고, 사유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도전해온 한 인간의 모습이 가장 압축적인 광경 안에서 표현된 기회를 반드시 감상해보길.

《우주 속의 산책 - 원초적 불덩이 그 이후》
※ 차이 궈 창의 개인전 《우주 속의 산책 - 원초적 불덩이 그 이후, Ramble in the Cosmos - From Primal Fireball Onward》는 도쿄신국립미술관(NACT)에서 2023년 8월 21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