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Tanya Merrill, 〈Birds Overhead〉, 2023, Oil and graphite on linen, 84x72 inches (213.4x182.9cm), TME 162. © the artist. Courtesy of 303 Gallery, New York.
바젤 자연사박물관에 타냐 메릴의 대형 회화 네 점이 애초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처럼 능청스레 걸려있다. 아트 바젤 파쿠르 섹션의 큐레이터 사무엘 루엔베르는 그녀에게 지금껏 한 번도 대중에게 공개된 적 없는 박물관의 사적 공간에 작품을 거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근엄한 박물관의 빗장을 열어 계단을 굽이굽이 올라 낡은 선풍기가 탈탈 돌아가는 꼭대기층 다락방에 이르기까지. 여성과 자연에 관한 부드러운 은유가 당신을 환대한다.
Installation view, Tanya Merrill, 〈Birds Overhead〉, 2023, Oil and graphite on linen, 84x72 inches (213.4x182.9cm), TME 162. © the artist. Courtesy of 303 Gallery, New York.
바젤 자연사박물관에 걸린 네 점의 대형 회화에 대해 설명해달라. 로비부터 다락방까지 작가인 당신이 가이드가 되어서.
당신이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처음 마주하게 되는 페인팅은 〈Helene Pregnant〉이다. 이것은 허구의 포트레이트이며 예술가 헬레네 세르프벡(Helene Schjerfbeck)에 대한 오마주다. 로테 라저슈타인(Lotte Laserstein)[1]의 초상화처럼, 나는 내가 존경하는 여성 아티스트들에 대해 사색한다. 그들이 임신을 한 상태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묘사함으로써 특별한 에너지를 발견하고자 한다.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사회와 생태계에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탐구인 셈이다. 캔버스 하단에 그려진 여름복수초는 집약농사와 제초제 사용으로 스위스에서는 희귀종으로 분류되는 식물이다. 그 위에 어른거리는 새들의 그림자는 계단 중간에 걸려있는 다른 작업 〈Crows over Italian landscape〉와 연결된다. 이 작품에 묘사된 까마귀들은 이 땅의 생태계를 장악한 인간을 지켜보는 ‘증인’으로 발튀스(Balthus)의 1951년 그림을 참고한 것이다. 발튀스의 그림에서 발견하는 약간의 아이러니가 재미있다. 합성비료와 살충제가 시장에 출시돼 전원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점이 그렇다. 1980년 이후 유럽은 조류 서식지 감소로 5분의 1 이상의 새가 멸종됐다. 계단 초입에는 〈Birds Overhead〉가 걸려있다. 한 여성이 풀밭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계단을 더 올라서면 새들이 땅을 내려다보는 반대편의 시각이 담긴 작업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꼭대기층으로 올라가면 〈Goya’s Ass〉를 만날 수 있다. 고야의 〈Los Caprichos[2]〉 연작을 참고했는데 무엇보다 나는 작품을 ‘회개’의 수단으로 활용한 그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인간의 나체에는 누추함과 연약함이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Tanya Merrill, 〈Helene Pregnant, Painting〉, 2023, Oil and graphite on linen, 84x60 inches (213.4x152.4cm), TME 161. © the artist. Courtesy of 303 Gallery, New York.
당신은 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부터 복제양 돌리에 이르기까지 신화와 미술사, 현대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상징을 그림으로 그려왔다. 자연사박물관이라는 장소가 당신의 작업과 어떤 연결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이 같은 다양한 레퍼런스를 통해 언제나 현재를 이야기해왔다. 특히 이번 작업은 인간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자연사박물관은 이런 질문을 다루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익숙한 공간을 새로이 탐색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Birds Overhead〉는 계단 앞 대형 창문 옆에 걸려있다.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이 마치 눈부신 태양빛을 피해 손을 뻗고 있는 것처럼.
당신의 느슨하고 여유로운 그림체는 만화 같기도 하고 때론 인상주의적 제스처로도 보인다. 언제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느끼나?
컬럼비아대학의 교수이자 화가인 그레고리 아메노프(Gregory Amenoff)는 “그림은 단지 결정의 축적일 뿐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과정이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하며 과도하게 공들이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림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으면 되려 절박함이 사라지는 것 같달까. 더 이상 결정할 것이 남아있지 않을 때 혹은 캔버스에 담긴 그림이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압도할 때 나는 마침내 그림이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다.
[1] 1900년대 초 독일의 여성 화가. 주로 여성의 초상화를 그렸으나 전통적인 화가-모델의 관계와 달리 피사체를 대상화하지 않고 동등한 시선으로 묘사했다. 혹자는 그녀를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마리안느에 빗대기도 한다.
[2] ‘변덕들’이라는 뜻으로,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고야의 내적 변화와 계몽사조의 영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인간 본성의 추악함과 사회 부조리를 풍자하기 위해 제작한 판화집이다. 부패한 성직자들, 방탕한 귀족들, 마녀와 악마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는 종교재판에 소환될 것을 염려하여 열흘 남짓 만에 판화집을 회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