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스니커즈로 제작한 블랙과 레드 하이힐은 Ancuta Sarca. 화이트 스니커즈는 모두 Addidas. Asics SportStyle. Axel Arigato. Converse. Nike.
에디터는 패션 아이템 중에 슈즈를 가장 좋아하고 그만큼 쇼핑도 꽤나 즐기는 슈즈러버다. 어느 날 문득 집을 나서다 신발장에 자리를 찾지 못하고 켜켜이 쌓여있는 신발들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중고거래를 하기도 하고 재활용 가능한 것은 묶어서 버렸음에도 여전히 신발을 이고지고 사는 느낌이다. 기후변화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마다 약 2백억 켤레(이도 팬데믹으로 인해 줄어든 수치)가 생산되어 막대한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GHG)의 1.4%가량을 차지한다. 이 엄청난 생산량 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단 5%에 불과하다는 놀랍고도 슬픈 사실. 주요 소재인 고무, 플라스틱, 가죽, 직물 등은 제조과정에서 수많은 오염 물질을 발생시키고 분리도 어려울뿐더러 소재를 연결하는 접착제도 재활용을 어렵게 만든다고. 따라서 이 고난이도의 작업 과정이 따르는 재활용 신발로 만든 제품들의 가격은 고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속가능성을 외치는 지금이야말로 신발 재활용이라는 고행에 도전하며 지구를 살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의 노고와 가치를 되새겨야 할 때 아닐까.
스포티한 매력의 하이브리드 슈즈는 Ancuta Sarca.
루마니아 출신의 디자이너 안쿠타 사르카(Ancuta Sarca)는 2019년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블을 론칭한다. 그리고 버려진 운동화를 재활용해 키튼 힐로 재탄생시킨 하이브리드 슈즈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주로 클래식한 디자인의 스포츠 스니커즈 앞코와 발등 부분을 재활용해 뮬 디자인으로 완성하는데, 예상치 못한 조합이 주는 매력이 상당하다. 지난해부터는 나이키와 손잡고 재활용 운동화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포뮬러 1 자동차와 드라이버들이 입는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입니다. 역동적이고 실용적이며 매끄럽고도 고급스러운 디테일을 지향합니다. 이것이 스포츠카와 안쿠타 사르카가 지닌 공통점이에요.” 보강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등 모든 작업 과정에서 환경을 염두에 둔다고 덧붙인다.
해체와 재조합을 거쳐 완성된 패치워크 스니커즈는 Peterson Stoop.
페테르손 스토프(Peterson Stoop)도 주목할 만하다. 옐스케 페테르손과 야라 스토프 듀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미술학교 아르테즈에서 만나 손을 잡았다. 창작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세상에 긍정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던 그들은 “신발에 새로운 영혼을 부여합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브랜드를 소개하는 진지하고도 유머러스한 철학을 지녔다. 페테르손은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구두 수선공 닐스 칼프(Nils Kalf) 아래에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운동화가 수선이 되지 않는 일회성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수선할 수 없는 신발에 새로운 밑창, 즉 새로운 영혼을 부여하는 독특한 기술을 발명하기에 이른 것. 이 트레이드마크 기술은 서클 웰트TM(Circle WeltTM)라고 불리는데, 가죽 스트랩(웰트)을 신발 갑피에 원형으로 감아 중창에 바느질하여 부착하는 방식이다. 이뿐만 아니라 낡은 신발을 분해하여 다시 제작하는 기술력으로 완성하는 패치워크 컬렉션도 선보이고 있다. 버켄스탁의 상징적인 풋베드를 사용한 패치워크 뮬은 브랜드의 시그너처로 자리 잡았다. 또한 고객의 손에 전달되는 패키지에까지 진심을 기울인다. 빈티지 티셔츠로 만든 더스트와 버려진 신문으로 포장하는 것. 이처럼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되는 페테르손 스토프의 슈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리사이클링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소재들의 믹스되어 새롭게 탄생한 스니커즈는 Helen Kirkum.
스니커즈를 재활용해 만든 ‘와인’ 백은 Kimjisoon.
재활용 슈즈의 메이드 투 오더 시스템을 지향하는 디자이너 헬렌 키르쿰(Helen Kirkum) 역시 장인에 가깝다. 2019년 본인의 이름을 딴 헬렌 키르쿰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의류 수거함에서 버려진 신발들을 구출한다. 한 사람의 추억과 이야기가 담긴 스니커즈를 수거해 해체 작업을 거친 후 재조합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로 재탄생시키는 것. 웹사이트(www.helenkirkum.com)를 통해 진보적인 컨설팅을 제안하고, 온라인 워크숍도 운영하고 있다. 아디다스, 리복, 아식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한 바 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탈바꿈한 미니 백은 Kimjisoon.
버려진 슈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체인 숄더백은 A3 Studio.
슈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새로운 슈즈에 그치지 않고 더욱 확장되는 추세다. 프랑스 파리 기반의 A3 스튜디오는 아버지와 두 아이들이 함께 이끌어가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스트리트 무드에서 영감을 받아 버려진 슈즈를 재활용하고 체인 스트랩을 장식해 핸드백으로 변신시킨다. 이 미니 백들은 마치 하나의 아트피스 같은 느낌을 주어 소장 욕구를 일으킨다. 대한민국의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김지순 역시 흔하게 버려지는 스니커즈를 디자인의 주요 소재로 활용한다. 대학생 시절부터 크리에이티브 루트 수업으로 업사이클링 작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가족들의 낡은 신발들을 해체해서 새로운 옷으로 탄생시켰다. 입체적인 스니커즈 소재와 패턴들이 겹겹이 쌓이고 곡선의 절개들이 평면 위에서 재조합된 코르셋은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코르셋을 시작으로 헤드피스, 톱, 핸드백 컬렉션까지 자신의 꿈을 확장하고 있는 김지순.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이미 이루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