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진화의 방향은 다양성의 증가다. 이제 사람들은 집 역시 패션과 마찬가지로 세밀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길 원한다. 전 세계적으로 홈 디자인은 팬데믹 기간 동안 6천4백30억 달러(약 8백34조원)의 규모로 성장했고, 앞으로도 연간 5% 이상으로 성장할 거라는 것이 업계의 예상이다. 이는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다. 특히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의 홈 디자인 부문은 매년 3~4%씩 성장하는 산업이었는데, 팬데믹 기간 동안 25% 이상 급성장했다. 이건 단순한 현상이 아니며, 펜데믹으로 인해 이미 사람들이 생활방식과 집에 대한 경험을 변화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 예상된다. 물론 럭셔리 업계가 홈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개척지를 개간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그 성장을 촉진한 경향도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패션에 대한 지출은 40~50대에 감소하기 시작하지만, 인테리어에 대한 지출은 60~70대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많은 수익과 성장을 위해선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 필요한 셈. 게다가 이렇게 유입된 고객은 패션보다 더 진득하게 브랜드 충성도를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패션 브랜드들은 그들이 쌓아온 이미지를 활용해 패션 너머의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자, 이제 우리의 취향과 이상을 담고, 또 우리의 기울어진 인성을 바로잡아줄 새로운 홈 디자인을 찾아보자. 여기 수많은 옵션 중에서 말이다.

이탈리아의 문화와 전통이 담긴 고저택 카스텔로 디 마시노(Castello di Masino)에 전시된 돌체앤가바나 카사 컬렉션 중 지브러 시리즈.
Dolce & Gabbana
대체 불가능한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인 돌체앤가바나는 특유의 과감한 디자인 파워를 카사 컬렉션에서도 십분 발휘한다. 이탈리아의 대범함을 담아 시칠리아의 전통 손수레 카레토, 지중해의 파랑, 레오퍼드, 지브러라는 테마로 선보이던 홈 컬렉션에 올해부터 새로이 DG 로고, 오로 24K 테마를 추가했다. 정교한 공예술과 이탤리언 디자인, 그리고 브랜드의 DNA를 담아 가구부터 오브제까지 테마별로 방대한 아이템을 선보인다. 이와 더불어 이번 밀라노 디자인위크 때는 젠 D(Gen D)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국가에서 선발된 10명의 젊은 디자이너와 함께한 수공예 제품을 선보였다. 한국의 도예 작가 이아련도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해 이탈리아식 수공예와 한국 도예 기술을 조합한 오브제를 완성했다.

위풍당당하게 솟아있는 각진 바위, 강, 흰색과 붉은색이 대조를 이루는 석호, 소금 결정으로 변해버린 덤불을 닮은 로로피아나의 아파체타 컬렉션.
Loro Piana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로로피아나의 홈 디자인 컬렉션은 과민한 영혼을 달래줄 차분한 스타일이다. 그들의 옷과 마찬가지로 로로피아나는 최상의 소재를 찾고, 소재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줄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혼신을 다한다. 이번 2023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인 크리스티안 모하데드(Cristian Mohaded)와 함께 ‘아파체타(Apacheta)’ 컬렉션을 선보였다. 아파체타는 수세기에 걸쳐 여행자들이 안데스산맥의 길과 여정을 표시하는 돌탑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문화를 담고 있다. 최고 8m에 이르는 12개의 불규칙하고 아슬아슬한 돌탑은 로로피아나의 지난 컬렉션에서 가져온 올드 패브릭을 재사용해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모하데드가 새롭게 디자인한 동글동글한 소파, 안락의자, 벤치, 테이블 등은 사용자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마치 품질에 충실한 그들의 조용한 옷들처럼 말이다.

필립 스탁과 디올의 두 번째 만남, 미스 디올 누아르.
Dior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집에서 살면 남의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크리스찬 디올의 말처럼 집은 옷만큼이나 섬세하게 취향을 반영한다. 디올은 2022년에 이어 이번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도 필립 스탁의 힘을 빌려 하우스의 정신이 담긴 의자 컬렉션을 선보였다. “미스 디올 스위트 체어와 무슈 디올 암체어로 구성된 듀오는 중력과 가벼움, 음과 양이라는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관념을 통해 완벽한 균형을 보여줍니다. 미스 디올과 무슈 디올, 카트린 디올과 크리스찬 디올, 여동생과 오빠, 체어와 암체어는 서로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원성을 표현합니다.” 필립 스탁의 말처럼 새로운 의자들은 디올 가문의 우아함을 담고 있다. 폴리싱 또는 래커 처리된 알루미늄, 에크루 부클레 패브릭과 핑크, 블랙 또는 형광 오렌지 컬러의 뜨왈 드 주이 패턴 등 다양한 소재와 컬러로 선보이는 의자들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제작된다. 새로운 ‘디올 바이 스탁’ 컬렉션은 2024년부터 일부 디올 부티크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주문은 모든 디올 매장에서 할 수 있다.

티에리 르메르가 만든 펜디 카사의 우아한 소파.
Fendi
펜디는 최근 FF 디자인(Fashion Furniture Design)이란 이름으로 홈 컬렉션을 공격적으로 확장 중이다. 지난 4월, 국내 첫 론칭을 알린 펜디 홈 컬렉션은 장인정신과 관련된 공예(Crafting), 포근한 분위기의 가족(Family), 강렬하고도 화려한 매력의 활력(Vibrant), 이 3가지 콘셉트를 디자인 철학으로 삼고 있다. 소파와 침대를 비롯해 테이블웨어까지 다종다양한 컬렉션에 펜디의 디자인 코드를 주입했다. 특히 패션업계에서 쌓아온 소재에 대한 노하우와 디자인적 감각, 럭셔리 소비자의 취향에 맞춘 소파 컬렉션은 펜디의 홈 컬렉션 중 가장 돋보이는 부분. 또한 이번 밀라노 디자인위크에는 루이스 폴센과 협업해 아이코닉한 조명 ‘아티초크(Artichoke)’를 펜디 버전으로 선보였다.


etro
1980년대부터 에트로는 페이즐리 패턴을 이용해 이불과 소파 등 홈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밀라노 디자인위크 때는 ‘패턴 속으로 뛰어들기(Diving into Pattern)’라는 지극히 에트로스러운 테마로 새로운 컬렉션을 소개했다. 포셀린, 나무, 금속, 패브릭을 이용해 기존의 아카이브와 로고, 상징적인 패턴을 담은 소파와 가구를 선보인 것. 지루하지도, 쉬이 질리지도 않는 에트로의 패턴은 홈 컬렉션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여기에 미국 출신의 예술가 아미 링컨(Amy Lincoln)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낭만적인 자카드 캐시미어 블랭킷 시리즈는 패션과 홈 디자인의 결합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