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는 Demoo. 블라우스, 슈즈는 & Other Stories. 와이드 팬츠는 Cos.
2006년 크리스마스 날 아침, 나 역시 한국 최초 우주인 후보가 선발된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최근 발간한 에세이집 〈우주에서 기다릴게〉는 당시 29살이던 이소연의 고단하고 설렌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선발된 이후 일 년여간 러시아 가가린 우주비행사 훈련센터에서 매일 그날의 키워드를 기록했다. 평소 꾸준히 일기를 쓰기 때문에, 그간 써둔 글들과 순서를 맞추고 빈자리를 메우며 집필하는 데는 몇 달 정도의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단지 내 이야기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책을 읽으며 씩씩하고 무던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구로의 무사귀환을 위해 발사대로 향하기 전 타이어를 향해 소변을 보던 남자 우주인들의 ‘유리 가가린 표 세리머니’를 같이 하게 해달라고 조르거나, 합숙 기간 중 생리통이 심했지만 모든 테스트를 소화하는 등의 일화를 고백했다.
철이 없어서 마냥 용감했던 것 같다. 신기한 일의 연속이라 집중하다가 힘든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원체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문제가 생기면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방법을 찾는 편이다. 우주를 아예 모르는 사람도 우주인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우주연구소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도록 진솔하게 들려주고 싶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9박 10일 동안 18가지 미션을 수행했다. 다른 국가 우주인들보다 일정 대비 더 많은 임무를 맡았다. 이외에도 러시아어 습득은 물론, 수상 및 지상, 무중력 훈련, 통신법까지 여러 생존 훈련을 받아야 했는데, 그 많은 지침을 익힐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
모든 훈련은 사람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에, 암기보다는 일일이 매뉴얼을 확인하면서 몸에 체득하는 과정을 기반으로 한다. 초창기 우주비행사 중 전투기 비행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문화에서 이어진 점도 있다. 내겐 암기보다 더 잘 맞는 과정이었다.
매일 임무를 이행하면서 가장 좋아한 순간으로 한밤중 잠에서 깨어 우주정거장 캐빈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는 시간을 꼽았다. 고요히 우주를 마주하면 어떤 기분일까, 짐작해봤다.
바쁘게 임무를 수행하다가 혼자 아무 생각 없이 우주를 바라보고 있을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빡빡한 일정의 해외 출장을 가면 하루라도 자유 시간을 가져야 그 도시를 경험할 수 있게 되지 않나. 그와 비슷했던 것 같다. 막상 우주를 다녀온 뒤에는 우주를 오롯이 느낄 수 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다. 통상적으로 7~8년씩 훈련을 받고 우주인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나는 일 년간 훈련을 받았기에 모든 걸 제대로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우주비행사 12인과 대화한 인터뷰집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보면 우주 체험이 인생을 180도 바꾸었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무신론자가 성직자가 된다거나. 당신에게도 그런 변화가 있었나?
물론 여운과 충격이 컸다. 하지만 요즘은 과거에 비하면 우주에 대한 정보가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에 삶이 전복될 정도의 변화가 생기진 않았다. 또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 우주에 대한 판타지가 너무 큰 사람들은 제외되기도 한다. 그저 삶에 대해 지극히 당연한 깨달음을 얻었다. 우주인이 되기 전의 나는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좋은 학교에 가 좋은 직장에 취직해 인정받는 게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그런 생각에 균열이 나면서 앞으로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지 고민이 되더라. 다른 우주인들의 진로에 대해 찾아본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최초 우주인은 농사를 짓고, 몽골 최초 우주인은 국방부 장관이 된 것처럼 모두 저마다 다른 모양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지구로 귀환할 당시 카자흐스탄 초원에 비상착륙한 모습.
항공우주연구원에서 4년을 일한 이후 다양한 이력을 거쳤더라. 국내 인공위성과 바이오 스타트업에서 일하기도 하고, 부수적인 일로 국내외 SF 장르 작가들에게 자문하는 일도 해오고 있다.
많은 관심을 받았기에 늘 빚진 느낌이 있다. 그래서 우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드는 매체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애니메이션, 영화, 책 등 우주를 다양하게 다루는 일에 자문한다. 지금 회사는 박사 전공인 바이오 분야와 관련된 일로 시작해 우주와는 전혀 연관이 없었지만, 말라리아 진단 플랫폼을 연구하면서 다른 국가 전문가들과 소통할 때 우주인이라는 경험 덕에 새로운 인연이 닿기도 한다.
우주에 대해 갖는 환상에는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
콘텐츠의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과학적으로 너무 터무니없는 예측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조언하려 한다. 예를 들어 SF 영화 속에서 우주선이 행성에 헬기처럼 자유롭게 착륙하고 이륙하는 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우주인들끼리 우주선 안에서 밥을 먹으며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같은 가벼운 주제에 대해서도 많이들 궁금해한다. 사실 기술이나 천문 얘기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족이 보고 싶다” 같은 얘기를 나누지.
우주탐험가협회(Association of Space Explorers)를 통해 해마다 우주를 경험한 사람들끼리 모임을 갖는 점도 흥미롭다.
우주에 다녀오면 가입을 권유받는다. 매해 호스트 국가를 바꾸어 모임을 주최하는데, 수백 명의 우주인들이 모인다. 냉전시대에 우주에 갔던 우주인들부터 최근 민간 우주 비행을 경험한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나사(NASA)나 러시아연방우주국(ROSKOSMOS) 등 다른 우주청에서 출장으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 항공우주연구원에 재직하던 시절 출장 차 찾았다가 이후에는 사비로 참여하곤 했다. 일주일 동안 학회처럼 열리는데, 3일 정도는 우주 연구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공유하고, 반드시 하루는 호스트 국가의 과학관에서 조를 짜서 강의를 한다. 최근 참여한 건 아폴로 11호 50주년 기념 행사였다.
「 지금, 숨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는 것. 우주에서 보면 어떤 국가, 어떤 환경에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모두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해가 뜨고 질 때의 광경. ⓒ Nicole Stott
긴 시간 ‘한국 최초 우주인’의 무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일본처럼 이후 후속 우주인이 나온 국가와 달리, 국내에서는 계속 유일한 존재로 남아있으니. 최근 정부가 연내에 우주항공청을 개청할 것이라 입법을 예고했다.
두 번째 우주인의 당위성을 아직 못 찾은 것이라 본다. 한국은 효용이 중요한 사회이고, 공항을 짓더라도 왜 지을지에 대한 논의가 팽팽한 것처럼 우주산업 또한 마찬가지다. 국내 우주산업이 활발해지길 나 역시 바라고 있고, 도움될 부분에 대해 열려있다. 내가 선발될 때만 해도, 한국이 ‘최초 우주인’을 선발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우주인을 배출하고 끝내는 국가가 많다. 중국, 일본, 유럽과 미국 등의 국가만 이후 정부 주도로 제2, 제3의 우주인을 선발해왔다. 우주인이 비행 후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론의 편차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개인이 중요한 사회에서는 큰 논의가 되진 않지만, 정부나 집단에 대해 중시하는 국가에서는 여전히 논란이 된다.
중력이 없는 우주정거장에서 부은 얼굴을 보고 외모를 비하하는 댓글이 달리는 등 여성 우주인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편견도 있었다. 우주인 이소연과 개인 이소연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든다. 2000년대에 우주로 떠나서 다행일까? 1970~80년대에 남들이 하지 못한 커리어를 이룬 여성들은 더욱 불편한 삶을 살았을 텐데…. 지금은 여성에 대한 이해나 권리가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과거에는 의무감 때문에 우주인 이소연과 개인 이소연을 명백히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과연 100%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든다. 내 삶에 만족하지 못했을 때는 오해나 논란이 힘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명백한 근거가 없는 이야기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내 선택에 책임져야 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며, 모든 선택의 과정에는 인사이트가 있다는 걸 배웠다. 내 선택을 스스로 믿어주고 자신감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우주라는 경험은 당신에게 어떤 인사이트를 남겼나?
지금,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는 것. 앞서 말했듯이 우주에서 보면 어떤 국가, 어떤 환경에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모두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부의 편차를 느끼거나 비교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나 역시 나약한 인간이기에 이런 깨달음을 잊기도 하지만 다시 되뇌며 기준으로 삼는다. 우주는 그 어떤 편견 없이 모두에게 열려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