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양한 것들을 열심히 찾아 다니고 감상하면서 결국은 자신만의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게 아닐까. 꼭 예술가가 되어서 작품을 만들지 않더라도 그 무엇이든. 그러니까 삶의 어떤 부분을 말이다.
당신과 미우미우의 인연은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 «The Milk of Dreams»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당신이 본전시 출품작인 〈장난감 프로토타입〉에 흥미를 가지면서 이 협업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3 가을/겨울 미우미우 컬렉션의 무대 디자인은 〈장난감 프로토타입〉과 어떤 연관성을 갖나?
내 작품을 올려놓는 받침대는 원래 극장이나 야외 콘서트에서 무대에 쓰이는 재료이다. 〈장난감 프로토타입〉을 비롯하여 최근 로봇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이 플랫폼이 패션쇼의 무대가 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패션쇼 무대로 사용되었고 영상 작업에서는 옷을 올려놓는 용도로 등장한다. 평소 로봇의 하드웨어를 제작하면서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하듯’ 볼트를 조였다고 표현하곤 했는데 그렇게 로봇을 만들던 작업대에서 옷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해보게 된 것이다.
관람객의 관찰을 돕기 위해 길쭉한 통로와 높은 런웨이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 스크린을 형성했다. 무대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내 작업을 아는 사람이라면 정금형의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르는 형태가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기존의 어떤 특정 작업의 이미지를 무대 디자인에 직접적으로 사용하기 보다는 내가 작업을 보여줄 때 반복적으로 선택했던 환경이나 시설을 가져오고 싶었다. 예를 들면 밝은 형광등 조명, 병원이나 의료시설이 떠오르는 차갑고 하얀 배경, 모니터를 거는 용도이면서 공장의 느낌을 주는 트러스, 작업을 올려놓는 받침대로 쓰였던 플랫폼 같은 것들이다.
지금까지 주로 차가운 금속 오브제를 사용했다면 이번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옷에 집중했다. ‘의식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어쩌면 옷은 지금껏 당신이 다루었던 마네킹, 진공청소기, 로봇보다도 훨씬 인간과 친밀한 오브제다.
최근엔 금속의 이미지가 다수이지만 과거에도 오브제로서의 옷은 작품에 계속 등장했다. 초기작인 〈7가지 방법〉에서 옷은 신체 일부분을 가려서 신체를 변형, 왜곡시키고 신체의 일부를 사물로 보이도록 돕는 매체였다. 〈재활훈련〉에서는 마네킹과 옷 벗기 훈련을 하기도 했다. 만약 2016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렸던 개인전 «개인소장품»을 본 사람이라면 정금형의 무대에 등장했던 다양한 오브제 중에 옷이 상당 지분을 차지했던 걸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 작업에서 옷은 대부분 구체적인 용도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수단으로 쓰였던 것 같다. 이번처럼 순수하게 주인공이었던 적은 드물다.
사물과 움직임을 엮는 작업에서 부드럽고 유연한 소재는 상대적으로 다루기가 쉬운 편이다. 학생들과 워크숍을 해봐도 천이나 옷 같은 변형이 쉬운 오브제에 먼저 접근해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유연한 소재들을 찾아다니다가 점차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면서 단단한 물체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사물 자체에 움직임의 가능성이 있어야 신체의 움직임에도 할 짓거리가 생기는 법인데 경험이 쌓이면서 움직일 만한 관절 부위가 없는, 통으로 된 사물을 가지고 억지스러운 움직임을 시도하는 데 더 흥미를 느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동력 장치를 직접 개발하면서 나의 작업은 온통 금속덩어리가 되었고 기계 장치와 나의 신체 사이에 거리를 둔 채 관계를 엮는 움직임을 연구해오고 있다. 옷은 그 형태가 이미 사람의 실루엣을 띠고 있고 자연스럽게 신체 부위를 연상시킨다. 이번 작업에서는 손과 팔만을 이용하여 단순한 움직임을 반복했지만 뒷단에는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소매가 마치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몸처럼 왜곡되어 보이기도 하고 신체와 다른 신체가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랜만에 천으로 된 부드럽고 유연한 재료로 작업하다보니 나의 움직임대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에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촬영 현장에서 스스로 감탄하면서 말 그대로 옷을 가지고 놀았다.
2023 가을/겨울 미우미우 컬렉션의 무대. 아티스트 정금형이 무대 디자인을 맡았다.
“상호의존적이지만 결국 기계가 우리를 필요로 하진 않는다. 우리가 기계를 필요로 한다(There is a codependency, but in the end, machines do not need us, We need them)”고 쓰인 쪽지가 쇼장 객석에 놓였다. 이미 수년 전 〈업그레이드 진행 중〉이라는 작업의 연장선으로 나온 말이다. 이 메시지가 이번 쇼에 유효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과거 인터뷰 기사에서 인용한 말인데 이 문장에서 ‘기계’를 ‘옷’으로 바꿔도 말이 되는 것 같더라. 우리가 아끼는 옷을 잘 관리하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애지중지할 때 그 행동은 옷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니까
당신은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패션쇼 역시 공연예술과 시각예술 두 지점과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당신의 작업과 닮았다. 예술가의 눈으로 보건대 패션쇼는 어떤 방식으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허물려했다기보다는 운이 좋게도 내가 하는 작업이 공연예술과 시각예술 두 분야에서 모두 관심을 받았고 덕분에 두 맥락에서 소개될 기회들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패션쇼는 이미 그 자체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다른 형식으로 실험이 가능할지,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정금형, 〈재활훈련〉, 문래예술공장, 시청각 공동제작, 2015. 사진: 정민구
운동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솔깃했다. 내가 대회에 나가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할지 상상하면서 혼자 좋아했다. 그런데 운동을 그 정도로 열심히 할 자신은 없는 것 같다.
이번 협업은 정금형이라는 예술가가 옷이라는 새로운 오브제를 통해 관찰이라는 행위에 대해 연구한 보고서로 읽힌다. 옷을 본다는 것, 쇼를 본다는 것, 예술을 본다는 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추동할까?
어떤 분야이든 많이 볼수록 더 잘 볼 수 있는 것 같다. 보는 경험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게 되면 곧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다양한 작가와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다 보면 결국 정답은 없고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나름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는 다양한 것들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감상하면서 결국은 자신만의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게 아닐까. 꼭 예술가가 되어서 작품을 만들지 않더라도 그 무엇이든. 그러니까 삶의 어떤 부분을 말이다.
정금형, 〈장난감 프로토타입〉, 베니스 비엔날레, 2022, 59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The Milk of Dreams, Photo by: Andrea Avezzù
‘상호의존적이지만 결국 기계가 우리를 필요로 하진 않는다. 우리가 기계를 필요로 한다’는 문장에서 ‘기계’를 ‘옷’으로 바꿔도 말이 된다. 우리가 아끼는 옷을 잘 관리하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애지중지할 때 그 행동은 옷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