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환(b. 1936), 〈Relatum – Dialogue〉 드로잉, 2021/2023, Wood floor, white paint, natural stone, light bulb, charcoal drawing, Natural stone: 120x120cm (2 pieces). ⓒ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Crag〉, 1974. 국제갤러리 2관(K2) 1층 알렉산더 칼더 개인전 «CALDER» 설치전경.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시적인 발명품이자 수학적인 기술의 조합, 그리고 자연의 감각적 상징”으로서의 모빌은 예측불가성과 가능성 사이, 불가사의함의 영역에서 우아하게 유유자적하기 때문에, 사물과 생명체의 중간쯤에 있는 제3의 대상처럼 느껴진다. (실은 작가가 과학자의 태도로 면밀하게 계산했지만) 마치 스스로 용케 찾아낸 듯 절묘한 균형점을 무게중심 삼아 안정적으로 뻗어나가는 조각은 공기·바람·중력·열 등 자연의 요소와 교감하며 매 순간 표정을 달리하고, 이런 변화의 제스처는 공간의 뉘앙스조차 바꾸어놓는다. “할아버지는 생각하셨어요. 미래에 사람들이 조각 앞에 서면 조각이 그들을 위해 움직일 거라고. 우리의 몸과 공간이 만나고, 우리의 존재가 조각과 관계 맺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칼더 재단의 이사장이자 작가의 외손자인 샌디 로워는 9·11 때 무너져 내린 칼더 조각의 잔해를 찾아 세계를 다닐 만큼 열정적인 동시에 무엇보다 칼더의 작품을 가장 잘 해석하는 사람이다. 모빌이 사람들의 움직임에, 세상의 흐름에 반응하는 유연한 회화처럼 보인다는 그의 말은 꽤 설득력 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새장 중 / 빛과 밤의 도피처 / 딸랑딸랑 울리는 소리 / 코네티컷 록스버리에 있는 알렉산더 칼더의 작업실 / 황홀의 시간, 삶의 예술.’ 언어유희를 발휘하여 ‘모빌’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마르셀 뒤샹과 막스 에른스트,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당시 함께 만든 초현실주의 간행물 〈VVV〉에 칼더의 작업실 사진과 함께 실린 짧은 글을, 3관에 걸린 〈Roxbury Front〉를 올려다보며 떠올린다. “프런트는 날씨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우리도 날씨와 기압 등을 몸으로 느낄 수 있죠. 저는 모빌의 검은 부분은 날씨의 불확실성을, 빨간 부분은 우리에게 가해지는 기압을, 그리고 흰 부분은 자유로운 구름의 움직임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말끝에 “내 해석이 틀릴 수도 있지만”이라 단서를 붙인 이유는, 이 모빌들이 무엇도 형상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창기 사람과 동물 형상으로 서커스의 풍경을 만들던 칼더는 몬드리안을 만난 후 완벽한 추상의 단계로 진입했다. ‘이 사각형들이 움직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된 탐구는 단지 모빌에 기하학적 형태를 출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움직임을 추상의 일부로 전환했다. 말하자면 그의 모빌이 인간의 감각, 즉 매 순간 변화하는 느낌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Calder with Armada (1946), Roxbury studio, 1947. Photograph by Herbert Matter.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 문장은 여전히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8년이라는 세월은 비슷한 작품을 다르게 읽는 동력을 제공한다. 줄곧 앞으로만 내달리던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과거와 미래가 지금 닿을 수 없다는 점에서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버렸고, 그만큼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예술적 성취가 아니라 사물의 본성에 근본적인 관심을 갖고 있던 칼더는 이를 통해 무언가를 감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현재를 다룬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몇 년 작을 만나든, 칼더의 모빌은 언제나 오늘 나와 함께 있다. 현재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 그 자체로서 말이다.

〈Grand Piano, Red〉, 1946, Sheet metal, wire, and paint, 24.45x25.4x7.62cm. Image courtesy of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 Resource, New York.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칼더는 아내를 위한 주얼리와 손자의 장난감을 손수 만들던 사람이었다. 칼더의 모빌이 한결같이 다감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의 예술이 삶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년에 만든 〈White Ordinary〉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와중에도 위트를 잃지 않는다. 흰색으로 구성된 모빌에 검은 부분들이 숨겨져 있는데, 미술사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복잡미묘한 ‘블랙’은 작품을 지긋이 들여다본 이에게만 반전의 모습을 드러낸다. “여러분이 이 작품을 보다가 검은 부분이 두 개인 걸 알게 되면 말하겠죠. 아, 블랙이 하나인 줄 알았더니 두 개였네! 이 순간이 바로 진정한 경험이에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제가 칼더의 삶에서 찾으려 했던 ‘순간의 진화’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내가 쓴 문장을 이렇게 다시 쓸 수 있겠다. 만약 칼더가 위대하다면, 내가 여기에 현존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현재를 살아가라고 독려하기 때문이다. 칼더의 모빌은 지금 이 순간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의도함으로써 영원히 살아있다.

이우환 작가 프로필 이미지. 사진: Claire Dorn, Courtesy of Studio Lee Ufan
언젠가 이우환이 직접 쓴 이 문장은 그의 작업을 무거운 안개처럼 휘감고 있던 난해한 철학성 혹은 심리적 거리감을 말끔하게 걷어낸다. 더구나 14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을 만나기 전이라면 이 문장이 더욱 유용할 텐데,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무위의 예술’이 향하는 바를 은은하게 비추기 때문이다.
이우환은 자신의 작업에 ‘창작’ 혹은 ‘창조’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에게 예술은 무언가를 새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걸 재발견 혹은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우환이 작업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강력한 자의식이나 명백한 이념, 혹은 특정 개념 등을 작품으로 대상화해 보여주는 예술가의 태도를 경계한다. ‘존재감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작품도, 논리를 밀어 안기는 작품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현대인들은 오브제로서의 미술에 열광하고 이를 열망하지만, 이우환은 설사 자신의 회화작품이 나날이 판매가를 갱신한다 해도, 예술 자체가 오브제로는 절대 담아낼 수 없는 웅숭깊은 경지임을 전제한다. 조각이든 회화든, 이우환의 작품이 단순한 형식과 엄격한 절제미로 말미암아 금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자아를 최소화하고자 한 작가의 고집스러운 신념이 읽히는 탓이다.
예술에서 창작과 작가의 존재를 배제하고자 하는 이우환의 철학은 모노하, 즉 1960년대 말부터 일본의 대표 전위미술로 꼽히며 이후 단색화에도 영향을 준 미술사조에서 비롯되었다. 모노는 사물, 물건을 의미하고, 모노하란 실제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작업으로 제시하는 예술을 일컫는다. 날것 그대로의 나무, 돌, 철판, 유리, 흙 등을 어떤 공간에 놓아두는 데서 작업이 시작하기에, 모노하에서 중요한 건 작업의 형식이나 개념이 아니라 사물의 본성, 존재 그 자체다. 모노하는 근대적 사고와 사회 체계를 해체하고자 했던 당시의 움직임들과 궤를 함께한다. 예술의 주체와 사상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모노하는 이를테면 “그 무엇도 모방하지 않고 전에 없던 것을 창조한다”는 기조 아래 비판적이고도 자조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일본 구타이 그룹보다도 급진적이었고, 무한정 작품을 만들어내길 지양한다는 점에서 경제학적·정치학적·생태학적 문제이기도 했다. 일본 미술계가 이를 어떻게 정의하고 수용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한 것도 당연했다.
1960년대 돌연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 대신 철학을 공부한 이우환은 비평가인 동시에 작가였다. 그가 모노하의 창시자로 꼽히는 이유는 정체불명이던 모노하의 비평적, 실질적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1968년부터 그의 철학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조각 〈관계항〉 연작이 큰 몫을 했다. 이우환은 자신의 모든 조각에 ‘관계항(relatum)’이라 이름 붙이는데, 이 철학 용어는 관계를 맺는 주체를 뜻한다. 작품이 어떤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대상이고, 마찬가지로 예술작품 역시 절대적인 게 아니라 외부와 관계 맺고, 보는 사람과 세계를 이어준다는 점이 〈관계항〉 연작과 모노하를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 조각이다. 제 목소리를 내는 재료를 찾아 최적의 장소에 놓아둠으로써 어떤 관계를 생성하고, 관계의 일부가 된 이들이 자기 존재와 가치를 숙고하는 현장을, 이우환은 묵묵히 지켜보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가 온전히 예술가로 살아낸 방법은 자신의 작업에 매개항 혹은 중재자의 역할을 부여하며, 결국 작품 그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Relatum - a Corner〉, 1981/2019, 국제갤러리 1관(K1)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이때 작가의 조형언어인 돌덩이와 철판은 의인화된 은유법을 구사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을 시사하는 야외 작업 〈Relatum - Dwelling (A)〉, 두 개의 돌이 소통과 공감을 통해 교집합을 그려내는 〈Relatum - Dialogue〉, 돌과 철판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성심껏 보완하고 조력하는 〈Relatum - a Corner〉, 돌과 돌이 필연적인 간극을 극복해 하나가 되고자 애쓰는 〈Relatum - The Kiss〉, 빈 캔버스를 바라보는 돌의 관조적인 뒷모습을 나와 동일시하게 되는 〈Relatum - Seem〉, 자연계와 인간사의 다채로운 소리와 울림을 담아내는 〈Relatum - The Sound Cylinder〉 등은 작금의 인간적이거나 자연적인 현상을 그대로 은유한다. 특히 이번에는 대치 내지는 대립보다는 조우의 제스처와 조응의 메시지가 유난히 강렬하게 감지되는데, 본래 이우환이 ‘바깥’과 ‘타자’를 인정하는 예술가임을 떠올리면 수긍이 간다.
지난 2014년 〈르 몽드〉는 베르사유에 당도한 이우환의 작업을 두고 “베르사유 궁의 완벽함을 극복했다”고 평했는데, 이는 그의 작업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이기도 하다. 이우환의 작업은 한 번도 완벽한 적 없었고, (서양 미니멀리즘이 그랬듯) ‘바로 그것’이길 고집한 적 없었다.
타자와의 관계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그 관계가 이루어지는 마당에서 세계를 지각하고 싶다는 그의 열망은 작가 자신뿐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 있다. 〈관계항〉 연작은 세계의 파편이길 자처함으로써 완결된 전체 너머 무한의 세상을 향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과 만들어지지 않은 것,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울림을 통해, 예술을 마주한 이들로 하여금 그 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끔 길을 연다. 이로써 내가 선 이곳은 작품과 공간, 공간과 세상, 세상과 나, 나와 작품이 만나고 순환하며 대화하는 결정적 장소가 된다. 작가는 앞으로도 “만들어지지 않은 부분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시키고 싶다”고 했는데, 이는 이우환이 구현한 새로운 리얼리티에서 가장 주체적인 관계항이란 바로 작품과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라는 의미와 다름 아니다. 난수표 같은 현대미술에서 스스로를 구해내고 마침내 자유를 얻을 당신을 위한 것이다.

〈Relatum - The Kiss〉, 2023, 국제갤러리 1관(K1)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