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우울증을 아시나요?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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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우울증을 아시나요?

기후변화를 지켜보면서 깊은 무력감과 상실감을 느낀다면 당신도 기후우울증일 수 있다.

BAZAAR BY BAZAAR 2023.01.05
 
“우리는 모두 망할 거예요, 조만간.” 연초부터 이런 말을 해서 겸연쩍지만 미디어를 통해 수만 가지의 기후위기 소식을 접하다 보면 이 같은 비관주의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지금으로부터 딱 일 년 전 개봉한 영화 〈돈 룩 업〉에서 두 천문학자도 줄기차게 외치지 않았나. 거대한 혜성이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고. 우리는 모두 죽을 거라고. 기후우울증은 기후위기 상황을 보며 느끼는 불안·스트레스·분노·무력감 등을 포괄하는 말로, 2017년 미국 심리학회에서 정의한 우울장애의 일종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6월 기후변화에 대응할 정신건강 지원 구축이 시급하다는 정책브리핑을 발표하며 기후우울증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기후변화는 정신건강과 웰빙에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급변하는 기후를 보며 인류는 슬픔, 두려움, 절망, 무력감과 같은 감정을 강렬하게 경험합니다. 이런 고통이 신체화돼 심혈관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 암과 같은 병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갖춘 기후행동이 필요합니다.” 지난 주말, 분리수거를 위해 열심히 페트병 라벨을 벗기다가 문득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전 세계인이 함께 하는 이 조별 과제는 망할 게 분명한데. 지구 평균기온은 계속 오르고 있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계속 쌓이고 있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갑자기 모든 의욕이 사라진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나도 기후우울증을 앓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귀차니즘이 불러온 자기합리화였을까? 이튿 날,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김병후 정신건강의학과 김규호 부원장과의 인터뷰.
 
기후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어떻게 진단할 수 있나?
만약 본인이 기후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경중을 구분할 수 있다. 만약 전자라면 병원에 방문해서 검사 받는 것을 추천한다. 아직까지 기후우울증에 대한 정확한 진단 툴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울과 불안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증상들에 대한 척도를 통해서 표면 증상을 확인한 다음 약물 치료까지 병행할 수 있다.
병증까진 아니더라도 이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무력감과 통제력 상실을 어느 정도 내면화한 상태일 텐데.
보통 사람이 병이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회피한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라는 반응이다. 그 다음엔 분노를 표출하고 그 다음엔 우울감에 빠진다. 지금 말한 통제력 상실감과 무력감을 경험하는 단계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따르면 기후우울증은 환경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하는 농부, 과학자, 환경운동가 등이 더 많이 느낀다고 하던데.
정신의학과 용어 중에 적응장애라는 개념이 있는데, 내부, 외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 나오는 증상을 말한다.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환경이 바뀌거나 바뀐 환경에 적응하거나. 만약 기후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다고 치자. 기존에 본인이 알고 있던 노하우 이외에 자꾸 변수가 생기고 심화되어서 직장 생활을 방해한다면 당연히 사회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심하게 홍수가 나고 그 피해로 주변의 누군가 다치거나 위험에 빠졌던 경험이 있는 등 기후변화로 큰 사건을 겪은 분들의 경우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올 수 있다.
세대에 따른 영향은 없나? 젊은 세대가 환경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나?
기본적으로는 기후위기와 관련된 뉴스에 노출되는 정도가 기성 세대에 비해 훨씬 잦다 보니 당연히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기성 세대와 달리 요즘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를 지켜주고 있던 기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인지한 채 성장한다. 인간이 불안이나 우울증이 심해질 때는 내가 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고 느낄 때다. 우리가 지구를 마더 어스(Mother Earth)라고 표현하지 않나. 그런데 이 마더 어스가 언젠간 소멸되거나 혹은 나를 공격하거나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져서 나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면 훨씬 더 과도한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
영국에서는 기후위기를 근거로 출산 파업이라는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젊은 세대가 비출산을 결심하는 것도 기후우울증과 연관이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인간은 본인이 영원히 살 수 없으니까 아이를 가짐으로써 본인의 유전자를 꾸준히 다음 세대로 전이하고자 한다. 지구가 소멸된다면, 그런 환경이 나의 아이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줄 수 없다면 당연히 출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후우울증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는 건 그만큼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희망적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아까 말한 적응장애의 개념에서 설명하자면 개인이 직면한 문제는 결국 두 가지다.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외부적인 요인을 모두 바꿀 것인가 내가 적응할 것인가. 당연히 기후변화를 개인이 컨트롤할 순 없다. 대신 기후우울증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사회적 각성 효과를 일으킬 순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기후 아래 더불어 살지 않나. 증상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으로 구분할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기후우울증으로 무력감을 보이거나 공격성을 드러내면 그건 결국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국민건강 증진에 힘써야 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를테면 도심의 녹지 비율을 높이거나 친환경 캠페인을 벌이는 것과 같은 문제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실천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도 야기한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우리 개인이 기후우울증을 가벼이 넘겨선 안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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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Getty Images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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