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회 SFDF 수상자, '애슐린'의 박상연 디자이너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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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회 SFDF 수상자, '애슐린'의 박상연 디자이너

전통적인 테일러링, 모던함, 그리고 자신감.

BAZAAR BY BAZAAR 2023.01.05
 
18번째 SFDF 수상자가 되었다. 소감은?
소식을 듣고 함께 일하는 친구들과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특히나 6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금의환향한 느낌이랄까.(웃음)
올해 초엔 더 좋은 소식이 있었지 않나. 2022 LVMH 프라이즈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는데 그때 당시를 떠올려본다면?
사실 내 목표 중 하나였다. 가장 큰 대회이고 거기서 인정을 못 받으면 이 브랜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내가 진정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될 것 같았다. 결승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베네핏을 받았는데 마케팅적인건 물론이고 쇼룸에 연락이 쏟아지거나 바이어들이 찾아와주는 것, 또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피드백도 받을 수 있었다.
유명한 디자이너들이라 하면 누가 있었을까?
심사위원으로 있는 조너선 앤더슨,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킴 존스, 스텔라 매카트니 등등. 특히 스텔라와 마리아는 내게 와서 옷이 무척 마음에 든다며 “너가 1등 할 것 같다”고도 말해주었다. 후일담이지만 우리 안에서는 ERL의 엘리 러셀 리너츠가 가장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됐었다.(ERL은 준우승에 해당하는 칼 라거펠트 상을 받았다.) 그런 그도 나에게 애슐린이 1등 할 것 같다고 해서 솔직히 기대를 좀 했던 건 사실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LVMH 내에서 가장 화두가 됐던 주제가 바로 ‘젠더리스’였고 그간 남성복 디자이너가 우승한 적이 없었기에 좀더 그쪽에 포커스를 맞췄던 것 같다고 하더라.(우승은 런던 기반의 남성복 디자이너 스티븐 스토키 달리가 차지했다.)
경력의 시작이 요지 야먀모토의 남성복 디자이너다. 당시의 경험은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너무나 많은 영향을 주었다.(웃음) 일단 시작을 요지 야마모토에서 했기 때문에 스펀지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떻게 하루를 시작하는지, 하다못해 종이를 놓는 방법, 펜을 잡는 방법까지 배웠다. 또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까지도. 요지는 경력직을 뽑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졸업생들에게 자신의 색을 입히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신입, 일본어로 ‘신소츠(新卒)’라고 하는데 신소츠라고 불리는 우리들은 첫 해에는 봉제, 그 다음엔 패턴 메이킹 과정을 거쳐 비로소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철저한 도제식 시스템 속에서 키워졌다. 약간 군대 같은 느낌이랄까. 적은 월급 때문에 주말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땐 정말 힘들기도 하고 운 적도 많았는데 뉴욕으로 넘어가니 너무 다른 환경이더라. 대신 굉장히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많은 인원이 투입되는 것에 비해 결과물이 적었다. 요지에서는 나와 내 위의 상사 두 명이서 디자인을 다 했는데 말이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 뉴욕으로 넘어간 계기가 알렉산더 왕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부터였는데 알렉산더 왕에는 패턴사가 9명에 디자이너가 6명, 봉제사는 25명이 있었다. 알렉산더 왕이 패션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눈부시게 성장했던 바로 그때 내가 합류하게 된 것이다. 물론 좋은 경험을 많이 했지만 비효율적인 업무 과정으로 인해 낭비되는 시간과 인력, 자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지에게서 전체를 보는 법을 배우고 난 뒤 그 꿈이 더 명확해졌다. ‘디자인을 시작했으면 소비자에게 갈 때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철학은 지금 나의 자녀들에게도 가르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요지에게서 배운 것이다.
요지 야마모토와 알렉산더 왕, 그리고 라프 시몬스까지. 각기 다른 색을 가진 세 사람에게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요지에게서는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철학. 가령 불필요한 디테일은 제거해야 한다는 것. 즉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고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알렉산더 왕에게서는 젊은 디자이너 특유의 크리에이티브함. 지금 생각해도 그곳만큼 창의력이 넘쳐났던 공간은 없었던 것 같다. 라프에게서는 역사적인, 근간이 있는 것에서 영감받는 법을 배웠다. 그와 일할 때엔 레퍼런스와 관련된 모든 것을 공부했어야 했다.
프리랜서로도 일했다. 어떤 일을 했나?
프로엔자 스쿨러, 디온 리, 케이트, 닐리 로탄(Nili Lotan)과 일했다. 특히 미국을 대표하는 컨템퍼러리 브랜드 중 하나인 닐리 로탄은 내 비즈니스 롤모델이기도 하다.
이제 애슐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아직 브랜드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세 개의 키워드로 애슐린을 소개한다면?
전통적인 테일러링, 모던함, 그리고 자신감.
 
2022 S/S 시즌에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 애슐린식으로 풀어낸 젠더리스 코드와 동서양의 기술이 결합된 디테일이 돋보인다.2023 S/S 컬렉션 쇼 피날레 룩.2022 S/S 시즌에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 애슐린식으로 풀어낸 젠더리스 코드와 동서양의 기술이 결합된 디테일이 돋보인다.베를린에서 촬영한 애슐린의 2022 F/W 컬렉션 룩 북.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둘째를 갖고 육아를 할 때, 그리고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디자인이 막 떠올랐다. 남편이 매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라고 물어볼 정도로 순간순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훈련이 된 사람처럼 말이다. 패턴 메이커나 드레이핑을 하는 사람은 일을 그만두면 손이 굳는데 그래서 더 멈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딸아이가 내 꿈을 물어봐서 “엄마 꿈은 브랜드를 내는 거였어”라고 했더니 “근데 왜 안 해?”라고 하더라.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들었다. 여기에 운명처럼 누군가의 소개로 꼼데 가르송과 프라다에서 오랫동안 브랜드 고문을 맡았던 존 시프(Joh Siff)를 만나게 된 거다. 그가 내 작업물을 보더니 팬데믹이고 하니 커미션만 받는 조건으로 함께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세일즈를 생각하지 말고, 에디터들이 너의 것을 보고 싶어서 달려오게 만들어야 그 다음이 있다. 그간의 작품 중 가장 잘하는 것을 네 멋대로 만들어보라”는 그의 조언에 따라 팬데믹 기간에 집에서 열여섯 벌의 옷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2021 F/W 컬렉션이다.
어떻게 보면 팬데믹이 기회가 된 셈이다.
그렇다. 그땐 패션계가 너무 고요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하고, 자극을 받고 싶어한다. 모든 이들이 줌(Zoom)으로 소통할 때 내 옷을 보기 위해 직접 집으로 찾아온 〈보그〉 에디터가 있었다. 그가 쓴 내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에 널려 있는 이미지들에 갇혀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이지만 막상 가서 실체를 보려고 하면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애슐린은 직접 만질 수 있고, 여기에는 퀄리티가 존재한다.”
2023 S/S 컬렉션은 쇼의 형태로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간의 과정과 어떻게 달랐나?
런웨이 쇼는 정말 기적처럼 이뤄졌다. 당시 의도치 않게 LVMH를 통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주로 나눴던 내용이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고 잠시 멈춰섰던 엄마가 다시 꿈을 꾸게 되었으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거였다. 누군가는 나에게 “너의 시작이 패턴 메이커라는 것도, 엄마라는 것도 굳이 이야기하지 마. 쿨해 보이지 않아”라고 말한다. 패션계에서는 항상 젊고 새로운 것이 신선하다는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 디자이너로서 내 삶을 반추해보니 여성 댄서의 삶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댄서들도 아이를 낳고 나면 골격이 틀어지고, 다시 무대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댄서와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던 중 ‘Yue Yin’이라는 댄서를 소개받았다. 그녀에게 나의 작품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네가 어떻게 얼마를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사인할게”라고 말했다.(웃음) 이렇게 일이 시작되니 쇼장을 구하게 되고, 프로덕션 팀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 다음엔 모델 섭외로 물 흐르듯 이어졌다. 쇼 피날레 룩이 케이크를 연상케 하는데 이는 감사와 자축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어 다시 꿈을 꾸게 된 엄마가 도움을 준 이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메시지인 셈이다.
당신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패션의 미래는?
세 가지로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지속적으로 제로 웨이스트 피스를 만들어 ‘나에게는 이런 미션이 있다. 이 문제를 잊지 않고 계속 해결책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메트로폴리탄에 소장된 내 첫 번째 시즌 룩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두 번째는 프로세스의 효율화다. 인원을 최소화하고 정확한 업무 지시를 통해 자원과 자본의 낭비를 막는 것이다. 그리고 오더 메이드 시스템을 활성화해 소비자가 요청한 만큼의 수량만 만들되 더욱 실용적이고 가치 있는 옷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한 산업 환경을 구축하는 것. 임신을 한 여성이 차별을 받지 않고 출산 후에도 가족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산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했다. 해외로 진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항상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계획을 세워서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보그〉 런웨이에 기사가 실린 것이나 메트로폴리탄에 작품이 전시된 것, CFDA에 한국인이 하는 브랜드가 이름을 올렸다는 것 등 외국인이 넘기 힘든 문턱을 넘은 것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를 한국계 미국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까. 하지만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어 장벽과 인종차별, 그리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결국 인내심을 가지라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모든 게 단 한순간에 이뤄지진 않으니 말이다.
국내에서 당신의 옷은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
10 꼬르소 꼬모에 있다. 다음 시즌에는 스페이스 무이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곳에서 애슐린의 옷을 만나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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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진선
    사진/ 김영배(포트레이트 컷), ⓒ Ashlyn, Imaxtree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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