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건축을 위한 나라는 없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친환경 건축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주의 오래된 흙집을 사랑하는 건축 전문 기자는 말한다. 친환경 건축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은 있다. ‘지속가능한 건축’이 바로 그것이다.

BAZAAR BY BAZAAR 2022.04.10
 
 
 
지난 몇 년 사이 ‘친환경 건축’이라는 용어가 트렌드가 되었다. 바다 건너에서는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친환경 건축사업으로 지은 주택에 독성 곰팡이가 뒤덮이는 바람에 주민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제주의 오래된 흙집을 사랑하는 건축 전문 기자는 말한다. 친환경 건축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은 있다. ‘지속가능한 건축’이 바로 그것이다. 
 
‘친환경 건축’이 뭘까. 일단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그에 대한 가장 단순한 답을 하라면 ‘과거 회귀’일 것이다. 옛 건축을 보자. 당연히 친환경이다. 인공 재료를 쓰지 않고, 주변에 보이는 자연을 가져다 쓰는 게 옛날 건축 방식이었다. 제주를 예로 들자. 제주에 많고 흔한 돌이 건축의 주재료였다. 돌과 돌 사이에 흙을 다져서 틈을 메우긴 하겠지만, 제주 건축엔 무엇보다 돌이 대접을 받는다. 지붕에 쓰이는 ‘띠’(제주에서는 ‘새’라고 부른다) 역시 자연에서 가져온다. 그렇게 만든 제주 초가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친환경은 바로 ‘스스로 회귀하는’ 자연 순환법칙을 따른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친환경 건축은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는 재료를 쓸 때에야 그렇게 부를 수 있다.
 
내가 친환경 신봉자라고 해보자. 지구를 살리려는 사람이기에 일회용품을 전혀 쓰지 않는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에도 ‘배달앱’에 접근하지 않는다. 배달앱을 누르는 순간 일회용품을 쓰는 ‘나쁜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삶이 가능할까? 10년 전, 아니 20년 전에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집에 텃밭을 가꾸지 않는 한,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올 때 일회용품과의 싸움을 감내해야 한다. 삼시세끼를 해 먹으려면 맞벌이라는 꿈도 접어야 한다. 어찌 보면 불가능한 삶이다.
 
그렇다면 요즘 건축에선 가능할까? 제주에 집을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바닥을 다질 때 콘크리트를 쓰지 않아야 하기에 순전히 돌과 자갈로 바닥을 다져야 한다. 이 정도는 가능하다. 문제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을 재간이 없다. 제주도는 습도가 무척 높은 섬이다. 밖에 내건 빨래는 며칠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다. 그냥 눅눅하다. 그래서 집을 바닥에서 띄워야 한다. 콘크리트로 바닥을 깔았다면 방수코팅을 하면 될 일을, 친환경이라는 이유로 일만 늘어난다. 벽체 재료는 제주에 널린 돌을 첫손에 꼽을 게 뻔하다. 이것도 오산이다. 제주엔 물론 돌이 많지만 돌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예전엔 집 주변이나 밭에 가서 가져오면 되었지만 이젠 불가능하다. 집 주변에 돌이 없다. 주변이 모두 포장이 되어 있어 돌을 캔다는 건 돈을 뿌리는 행위가 된다. 그러면 사서 써야 하는데, 이것도 장난이 아니다. 제주산 돌, 그러니까 현무암을 건축물 벽체로 쓰고 싶은 사람은 어느 정도 자산가로 불려야 한다. 흙은? 아쉽게도 쓸 만한 제주 흙은 많지 않다. 벽지처럼 바를 용도의 흙은 어느 정도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흙을 주재료로 벽돌을 만들거나, 현무암과 함께 쓸 벽체 용도의 흙은 구하기 어렵다. 만일 구한다고 하더라도 건축 용도에 맞을지는 의문이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으며 냉소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친환경 건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친환경 건축’보다는 ‘친환경에 가까운 건축’이라는 말을 쓰는 게 합당할 수도 있다. 친환경 건축은 재료의 가치가 너무 높기에 수십, 수백억대의 자산가에만 어울리는 단어가 되었다. 예전 조상들이 늘 쓰던 건축 재료가 이젠 일부 특정 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슬퍼하지는 말자. 방법은 있으니까.친환경 건축이 아닌, 지속가능한 건축에 눈을 돌려보자. 지속가능한 건축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속가능한 건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친환경에 가까운 건축 재료를 씀으로써 재사용, 혹은 다른 건축 재료로 환생시키는 방법이다.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기에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다. 둘째는? 나는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싶다.
현대라는 삶을 사는 이들은 빠른 변화에만 익숙하다. 20~30년이 지난 건축은 ‘낡은 것’으로 치부한다. 우리나라 법령이 그렇다.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는 시대에 우리의 법령은 ‘한 세대’도 지킬 수 없는 집에 살도록 만들고 있다. 건축은 금방 짓고 금방 허무는, 허투루 하는 작업이 아니다. 건축은 건축가의 작품 의지가 담겼고, 건축주의 용기가 깃들여 있다. 서양의 수많은 건축물은 1백 년, 2백 년이라는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살았던 집에 내가 살고, 아버지가 살았던 집에 할아버지가 살았고,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줄곧 살아왔다. 
 
지속가능한 건축은 그런 건축이다. 세대를 넘나들며 기억을 공유하고, 벽체의 때까지 기억하면서 사는 게 바로 지속가능한 건축이다. 그런 건축 활동이 이뤄진다면 지금처럼 고민하면서 ‘친환경’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대신 지속가능한 건축은 행복을 담보로 제공되어야 한다. 근대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수많은 걸작 가운데 ‘빌라 사보아’(1931년 완공)가 있다. 프랑스에서 그 작품을 직접 본 한사람으로서, 빌라 사보아 방명록에도 글을 남긴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건축이 마냥 기쁘기만 했다. 하지만 실제 거기에 살던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빌라 사보아는 비가 넘치는 건물이었고, 천장에서 바닥으로 물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건축주 사보아의 아들인 로제는 폐렴에 걸려 일 년간 요양원에서 지내야 했다. 사보아 가족은 빌라 사보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 거기에 살아보지 않은 현재의 우리들만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이라며 들뜰 뿐이다.
 
뻔한 말이지만 행복은 돈으로 사지 못한다. 건축도 그렇다. 너무 거대한 것만 원할 필요도 돈으로 잔뜩 치장할 필요도 없다. 내가 살아서 기쁘고, 후대도 살아서 행복을 누리는 지속가능한 건축. 생각만 바꾼다면 주변엔 얼마든지 있다. 의지만 있다면 1백 년을 넘게 버티는 집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친환경’ 아니 ‘친환경에 가까운 건축’일 것이다.  
 

Keyword

Credit

    글/ 김형훈(<나는 제주 건축가다> 저자, 미디어제주 편집국장)
    에디터/ 손안나
    사진/ Getty Images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Weekly Hot Issue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