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욕구를 충전할 새 공간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문화적 욕구를 충전할 새 공간들

문화적 욕구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공간들을 거닐었다.

BAZAAR BY BAZAAR 2022.03.04
 
© Iwan Baan © Herzog & de Meuron

© Iwan Baan © Herzog & de Meuron

© Iwan Baan © Herzog & de Meuron

© Iwan Baan © Herzog & de Meuron

© Iwan Baan © Herzog & de Meuron

© Iwan Baan © Herzog & de Meuron

송은
런던의 테이트 모던, 샌프란스시코의 드 영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을 설계해온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작품이 청담동에 들어선다는 사실만으로 사건이었다.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송은’은 주위의 수직적인 고층 건물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지녔다. 혹자는 케이크 조각이라 칭하는 11층짜리 삼각형 단일체다. 압도적인 권위나 화려함을 자랑하기보다는 차라리 주목을 피하면서 무심함을 즐기는 모양새다. 2001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그간 세계의 물질성과 감각의 다중성에 천착해왔다. 쉽게 말하면 건축의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사용한 자재나 물질을 본질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그들의 건축은 외관의 형태나 표면에서 남다른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다. 송은 역시 그렇다. 분절 없는 단일체, 고대의 돌기둥 모놀리스(monolith)처럼 존재감을 드러내고 천명한다. 놀라운 것은 도산대로를 향한 건물의 높은 정면이 투박한 것과 달리, 정원이 있는 낮은 뒷면은 주위와 어우러지는 투명함으로 대조적인 모습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에 다가설수록 소나무 무늬의 목판 거푸집을 사용해 질감을 표현한 콘크리트 외벽에 점점 매혹된다. 표면의 촉감을 확인하고자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매만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막상 로비에 들어서면 외관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나선의 부름에 곧 빠져든다. 부드러운 곡선 난간과 나선 계단이 방문객을 빨아들이듯 2층 전시실로 발길을 향하게 만든다. 나선 구성의 영향력은 지하 2층까지 이어진다. 지하 전시실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곡선 면과 천장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뜻밖의 강렬한 체험, 한마디로 숭고함이다.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미술작품처럼 숨 쉬고 있다.

이야기의 여운을 즐길 수 있는 A동 4층의 바 포스트스크립트.

이야기의 여운을 즐길 수 있는 A동 4층의 바 포스트스크립트.

LCDC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LCDC는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지닌 작은 브랜드들이 공생하는 멀티 플랫폼이다. 자동차 정비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새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Le Conte des Contes(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이름은 안성맞춤이다. 카페와 바, 패션 브랜드들이 모여 일상을 탐구한 단편집을 집필하듯 각각의 개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먼저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중정을 둘러싼 사방의 벽면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성수동과 차단된 세상으로의 진입. 이 동네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공간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분 좋은 자극! 공중에 떠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오묘한 벽은 수평적 통일감 덕분에 위압적이지 않다. 차가운 시멘트 벽마저 온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포근함을 불러일으킨다. A, B, C동으로 이동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중정은 기다림 혹은 만남의 장이 된다. MZ세대의 인기를 독차지한 곳은 단연 A동 1층 카페 이페메라(Ephemera)다. 공간을 수놓고 있는 우표, 엽서, 카드 등 빈티지 수집품들은 카페의 아이덴티티를 돋보이게 한다. A동 3층의 모던한 공간도 인상적이다. 팝업 공간 DOORS와 오이뮤, 글월 등 6개 브랜드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발과 시선이 분주하다. 만약 건물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조명이 빛나는 밤에 방문할 필요가 있다. LCDC가 ‘이야기’를 내세우는 것처럼 아직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 건축가 서승모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1986)에서 영감을 얻어 중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놓았다. 또한 벽에는 레노베이션의 흔적, 즉 과거의 모습이 담겨 있다. 기존의 창을 벽처럼 막아 놓거나 성수동 하면 떠오르는 붉은 벽돌을 일부 그대로 두었다. 이곳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계속 새롭게 쓰일 것이다.


울산시립미술관
올해 1월 개관하자마자 울산의 랜드마크가 된 울산시립미술관. 뜨거운 호응을 얻는 곳이지만 첫인상은 무미무취였다. 외관은 개성이 강하지 않은 편이다. 경사진 미술관 부지가 문화재 보존구역이라서 건물이 2층으로 제한되어 있는 걸 고려하면, 건축가의 능력을 뽐내는 것이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주 전시실이 지하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건축가 안용대는 건축의 자율성에 집착하기보다는 포용을 선택했다. 울산의 역사와 원도심을 존중하는 입장이다. 즉 미술관과 문화재의 공존이었다. 미술관 서쪽의 울산 동헌, 동쪽의 객사터와 어우러졌다. 현대식 미술관이 한옥 처마 모양의 지붕을 가졌다는 점에서 동헌과 조화를 이루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전면 통유리로 내외부를 연결해 지하 공간의 채광 및 환기 문제에 실용적으로 대처한 것이 미술관의 외형적인 특징이다. 안용대는 미술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건축이 말을 하면 작품이 죽는다”고 심플하게 정리한다. 오로지 관람객의 동선과 전시 작품이 주인공이 되는 절제된 공간이 관심사다. 이를 반영하듯 미술관 내부 지하 2층의 통로가 널찍하게 펼쳐져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통로에 작품을 설치해 사람들이 교감하며 전시실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만든 것도 좋다. 전시 공간에 대한 배려 덕분에 타 미술관에 비해 보다 편안히 미디어아트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공공건축의 겸손이 안락함을 낳았다. 특히 1층의 테라스는 관람객의 쉼터이자 도심과 함께 호흡하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1층 3전시실에서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동헌의 모습 역시 의외의 발견이다. 분명한 것은 미술관의 포용성이 디지털 미디어아트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데 주춧돌이 된다는 사실이다.

의정부음악도서관
이쯤 되면 ‘도서관의 도시’라고 부르고 싶다. 2019년 의정부미술도서관에 이어 의정부음악도서관이 오픈하면서 명품 도서관이 태어났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의정부시 장곡로에 위치한 음악도서관은 책과 음악을 매개로 공간을 디자인한 도서관이다. 공간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곳은 1층 오픈 스테이지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나무들의 녹음이 햇빛과 함께 밀려오는 곳이다. 쾌적함과 아늑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층계식 좌석으로 이동해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오픈 스테이지 옆에 어린이 도서를 배치해 가족이 함께 독서를 즐길 수 있게 한 아이디어가 빛난다. 도서관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이 마니아 취향의 재즈 매거진이라는 점도 공간의 분위기에 힘을 실어준다.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에 머물지 않고 의정부의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재즈, 블루스, 힙합 등에 중점을 둔 것은 고무적이다. 책이 아니라 음악을 원한다면 1층 북 스테이지를 건너뛰고 바로 3층 뮤직 스테이지로 올라가도 좋다. 각자 LP 및 CD 플레이어로 원하는 음반을 감상할 수 있으며, 3층 오디오룸과 자동연주 피아노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뮤직홀에서의 음악 감상은 감동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자주 도서관을 애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 있다. 독서가 잘 되는 나만의 명당을 찾는 일이 그것이다. 음악도서관에서 독서를 부르는 사랑스러운 공간은 단연 메자닌이다. 고전문학이 있는 공간에 안락한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 앉아 도서관을 벗삼아 독서 삼매경에 빠질 수 있다.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음악도서관은 책과 음악에 중독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 번 이곳을 찾은 이라면 누구나 다시 방문할 날을 기다리며 마음속의 달력에 일정을 체크할 수밖에 없다.

111CM
111CM은 수원시 대유평공원 안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정자동 111번지와 공동체를 뜻하는 ‘ComMunity’의 약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1971년 수원시 정자동 111번지에 문을 연 연초제조창이 32년간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해오다가 2003년 가동을 중단했다. 그 후 애물단지처럼 방치되었던 공장 일부를 재활용해 작년 11월 1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가 연초제조창 창고를 리모델링해 활용한 것처럼 111CM 역시 도시재생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문화공간을 방문하기 전에 먼저 만나는 것은 공원이다. 고층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공간에서 도시의 허파처럼 기능하는 공원은 과거의 기억과 함께 111CM을 품고 있다. 물론 111CM은 건물 자체가 콘텐츠이자 역사적 유산이다. 재생 과정을 담은 아카이브를 외부(입구 앞의 공간)에 배치해 방문객이 먼저 연초제조창의 기둥들과 함께 호흡하게 했다. 111CM은 연초제조창 건물을 지탱하는 균일 규격의 거대한 프레임만을 남기는 재생 방식을 선택했다. 그 프레임 위에 가변형의 모듈 시스템을 구성해 다양한 용도에 맞춰 활용하는 식이다. 건축가 김준성은 재생의 대상으로서 산업유산이 얼마나 매력적인 공간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우두커니 서 있는 기둥이나 노출된 벽면은 50년의 세월을 머금고 있다. 건물은 크게 A동 카페와 B동 복합문화공간(전시, 창의예술 실험실, 스튜디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는 2층 ‘더 마루’는 방문객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수원의 옛 공장이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문화공간으로 진화한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연초제조창은 이제 문화제조창으로 불리기를 희망한다.
 
※ 전종혁은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상상력과 에너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공간을 찾는 일에 탐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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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전종혁
    사진/ 송은문화재단, 박수환, SJ그룹 제공, 경기도청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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