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커트 입는 남자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스커트 입는 남자들

젠더 뉴트럴의 시대. 옷은 더 이상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스커트도 예외는 아니다.

BAZAAR BY BAZAAR 2021.10.17

MEN WHO WEAR SKIRTS

“가장 이상적인 섹슈얼리티는 양성적인 감성이다”라는 말처럼 성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유연성은 요즘 패션에서 가장 요구되는 태도이다. 더 이상 젠더를 논한다는 자체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정도. 이는 크롭트 톱, 플레어 팬츠, 레깅스 등이 있는 나의 옷장을 남편, 남자친구, 남동생과 공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스커트조차!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성의 중립’을 외치며 더 이상 스커트가 여자의 전유물이 아님을 주장했다. 루이 비통, 버버리, 셀린 같은 빅 브랜드부터 루도빅 드 생 세르넹, 스테판 쿡 같은 재기발랄한 신진 디자이너까지 무수히 많은 쇼에서 남자들이 스커트를 입고 런웨이를 걸었다. 특히 지난 7월, 리스트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톰 브라운의 남성 스커트가 10위에 랭킹되었다. 남자와 스커트, 그 파격적인 조합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 일 년 전, 톰 브라운의 스커트수트를 입고 공식 석상에 등장한 배우 봉태규가 대표적.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너무 편하더라고요. 진작 입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라도 치마의 실용성을 알았으니 다행이죠. 더불어 스타일링했을 때 쿨하다고 느꼈어요. 지금까지 바지라는 한정된 아이템만 입고 살아서인지, 치마는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고 멋졌어요. 어떤 경계가 사라진다는 건 개인에게 놀라울 만큼의 자극을 주고 새로운 우주가 펼쳐지는 일인 것 같아요.”
 
물론 반발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보수적인 저널리스트 캔디스 오웬스는 “남성들이 꾸준히 여성화되고 있다. 남자다운 남자로 돌아오라(Bring back manly man).”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며 남성용 스커트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연 남성 스커트는 대중화될 수 있을까? 코코 샤넬은 남성용 의상에만 쓰이지던 저지 소재로 20세기 여성들에게 혁명적인 자유를 선물했다. 남성 스커트 역시 아이텐티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인식된다면 21세기형 패션 혁신이 되지 않을까. 가까운 미래에는 남녀가 스커트로 ‘커플템’을 맞추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Ludovic De Saint Sernin

Ludovic De Saint Sernin

 

과거에 스커트는 남자와 여자 모두를 위한 존재였다

‘스커트=여자의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이 일반적이지만, 원래 인류는 남녀 할 것 없이 스커트를 입어왔다. 심지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미니 드레스가 권력의 상징이었다! 〈제국의 탄생(War and Peace and War)〉을 저술한 미국의 진화인류학자 피터 터친(Peter Turchin)은 남자가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인식은 말을 타는 문화와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남자 스커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스코틀랜드의 킬트는 1700년대 탄생했다. 노동자들의 유니폼으로 시작해 19세기 이후엔 귀족들의 상징으로 급부상했다. 몇 년 전 서울을 방문한 런던의 젊은 디자이너 찰스 제프리 러버 보이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몇 달 동안 킬트만 주구장창 입고 다녔다고 얘기했는데, 스커트 초급자에게 입문 코스로 킬트가 딱이라 추천했다. “16세기부터 킬트는 스코틀랜드의 아이콘이 됐고, 다양한 직업의 남자들은 킬트를 입어왔죠. 지식인, 목수, 아티스트 상관없이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딱 좋은 옷이에요.”
Molly Goddard 볼 캡과 티셔츠로 킬트를 쿨하게 소화했다.
 

더 이상 소수를 위한 문화가 아니다

남자 스커트가 런웨이에 존재감을 알린 건, 패션계의 ‘앙팡 테리블’ 장 폴 고티에 덕분이다. 앤드로지너스 룩의 선봉자로 혁신적인 실험을 해나간 그는, 1985년 ‘And God Created Man’ 컬렉션을 통해 남성복의 금기 영역으로 간주되던 스커트를 미디부터 맥시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로 선보였다. 물론 스스로도 거리낌없이 스커트를 즐겼고. 그가 만든 첫 남성 스커트는 3천 벌 이상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30여 년 뒤, 런웨이에 또 다시 남자 스커트 신드롬이 불어닥쳤다. 2021 F/W 시즌은 미디부터 맥시 길이의 플리츠 스커트가 대세다. 사회의 구시대적 규범과 편견을 탐구한 루이 비통의 버질 아블로가 대표적. 그는 세일즈맨, 호텔리어, 학생 등의 전형적인 의복 형태를 스커트와 접목시켜 재치 있는 컬렉션을 완성했다.(루이 비통 코리아도 남성 스커트를 바잉했다.) 2018 S/S 시즌부터 옷의 형태로 성별의 구분을 짓는 것에 의문을 던지며 지속적으로 남성용 스커트를 선보이는 톰 브라운, 밀리터리 베스트와 조합된 반항적인 체크 스커트를 제안한 셀린, 킬트를 활용해 프레피 룩을 선보인 몰리 고다드도 주목할 것. 〈바자〉 역시 지난 2021년 4월호를 통해 스커트 입는 남자에 관한 화보 ‘Dressed to Kill’를 진행한 바 있다. 여자의 것을 탐한 남자 모델들의 도발과 반항, 청춘의 재기 발랄함을 느낄 수 있을 터. “표현의 자유를 기념하고 싶어요.” 리카르도 티시가 선보인 버버리의 강인한 플리츠 스커트는 이달 커버맨 차은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Louis VuittonBurberry
 

새로운 단어, Mirt & Skort

긴 치마에 식상함(?)을 느낀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시도에 몰두했다. 이번 시즌 여자들도 입기 힘들 지경인 초미니스커트가 등장한 것. 몇 달 전, 영국 〈더 타임즈〉는 ‘Dare you brave the mirt?’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본론에 앞서 제목에 담긴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Mirt’란? ‘Man+Skirt’의 합성어다. 이 칼럼을 담당한 에디터 헨릭 리스케는 스테판 쿡의 페어아일 재킷과 엉덩이를 겨우 덮는 길이의 스케이트 스커트를 직접 입고 등장해 시선을 강탈했다. 그는 스스로를 스커트 ‘세 벌’을 가지고 있는 남자로, 언제나 파격적인 시도를 하는 패션 피플로 설명한다. 프라다 맨즈 2022 S/S 컬렉션에도 새로운 형태의 치마바지가 등장했다. 핫 팬츠 위에 같은 색 천을 덧댄 형태로, 누가 더 아찔한 각선미를 자랑하는지 대결이라도 하는 듯했다. 해외 매체들은 이를 두고 쇼츠(Shorts)와 스커트(Skirt)를 결합한 스코트(Skort)라 명명했다. 짧은 치맛바람은 루도빅 드 생 세르넹의 컬렉션에서도 발견되었다. 파리의 떠오르는 신예인 그는 성별을 나누지 않고 공통된 사이즈와 형태의 옷을 만드는, 즉 섹슈얼리티로 무장한 젠더 플루이드 컬렉션을 선보인다. 2021 F/W 컬렉션에서 타탄체크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미니스커트를 선보였다. 지극히 여성적인 요소를 남성에게 거부감 없이 녹여내며, 미니스커트가 더 이상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했다. “스커트는 남자 다리의 자유를 상징하죠. 격식 있어 보이기 위해 행동은 조심하는 게 좋아요.”
Egon Lab Prada스테판 쿡의 스커트 룩을 입고 깜찍한 포즈를 취한 에디터 헨릭 리스케.
 

예쁘장한 남자들만 입는다는 편견을 버릴 것

2016 S/S 루이 비통 여성복 캠페인에 제이든 스미스가 스커트 차림으로 등장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그를 두고 고정관념이나 성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요즘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제이든 스미스는 본인의 브랜드 MSFTSrep를 통해 직접 디자인한 스커트를 선보였다. 뿐만 아니다. 스커트는 요즘 ‘옷 좀 입는다’ 하는 멋쟁이들의 잇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2013년 지방시의 가죽 스커트를 입고 무대에 오른 카니예 웨스트는 지금 봐도 멋지다. 패션 아이콘 해리 스타일스, 포스트 말론, 영블러드, 릴 나스 엑스 역시 스커트에 심취해 있긴 마찬가지. 많은 사람들이 남자 스커트가 퀴어 문화, 즉 소수를 위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파워풀한 스포츠 필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NBA의 스커트 추종자, 조던 클락슨과 러셀 웨스트브룩이 그 주인공. 특히 며칠 전, 톰 브라운의 화이트 카디건과 플리츠 스커트 룩을 착용한 러셀 웨스트브록 사진은 큰 화제를 모았다. 2m가 넘는 키에 어우러진 플리츠 스커트에서 쿨함을 느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 벌써 1,313,158개가 넘는 좋아요로 팬들이 화답하고 있으니 말이다.  
파워풀한 블랙과 반항적인 뉘앙스로 완성한 강인한 플리츠 스커트 룩.톰 브라운의 스커트를 입은 NBA 농구선수 러셀 웨스트브록의 퇴근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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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윤혜영
    사진/ Imaxtree/Instagram(@russwest44/@henriklischke)
    웹디자인/ 민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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