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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81.5x567cm.

정선, 〈인왕제색도〉, 조선 1751년, 종이에 먹, 79.2x138.0cm.
〈인왕제색도〉 옆에는 1805년, 60세의 단원 김홍도가 그린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가 걸려 있다. 김홍도 하면 해학 넘치는 풍속화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그가 죽기 얼마 전에 그린 이 그림은 그 말이 무색하리만치 쓸쓸하다. 〈추성부도〉는 11세기에 활동한 중국 문인 구양수가 쓴 글 ‘추성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름달 뜬 밤 앙상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가운데 선비와 동자가 대화를 주고받는다. “동자야, 이것은 무슨 소리인가. 나가서 보고 오너라.” “별과 달은 희고 맑고 은하수는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습니다.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아! 슬프도다! 이것이 가을의 소리로다.” 말년에 경제적으로 쪼들려 어린 아들의 학비를 걱정해야 했던 김홍도는 자신의 사정을 그림에 담았다. 선비는 슬프다 탄식하였으나 다가온 가을을 느끼며 쓸쓸함에도 호젓한 운치가 깃들어 있음을 만끽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 있다면 고려 시대의 불화 2점일 것이다. 나란히 걸려 있는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와 〈수월관음도〉는 14세기, 비단에 채색한 것이라 변색과 박락이 심해 조도를 최대한 낮춰 설치해놓았다. 그럼에도 그 찬란하고 고아한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특유의 기운이 사뭇 감동스럽다. 천수관음보살은 이름처럼 무수히 많은 손과 눈으로 중생을 구원한다. 우리나라에서 천수관음보살 신앙은 〈삼국유사〉에서 확인될 정도로 역사가 깊지만 이번 특별전을 기획한 강경남 학예연구사는 “그림으로 전하는 천수관음보살도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 남아 있는 고려 불화의 수는 매우 적다. 대부분 일본에 있고 북아메리카나 유럽 쪽에도 있다. 이번에 기증받은 2점도 원래 일본에 유출되었던 것을 이건희 회장이 구입해 한국으로 들여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그림에서 천수관음보살은 11면의 얼굴과 44개의 손, 무수한 ‘천안’으로 표현됐지만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두 작품 앞에 설치된 터치스크린 ‘고려불화 들여다보기’의 화면을 한껏 터치하고 드래그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까지 살펴볼 것을 권한다. 적외선 사진에서는 채색 전, 먹으로 그린 또렷한 밑그림을 볼 수 있는데 천수관음보살의 여러 손에 들린 구슬, 그릇, 먼지떨이, 포도 등 소원이 담긴 물건과 광배(부처의 몸체 뒤쪽에 있는 원형의 장식물로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것)에 빼곡히 그려진 무수한 눈 등 숨은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X선 사진으로는 채색 방식 및 안료를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문화재청과 함께한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에서 2018년 보물로 지정된 〈천수관음보살도〉를 전시했었는데 그때는 대여를 한 상태라 적외선이나 X선 촬영을 하지 못하고 최대한 육안으로 면밀하게 살피고 전시장의 설명 카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기증받아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이 됐기 때문에 특수 촬영을 통해 수세기 전에 그려진 그림의 디테일을 생생하게 들여다보며 연구하고 그 내용을 관람객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천수관음보살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색, 93.8x51.2cm.
나란히 걸린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는 14세기, 비단에 채색한 것이라 변색이 심해 조도를 최대한 낮춰 설치해놓았음에도 그 찬란하고 고아한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특유의 기운이 감동스럽다.

〈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색, 83.4x34.7cm.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한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에서 〈인왕제색도〉급의 화제작은 가로 6미터, 세로 3미터 가까이 되는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다. 미묘하게 변주를 준 옥색과 파스텔 톤의 색면 배경 위에 여인과 항아리, 학, 사슴, 남대문의 도상 등 김환기가 즐겨 사용했던 모든 모티프가 등장하는 눈이 시원한 대작이다. 1950년대 중반 전쟁 특수를 누리며 국내 최대의 방직 재벌 기업가가 된 삼호그룹의 정재호 회장이 퇴계로에 자택을 신축하면서 거실의 벽화용으로 주문한 작품이다. 당시 40대 초반의 김환기는 서울대 교수를 지내며 화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림에는 항아리를 이고 진 반라의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김환기의 백자 사랑은 자기 자신을 ‘항아리 귀신’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단해 자연히 그림에도 자주 등장했다. 한때 문학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김환기는 둥글고 큰 백자 항아리에 달의 이미지를 투영해 시를 짓기도 했는데, ‘달항아리’라는 용어 또한 김환기가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은 작가 사인도 없고 제작년도도 1950년대라고만 알려져 있다. 바로 옆에 걸린 김환기 점화 양식의 완성 단계를 보여주는 〈산울림19-II-73#307〉이 제작 날짜와 작업 노트가 명확하게 남아 있는 것과 퍽 대조적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김환기의 일기에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1973년 2월 19일 올해 처음 큰 캔바스 시작하다. 3월 11일, 근 20일 만에 307번을 끝내다. 이번 작품처럼 고된 적이 없다. 종일 안개비 내리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인들과 항아리〉 제작 과정을 지켜보던 정재호 회장의 아내가 반라 여인들의 모습에 수정을 요청했는데 작품을 지키고 싶었던 김환기가 이후 작업 현장에 가지 않고 사인도 남기지 않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처럼 흥미로운 일화를 남긴 작품은 1960년대 말 삼호그룹이 쇠락하면서 미술시장에 나왔고 이후 이건희 회장이 사들인 것으로 짐작된다.
〈여인들과 항아리〉 맞은편에는 박수근 특유의 색감과 마티에르가 완성도 높게 구사된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이 걸려 있고, 이중섭, 유영국 등 한국미술의 근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작품가가 가장 높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실의 사면을 채운다. 개막일 하루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특별전을 기획한 박미화 학예연구관은 한 작품 한 작품 설명하면서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일 년 미술품 구입 예산은 48억원 안팎이다. 기증에 갈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소장품 구입 심의를 받을 때마다 김환기의 점화나 이중섭의 〈황소〉를 예로 들면서 우린 이런 작품 하나도 없다고 호소했는데 이렇게 기증받게 되어 감격스럽다.” 김환기 말년의 걸작인 1971년작 〈우주 05-IV-71 #200〉의 경우에는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인 1백32억원을 기록하며 낙찰됐다. 이처럼 예산의 규모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별전을 찾은 관객들은 전시장에 들어오자마자 동서양의 도상이 혼합된 독특한 느낌의 거대한 풍경화를 마주하게 된다. 서양의 파라다이스와 동양의 무릉도원을 결합한 것 같은 오묘한 구성에 캔버스 천을 바탕으로 하면서 전통의 병풍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색적인 작품이다. 나혜석에 뒤이은 두 번째 여성 서양화가 백남순이 친구 민영순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로 보냈던 1936년작 〈낙원〉이다. 동경의 여자미술학교에서 유학하고 파리로 그림 유학을 떠났던 백남순은 남편 임용련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임용련은 예일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유럽으로 연구 여행을 떠나 파리에서 잠시 머물던 차였다. 두 사람은 서양화를 공부한 1세대 한국 화가로서 소재나 기법 면에서 동서양의 전통을 어떻게 융합하고 변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풀어냈다. 이렇듯 한국 미술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가들임에도 그들의 작품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는 미술평론가 이구열의 기사를 보고 이 그림을 선물로 받았던 민영순이 세상에 공개한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낙원〉은 그간 대여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바 있지만 장욱진의 〈공기놀이〉는 이번 기증을 통해 처음 공개된다. A4 용지보다 작은 사이즈의 작품들로 유명한 장욱진의 유례없이 큰 작품인 〈공기놀이〉는 그가 20세에 조선일보 주최 제2회 전국학생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최고상을 받은 작품이다. 박미화 학예연구관은 “장욱진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이라면 무척이나 보고 싶어했을 작품”이라며 말했다. “장욱진은 5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고모 밑에서 자랐는데 고모가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품으로 상을 받고 그 당시에는 큰돈이었던 상금 1백원으로 고모 옷도 사주고 하면서 그림을 그려도 되는 허락을 끌어낸 작품이다. 장욱진 작가 인생의 시작점이 되는 작품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다.”

백남순, 〈낙원〉, 1936년경, 캔버스에 유채; 8폭 병풍, 173x372cm.

장욱진, 〈공기놀이〉, 1938, 캔버스에 유채, 65x80.5cm.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이건희 컬렉션’으로 드디어 소장품 1만 점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공백을 메워주는 작품들을 소장하게 됐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건희 회장은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인데 몇 점 남아 있지 않은 경우라면 대부분 사들였다. 시장성에 상관없이 한자리에 모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듯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번 특별전은 거장의 유명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1차원적 감흥 그 너머의 감동을 선사한다.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는 시기의 과도기적 표현들을 직접 보고, 격동의 시기에도 예술 활동을 이어나갔던 예술가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며 자신만의 한국 미술사를 구성해보는 즐거움 말이다.
안동선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예술을 통해 시시각각 다른 시공간으로 탈주하는데 요즘엔 18세기에 정선이 살았던 인왕산 자락에 종종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