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환경 다큐 PD 김가람은 아직 지구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바자>의 카메라 앞에 선 여성이 말한다. 여기, 당신이 귀 기울여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고.

BY손안나2021.09.12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연출자

김가람 

톱은 Ganni.니트 톱은 Eenk. 베스트, 팬츠는 Cos.목걸이는 Verutum.이어링은 Prada.

톱은 Ganni.니트 톱은 Eenk. 베스트, 팬츠는 Cos.목걸이는 Verutum.이어링은 Prada.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가 방영된 뒤 반향이 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옷은 다른 쓰레기와 달리 어딘가로 기부되거나 재활용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스파 브랜드에서 옷을 사면 ‘싸다’ ‘현명한 소비다’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 옷이 나중에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선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구는 크고 바다는 넓으니까, 막연하게 어떻게든 되겠지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지는 옷이 일 년에 1천억 벌이고, 같은 해에 버려지는 옷이 3백30억 벌이다. 계속 만들어지고 계속 버려진다. 그럼 누군가는 그걸 먹어치우거나 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송을 통해 구체적인 사례를 보고 ‘어떻게든 되겠지’에서 ‘아, 어떻게 안 되는구나’를 느끼신 것 같고. 일단 그것만으로도 첫 단추를 끼웠다고 생각한다.
 
환경스폐셜 한 편을 만들다 보면 환경에 관해선 반 전문가가 될 텐데, 이번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이었다. 가나에서 소가 헌 옷을 뜯어먹는 장면이었다. 나는 헌 옷들이 당연히 지방에서 처리되는 줄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대부분 수출되었고, 주로 아프리카 대륙이나 인도가 종착지였다. 옷을 버리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 마법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구나.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고 가장 놀랐다. 두 번째로 놀란 건 한강에 있는 미세 플라스틱의 절반 정도가 옷에서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테이크아웃 커피잔이나 페트병에는 경각심을 갖지만 옷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빨대를 줄이고 페트병을 줄여봤자, 옷을 입는 생활 패턴이 바뀌지 않으면 문제의 절반 이상이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방송을 만들면서 고민도 많았다. 내가 사람들을 너무 괴롭히는 것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쉽게 바꿀 수 있는 문제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옷을 팔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거니까. 
 
다만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옷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그래야 패션계도 변화를 위한 건설적인 논의가 시작될 테니까. 그래서 오늘 인터뷰가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옷의 본진에서 불러준 거지 않나.
 
무엇보다 “친환경 소비는 친환경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 
취재하면서 느낀 건, 페트병으로 티셔츠를 만드는 게 유행이 됐다는 거다. 페트병은 굳이 옷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르게 재활용될 수 있는 품목이다. 그런데 마치 이걸 사면 바다로 갈 페트병이 내 옷이 되는 것처럼…. 몇 년 전 유행한 에코 퍼도 마찬가지다. 폴리에스터이고 결국 플라스틱이다. 우리는 자꾸 뭔가를 사는 걸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돈을 주고 친환경 브랜드를 사는 건 쉽다. 하지만 뒷이야기는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불편하니까. 직업이라는 건, 자존심을 걸고 하는 일이지 않나. 패션계에서 ‘친환경’이라는 라벨을 붙여서 뭔가를 하는 분들이, 자신의 브랜드와 이름을 걸고 ‘진짜 친환경’이라고 할 만한 걸 좀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에선 문화적 코드가 특히 중요한 것 같다. 이를테면 제인 폰다가 매번 똑같은 빨간색 트렌치코트를 입는 것이 쿨해 보이듯 말이다.
‘내가 옷 한 벌 안 산다고 지구가 회복이 될까?’라는 생각, 솔직히 나도 한다. 이미 공장에서 엄청나게 찍어내고 태우고 있는데…. 그런데 패션 산업도 결국은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옷에 대한 새로운 문화랄까? ‘우리는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옷은 더 이상 입고 싶지 않다’라는 공감대가 생기고, 진심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에 대한 지지가 있다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대는 항상 새로운 옷을 입고, 새로운 장소에 가서 인생샷을 남기지 않나. 그런 상상을 해본다. 여름휴가를 가면 매년 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거다. 이런 게 진짜 쿨하게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영향력 있는 패션계의 셀럽이나 〈바자〉 같은 매체에서 캠페인을 해주면 더 멋있지 않을까? 그러면 어느 날 내가 인스타그램에 맨날 새 옷을 입고 사진을 올리는 게 뻘쭘해질 수 있는 거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KBS 〈환경스페셜〉은 2013년 폐지되었다가 올해 초 8년 만에 부활했다. 폐지 당시와 비교해서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증가한 것이 이유가 되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프로그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청자가 확실히 달라진 것을 실감한다. 10년 전에 “옷이 플라스틱이에요.”라고 얘기했다면 “뭐 어쩌라고?” 같은 반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플라스틱을 필사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지 않나. 특히 MZ세대는 환경을 위해 기꺼이 자기 생활을 바꾸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 사실 이렇게나 환경에 관심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환경 전문 프로그램은 〈환경스페셜〉 딱 하나다. 좋은 아이템이 있을 때 방송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항상 ‘꺼리’를 만들어서 일 년에 50편을 제작한다는 건 큰 부담이다. 그래서 더욱 KBS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환경 문제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보나? 
멸망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그만둬야 할 건 분명히 있다고 본다. 깨끗한 공기를 사 오고, 우리나라 쓰레기를 해외로 잘 수출하고. 이런 식으로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온 바다가 연결되어 있는데 중국의 미세먼지를 정말 막을 수 있을까. 


결국엔 공감대가 중요한 것 같다. 그게 내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고. 내 아이를 위해 사 입힌 옷이 가나의 다른 집 아이를 아프게 하고 돌고 돌아서 다시 우리 아이한테 온다는 것.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환경 문제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10년 동안 〈걸어서 세계 속으로〉 〈생로병사의 비밀〉 등 다수의 교양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그때의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됐나? 
여태껏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스무 편 정도 된다. 온갖 프로그램을 다 해봤다. 아티스트적인 피디들도 있지만, 나는 내가 직장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작년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환경성 질환에 대해 다뤘다. 그때 생긴 문제의식이 ‘쓰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였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를 내다버리는데 그게 다 인천에서 매립된다. “이렇게 막 버려도 내일 아침이 되면 사라지니까” “이 동네 사람들이 민도가 높아서… 역시 강남 사람”. 이런 얘기들 하는데 하루만 안 치워도 난리가 날 거다. 내가 쓰는 물건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사고가 하나도 없는 거다.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도 결국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연출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내 가족, 친구, 내가 사는 공간 정도가 아니라 아주 넓은 범위의 공감 능력. 그걸 넓힐 수 있었다. 미디어에는 늘 나오는 나라만 나온다.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정도. 인도만 해도 인구가 14억인데 늘 이상한 뉴스로만 다뤄지지 않나. 아프리카 또한 엄청나게 큰 대륙인데 우리에게는 그저 뭉뚱그려서 ‘아프리카’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통해 거기서 그들과 지내면서 그런 고정관념을 지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구든 어떤 종교를 가졌든 어떤 성적 지향을 가졌든 관계 없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달까.
 
본인을 아티스트가 아닌 직장인이라고 말했지만,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진심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환경 문제를 이야기할 때의 얼굴이 그렇듯 말이다. 
그게 마약처럼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다. 교양 피디라는 직업은… 뭐랄까, 내 처지가 늘 아쉽다. 〈생로병사의 비밀〉에 나온다고 유명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출연료를 많이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홍보를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명한 교수의 연구실에서 촬영을 한다고 치자. 이미 그 교수는 그 연구를 골백번도 넘게 시연을 해봤을 거다. 그렇다 보니 늘 남의 시간을 뺏는 느낌이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끼리 서로 이해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유명한 사람이나 신기한 장소보다 〈여섯 시 내 고향〉을 촬영하러 갔을 때 자기가 20년 동안 가꾼 밭을 보여주면서 따뜻하게 맞이해준 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한번은 경제 다큐멘터리로 캐나다 퀘벡의 저소득층 가정을 촬영하러 갔다. 충분히 껄끄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죄송해하며 들어갔는데 그 집 아이가 나를 안아주었다. 자기를 보러 멀리서 와줘서 고맙다며 쪽지에 그림을 그려줬는데 그걸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나를 반가워해줬던 분들,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말씀해주셨던 분들을 만날 때 힘이 난다. 
 
내 직장생활 모토가 ‘지속가능한 만큼 최선을 다하자’이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자부심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장기 휴가를 간다거나 제작부로 옮긴다거나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놓지 않고 현장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항상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상처도 받았지만 또 거기서 힘을 얻는 것 같다.
 
이 다음 〈환경스페셜〉은 어떤 내용인가? 
일단 필요 이상으로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지고 엄청나게 많이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더 이야기할 생각이다. 그런 건 비단 옷뿐만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음식도 있다. 한쪽에서는 넘치는데, 한쪽에서는 여전히 굶고 있고. 그런 불균형에 관심이 있다.
 
만약 시간과 예산과 체력 모든 게 허락된다면 어떤 방송을 만들고 싶은가?
지금은 〈환경스페셜〉을 만드는 게 재미있다. 하루하루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내고 그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그걸로 내 직장생활은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