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된 9.11 테러가 발생한지 20년이 흘렀다. 〈하퍼스 바자〉 코리아의 발행인이 패션 에디터로 뉴욕 패션위크에 참석했던 2001년 9월. 20년 전 그 날의 이야기를 되돌아 본다.

〈하퍼스 바자〉코리아 2001년 11월호 中
9월 11일 화요일, 오전 8시 50분
뉴욕 컬렉션이 열리고 있는 41번가, 브라이언트 파크에 도착해 디자이너 PR들에게 급한 전화 몇 통을 걸기 위해 먼저 프레스룸으로 향했다. 한 구석에 티켓과 리스트를 확인하며 열심히 전화 버튼을 누르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웅성거렸다.
"오, 마이 갓!"
프레스룸에 켜 있던 TV 모니터에서는 화염에 휩싸인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가 내리꽂히면서, 110층짜리 빌딩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프레스룸에 모여 있던 각국 기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영문을 몰라 옆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고, 어떤 이는 영화 상영 중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누군가 곧 ‘테러’라고 말했고, 몇몇 기자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 5분쯤 망연자실 붕괴 장면을 보고 있던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검은 양복을 입은 가드들이 프레스룸으로 들이닥치더니 “Show is Canceled. We’re all closed down. Go back, please!(쇼는 전부 취소되었으니 모두 돌아가시오!)” 라고 소리쳤다. 그제야 나는 사태의 심각성이 피부로 와 닿으며 겁이 나기 시작했다. 길에는 순식간에 택시 한 대 보이지 않았고 지나가는 버스에는 어느새 “Not in service(운행 중단)”이라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남쪽으로 방향을 튼 순간,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에 또 한 번 가슴이 내려앉으며 눈물이 흘렀다.
맨하튼의 마천루는 사라지고 천지에 공허한 연기만 자욱했다. 10블록을 걸어온 그 시간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총을 든 군인들과 거대한 탱크가 도나 카란 본사 앞인 렉싱톤 애비뉴를 막고 있다. 도나 카란 사무실은 미국 비상 대책단의 임시 서비스 센터로 탈바꿈했고, 그녀는 쇼에 사용하려고 했던 벤치들과 집기들을 이미 부상자를 위한 침대로 내놓았다. 월요일에 뉴욕에 도착했던 아르마니는 쇼가 캔슬된 뉴욕 디자이너 누구에게라도 밀라노의 자신이 소유한 극장을 쇼 장으로 빌려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람들은 조금씩 다시 일어나기 위해 서로서로 애를 썼으나, 상처와 손해는 너무나도 컸다.
9월 15일 토요일
금요일까지 문을 닫았던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의 쇼윈도는 성조기와 흰 백합으로 뒤덮였으며 서른네 개의 윈도는 전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 백화점은 붕괴 현장에서 일하는 소방관들에게 음식과 물, 양말, 이불, 티셔츠 등을 제공했다.
소호 근방으로 내려 갈수록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왔다. 붕괴 현장에 가까워지면서 공기는 매케했고, 멀리서 소방차와 앰뷸런스의 형태가 보였다. 더 이상 다가가지 못했다.

9월 16일 일요일
비행기 출발 시간보다 무려 네 시간 앞서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의 경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까다롭고 삼엄 했지만 아무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청소부의 빗자루와 청소용 세제, 공항 직원의 카푸치노 컵까지 X-Ray 검사대를 통과하는 모습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비행기는 뉴욕 땅에서 다리를 접고 ‘집’으로 향했다.
비극적인 화요일의 뉴욕 테러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상처를 입었다.
내가 다치치 않고 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아무 일이 없어서 괜찮은 류의 일은 아닌 것이다. 조금 전, 업데이트 된 뉴스에는 미국 내 탄저병에 대한 심각성이 보도되어 있다. 나는 분명히 그 연기 자욱했던 뉴욕에서 돌아왔지만, 마음은 어느 곳으로도 돌아갈 곳이 없는 것만 같다.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 슬펐던 날들이었다. 내가 뉴욕에서 보낸 일주일은. (〈하퍼스 바자〉코리아 2001년 11월호 '비극의 화요일, 그리고 그 후 이야기' 中)

최근 미국 언론은 9.11테러로 희생당한 1646번, 1647번째 유해 신원을 확인했고 (이는 2019년 10월 이후 처음) 나머지 1106명의 신원은 여전히 미확인이라 밝혔다. 20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신원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본 기사는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01년 11월호 ‘비극의 화요일, 그리고 그 후 이야기’ 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