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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에디터가 추천하는 이달의 신간 2

웃음과 눈물, 긴장과 평안, 사고와 사유. 책 한 권을 손에 쥐면 우리는 어디로든 간다.

BYBAZAAR2021.08.13

시시콜콜한 것의 미학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그 사람의 엄청나게 사소한 점을 안다는 걸까? 그가 싫어하는 걸 안다는 걸까? 그가 좋아하는 걸 안다는 걸까? 혹은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테마)를 안다는 걸까? 아니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은밀한 욕망을 안다는 걸까? 〈에릭 로메르: 은밀한 개인주의자〉의 저자 앙투안 드 베크와 노엘 에르프는 아마도 이 책을 쓰면서 이런 고민을 좀 길게 한 것 같다.
 
이 책은 무척 두껍다. 주석 읽는 걸 시원하게 포기하더라도 무려 9백86페이지다. 책의 무게 때문에 손목이 조금 아파올 정도며, 혹시라도 책을 떨어뜨려 발등을 찍지나 않을지 주의도 해야 한다. 두 저자는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가 얼마나 은밀한 개인주의자인지 알리기 위해 온갖 시시콜콜한 내용을 구구절절 다 적어놓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정치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로메르가 보행자권리협회에는 가입한 사실, 영화 〈겨울 이야기〉의 디테일을 위해 실제로 잘못된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 편지가 제대로 발송되는지 확인해본 일,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시절 돈을 아끼기 위해 점심을 먹지 않은 일(그 이후로도 계속 안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 속 음악을 작곡하고 가명으로 발표한 일, 어머니에게 끝까지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일, ‘액션’ 지시 대신 구겨진 종이를 던졌던 일 등등. 말을 잘 못해서 대학 입학 구술시험에서 수차례 떨어진 일은 또 얼마나 길게 써놓았는지.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세계가 이렇게까지 사소할까, 그 사소함이 그 사람을 이렇게까지 규정하고 정의하는 걸까 싶어 소름이 오스스 돋는다.
 
그는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싫어하는 게 많았다. 세귀르 백작부인, 쥘 베른, 로베르토 로셀리니, 장 르누아르, 16mm 영화, 젊은 여성들과의 대화, 산책, 아마추어리즘을 좋아하는 만큼 담배, 소음, 시끄러운 음악, 택시, 마케팅,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 예산을 초과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시절, 그는 자크 리베트가 누벨바그 특집호를 준비하면서 예산을 초과하자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는 경제성에 집착했다. 소규모의 저예산 영화를 선호한 그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착취하는 ‘꽉 막힌 꼰대 구두쇠 노인’일 수 있다. 그는 자주 배우와 스태프의 친구들 집에서 촬영했고, 보수를 잘 주지 않았으며, 당연히 식사비도 내주지 않았다. 배우들에게 사생활을 물어보며 그들의 말투, 취향, 경험을 배역에 묻어나게 하는 건 에릭 로메르 촬영 방식의 핵심이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배우들을 착취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 사람의 단점과 모순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이었으며 영화는 유럽인이 제일 잘 만든다는 등 서구 문화 예찬자였고 영화 속에서 매력적인 여성을 많이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반 페미니즘적이었다. 이 책을 읽다가 그나마 낄낄거리게 되는 건 이런 대목 때문이다. “이 남자는 변화하려는 기질도 없고, 혁명적이거나 심지어 개혁적인 기질도 없다.” 혹은 첫 소설이 완전히 망한 뒤의 에릭 로메르를 묘사하는 이런 대목. “청년(에릭 로메르)은 소설에 대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첫 소설을 싫어하는 것으로 이(실패)를 극복한다.” 역사가이자 영화비평가인 저자 둘은 에릭 로메르를 우상화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사람으로서 미리 경고하건대, 백인 및 남성, 서구 우월주의 가치관 때문에 에릭 로메르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에릭 로메르라는 사람, 그의 영화 속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면, 이 책보다 더 완벽한 가이드는 없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 일상에 닥치는 평범한 재난과 오해, 삶의 불완전함을 포착하는 영화라는 예술의 특성, 불규칙한 것과 우연이 주는 미스터리 등 그가 구현하려고 한 모든 것이 위에 열거한 저 사소한 에피소드들과 연결된다. 즉, 그는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사용해 소규모 촬영 팀과 작은 우연이 가져온 일상의 도덕적인 딜레마를 진실에 가깝게 구현하려고 했다. 가볍고 세련된 아마추어리즘을 좋아한 그는 그런 이유로 배우들에게 연기 지시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친구의 친구, 친구의 사촌의 집 등을 소개받았으며, 유명해지지 않으려고 했으며, 본명 모리스 세례르의 삶과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로서의 삶을 철저하게 구분하려고 했다. 놀랍게도 이 이중생활 속 그의 고독과 욕망이 〈겨울 이야기〉의 오해와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의 비밀,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의 모순, 〈녹색 광선〉의 우연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 마지막 초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참을성과 인내를 가지고 머리 아픈 프랑스식 표현을 끊임없이 견뎌내야 한다. 책을 덮고 싶은 순간이 많겠지만 에릭 로메르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견딘 인내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면, 일단 사서 책장에 꽂아만 둬도 괜찮을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에릭 로메르는 그 편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글/ 나지언(디지털 미디어 기획자) 


어둠 속에서

 
 
소년들의 첫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 사랑은 숨겨야 한다. 그 사랑은 감춰야 한다. 그 사랑은 지워야 한다. 그렇기에 소년들의 첫사랑은 처음 키스를 한 순간으로부터 계속해서 추락하기만 할 운명에 놓여 있다.
 
헤엄을 치는 기분이었다. 너에게서 편지가 왔다. 굳이 편지를 보낼 필요는 없었다. 너와 나는 같은 반이었다. 하지만 너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991년이었다. 대통령은 노태우였다. 노태우의 선거 문구는 ‘보통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전두환의 친구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사람들은 군인이 아닌 대통령을 기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다시 군인 출신 대통령을 뽑았다. 노태우는 전두환처럼 과격한 독재자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독재의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너와의 만남은 고등학교 첫날부터 시작됐다. 키가 나보다 두 뼘은 컸던 너는 그리 잘생기진 않았지만 눈동자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너는 제일 앞자리에서 책을 보고 있던 나에게 오더니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이름이 뭐야?” 너는 당황해 머뭇거리는 나에게서 안경을 빼앗아 달아났다. 찾고 싶으면 오라는 눈치였다. 나는 눈치가 없었다. 화가 났다. 고등학교 3년이 이렇게 비극적으로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당신이 90년대 남자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육체적으로 보잘것없는 공부벌레 타입이었다면 이게 무슨 소린지 알 것이다. 당신을 괴롭히고 싶어 하는 존재는 어디에나 있다. 그들이 당신을 그저 귀엽게 생각하는가, 아니면 빵셔틀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3년은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진다. 
 
그 순간이 지나치게 빨리 왔다는 생각에 나는 우울해졌다. 가장 고통스러운 건 점심 시간이었다. 도시락을 열 때마다 네가 왔다. 나는 꽤나 호사스러운 일본제 도시락을 갖고 다녔다. 따뜻한 국까지 싸가지고 오는 친구는 몇 없었다. 너는 내 국통을 낚아채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미웠다. 일본제 도시락통으로 머리를 깨버리고 싶었다. 당연히 그런 일은 내 상상 속에서만 일어났다. 몇 달이 흘렀다. 너의 장난은 계속됐다. 그게 딱히 악의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그렇지만 성가셨다. 제발 2학년이 되기만을 빌었다. 토요일이었다. 봄이 가고 여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교실은 테스토스테론이 분출하는 열여섯 남자아이들의 냄새로 가득했다. 종이 쳤다. 나는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너였다.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달렸다. 힘껏 달렸다. 1층 문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됐다. 그 순간 나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어쩐지 나는 건물 지하층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체육시설 창고로 쓰던 문은 잠겨 있었다. 문고리를 잡고 흔드는 나를 잡았다. 네가 잡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겹쳤다. 혀가 들어왔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 몸은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 만큼 거대한 불꽃이 아랫배에서 입으로 역류했다. 기분 나쁘도록 차갑게 끈적이던 너의 혀가 따뜻해졌다. 너는 얼굴을 떼고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너의 편지를 읽으며 그 순간을 떠올렸다. 편지에는 왜 우리가 계속 만날 수 없는지에 대한 고등학생다운 이유가 가득했다. 
 
친구들이 눈치를 챘다고 했다. 이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고 했다. 2학년에 올라가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처럼 계속 지낼 수는 없다고 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흐느꼈다. ‘흐느끼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열여섯의 나이에야 깨달았다. 답장을 썼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너는 나를 모른 체했다. 지옥이었다. 케르베로스가 지옥문 앞에서 나를 향해 짓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둠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도무지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시커먼 호수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폴란드 작가 토마시 예드로프스키의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1980년대 사회주의 체제의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두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다. 소년들의 첫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 사랑은 숨겨야 한다. 그 사랑은 감춰야 한다. 그 사랑은 지워야 한다. 그렇기에 소년들의 첫사랑은 처음 키스를 한 순간으로부터 계속해서 추락하기만 할 운명에 놓여 있다. 나는 96페이지를 열어 그들의 첫 육체적 만남을 다시 읽는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미 언어를 초월한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곳에서, 나도 그곳에서, 바투 호흡하고 있었다. 이윽고 내가 너의 반경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는 너의 몸과 잠잠하게 터놓은 얼굴과 입술에 맺힌 물방울을 향해, 네 양팔이 나를 감싸 안았다. 세게. 이에 우리 둘은 바닥에 닿는 일 없이 호수에 무중력으로 떠 있는 하나의 몸이 되었다.” 나는 학교 지하실에서의 키스를 기억한다. 나의 감각을 무중력 상태 속으로 던져놓은 입술과 혀의 맛을 기억한다. 동시에 나는 2학년이 되어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순간 고개를 돌리던 너의 눈을 기억한다. 그 눈이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부름에 대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을 만큼 현명했다. 나는 사라지는 등을 바라보며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나직이 너의 이름을 불렀다. 너의 이름은.
 
글/ 김도훈(작가, 영화 저널리스트,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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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의령
  • 사진/ 이현석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