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워싱 주의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그린 워싱 주의보

친환경이 유행이 되는 시대. 이제는 피할 수 없다는 절박함과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시도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필(必)환경의 걸림돌인 ‘그린 워싱(위장환경주의)’에 대해.

BAZAAR BY BAZAAR 2021.06.02

GREEN

WASHING 


한때 거의 모든 브랜드의 신제품에 병풀 추출물이 들어가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브랜드명에 ‘시카’ ‘센텔라아시아티카’를 넣은 것도 있었다. 호랑이가 상처를 입었을 때 병풀 숲에서 뒹구는 것을 본 게 병풀 효능 발견의 시작이었으니, 그때 그 호랑이가 참 큰일했다. 이 유행의 바통은 단일 성분 에센스가 이어받았고, 가장 최근에는 ‘지속가능성’ ‘클린 뷰티’ ‘비건’이 그 중심에 있다. 유행하는 성분은 어떤 아이템에든 집어넣으면 그만이지만, 기업 이념처럼 자리 잡아야 하는 지속가능성이나 클린 뷰티, 비건은 어떻게 트렌드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과연 이것들이 유행처럼 번져도 괜찮은 걸까?
 
최근 이니스프리의 용기가 논란이 됐다. 무색 폴리에틸렌 재질을 사용하고 기존 제품 대비 51.8%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 친환경 용기를 선보였지만 ‘HELLO, I’M PAPER BOTTLE’이라는 이름이 문제였다. 이니스프리는 기존에 비해 절반이나 플라스틱을 절감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겠지만 소비자들의 생각, 친환경에 대한 기준과 눈높이는 그사이 많이 높아졌다. 이 논란은 종이가 아닌데 왜 종이 용기라고 이름 지었는지에 대한 단순 불만이라기보단 평소 친환경 활동을 꾸준히 잘해왔던 브랜드의 거짓말(실수든 오해든 결과적으로)에 실망감이 커진 것일 수도 있고, 그동안 단순 유행에 편승해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된 그린 워싱에 많은 사람들이 지쳐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사실 뷰티 브랜드가 친환경에 대해 이야기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환경을 위한 브랜드의 활동에도 유행이 있어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흔한 친환경 활동은 기부였다. 그러다가 공병 수거나 리필을 권장하는 것처럼 소비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거나 비닐 대신 종이 포장재를 활용하는 것처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사이 환경보호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더욱 높아지고, 기업의 윤리적인 책임을 묻는 시선이 많아지면서 지금까지의 방식보다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동시에 효율적인 방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제는 친환경 활동을 하는 것 자체로 어필하는 시대를 지나,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동시에 소비자들도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친환경에 도움이 되는 소비에 지갑을 연다. 대부분 습식형인 우리나라의 욕실 환경에서는 깔끔하게 사용하기 어려워 외면받던 비누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게 좋은 예. 재활용 플라스틱을 믿고 구매하고, 공병 수거 참여율도 늘어나고 있다. 하여 이제는 뭉뚱그려 표현하는 자연주의 같은 콘셉트로는 크게 어필하기 어려워지게 되었고 보다 세분화된 지속가능성, 클린 뷰티, 비건 등을 표방하는 브랜드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됐다.
 
문제는 이러한 콘셉트가 브랜드의 이념이 아닌, 일시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보여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자연주의, 친환경 브랜드를 표방하면서, 심지어는 비건 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라인을 전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중국 수출을 위해 동물실험을 해야 하는 위생 허가를 진행하거나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을 어필했지만 제품의 재활용 용기에 컬러를 입히고 인쇄를 잔뜩 넣어 결국 재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브랜드의 친환경 활동은 돈이 든다. 가장 큰 이슈인 플라스틱만 놓고 봐도 제품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바닷물이나 퇴비에서 반년 안에 생분해되는 플라스틱이 어느 날 갑자기 개발되는 건 아니다. 천문학적인 연구 비용 외에도 썩는 플라스틱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썩는 것과 썩지 않는 것을 구별해서 분리하도록 교육해야 하며, 플라스틱을 모아 충분한 시간을 들여 분해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춰야 한다. 아직까진 이 골치 아픈 과정을 다 해내지 못하고 썩든 안 썩든 한 번에 모아서 버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시간과 비용 면에서 더 저렴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친환경 소재를 개발해서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가 선택했지만, 가장 의미 있어야 할 마지막 대목까지는 제대로 관심을 쏟지는 못하는 것. 이쯤 되면 이건 모두가 다리에 끈을 묶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천천히 발 맞춰 걸어가야 하는 마라톤 같은 일이다. 트랙도 확실하지 않고, 정확한 목표도 보이지 않지만 누구 하나 중도 포기하는 일 없이 함께 골인해야 하는 마라톤.
 
아직까지 화장품에 있어 ‘친환경적이다’는 것은 존재 자체가 환경을 위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정도다.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 정도의 단계임을 화장품 회사와 소비자 모두가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앞서 이야기한 공병 수거나 포장재를 줄이고 없앤 대표적인 브랜드 중 하나인 러쉬조차 ‘풍부한 거품과 반짝이는 펄이 가득한 입욕제가 환경에 무해한가?’라는 질문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러쉬의 마케팅적인 활동이 그린 워싱으로 치부되지 않는 것은 어쩌다 한 번 외치고 지나가는 시즌 마케팅이 아니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시작부터 인간과 동물, 환경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다보니 이제는 손가락질보다 응원의 목소리가 더 큰 브랜드로 여겨진다. 앞서 말한 이니스프리도 단순히 그린 워싱으로 치부하며 비난하기보다 진짜 종이 보틀을 만들어내기를 응원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처럼. 이는 그동안 꾸준히 친환경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는 인간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화장품이 자연에도 무해하고, 나아가 자연을 보호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이르다. 한때는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추앙받았던 플라스틱이 최고의 애물단지가 된 것처럼 앞으로의 결과 또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지금은 이러한 문화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단계다. 브랜드는 친환경을 마케팅적인 시각이 아닌 기업의 이념으로 삼고 접근해야 하고, 소비자는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당장의 시행착오에 목소리를 내고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응원하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 정도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환경보호는 이제 거창한 계몽운동이라기보단 이 지구에서 하루라도 더 버티기 위한 이기적인 생존방법이기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가 됐다. 이런 말을 하면서 배달 온 음식의 플라스틱 용기를 보고 있자니 자괴감이 든다. ‘내일’을 위한 환경보호가 ‘내 일’이 되는 게 이렇게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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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지영
    사진/ Getttyimageskorea
    글/ 황민영(뷰티 스페셜리스트)
    웹디자이너/ 한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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