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2021년, 주얼리로 환생한 샤넬 넘버5.

여성의 모든 것을 흔든 샤넬 역사의 시작점에는 ‘N°5’ 향수가 존재한다. 그것은 1백 년의 세월 동안 우리의 껍질을 벗겨내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관습을 깨부쉈다. 가브리엘 샤넬의 말이 언어의 형태가 아니라 후각적, 시각적 형태로 그려진 샤넬 ‘N°5’. 그 다음 역사가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속에서 시작된다. 2021년, 주얼리로 환생한 ‘N°5’를 만나보자.

BYBAZAAR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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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N°5

TO N°5

자신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직접 ‘N°5’의 모델이 된 가브리엘 샤넬.

자신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직접 ‘N°5’의 모델이 된 가브리엘 샤넬.

 
아름다움은 의무나 관례가 아닌 행동이나 태도라고 생각했던 가브리엘 샤넬은 1921년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의 손을 빌려 여인의 향을 담은 여성을 위한 향수 ‘N°5’를 탄생시킨다. “저는 인공적인 향을 원했어요. 맞아요, 인공적인 향기. 마치 드레스처럼 손으로 만들어지는 향기. 쿠튀르 디자이너인 저는 구조적인 향수를 원해요.” ‘N°5’ 향수는 이제껏 쌓아온 가브리엘 샤넬의 세계관  이 웅변적으로 녹아든 하나의 아이콘이다. 샤넬 ‘N°5’는 이름부터가 심플하다. 당시 모든 향수에는 로맨틱하면서도 우아한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런 낡은 인습이 싫었던 그녀는 테스트용 제품의 순서인 5번을 향수의 이름으로 채택했다. 이름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향수 병이 주를 이뤘던 시절, 실험실용 병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 투박한 보틀 역시 샤넬스러운 선택이었다.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 여자에겐 미래가 없어요”라고 말하던 가브리엘 샤넬에게는 물론이고, 잘 때 ‘N°5’만 걸친다는 메릴린 먼로에게도 이 향수의 의미는 남다르다. 1백 년간 ‘N°5’는 향수 그 이상의 존재였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가 해방되던 날 미군들은 캉봉가의 샤넬 부티크로 몰려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줄을 서서 ‘N°5’ 향수를 구매했다. 이어 1950년대 앤디 워홀이 스크린 프린팅으로 묘사한 작품이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에 전시될 정도로 ‘N°5’는 시대를 대변하고 파리를 상징하며 새로운 시대의 여성을 위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샤넬다운 혁신은 ‘N°5’ 향수를 시작으로 패션, 주얼리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이뤄진다. 그중 가장 도전적인 행동은 1932년 벌어진다. “제가 다이아몬드를 선택한 이유는 다이아몬드가 가장 작은 크기에 가장 많은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에요.” 가브리엘 샤넬은 1932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비쥬 드 디아망(Bijoux de Diamants)’ 컬렉션을 발표하며 하이주얼리의 관례를 뒤흔들었다. 가브리엘 샤넬은 멀리서 바라기만 하는 보석이 아니라, 진짜 패션이 되고, 여자의 삶에 참여할 수 있는 하이주얼리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유리 케이스 대신, 화장을 하고 머리 장식을 한 밀랍 마네킹에 보석을 디스플레이했다. 이로써 다이아몬드, 나아가 하이주얼리는 과시보다는 창작, 과장보다는 가벼움을 담은 진짜 보석이 되었다.
 
‘N°5’의 1백 년의 역사를 회고하는 일을 담당한 샤넬 주얼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의 디렉터 패트리스 레게로(Patrice Leguereau)는 향수에 바치는 최초의 하이주얼리 컬렉션 ‘컬렉션 N°5(Collection N°5)’를 구상했다. 그는 ‘N°5’와 하이주얼리 사이에 공히 흐르는 샤넬의 세계관을 드디어 하나의 형태로 담았다. 향수의 상징성을 주얼리로 변환시키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그에게 이번 컬렉션의 탄생 비화를 물었다.
 
파리 방돔광장을 떠올리게 하는 ‘N°5’ 향수 뚜껑.

파리 방돔광장을 떠올리게 하는 ‘N°5’ 향수 뚜껑.

 
 
향수와 주얼리는 서로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나?
아주 많은 연관이 있다. 여성의 피부에 직접 닿는다는 사실 외에도 탁월함과 대담함이라는 샤넬의 가치를 상징한다. 1921년 가브리엘 샤넬은 미래 향수의 선구자 역할을 한 ‘여인의 향을 담은 여성을 위한 향수’를 만들었다. 1932년에는 ‘비쥬 드 디아망’ 하이주얼리 컬렉션으로 새로운 주얼리 착용 방식을 선보였다. 샤넬은 고가의 보석을 의상에 더해 보석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도록 여성들을 독려했다. 향수와 주얼리에는 모두 창의적 자극이 존재한다.
 
 
‘컬렉션 N°5’에 대한 주얼리적 접근법은 어떠했나?
단순한 헌사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번 컬렉션을 몰입감 있는 경험으로 구상했다. ‘N°5’ 향수의 영혼과 비밀을 탐험하는 여정 말이다. 가브리엘 샤넬의 정신을 재발견하고 싶었다. 하우스의 조향사 올리비에 폴쥬(Olivier Polge)와 함께 그라스 지방에 위치한 재스민과 메이 로즈 들판을 방문했다. 어떻게 하면 너무 직설적이지 않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N°5’의 마법과 신비로움을 풀어낼 수 있는지 자문하며, 향수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향수의 유동적인 면을 금속과 보석 세공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자 향수의 상징을 주얼리의 상징으로 탈바꿈시키자는 이번 컬렉션의 변증법이 빠르게 떠올랐다.
 
디자인 과정이 궁금하다. 
도면을 그리는 책상에 앉아 잉크를 묻힌 펜을 놀리며 향수의 힘, 기운, 여성성, 풍성함을 일말의 양보 없이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향수의 5가지 특징에 착안했다. 바로 스토퍼, 보틀, 숫자 5, 꽃 그리고 잔향이다. 향수를 상상할 수 있도록 보틀의 시각적 특징을 활용했다. 이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옮겨간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폭발적인 향과 그 흔적을 무형과 유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잔향이다. 폭발적인 느낌으로 배치한 다양한 크기의 보석, 드롭 형태로 흐르는 보석, 무한한 성단을 연상시키는 꽃구름, 1932년 ‘비쥬 드 디아망’을 연상시키는 상징, 이 모든 것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샤넬 주얼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디렉터, 패트리스 레게로.

샤넬 주얼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디렉터, 패트리스 레게로.

 
‘컬렉션 N°5’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55.55 네크리스’ 제작과정.

‘컬렉션 N°5’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55.55 네크리스’ 제작과정.

 
보틀은 샤넬 하이주얼리의 중요한 일부가 된 것 같다. 
그렇다. 우선 스토퍼의 형태를 예로 들 수 있다. 방돔광장의 윤곽을 떠올리게 하며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요소다. 수정이든 화이트 다이아몬드든 투명한 소재를 사용해 향수 보틀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보석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다이아몬드가 하이주얼리를 상징하는 것처럼 ‘N°5’ 보틀은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나 숨겼을 때나 향수의 전형을 나타낸다. 향수와 주얼리는 ‘55.55 네크리스’라는 놀라운 작품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 ‘컬렉션 N°5’를 상징하는 이 독보적인 주얼리에는 정확히 55.55캐럿으로 샤넬에서 커팅한 다이아몬드가 사용되었다. 엄청난 쾌거다. 향수의 드롭을 연상시키기 위해 여성적인 느낌의 시트린과 임페리얼 토파즈 같은 앰버 및 파우더 컬러의 페어 컷 스톤을 사용했다. 또한 가브리엘의 주 활동 영역인 쿠튀르를 생각나게 하는 리본 모티프로 숫자 5의 디자인에 관능미를 더했다. 특히 보석이 인체공학적이며 유연하게 세팅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 마치 목 주변에 향수를 뿌린 것처럼 골드가 피부를 감싸게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탄생한 이번 컬렉션은 유난히 방대하다. 
1백23개의 주얼리로 구성된 ‘컬렉션 N°5’는 전례 없는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향수의 다채로움, 다양한 특징 덕분이다. 게다가 오직 샤넬 하우스만이 눈부신 55.55캐럿 다이아몬드를 스토퍼 형태의 베젤에 올리는 강력하고 확신에 찬 행동을 할 수 있다. 이토록 화려한 보석을 통해 목걸이에 더 큰 생명력을 부여하고, ‘N°5’의 향처럼 피부 위로 다양한 모습을 발산하도록 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컬렉션만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이번 컬렉션은 샤넬이 만든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친밀한 하이주얼리 컬렉션이다. 골드, 보석, 샤넬의 장인정신을 쏟아부어 ‘컬렉션 N°5’를 창조했다.
 
 
다이아몬드 원석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큰 보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55.55캐럿의 완벽한 8각형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 샤넬 주얼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디렉터, 패트리스 레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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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민정(프리랜서)
  • 사진/ 샤넬 하이주얼리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