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박서보의 아내가 아닌 작가 윤명숙의 인생 이야기

윤명숙의 에세이집 <나로 말할 것 같으면-Yes, I am>에는 ‘단색화 거장 박서보의 아내가 여든셋에 처음으로 출간한 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읽고 보면 그런 배경은 사족일 뿐이다.

BYBAZAAR2021.05.04
 

Yes, 

Sh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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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말할 것 같으면─Yes, I Am〉 표지에는 윤명숙의 흑백 포트레이트가 담겨 있다. 1965년 남편인 화가 박서보가 촬영한 사진이다. 장난기가 서려 있으면서도 강인하고, 무던하면서도 씩씩한 표정이 책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에세이집은 윤명숙의 일상과 기억을 차곡차곡 잘 포개놓은 저장고다. 고추장을 담그는 사소한 에피소드부터 6·25전쟁 때의 피난생활, 남편 박서보와의 ‘부부의 세계’, 가족과 주변 친구들과의 일화들이 담담하게 쌓여 있다. 포장하거나 지난날을 회상하며 한탄하거나 교훈을 주려는 의도 같은 것도 없다. 불편한 구석 하나 없이 술술 읽힌다. 대뜸 영어에 서툴다고 고백하거나 아트 부산 비엔날레에서 빌 비올라의 전시를 보곤 “미안해요, 빌 비올라. 내 몸속에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고 있어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첨단기술의 미디어 예술은 당최 친숙해지지 않네요.”라고 털어놓는 부분에서는 피식, 웃음이 비집고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 허를 푹 찌른다.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은 친구를 찾았지만 결국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아무렴. 너 살아 있지?” 친구에게, 윤명숙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건네는 안부인사 같은 이 질문은 에세이 전체를 관통한다. 그러니까, 책을 읽다 보면 살아 있다는 건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일상이고 어쩌면 의미심장한 상징이자 사건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엔 어쩐지 푹 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 대단한 일도 대수롭지 않게 풀어내고 군데군데 유머를 툭툭 섞는 특유의 문체 때문일 것이다. 화법 역시 글과 꼭 닮은 윤명숙과 마주앉아 물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이라는 문장의 끝을 맺는다면 어떤 서술어를 붙이겠습니까? 윤명숙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조근조근하게 대답했다. “음… 이 책에 있는 모든 챕터가 그 다음에 올 수 있을 것 같네요.”
 
 
매일 글을 쓰시나요? 
그러면 오죽 좋겠어요. 조금씩이라도 매일매일 쓰는 게 중요한데 방해를 많이 받아요.(웃음) 그래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글을 쓰려고 노력하죠. 그 다음에 노트북 앞에 앉아서 그동안 쌓아놓고 정리한 생각을 쏟아내는 거예요.
 
환갑 때부터 글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복잡하던 때에 심리 공부를 하는 따님이 문화센터의 단편소설 반을 등록해주어 시작하게 되셨다고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화가 많았어요. 딸에게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처럼 보였나 봐요. 마음속의 무언가를 글로 풀어내라 하더라고요. 그런데 해보니까 상당히 재미있어서 6~7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다녔고 나중에는 드라마 각본 쓰는 반, 영화 시나리오 배우는 곳에도 나갔어요. 시나리오 쓰는 강의에서 60대는 나밖에 없었어요. 대부분 20~30대였고 40대도 아주 드물었으니까. 그렇게 70살이 될 때까지 에너지 넘치게 살았는데, 남편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글 쓰는 일도 쉴 수밖에 없었죠. 지난 10년 가까이 글을 놓고 있다가 다시 시작하게 된 것도 딸 덕분이에요. 이제껏 해온 게 아깝기도 하고 뇌 운동을 좀 하라고 시니어 글쓰기 반과 드로잉 반을 추천해주더라고요. 거기서도 나름 열심히 한 편인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책이 나왔네요.
 
굉장히 솔직한 책이었어요. 어떤 독자는 “나이가 들어가며 더욱 챙겨야 할 것은 솔직함이다.”라는 감상을 남기기도 했더군요. 
에세이는 용감해야 해요. 마치 옷을 벗고 사람들 앞에 서는 기분이랄까. 물론 부끄럽지만 그걸 쑥스러워 하면 글이 안 써지고 마땅히 쓸 것도 없어요. 내 얘기를 쓰는 거니까, 아주 씩씩하게 벗어야 해요.(웃음)
 
2019년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때 따님이 직접 회고록을 쓰셨습니다. 책 속에 “엄마가 평생 걸려 완성한 작품은 아빠다. 아빠의 회고록은 엄마의 이야기니 힘을 내라”고 위로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그 다음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았어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믿고 살아온 것이 진짜 내 삶이었다는 확신이다.” 남편 회고록을 쓰기 위해서 딸이 내 일기장과 글쓰기 연습할 때 썼던 자서전 같은 것들을 샅샅이 찾아보는데, 뭔가 뒤집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까지 활자 속, 머릿속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둥둥 떠오른다고 해야 하나, 혼란스러웠어요. 엄마, 아내로서의 역할은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나 자신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질문에는 자꾸 의심이 들더라고요. 그 대답이 뚜렷하게 보이지를 않아서 아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진짜 내 삶’이라는 건 엄마 그리고 아내로서의 삶과 다른 의미일까요? 
지금은 확신이 있어요. 엄마 그리고 아내로 사는 것 또한 내 삶이라는, 그 영역을 굳이 구분 짓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확신.
 
사실 이 책은 존재 그 자체로 꿈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그림을 그리고 첫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이와 무관하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셈이니까요. 희망을 줬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출간 후에 메일로 독자평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걸 읽으면서 ‘아, 누군가에게 이 책이 위안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참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또 에세이집을 내라고 하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이니까 이렇게 겁 없이 무모하게 덤빈 거지, 이젠 남들 눈치를 볼 것 같거든요. 그렇게 되면 재미있는 글이 나오기 힘들죠. 다음에는 에세이 말고 소설을 써보고 싶기도 하고요.
 
2006년 발표한 단편소설 〈오렌지의 기억〉과는 좀 다른 이야기일까요? 
그건 한참 화가 나 있을 때 쓴 이야기라 아마 다르지 않을까요? 그때 분노도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불끈불끈 솟는 화를 글로 뽑아내면 되는구나….
 
그렇다면 지금 글을 쓰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글을 쓰면서 나도 많이 웃어요. 남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재미있으니까 쓰는 거예요.
 
책 속에 글과 함께 직접 그린 소묘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주로 “주위에 널려 있는 잡동사니 중에서 만만한 놈을 골라 그린다.”고 적었을 정도로 일상의 물건들이 대부분인데, 유독 존재감 없는 물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가 있나요? 
쉬려고요. 잡동사니를 대상으로 삼으면 머릿속은 비운 채로 그릴 수 있는데 뭐를 그려야 할까,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다른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를 계산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쉬는 게 아니잖아요.
 
그림을 그리는 게 휴식이라면 글을 쓰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글은 기억과 생각을 솔솔 풀어내는 거라 확연히 다르죠. 글을 쓰는 건 뇌 운동에 가까워요. 아마 글 쓸 때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그림 그릴 때는 다시 날 거예요.(웃음)
 
책 처음에 삽입된 박서보 선생님의 ‘축하의 손편지’도 인상적이었어요. 또박또박한 화가의 글씨도, “여보야”로 시작해서 “사랑합니다. 윤명숙! 그리고 축하합니다.”로 끝나는 내용도 무척 특별했어요. 
파리에서 몇 달 머물 때나 여행을 갈 때면 엽서를 종종 보내곤 했어요. 엽서에서는 늘 다정한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는 않았어요.(웃음) 다만 처음에 ‘여보야’ 이렇게 적었잖아요. 평소에는 ‘여보’ 소리를 안 해서 그 점에 좀 놀랐죠.
 
그럼 평소에 뭐라고 부르세요? 
남편은 나한테 ‘엄마야’ 라고 부르고 나는 ‘여보’라고 그래요. 알고 보면 여자가 더 대담한 면이 있잖아요. 나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보’라고 불렀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세요?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질 때요. 음… 사실은 ‘아무에게도’는 아니고 ‘남편에게’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죠.(웃음) 혼자서 차나 커피를 한 잔 들고 소파에 앉는 그 순간, 털썩 앉으면서 ‘아, 쉬는구나!’ 할 때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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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의령
  • 글/ 권민지(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이규원, 알마 제공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