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아이콘 제인 버킨 그리고 에르메스의 '버킨' 백 일화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패션 아이콘 제인 버킨 그리고 에르메스의 '버킨' 백 일화

제인 버킨의 이름을 딴 에르메스 ‘버킨’ 백이 빅토리아 앨버트(V&A) 뮤지엄에 전시된다. 여기, 그녀가 패션 아이콘으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BAZAAR BY BAZAAR 2021.02.14
 

HOLDING HER OWN 

 
이 세상에서 창의적인 사람으로 알려지는 건 멋진 일이죠.
1967년의 제인 버킨.

1967년의 제인 버킨.

제인 버킨의 독특하고 조금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프랑스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저는 그저 어수룩한 예쁜 소녀였어요. 이런 커리어를 갖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죠.” 대화를 하며 그녀는 회상에 잠긴 듯했다. 74살의 생일을 앞두고 버킨은 문학과 음악, 패션을 넘나드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해 8월, 그녀는 1957년부터 1982년까지 영어로 쓴 일기를 엮은 매혹적인 첫 책을 출간했다. 11월에는 자신이 모든 가사를 쓴 프랑스어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패션 월드에 많은 추종자들을 낳은 그녀의 지위는 최근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이하 V&A 뮤지엄)의 핸드백 전시에서 다시 확인됐다. 그녀의 이름을 딴 에르메스 백 ‘버킨’이 전시에 포함된 것이다.
 
1972년 딸 샤를로트와 함께.

1972년 딸 샤를로트와 함께.

스타일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는 버킨을 다소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했다. 1968년 파리로 이사한 후 그녀의 룩은 파리지엔과는 거리가 멀었다. 첼시에서 자란 그녀는 활기찬 런던 스타일을 고수했다. 그것은 짧은 기장, 기하학적인 패턴, 그리고 편안한 실루엣이 특징이었다. 런던의 다소 음탕한 스타일을 파리로 그대로 가져왔다고 버킨은 회상한다. “제가 입었던 것들은 당시 첼시의 소녀들이 즐겨 입는 것이었어요.” 버킨이 말한다.
파리지엔에게는 좋은 취향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죠. 티셔츠만 입고 킹스 로드를 걷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날씬하건 뚱뚱하건 전혀 문제될 게 없었죠. 다 자신만의 것이었고 그렇게 스타일을 만들어간 거예요. 시크한 파리지엔에겐 좀 웃겨 보였겠지만요!
 
제인 버킨의 이니셜 J.B가 각인된 버킨 백.

제인 버킨의 이니셜 J.B가 각인된 버킨 백.

버킨은 어디든 들고 다닌 바스켓 백을 특별히 좋아했다고 기억하는데, 그것은 훗날 그녀의 시그너처 액세서리가 된다. “웨스트엔드 마켓에서 산 포르투칼 제품이었어요. 전 거만한 듯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음. 나는 백 대신 바구니가 있지.’” 그가 웃으며 말한다. 어느 날 버킨은 당시 남자친구였던 세르주 갱스부르(에로틱한 무드로 가득했던 1969년 싱글 ‘Je T’aime, … Moi Non Plus’로 그녀와 협업했던 전설적인 프랑스 가수)와 여느 때처럼 바스켓 백을 들고 파리의 레스토랑 맥심을 찾았다. “직원들은 제가 그 백을 탈의실에 넣지 않는 이상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어요. 그때 세르주가 말했죠. ‘그럼 우린 그냥 나갈게요.’ 정말 재미있는 파트너였어요.”
 
1996년의 제인 버킨.

1996년의 제인 버킨.

버킨 백의 탄생 비화를 들여다보면 결국 그 바스켓 백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 버킨의 파트너였던 영화감독 자크 두아용은 그녀가 드는 바스켓 백에 불만을 표하고는 했다. “그는 장난스러운 걸 싫어했어요. 어느 날 차에서 가방을 악의적으로 엎어버렸죠. 내용물이 여기저기 쏟아졌어요.” 버킨이 말했다. 그 일이 일어난 직후 1984년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한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때 그에게 자신의 소지품(편지와 프레스 커팅, 아이들 사진을 넣어둔 다이어리도 있었다)들이 가방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그런데 옆자리 남성이 바로 당시 에르메스 회장이었던 장 루이 뒤마였고, 그는 그 자리에서 그녀의 불룩한 다이어리에 주머니를 달 것을 제안한 뒤 비행기 멀미 봉지에다 직접 그녀가 원하는 백(켈리 같은 백이지만 사이즈가 네 배는 큰)을 스케치하게 된다. “몇 주 뒤 에르메스 아틀리에에 갔는데, 그 백이 절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완성된 것이 버킨 백이다.
 
1977년 소호에서 세르주 갱스부르와 함께.

1977년 소호에서 세르주 갱스부르와 함께.

버킨의 이니셜이 장식되어 있고 심지어 직접 붙인 스티커들 자국들도 남아 있는 바로 그 백이 현재 V&A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다. 그녀는 그 후 버킨 백에 관련된 특별한 이야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를테면 인기가 많은 디자인의 경우 경매에서 최고가 30만 파운드까지 치솟았다는 뉴스나 런던 증시 FTSE 100 지수에서 금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둔 소식 같은 것들. 실제로 그녀의 딸 루 두아용이 1990년대 버킨 백의 인기에 대해 알려주기 전까지는 그랬다. “저는 인터넷에서 제 이름을 검색해보고 너무 놀랐어요. 인터넷에 맨 위에 자리 잡은 건 그 백이었어요!” 버킨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당시를 회상한다.
저는 만약 자크가 실제로 바스켓 백을 장난처럼 생각했다면 이 일에 대해 분명 비웃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패션업계에서 커다란 아이콘이 됐으니, 결국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 같아요.
 
편안한 배기팬츠, 스니커즈에 매치한 다양한 참 장식이 돋보이는 버킨 백.

편안한 배기팬츠, 스니커즈에 매치한 다양한 참 장식이 돋보이는 버킨 백.

70대의 버킨은 젊은 시절의 미니스커트에서 벗어나 통 넓은 바지, 오버사이즈 티셔츠, 남성용 코트, 편안한 신발과 같은 보다 실용적인 대안으로 갈아탄 지 오래지만 여전히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제가 무얼 입는지에 대해 쓴 많은 기사를 접한 사람들을 위해서 제 나이의 여성을 위한 무언가를 디자인해보고 싶어요. 아마도 캡슐 컬렉션 같은 것이 될까요?
그녀가 명상에 잠긴 듯 말한다. 가수, 모델, 배우, 작가, 그리고 뮤즈. 제인 버킨의 업적에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를 더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지금 웨이팅 리스트 대열에 껴볼까.
 
※ 전시 «Bags: Inside Out»은 V&A 뮤지엄에서 9월 12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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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서동범
    사진/ Getty Images,Shutterstock
    사진/ Courtesy of Les 3 Marches De Catherine B
    글/ Frances Hedges
    번역/ 이민경
    웹디자이너/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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