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젊은 예술가 김희천 김동희 노상호가 구현한 '다른 곳'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그룹전 '다른 곳'은 작금의 상황을 회피하는 도피처로서의 '어떤 곳'이 아니다.

BYBAZAAR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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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밀실’은 세계가 죽었다는 직감은 들지만 아직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지금의 현실과 닮아 있다.- 김희천
김희천, 〈‘다섯 명의 저택관리인’ 쓰기〉, 2020.

김희천, 〈‘다섯 명의 저택관리인’ 쓰기〉, 2020.

이번 〈‘다섯 명의 저택관리인’ 쓰기〉는 물론 전작 〈탱크〉에서도 ‘밀실’이 중요한 키워드였다. 코로나 이후 당신에게 ‘밀실’의 의미는 어떻게 확장됐는가? 
세계가 바뀌고 있고 여러 현상들이 여러 방면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 내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더라. 많은 사람들이 초조한 마음에서 무언가를 내뱉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사실은 그들 또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밀실 살인에 관한 작업을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밀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것은 맞다. 세계가 죽었다는 직감은 들지만 아직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랄까? 시체라도 발견했다면 죽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 텐데 아직 문을 열지도 못한 채 그저 밀실 안에서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작업은 미술작품이자 한 편의 영화라고들 한다. 심지어 이번 작품은 추리소설이 소재로 쓰인다. 당신의 작업에서 서사는 어떤 존재인가? 
내게 서사는 그저 관객을 앉혀놓는 하나의 장치다. 돌아보면 내 작품에는 서사가 있긴 한데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많다. 그걸 사람들이 따라가면서 빈 공간을 채워가는 식으로 관람한다. 사실 나는 이번 작업이 가장 서사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시작과 끝이 없게 만들고 싶었고, 촬영에서도 거의 디렉팅을 하지 않았다. 출연자에게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브이로그를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가상과 현실의 충돌 혹은 중첩은 당신 작품의 화두다. 이런 주제에 몰두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가상과 현실’,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거대 담론을 좋아하진 않는다. 지금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게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의미이고 나 또한 작가로서 그저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3D나 페이스 스왑 같은 AR기술을 다루는 데 있어서 본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페이스 스왑은 영상으로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3D의 경우, 쉽게 행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지만, 이미 게임 등 다른 매체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보여지고 있다. 때문에 이런 기술들이 내 작품의 스펙터클한 요소가 아니었으면 한다. 처음엔 대단하게 느껴졌지만 그 관심이 식어버린,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술을 가져다가 쓰고자 한다.
〈바벨〉의 연장선에서 질문하자면, 세상이 종말할 것이라고 믿는가? 
어쩌면 내가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 이유는, 종말에 대한 초조함을 잘 표현해서일 수도 있지만 작가로서 내가 아직 문을 완전히 연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상이 종말할까 봐 두려운 게 아니라 오히려 멸망하지 않고 이렇게 끝날 까봐 두려운 것 같다. 이 세계가 죽어야 새로운 시대가 열릴 텐데 그저 문 앞에만 서성이게 될까 봐, 나는 그게 걱정이다.
 

 
가구보다는 크고 건물보다는 작게, 가구처럼 혹은 건물처럼 만들어 어중간한 높이에서 오르내릴 수 있게. - 김동희
김동희, 〈시퀀스 타입: 3〉, 2020, 합판, 방수도장, 스테인리스 스틸, 인테리어 필름, 실리콘, 450x450x(h)220cm.

김동희, 〈시퀀스 타입: 3〉, 2020, 합판, 방수도장, 스테인리스 스틸, 인테리어 필름, 실리콘, 450x450x(h)220cm.

〈시퀀스 타입: 3〉는 전시장 내부에서 중정으로 나가 작품에 오르고 중정의 ‘하늘’을 보는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 
처음 전시를 제안받고 중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식에 들떴던 기억이 난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인체의 시야로는 중정의 천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각도 탓도 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무거운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시퀀스 타입: 3〉는 건물 외부에서 전시장 내부로, 다시 전시장 바깥의 중정을 지나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까지, 관람객의 동선에 실내와 실외를 교차시키고자 했다.
가구이자 건축물인 이번 작품은 서른두 조각으로 조립되어 다른 공간에서 재배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게 흥미롭다.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간단하다. 작업을 계획하고 제작비를 산출하는데 예산이 과도하게 초과됐다.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서 ‘이 작업은 전시 후에도 폐기하지 않고 다른 공간에서 더 여러 차례 전시할 수 있게 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작업은 대부분 도면과 소량의 기념품만 남기고 해체되거나 폐기되었다. 빈 공터에 마치 미술품처럼 보관해보기도, 여러 차례 장소를 옮겨 다니며 구조물의 모듈을 이동해보기도 했지만 장기적인 해법은 될 수 없었다. 전시장 시공법 혹은 간이 건축물을 짓는 방법으로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전에 제작하거나 보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공간을 탐구하는 작가로서 동시대의 서울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정의하나? 
서울은 한국의 특징을 응축하고 있는 도시다. 빽빽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틈이 많고 헐거우며 방치된 공간이 많지만 끼어들기는 어렵다. 초기 작업에선 서울이라는 도시를 십분 활용하기도 했는데, 점점 나의 시야가 좁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작품을 전시하고 싶은 ‘다른 곳’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나? 
예를 들어 시청각랩에서의 〈시퀀스 타입: 1〉,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시퀀스 타입: 2〉,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시퀀스 타입: 3〉 그리고 9월 중순에 오픈할 예정인 홀1에서의 〈시퀀스 타입: 4〉를 연결 짓는 것이다. 가구보다는 크고 건물보다는 작게, 가구처럼 혹은 건물처럼 만들어 어중간한 높이에서 오르내릴 수 있는 〈시퀀스 타입: 3〉와 다른 작업들이 한 공간에 있는 모여 있는 장면을 상상한다.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는 ‘이미지’다. - 노상호
노상호, 〈The Great Chapbook3?Elsewhere〉, 2020, 회화, 혼합재료, 가변크기.

노상호, 〈The Great Chapbook3?Elsewhere〉, 2020, 회화, 혼합재료, 가변크기.

인터넷, 잡지, 신문 등을 통해 수집한 이미지들로 매일 한 장 분량의 그림을 그린다.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렸나? 
쇼핑몰에서 본 남자 모델과 불타고 있는 차의 이미지를 합친 그림을 그렸다.
〈The Great Chapbook3-Elsewhere〉는 1천 개가 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하고 그렇게 모은 이미지가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이미지 수집에 있어서 어떤 철학을 갖고 있나? 
기준은 없다. 그때 그때 관심 있거나 멋지다고 생각하면 팔로한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날 피드에 떠 있는 이미지를 모으고 그것을 다시 프린트하면서 손에 집히거나 끌리는 이미지를 고른다. 그때 그때 즉물적으로 반응하여 그림을 골라내고 조합해낸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무채색 회화를 선보였다. 그 밖에도 롤러가 달린 작업대, 패치워크로 완성된 패브릭 작품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 
무채색의 회화를 시도한 건, ‘else’라는 단어가 가진 느낌을 그림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통 내 그림이 색이 많고 화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으로 색을 빼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돌아가는 작업대를 사용한 건 실제로 내가 좁은 공간에서 그렇게 작업하기 때문이다. 매일 정해진 양의 그림을 그리고 그것들의 합을 전시하기 때문에 나의 작업방식을 잘 보여주는 설치물이라고 생각한다. 패치워크는 매일 생산해낸 이미지를 SNS에 업로드하며 파편화시키고 이것들을 다시 한데 모아 전시하는 나의 작업 행위를 은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도하게 되었다.
당신의 작품에는 늘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담겨 있다. 당신에게 매혹적인 이야기란 어떤 것인가? 
내게 가장 매혹적인 내러티브는 ‘이미지’다.
코로나19 같은 작금의 상황이 앞으로 당신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는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드로잉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지금의 이미지들이 그림 안에 들어오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작에서는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재난의 이미지가 많이 그려졌다. 그것은 내 피드에 그런 이미지가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의 ‘다른 곳’은 어떤 모습인가? 
어떤 장소라기보다는 ‘상태’를 떠올리게 된다. 내 머릿속의 다른 곳은 ‘일이 없고 돈이 많고 시간이 넉넉한, 나’이다. 왜 그것이 ‘다른’ 곳이냐고 묻는다면, 슬프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웃음)
 
 
※«다른 곳» 전시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10월 2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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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손안나
  • 사진/ 김상태,ⓒ에르메스 재단 제공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