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갤러리 속 파도를 만든 에이스트릭트 만나다!

에이스트릭트(a’strict)가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창작한 공감각적 작품은 현대미술을 느끼는새로운 감수성의 역사를 쓸 채비를 마쳤다.

BYBAZAAR2020.10.03
 
국제갤러리 3관(K3) 에이스트릭트(a’strict) 개인전 〈a’strict〉 설치전경.

국제갤러리 3관(K3) 에이스트릭트(a’strict) 개인전 〈a’strict〉 설치전경.

 
거대한 블랙박스로 변신한 국제갤러리 3관에는 연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감염병 재확산으로 동시 관람객 수를 10명으로 제한해 관람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15분쯤 기다린 후 들어선 전시실은 멈칫할 정도로 깜깜했고 코너를 돌면서 ‘철썩!’ 생생한 파도소리가 가장 먼저 귓전을 강타했다. 이윽고 하얀 포말이 찬란한 푸른빛을 띠며 부서지는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장관이 펼쳐졌다. 비릿한 짠 내가 코를 스치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넋을 놓고 6m까지 치솟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샴페인 거품처럼 순수한 감탄이 솟구쳤다. 얼마 후 다시 전시장을 찾았을 때는 진짜 바다에 온 것처럼 해변을 따라 걷기도 하고 모래사장에 앉아 한참 시간을 보냈다. 블랙박스를 나올 때는 모든 것이 변해버린 세상에 적응해나갈 힘과 에너지를 얻은 기분이었다. 코로나 재난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거대한 해변을 되살린 작품 〈Starry Beach〉가 선사한 건 짜릿한 스펙터클만은 아니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코엑스 아티움 대형 LED 스크린에는 파도가 들이치는 역동적인 장면이 퍼블릭 인스톨레이션 작품으로 공개됐다. 〈Wave〉라는 명료한 제목의 이 작품은 CNN 등 해외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타고 서울의 새로운 상징물이 됐다. 착시 현상으로 입체감을 구현하는 표현 기법인 ‘아나몰픽 일루전’을 활용해 평면의 스크린을 거센 파도가 요동치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Wave〉는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감각적인 융·복합 콘텐츠를 기획 및 제작해온 ‘아트테크 팩토리’ 디스트릭트(d’strict)의 작품이다. 디스트릭트는 2011년 4D 체험 테마파크인 ‘라이브 파크’, 2014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SLS 호텔 GX 디자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라이브 파빌리온 등 특정 공간에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UX)을 디자인해온 독보적인 회사다. 국제갤러리에서 9월 27일까지 선보이는 〈Starry Beach〉는 디스트릭트 내 새로운 미디어 아티스트 유닛인 에이스트릭트의 첫 작품이다. 에이스트릭트라는 이름은 “디자인은 스스로 갈고 닦으며 엄격하게 하되(design+strictly),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de+strict), 예술과 디자인, 기술을 자유롭게 넘나들자”라는 디스트릭트의 철학을 바탕으로 특히 예술 영역에 집중한다는(art+strictly)의미가 있다. 〈Starry Beach〉를 공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는 “미디어 아티스트 브랜드로 에이스트릭트라는 작가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 말이 기술의 혁신으로 말미암아 발 빠르게 변하고 있는 현대미술 신을 상징하는 것처럼 들렸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부응하는 커머셜 작업을 해왔는데 그런 과정에서 동시대의 예술적 가치에 부합하는 결과물도 종종 나왔어요. 디스트릭트는 앞으로도 계속 커머셜 액티비티를 해나갈 건데 이 일의 치명적인 단점은 크리에이터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창의성을 원하는 대로 발현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작품 위에 클라이언트의 회사 로고를 걸어야 할 때도 있고요. 디스트릭트뿐 아니라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서는 언제나 느끼는 목마름일 텐데 에이스트릭트는 그런 갈증을 해소하려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에이스트릭트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되면 외부의 제약 없이 크리에이터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유감없이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거죠. 그래서 오늘 에이스트릭트라는 신진 작가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전시장에서의 에이스트릭트 .

전시장에서의 에이스트릭트 .

 
에이스트릭트는 운영방식 또한 전례 없는 스타일이다. 디스트릭트의 내부 직원부터 과거 디스트릭트를 거쳐간 유능한 크리에이터까지 특정 조직과 구성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오픈 유닛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Starry Beach〉의 경우 작품 제작 과정을 통솔한 이상진 부사장, 염윤정 XL 컨설팅 팀장, 영상 디자인을 책임진 한상훈·임호진 매니저 등 8인 정도가 직접 제작에만 4개월을 투자했고 〈Wave〉는 또 전혀 다른 이들이 관여했다. “회사 내에 기능과 잠재력을 가진 크리에이터들이 70명 정도 있고 회사를 거쳐 간 크리에이터 중에서도 작품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양양에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자유롭게 사는 전 직원도 언제든 에이스트릭트 유닛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거죠.” 오픈 유닛으로 운영되는 아티스트 브랜드라니, 독자 생존의 예술가는 물론 아티스트 컬렉티브에서도 더 나아가 개방성과 공유의 스피릿으로 유기체처럼 변화하고 진화하는 참신한 개념이 아닐 수 없다. 에이스트릭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 역시 기존 아티스트들과는 다르다. 〈Starry Beach〉와 〈Wave〉의 주제 선정에 관해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요즘과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현대인들이, 도시인들이 뭘 좋아할까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도시와 대척점에 있는 자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파도는 바다에 가지 못하면 접할 수 없는 거잖아요. 도심에서 파도를 느껴보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주관적인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대중에게 공감받으며 동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이 느껴지는 진솔한 대답이었다. “파인아트와 커머셜의 경계,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대해 무 자르듯 여기까지는 예술, 여기부터는 디자인, 이렇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예술작품 또한 사람들에게 감동 내지는 효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작가의 주관적인 철학이 표현된 작품만큼이나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직관적이고 강렬하게 감각을 사로잡는 작품이 감동과 위안을 선사한다면 그것 또한 현대미술에서 통용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창조하는 에이스트릭트는 디지털 기술로 자연을 ‘각색’함으로써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게 한다. “이 작품을 만들 때 파도, 물이 가진 속성과 풍부한 음향성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보통 파도를 앞에서만 보는데 정작 물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위에서 볼 때인 것 같아요. 이를 위해 물결을 연구했고 6각, 8각, 12각 패턴을 찾아냈습니다. 거기에 파도가 모래에 부딪히는 입자 같은 것도 디테일하게 표현하려고 했고요. 3D 맥스라는 기존 소프트웨어와 자체적으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자연적 환경을 유추하고 가상공간에서 물을 흘려보내 거센 파도와 약한 파도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파도소리를 녹음해 영상과 싱크로를 맞추기도 하는 식으로 작업했어요.” 고흐의 〈Starry Night〉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에이스트릭트의 〈Starry Beach〉는 깜깜한 밤바다의 오징어잡이 배처럼 눈부시게 반짝인다. “이 바다를 구현하기 위해 여러 해변을 레퍼런스로 참조했는데 몰디브의 로컬 섬 바두(Vadhoo)의 해변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Sea of Stars’라는 별명이 딱 들어맞는 파란빛의 발광 플랑크톤이 신비롭게 반짝이는 모습이었죠. 그런 황홀함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미디어 아트에 회의적이던 내게 에이스트릭트의 작품 세계는 기존의 예술이 실현할 수 없었던 시각적 임팩트, 사유의 몰입도, 무한을 향해 확장하는 개방성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이들은 기존 상업적 프로젝트를 할 때는 디스트릭트로, 상업적 활동의 각종 제약사항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 활동은 에이스트릭트의 이름으로, 정체성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 본격적인 시작으로 오는 9월 25일 제주에 국내 최대 규모의 몰입형 아트 전시장인 ‘아르테 뮤지엄(Arte Museum)’ 개관을 앞두고 있다. 스피커 공장이었던 1천 평이 넘는 공간에 ‘Eternal Nature’를 주제로 한 감각적인 미디어 아트 작품이 수놓인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그려낸 꽃, 가든, 폭포, 오로라, 선셋…. 육체적이고 본능적이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경험을 기대하며 미술관으로 갈 일만 남았다.
 
 
 
(안동선은 프리랜스 에디터이다. 2014년 1호부터 〈바자 아트〉를 만들었고 다양한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움의 정의를 좇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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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안동선
  • 사진 국제갤러리 김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