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지극히 르메르적인 대화

2014년부터 르메르를 이끌고 있는 두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르메르와 사라 린 트란.

BYBAZAAR2020.04.15

#Lemaire

INTERVIEW

2014년부터 르메르를 이끌고 있는 두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르메르와 사라 린 트란. 매 시즌 변화하는 트렌드를 넘어서 르메르라는 하나의 문화를 견고히 만들어가고 있는 두 사람을 2020 F/W 쇼가 막 끝난 주말 오후에 만났다. 패션만큼이나 궁금했던 두 디자이너의 말투, 생각 그리고 일상까지, 지극히 르메르적인 대화.

 
르메르는 디자이너의 삶이 곧 브랜드인 것 같다. 당신들도 스스로 르메르의 팬인가? 
크리스토프 르메르(이하 C): 글쎄. 우리가 르메르를 만들기 때문에 팬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하지만 우리의 작업을 믿긴 한다. 우리가 하는 일에 열정적이고 작업으로부터 행복을 느끼지만, 그것을 우상화하는 것은 좀 다른 개념 같다. 뭐라고 대답하기가 어렵다. 사라 린 트란(이하 S): 나는 그 누구의 팬도 아니다. 내가 우러러보는 사람들은 물론 무수히 많지만 말이다. 크리스토프가 말하는 대로 우리는 우리가,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매일 입고 싶어 할 옷을 만들 뿐이다.
어떻게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나?
C:우연히, 아주 우연히. 나와 사라 린, 둘 다 어렸을 때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든가 패션에 집념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물론 내가 사라 린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니 먼저 옷을 시작하긴 했다. 젊은 시절 패션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고 이런저런 일을 거쳐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제대로 된 ‘직업’이 필요하더라. 그때 마침 주변에서 나에게 패션 분야에서 일할 것을 제의했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사실 옷을 처음 만든 것은 패션계에서 일하기 이전인 1980년대 초였는데, 그때 어울려 놀던 친구들과 지극히 순수하면서도 즉흥적으로 옷 몇 벌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일을 하면서 굉장히 점진적으로 열정이 생겼고, 어느덧 나의 직업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옷에 대한 열정과는 별개로 패션계가 낯설다 보니 패션계의 시스템과는 늘 거리를 두고 있다. 사라 린, 당신은 어떤가?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당시 이미 패션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S: 나 또한 어렸을 때는 수많은 관심사가 있었고, 패션은 그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처음 패션 관련 일은 한 것은 크리스토프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였는데, 비공식적인 작업이었고 패션 ‘디자인’은 아니었다. 크리스토프의 개인 레이블과 또 라코스테의 작업에 영감이 될 만한 도상들을 찾고, 무드 보드 만드는 일을 도왔다. 비공식적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고, 공동 디자인까지 하게 되었다. 둘이 함께 작업할 때는 특히 영화 이미지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내가 처음에 맡은 역할은 아트 디렉팅에 가까웠지만 점점 우리 둘의 아이디어를 결합해 옷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나 역시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전에는 무엇을 하고 싶었나? 
S: 책 읽기와 글 쓰는 일을 좋아해서 출판 쪽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패션 브랜드를 시작하고 보니 글을 써야 하는 일도 은근히 많았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그렇게 조금씩 해소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당시, 당신 둘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었나? 혹시 당시 서로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C: 강렬한 순간이었다. 처음 사라 린을 만났을 때 그는 어렸지만 누구보다 강한 에너지를 풍겼고 그의 스타일이나 움직임, 모든 게 놀라웠다. 뮤즈라는 말로는 모자랄 것 같다. S: 어려운 질문이다. C: 나에게도 한 번도 말해준 적 없다. S: 크리스토프와의 만남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브랜드를 같이 시작한 것도 말이다. 브랜드를 함께 운영하는 것은 둘이서 하나의 창작물을 만드는 것인데 서로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 자연스러웠다. 사실 크리스토프와 나는 패션이 아닌 다른 일도 같이 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 우리의 공통 관심사가 옷이었던 것 같다. C: 삶에 대한 철학도 비슷했고 감성적인 부분도 서로 잘 통했다. 그뿐 아니라 미적 감각이라든가 문학, 그리고 영화 취향도 잘 맞았다. 어떤 면에서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부분도 비슷했다. 우리의 일상과 또 인생에서 문화라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문화라는 것은 박물관 안이 아니라 일상 도처에 있다는 점, 무엇보다 문화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 이런 관점을 공유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어떻게 입고, 먹을 것인가라는 인생의 모든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 말하자면 일상의 예술에 대한 믿음 내지는 신념 같은 게 서로 통했다.
르메르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들의 플레이리스트도, 당신들의 공간도, 당신들이 읽고 있는 책의 작가까지 다 궁금해하고 좋아할 것 같다. 당신들이 보여준 건 옷이 아니라 취향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음악적 취향, 음식 취향, 커피 취향 등등 사사로운 관심사에 대해 얘기해달라. 예컨대, 아침에 뭘 먹었나? 
C: 달걀프라이를 먹었다. 햄을 곁들여서. S: 나도 달걀프라이 먹었다.
텔레파시가 통했나?
C: 우리는 더 이상 사적으로 함께하진 않는다. 연인은 아니지만 여전히 좋은 작업 파트너다. S: 그래도 아침식사는 같은 것을 먹긴 했네. C: 삶의 퀄리티나 삶의 본질,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정말이지 문화적인 조언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브랜드는 이런 걸 잘한다, 이런 걸 해라, 저런 걸 해라, 여기를 가라, 쿨하려면 이런 것을 해라…. 우리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말하고 싶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필요한 옷을 만들 뿐이다. 물론 이 옷을 만드는 기반에는 여러 영감과 레퍼런스가 있다. 꾸준히 영감을 주는 레퍼런스가 있는가 하면 그때 그때의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기도 하다. 창작에는 이렇게 수많은 층위들이 뒤섞이기 때문에, 짧은 단어 몇 개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컬렉션은 여기서 영감받았고, 저 컬렉션은 저기서 영감받았다라는 식의 설명을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S: 컬렉션을 만들 당시에는 의식을 하지 못하다가, 완성을 한 후에서야 우리에게 영감을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기도 한다. 창작에는 무의식이 작용하지 않나. 그래서 확정적으로 말하는 게 어렵다. 그리고 때로는 이 옷은 이 천으로 만들 수 없다든가 하는 기술적이고 물리적인 현실에 따라 결과물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개인적으로 이런 현실적인 제약들로 인해 즉흥적으로 디자인이 바뀌는 것도 재밌다. 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아이디어나 디테일을 더하거나, 가봉 중에 새로운 요소가 보태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게 어우러져 한 컬렉션이 만들어진다.
그럼 이런 것들이 르메르만의 디자인 철학이라고 할 수 있나? 
C: 그렇다. 그 밖에도 우리는 협업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팀워크, 교류, 대화,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때 왜 동의하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 이 모든 유기적인 상호작용이 창작에 중요하다. 물론 브랜드의 견고한 골조, 아트 디렉션, 그리고 콘셉트의 일관성도 창작에 있어 중요하다. 말하자면 엄밀성과 규율을 기본으로 갖추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즉흥성이 어우러져야 한다. 우발적인 사고로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지는 것, 누군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 이런 예측 밖의 일을 받아들이고 규칙 없이 동화될 때 결과는 더 흥미로워지는 것 같다.  브랜드가 점점 커져갈수록 이런 자유로운 부분을 계속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르메르의 컬렉션 중에서 기억에 남는 옷들이 있나? 
C: 글쎄… 브랜드의 클래식이 된 피스들이 있긴 하다. 카프탄이나 드라이 실크로 만든 셔츠같이. S: 어떻게 보면 우리가 입고 우리 옷장에 가지고 있는 옷들이 아닐까. 우리는 입는 이와 함께 진화하는 옷들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지금 입고 있는 이 트렌치코트는 세 시즌 전 옷인데, 시즌마다 컬러도 달리하고 새로운 요소를 덧붙이긴 하지만 옷이 가진 큰 골조는 같다. 하나의 골조 위에 매 시즌 살을 덧붙이거나 변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디자이너가 되어서 가장 기뻤던 순간,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C: 새로운 컬렉션을 상상하는 단계는 항상 흥분된다. 어떤 이미지에서 영감을 떠올린다든가 서로가 가진 레퍼런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든가 컬렉션의 전체 콘셉트를 잡는 과정 말이다. 그 후 실질적인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면 진짜 도전이 시작된다. 이 과정은 길고, 늘 좋은 결과를 낸다는 보장이 없다. 상상했던 바를 구체화하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소재나 컬러 등을 결정하는 일부터 마지막 디테일을 정하는 일까지, 내가 생각했던 대로 실행되지 않는 것들이 꼭 있다. 컬렉션을 만드는 과정 내내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실망스럽고 복잡한 심정을 오간다. 그러다가 이 모든 것들이 옷이라는 결과물로 승화되고, 그리고 이 옷들을 입을 인물을 고르고, 어떻게 스타일링할지를 정하고, 패션쇼의 연출을 고민하는 캣워크 순간이 오면 또 다시 흥분이 들끓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10분이면 끝나버린다. 이 긴 과정과, 우리와 함께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찰나의 쇼는 늘 만족스러운 동시에 불만스럽기도 하다. S: 캣워크는 정말 중요한 순간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패션쇼를 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 우리는 ‘스펙터클’을 위한 옷을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보고 만져봐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는 그런 옷들이다. 하지만 패션쇼가 얼마나 우리를 더 전진하게 만들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욱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통로인지 직접 해보면서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패션쇼는 르메르를 구성하는 뼈대다.
언젠가 어느 인터뷰에서 르메르를 입는 사람들에 대해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사실 르메르 옷이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옷을 입은 사람이 잘 보이는 옷이다. 당신도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나? 
C: 자기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옷이란 입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옷이다.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옷. 우리는 입는 이를 가리거나 압도하는 옷이 아니라, 온전히 그 사람이 드러나게 해주는 옷을 만든다. 그러기 위해 좀 더 신중하게 컬러와 프린트를 다룬다. 실루엣이나 프린트를 더 튀게 만들 수도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옷을 입는 사람 본연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는 옷들이다.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마틴 라미레스의 작품을 담은 2020 F/W 컬렉션.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마틴 라미레스의 작품을 담은 2020 F/W 컬렉션.

그렇다면 이번 2020 F/W 컬렉션의 프린트들은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나? 
C: 이번 시즌의 프린트는 사라 린과 내가 굉장히 흥미를 가지고 있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중의 한 명인 마틴 라미레스(Martín Ramírez)의 작품이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자기 자신이 예술을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트의 시스템 밖에서 작업을 하는 이 사람들은 종종 사회의 테두리 밖에서 사는 방랑자이거나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생전에 예술가로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사후 그 사람 작업의 예술적 가치를 알아본 이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곤 한다. 1895년 멕시코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마틴 라미레스는 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자식을 남겨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캘리포니아에서 철도 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회사로부터 착취를 당하며 힘들게 살다가 결국에는 미쳐버리고 말았다. 철도가에서 반 미치광이인 채로 발견된 그는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었고, 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그리고 정신병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가 찾을 수 있는 재료, 예컨대 버려진 박스 같은 것에 그림을 그렸다. S: 마틴 라미레스는 물감이 없어 구두약을 침과 섞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담당 의사가 수채물감을 사주었다고 한다. 그는 196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편안하게 작업을 하진 못했다. C: 우린 그가 고향에 돌아갈 길을 잃고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는 현실에 미쳐버린 거라 생각한다. 얼마나 비극적인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중의 한 명으로 꼽히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열 정도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미국의 우표에도 사용되었는데, 미국 국적이 아닌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우표를 발행한 사례는 마틴 라미레스가 처음이라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의 작품 저작권을 그의 후손들이(아마 3대쯤 되지 않았을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세대가 지난 후이지만, 궁극적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셈이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었나? 당신들의 이런 감성과 취향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군가? 
C: 어려운 질문이다. 얼마 전 내가 20대 때 만든 이미지 보드를 다시 꺼내 보았다. 그때부터 이미 아시아를 비롯한 오리엔탈 문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더라.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중동의 복식, 인도의 전통의상,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의 전통 복식에 늘 많은 관심이 있었다. 특히 입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폭이 넓은 전통 의복에 강하게 끌렸다. 심플하면서도 아름답다는 점 역시 인상 깊었다. S: 나도 어려서부터 정말 많은 스타일을 시도했다. 르메르와는 완전히 상반된 그런 스타일도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스타일적인 실험을 관통했던 요소가 있었는데, 품이 큰 옷이었다. 이 큰 사이즈의 옷에 대한 애착은 아마도 어렸을 때 본 찰리 채플린의 영화 〈시티 라이트(City Lights, 1931)〉 속에서 자기 몸에 비해 너무 큰 옷을 입고 있었던 거지 소녀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작은 체구를 가졌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모든 옷이 너무 컸다. 자기 몸의 두 배만 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영화 속 소녀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큰 옷은 나의 신체적인 단점을 미적인 것으로 승화시켜주었다. 큰 옷이 가진 고유한 비율도 좋았지만 그 옷이 만들어내는 애티튜드, 움직임, 자유스러움에도 매력을 느꼈다. 덧붙여 얘기하자면 우리는 옷을 만들 때 영화의 여주인공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강한 여성 캐릭터를 무수히 배출해낸 70년대 영화는 우리의 창작에 지속적으로 영감을 준다. 캐릭터뿐 아니라 인물들의 스타일, 필름의 색감까지 모두 다.
르메르의 옷은 누가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옷의 모양 같은 것이 한국의 한복과 닮기도 했다. 그건 디자인적인 면도 그렇고, 철학도 그렇다. 그래서 르메르가 유난히 낯설지가 않다. 
C: 동양의 철학과 문화에는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놓고 보여주려는 감성이 아닌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감성도 마음에 든다. 이렇다라고 직접 말해주는 것보다 슬며시 드러나게 하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나. 에로티즘이란 바로 이렇게 넌지시 암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국 문화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 같다.(웃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동양의 사고방식이 우리와 더 잘 맞는다.
당신들은 감성적인 사람인가, 이성적인 사람인가?
C: 둘 다! 우리는 좌뇌와 우뇌의 균형이 꽤 좋은 편이다. 우리의 일에 있어 이보다 큰 장점은 없을 것 같다. 심미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예민한 감성은 불가결하지만 브랜드를 운영한다는 것은 매우 이성적이고 조직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곳인지 파악하는 것, 예컨대 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력을 가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내가 창작을 하는 사회적 경제적 문맥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일을 수행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감성적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주로 업무는 몇 시에 마치나? 워라밸 같은 것도 지키나? 
C: 사라 린과 나는 굉장히 온 앤 오프다. 일을 열심히 하지만 일을 끝내고 나면 모든 것을 잊고 인생에 집중한다. S: 우리는 광적으로 돌아가는 패션 시스템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C: 나는 전혀 워커홀릭이 아니다. 사라 린도 나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너무 좋아한다. 개를 돌보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인생을 느리게 즐기는 시간 말이다. S: 요리를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는 것도 좋아한다. C: 현대사회는 항상 일하거나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게 하지 않나. 더 많이, 더 빠르게 무언가를 해야 하고, 이로 인해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르메르는 이런 것들에 반대한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패션쇼 준비할 때도 아마 그 전날이나 그전 며칠은 좀 늦게까지 할 수 있겠지만, 그 기간이 아니면 일찍 집에 가는 편이다. S: 오늘 최대한 열심히 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너무 피곤하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차라리 일을 끊고 다른 생각을 하며 머리도, 육체도 쉬는 것이 좋다.
당신들은 어렸을 적 어떤 브랜드의 옷을 주로 입었나? 
C: 나는 뉴웨이브에 푹 빠져 있었다. 닥터 마틴을 신었고, 빈티지나 60년대 스타일의 신발을 유난히 좋아했다. S: 나는 H&M 세대다. 내가 10대 때 처음 H&M이 프랑스에 들어왔다. 당시 H&M은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엄마가 백화점에서 사주던 고리타분한 옷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친구들과 H&M 매장을 누볐다. 새로운 컬렉션이 매주 들어왔고, 언제나 다른 스타일의 옷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러다 18세가 되었을 즈음부터는 빈티지에 빠졌다.
옷장 속에 르메르 말고 다른 브랜드의 옷도 있나?
S: 우리가 만든 옷이 대부분이다. 다른 브랜드는 없고 빈티지가 좀 있다. C: 리바이스와 빈티지.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나? 
C: 중국, 그리고 몽골이 떠오른다. S: 그때 우린 시베리아 횡단기차를 탔다. 이 기차는 중국 칸과 러시아 칸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중국 칸은 안락한 목재 인테리어였고, 러시아 칸은 메탈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중국 칸에 타게 되었다. C: 러시아 칸에는 샤워 시설도 없었고, 중국 칸에는 약소하긴 하지만 공용 샤워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부자들을 위한 럭셔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베리아 횡단기차가 있기는 하지만 무슨 로망으로 그걸 타나. 어쨌든 모험이었다. 식당 칸의 러시아 요리사는 아침부터 보드카에 만취해 있기 일쑤였고…. 그리고 울란바토르에 도착하기 전 몽골 국경에 다다랐을 때 러시아 식당칸은 몽골 식당칸으로 바뀌었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실내는 몽골식으로 장식되어 있고, 음식도 따뜻한 국물과 만두 등 정말 그전과 비하면 진수성찬이 올라왔다. 마치 칭기즈 칸의 세계에 들어온 듯했다. 그리고는 울란바토르 근교에 사는 몽골인-독일인 커플의 유르트에서 지내면서 초원에서 말도 타고. 다시 생각해봐도 환상적이었다. 그 다음엔 베이징에 갔고. 베이징에서는 음악을 하는 친구가 도시 곳곳의 특별하고 쿨한 장소에 데려가 줬다. 중국은 무엇보다 먹거리가 인상적이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나? 
C: 마틴 라미레스, 마르셀 뒤샹. S: 너무 많다. C: 루소도 빼놓을 수 없다.
사라 린에게 진짜 묻고 싶은 게 있다. 그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유지하나?
S: 모두들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 머리를 확 밀어 버릴까 보다.(웃음) 사실 중성 샴푸로 감고 머리를 빗고 자연바람에 말리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뷰티 팁을 묻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늘 쉽진 않을 것 같다. 헌데 르메르의 옷을 메이크업에 종종 비교하곤 하는 당신의 화장대가 궁금하긴 하다. 
S: 맞다. 르메르의 옷과 메이크업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다. 우선 옷의 컬러를 선정할 때 사람들의 피부색을 많이 고려한다. 모델의 혈색과 피부톤을 보완해주고 더 빛나게 해줄 컬러를 찾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마치 풀 보디 컨실러처럼. 개인적으로 메이크업을 할 때 파우더 제품보다는 밤 타입 파운데이션과 색조 제품을 주로 쓴다. 수분이 많은 밤 타입 화장품은 내가 가진 피부 본연의 텍스처와 혈색을 감추기보다는 그것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런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이 우리의 옷에서도 느껴졌으면 한다.  
라코스테, 에르메스에서 일했고, 또 지금은 유니클로와도 일한다. 당신의 패션에는 하이와 로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가 있는 것 같다. 하이패션에서 일할 때와 유니클로와 일할 때 당신은 어떤 차이를 느끼나?
C: 럭셔리 브랜드와 대량 판매 브랜드는 가격대의 차이만큼이나 작업의 배경 또한 전혀 다르다. 유니클로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기본적이고 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위주로 한다. 반대로 에르메스는 최고의 자재, 최고의 착용감과 같은 가장 숭고한 의미의 럭셔리를 추구한다. 그러나 두 브랜드 모두 세월을 타지 않고 우리의 삶에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옷을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르메르도 이와 마찬가지다. 결국 르메르, 에르메스, 유니클로는 장르는 다르지만 비슷한 철학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겠다.
르메르에게 셀럽이란 어떤 의미인가?
C: 셀럽을 앞세우는 쇼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를 흥분하게 하는 것은 탁월함, 재능, 독창성 등을 갖춘 인물들이다. 그들이 대중에게 얼마나 알려져 있는가는 개의치 않는다. 몇 해 전부터 영화계 인물이나 뮤지션과 같이 우리가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고, 캣워크에 초청하거나 무대에 직접 등장시키도 한다. 이번에는 카세 료, 나탈리아 아세베도, 이실드 르 베스코가 르메르 쇼에 서주었다. SNS에 더 많이 노출되기 위한 셀럽을 찾는 일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고 궁금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한다.
요즘은 세상이 너무 소란스럽다. SNS부터 뉴스, 인터넷 모든 게 정신없이 돌아간다. 이런 세상에서 르메르는 디지털 세대와 어떻게 소통하는가? 
S: 르메르의 인스타그램이나 매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요즘 들어 르메르 고객층이 젊어진 것 같다. 원래 20~30대는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훨씬 더 많아졌다. 하지만 특별히 젊은 디지털 세대를 매료시키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플랜을 짜지는 않는다. 현재는 우리가 어떤 브랜드인지 어떻게 옷과 제품을 만드는지를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이러한 콘텐츠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은 특정 나이 대나 특정 국적, 특정 직업군에 국한되지 않는다. C: 우리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와 협업하는 아티스트, 장인, 우리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한 것들이지, 우리의 셀피나 우리가 어느 음식점 가서 무엇을 먹고, 바캉스는 어디로 가고, 어느 호텔에서 머무르는지와 같은 것을 나누고 싶지는 않다.
만약 패션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뭐가 되었을 것 같나? 
C: 음반이 잘 안 팔리는 뮤지션 ! S: 잘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니 그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쭉 디자이너로 살아갈 것인가? 아님 또 다른 삶을 꿈꾸나? 
C: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고 행복하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S: 패션이란 수많은 예술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매개체인 것 같다. 음악을 큐레이션하고, 패션쇼를 기획하고, 영상 작업을 할 수도 있고…. C: 새로운 부티크를 연다면 건축을 할 수도 있고! S: 매우 다양한 창작 분야를 수렴할 수 있는 열려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앞으로 패션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할 거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직업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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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민정(프리랜서)
  • 인터뷰/ 이승연(파리 통신원)
  • 사진/ Imaxtree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