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역세권, 남성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지금 사랑하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서울의 다양한 동네에 사는 이들이 자신의 터전에 한번 와보라 손짓한다.


동래정씨임당공파묘역.

동래정씨임당공파묘역.

“사람이 너무 많지만 좋은 동네야. 맛있는 것도 많고….” 남성역에 와본 적 있는 나의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남성역에 대해 갖는 인상이다. 남성역이 어디인가부터 설명해야겠다.(수도권 거주자라면 모두 사당과 이수는 알 것이라 생각하고.) 위치로 설명하자면 이수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나오는, 숭실대까지 못 가서 나오는 동네이고, 행정구역으로 설명하자면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이다. 대충 이수와 사당 가까운 어딘가의 동네라고 보면 된다. 내가 이 동네에 와서 처음 느낀 인상은 앞서 인용한 이들의 말과 다를 것 없이 와, 사람이 정말 많고 집도 많다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역세권 거주지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니까. 하지만 조금만 걸어 다녀본다면 이 동네의 이상한 점을 모두가 조금씩 느끼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곳곳에 숨어 있는 역세권 동네답지 않은 “근교스러움”이 이 동네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자, 남성역에 내려 출구로 막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이 글을 따라 함께 남성역을 둘러보는 것이다. 유동인구가 제일 많은 1번 출구로 나가본다. 내리자마자 시장이 펼쳐지고, 시장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붉은 벽돌 주택들 사이로 신축 빌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정말 빌라가 많다. 이 동네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많이 살길래 주택을 철거하고 같은 부지에 인간을 꾸역꾸역 더 밀어넣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좀 더 걸어본다.
5분쯤 걸었을까. 이상한 오르막이 나오고 등산객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기쯤에서부터 보통의 역세권과는 다른 분위기가 풍길 것이다. 남성역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사람이 아주 많이 사는 그런 동네. 이 두 개의 조건을 전제로 존재하는 이상한 장소들을 하나하나 찾아볼 수 있다.
정직하게 직진하다 보면 오른편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보인다. 웬 게임 같은 나무지? 마음을 빼앗겨 방향을 틀어본다. 산으로 통하는 길이 많구나. 계단. 웬 뜬금없는 계단이지? 저 계단을 타면 어디로 이어지는 걸까. 산? 여기서 가까운 산이면 관악산인가? 고양이 몇 마리가 계단에 앉아 낮잠을 자고 있다.

사당로 16마길.

사당로 16마길.

산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산책로도 있다. 역시 사람이 많이 살기 때문에 이런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가 길 따라 걷긴 하려나,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길을 따라 내려오는 사람을 발견했다. 저 사람은 산책을 한 걸까, 길을 잃은 걸까, 등산객인 걸까. 슥 올려다보니 벤치도 있고 나름 산책로의 면모를 갖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많은 집을 보았으니 자연을 보는 것도 괜찮지 싶어 계단을 따라 올라가 걸어본다. 금연공원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주욱 걷다보니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수미상관이다. 금연공원이라는 표지판이 또 있다. 나무가 많으니 금연 중요하겠지. 이걸 공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원의 정의란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금연공원이라는 이름의 산책로에서 내려와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크게 걷는다. 이런 곳에 식당이 다 있다. 남양주에나 있을 법한 넓은 흙바닥 주차장을 가진 식당이다. ‘연회석 완비’라 쓰인 간판을 따라 구불구불 늘어진 덩굴 풀. 부모님 차를 타고 한참 가다 “여기가 그렇게 맛있대.” 하는 덧붙임과 함께 끌려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휴대폰을 열어 지도 앱을 켠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하고 보니 여전히 남성역과 가까운 어딘가를 빙빙 돌고 있었다. 그래도 역에서 너무 멀어졌나 싶어 역 출구 쪽을 향해 내려가본다. 지도 앱을 보며 큰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발견한 커다란 평지. 그리고 대문과 덕지덕지 붙은 안내판. 동래정씨임당공파묘역이라는 이름의 유형문화재라고 한다. 이렇게 사람과 집이 많은 동네에서 아주 큰 면적을 차지하며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 이 문화재를 보러 남성역에 오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동네 주민들의 약속 장소일까. 같은 동네 주민끼리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앱에서 “동래정씨임당공파묘역 앞에서 봬요.” 하는 정도의 랜드마크로 자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걸어 내려오다 보니 발견한 2번 출구. 가장 멀리 간 곳에서 출구까지 15분 걸렸을까. 역이 나오니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지금껏 걸었던 곳은 분명 서울이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앞서 “근교스러움”이라 말했지만 이 단어 하나만으로 얼버무려 설명할 수 없는 동네일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라는 데에서 기인한 애착을 제외하고서라도 묘하게 이상한 역세권 동네인 것은 사실이니까.
서울에 산다는 것, 더 나아가 서울 지하철 역세권에 산다는 것. 보통은 쌩쌩 지나다니는 많은 차들과 신축 오피스텔과 빌라, 프랜차이즈 음식점들 한가운데에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남성역은 역세권이래도 그와는 조금 다른 동네이다. 앞뒤로 한 역씩만 더 가도 분위기가 이보다 더 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찬가지로 서울이다. 어디든 같지만 다른, 사람 사는 서울.
글/ 유연주(그래픽 디자이너)
지금 사랑하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서울의 다양한 동네에 사는 이들이 자신의 터전에 한번 와보라 손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