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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역세권, 남성
지금 사랑하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서울의 다양한 동네에 사는 이들이 자신의 터전에 한번 와보라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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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정씨임당공파묘역.
자, 남성역에 내려 출구로 막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이 글을 따라 함께 남성역을 둘러보는 것이다. 유동인구가 제일 많은 1번 출구로 나가본다. 내리자마자 시장이 펼쳐지고, 시장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붉은 벽돌 주택들 사이로 신축 빌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정말 빌라가 많다. 이 동네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많이 살길래 주택을 철거하고 같은 부지에 인간을 꾸역꾸역 더 밀어넣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좀 더 걸어본다.
5분쯤 걸었을까. 이상한 오르막이 나오고 등산객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기쯤에서부터 보통의 역세권과는 다른 분위기가 풍길 것이다. 남성역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사람이 아주 많이 사는 그런 동네. 이 두 개의 조건을 전제로 존재하는 이상한 장소들을 하나하나 찾아볼 수 있다.
정직하게 직진하다 보면 오른편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보인다. 웬 게임 같은 나무지? 마음을 빼앗겨 방향을 틀어본다. 산으로 통하는 길이 많구나. 계단. 웬 뜬금없는 계단이지? 저 계단을 타면 어디로 이어지는 걸까. 산? 여기서 가까운 산이면 관악산인가? 고양이 몇 마리가 계단에 앉아 낮잠을 자고 있다.

사당로 16마길.
금연공원이라는 이름의 산책로에서 내려와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크게 걷는다. 이런 곳에 식당이 다 있다. 남양주에나 있을 법한 넓은 흙바닥 주차장을 가진 식당이다. ‘연회석 완비’라 쓰인 간판을 따라 구불구불 늘어진 덩굴 풀. 부모님 차를 타고 한참 가다 “여기가 그렇게 맛있대.” 하는 덧붙임과 함께 끌려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휴대폰을 열어 지도 앱을 켠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하고 보니 여전히 남성역과 가까운 어딘가를 빙빙 돌고 있었다. 그래도 역에서 너무 멀어졌나 싶어 역 출구 쪽을 향해 내려가본다. 지도 앱을 보며 큰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발견한 커다란 평지. 그리고 대문과 덕지덕지 붙은 안내판. 동래정씨임당공파묘역이라는 이름의 유형문화재라고 한다. 이렇게 사람과 집이 많은 동네에서 아주 큰 면적을 차지하며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 이 문화재를 보러 남성역에 오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동네 주민들의 약속 장소일까. 같은 동네 주민끼리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앱에서 “동래정씨임당공파묘역 앞에서 봬요.” 하는 정도의 랜드마크로 자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걸어 내려오다 보니 발견한 2번 출구. 가장 멀리 간 곳에서 출구까지 15분 걸렸을까. 역이 나오니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지금껏 걸었던 곳은 분명 서울이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앞서 “근교스러움”이라 말했지만 이 단어 하나만으로 얼버무려 설명할 수 없는 동네일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라는 데에서 기인한 애착을 제외하고서라도 묘하게 이상한 역세권 동네인 것은 사실이니까.
서울에 산다는 것, 더 나아가 서울 지하철 역세권에 산다는 것. 보통은 쌩쌩 지나다니는 많은 차들과 신축 오피스텔과 빌라, 프랜차이즈 음식점들 한가운데에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남성역은 역세권이래도 그와는 조금 다른 동네이다. 앞뒤로 한 역씩만 더 가도 분위기가 이보다 더 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찬가지로 서울이다. 어디든 같지만 다른, 사람 사는 서울.
글/ 유연주(그래픽 디자이너)
Credit
- 에디터/ 박의령
- 사진/ 이강혁
-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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