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삶〉, 2019.
초청장으로 작게 본 그림을 전시장에서 직접 봤을 때 멈칫했다. 꽃과 나비들 사이에 벌레가 있고, 표면은 벗겨진 페인트칠처럼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꽃은 피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선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꽃이 핀 모습은 나비가 날아와 수정을 하길 바라며 성기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성기라고 인식했을 때에 오는 충돌, 약간 동물적인 냄새를 만들고 싶었다. 일부러 생간을 염두에 두었다. 피와 생간. 그 색을 만들기 위해 장미를 칠할 때 검정을 많이 발랐다. 밝은색을 칠해서 중첩시키니 멍든 것 같은 느낌이 생겼다.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끌림’이다. 곤충이 꽃에 이끌리는 현상, 이산가족이 손을 부여잡고 당기는 피의 요동처럼 근원적인 끌림에 대해 다룬다. 만유인력의 법칙, 우주에서 두 물체가 있으면 붙는다고 하는 것. 그게 섭리인데 왜 붙는지 궁금하지 않나? 가족, 핏줄이 당긴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내 몸에서 나온 걸 보호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본능적으로 뭘 먹고 취하는 것은 살려고 하는 몸부림이다. 그게 끌림이다. 왜 인간은 꽃을 좋아하지? 장미한테 이끌리는 내 모습에서부터 의문점을 갖기 시작했다. 우주가 돌아가는 사이클은 이런 사소한 당김으로 이루어져 있구나. 그게 지구 안에 있는 모든 미물들한테도 내재되어 있다고 여기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구도는 동양화의 그것이고, 색채와 질감은 마치 서양의 오래된 벽화 같다. 전통과 현재, 동양과 서양을 잇는 고유한 정체성을 추구하고자 한 이유가 있나? 세계 미술의 경향이 서구 중심적이다. 아프리카, 그리스 미술 모두 훌륭하다. 하물며 조선의 미술은? 세계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니크함이 있더라. 내가 이걸 누락시키고 가는 게 맞는가 생각했다.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지금을 살아가면서 동양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잇는 방법을 갈구하는 건 놀랄 일도 아니다. 인도나 이집트, 페르시아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미있는 부분이 있으면 흡수할 것이다. 새로운 화면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휘발되는 예술이 번져가는 신에서 드로잉을 확장시키려는 행보는 반갑다. 모든 예술은 사회 혹은 자기가 속한 토대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시대는 기법이나 정서를 외부에서 얼마든지 수혈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데 고유의 스타일, 저 밑에서부터 뽑아 올려 화가의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진 형식은 다른 것 같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예술에 근거가 없을 때 공허함이 따라온다. 토대에는 이 사회의 모든 시대정신과 정서가 들어 있다. 앞으로도 토대를 바탕으로 내 의지를 담은 방법론을 찾을 것이다.
※ 문성식 개인전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Beautiful. Strange. Dirty.)»은 12월 31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