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인 이랑의 첫 번째 이야기책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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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예술인 이랑의 첫 번째 이야기책

영화감독이자 뮤지션이자 만화가인 종합예술인 이랑이 첫 번째 이야기책 <오리 이름 정하기>를 냈다. 이랑에게 이번 소설집은 이야기 생산자로서 당연한 수순임과동시에 여성 예술가로서 끈질기고 절실하게 찾아낸 돌파구다.

BAZAAR BY BAZAAR 2019.12.15
 
음악가로, 만화가로, 영상감독으로 여러 방면에서 다재다능하게 자기 이야기를 해왔다. 첫 소설집 <오리 이름 정하기>를 보고 이번엔 왜 꼭 활자여야 했는지 궁금했다. 
보통은 나를 뮤지션으로 아는 분들이 더 많지만 사실 내 하루 일과는 그냥 앉아서 하루 종일 글을 쓰는 게 전부거든. 음악도 그렇고 시나리오도 그렇고 뭘 만들든 일단 글이 베이스니까 나한테 딱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이번 책에도 그런 이야기를 담은 단편이 있는데, 실제로 영화 판이나 영상업계는 죄다 남자 판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 많이 일어난다. 내가 그걸 보고 가만히 있는 성격은 아니거든. 계속 문제 제기를 하다 보니 기회가 안 온다. 나는 현장 일을 제일 좋아하는데 윗선에 있는 남자들은 나처럼 떠드는 여자 감독한테 일을 주고 싶어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고. 그런 상황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그걸 보고 출판사 편집자님이 “그 사람들이 앞길을 막으면 옆길로 가자, 책을 만들고 판권을 팔고 그걸로 영화를 만들자”라고 제안을 해주셨다. 나도 일을 못 해서 하도 답답했던 차에 그래, 글을 써보자, 하고 시작했다.
방금 말한 단편이 여자 감독이 제작사들과 미팅하면서 겪는 일을 그린 ‘섹스와 코미디’다. 현실과 얼마나 닮았다고 보면 될까? 
오히려 실제보다 미화했다고 보면 된다. 내가 영화과를 나왔는데, 우리 과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알고 싶다>의 팬이었다. 그게 우리가 지어내는 이야기보다 임팩트가 있으니까. 그런 것처럼, 나도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주워서 글을 쓴 건데 편집자의 반응은 “이게 말이 되느냐,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이렇게 몰상식할 수가 있느냐”였다. 그러면 나는 순화한 거라고 또 설명하고.(웃음)
이번 책 안에도 소설, 시나리오, 극본 등 다양한 형식으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업할 때부터 이야기와 형식이 동시에 떠오르는 건가? 
아니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이야기 주머니에서 글감을 채택하는 건가? 그때그때 다른 것 같다. 어느 땐 이건 나중에 만화로 그려야지 싶은 것도 있고, 이건 영상에 어울리는 아이디어라고 적어 놓기도 한다. 오늘은 단편을 써야 해, 목표를 정하면 메모를 토대로 어떻게 해서든 그걸 단편으로 끌어내기도 하고. 어찌 됐든 작업하는 과정을 더듬어보면 일단 그 처음에 메모가 있다. 어느 땐 한 주제로 노래를 쓰고 소설을 쓰고 에세이를 쓰고 만화를 그리기도 한다.
 
메모는 어떤 형태인가? 
대사일 때도 있고 장면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신이 있는데 사람들이 하도 기도를 하니까 그게 너무 시끄러운 거다. 그래서 음소거 버튼을 눌러 놓고 놀고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그럼 그게 내 노래 중에서 ‘왜 알아요’라는 곡이 되기도 하고 이번 단편 중 <오리 이름 정하기>라는 소설이 되기도 하는 거다. 어찌 보면 내가 이렇게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메모 습관 덕분인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자기 글을 쓰고 싶어하더라. 그러나 용기를 내서 어찌 저찌 시도는 하더라도 끝까지 완성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단 나는 완성도에 욕심이 없다. 내 주변에도 좋은 작품을 내고 싶어서 죽어도 완성을 안 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내가 살면서 깨달은 바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내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는 거다. 내가 이걸 위해 백번 천번 고민했는지, 한 번 고민했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나온 결과물을 보고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관심 없거나 이 세 가지다. 그리고 그건 모두 그 사람들의 자유다. 내가 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길 바라서 예술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어떤 과정을 거쳤으면 이건 여기서 끝, 그리고 바로바로 다음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청소년 워크숍을 했는데 그 친구들이 느끼는 고민도 비슷하더라. 요즘 청소년들은 우리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알고 보고 듣는 것도 많다. 그러나 막상 자기가 창작을 해보면 결과물은 미숙하거든. 그 사실을 자기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고. 그걸 세상에 완성작이라고 내놓는 걸 못 견디더라. 그런데 그건 본인한테나 못 참을 일이지 다른 사람들에겐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 친구들이 두려워하는 또 한 가지는 내 작품으로 누가 상처받는 것이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사과를 잘 하면 된다고. 언제든 내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면 될 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거기서 왜들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아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길 바라서 예술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럼 이랑이 예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냥 일이 있으니까 하는 것뿐이다. 일단은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크고, 그 먹고살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일이 이야기를 짓는 일이다.
그래서 본인을 ‘예술 자영업자’라고 표현하는 건가? 
만약 내가 뭘 써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오면 다른 일을 해야지. 아무도 일을 안 주는데 “난 이걸 해야 돼, 이걸 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이러면서 주변을 초토화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동료 예술가가 어떻게 밑으로 내려가느냐고 하더라. 그게 왜 밑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에 권력관계를 그리고 늘 누구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하고 사는 것만큼 괴로운 게 어디 있을까. 영원히 내 위엔 누가 있을 텐데? 이 세상엔 다양한 직업이 있고 모두가 동등하다고 생각하면 작품을 쓸 때도 별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는 많이 하더라. 너는 무서워하지 않는 예술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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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위즈덤하우스,ⓒ이랑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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