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도시가 있나? 동유럽에서는 베를린, 비엔나가 좋았다. 그 외에는 런던도 좋고 파리도 좋아한다. 워낙 도시를 좋아하는 편이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통해 이제는 여행지에서의 노하우가 많이 쌓였을 것 같다.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 반복하는 루틴이 있나? 혼자 갈 때는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시간도 넉넉하게 잡아서 조급하지 않게 둘러보는 걸 좋아한다. 나만 해도 이제는 여행지에서 젊은 친구들이 많은 곳에 잘 가지 않는다.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젊은 친구들이 가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은 도시이지만, 힙한 곳보다는 역사적인 장소나 오래된 곳을 찾게 되더라. <꽃보다 할배>의 선생님들도 역사적인 이야기가 있는 장소들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쪽으로 여행 계획을 짰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서 5년 전에 처음 이 시리즈가 시작되었을 때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이서진의 모습이 청년 같더라.(웃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선생님들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진 것 같다. 선생님들 중에서 빨리 가고 싶어하는 분도 있고 몸이 불편해서 처지는 분도 있는데, 옛날에 나는 전자였던 것 같다. 바삐 돌아다녀야 하고, 마음이 좀 급했다. 이제는 사람마다 속도가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선생님들이 그런 점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았음 좋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 ‘내가 폐를 끼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은 절대 안 하셨으면 좋겠다. 느리면 느린 대로, 자신만의 즐거운 여행을 하셨으면 좋겠는 거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도 앞서 걷지 않고 뒤에서 느릿느릿 따라가보기도 했다. 백일섭 선생님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건 어떤 여행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그러니까 확실히 보는 시점이 달라지더라. 좀 더 자유로워지는 부분도 있고.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보며 이서진이 구사하는 배려의 방식을 이해하게 됐다. 당신은 부담스럽게 다가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냉담하지도 않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다. 내가 살갑게 말도 많이 하고, 옆에서 달라붙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동안 선생님들에게 죄송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용건 선생님이 오셔서 웃을 일이 너무 많았다. 선생님들이 이렇게 많이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래서 사실 이번 편이 선생님들에게 가장 좋은 여행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선생님들은 당황스럽거나 짜증스러울 수 있는 순간에도 언제나 여유가 넘친다. 그게 굉장히 멋져 보인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여유는 나이와 비례해서 갖게 되는 것이지만, 이서진은 젊을 때에도 여유로웠던 것 같다. 당신도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가 있나? 원래 내가 조급한 상황에서 더 차분해지는 성격이다. 호들갑 떨기보다는 냉정하고 차분해진다. 이 일을 빨리 정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쪽이다.
<꽃보다 할배>에서 내려야 할 지하철역에서 내리지 않았을 때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더라.(웃음) 나한테는 그렇게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고. 선생님들도 실수를 이해해주시니까.
삶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선생님들에게 배운 것은 무엇인가? 말로 뭘 배웠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런데 선생님들과의 몇 차례의 여행을 통해 피부로 받아들인 부분들은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신구 선생님은 말씀이 많지 않은데, 툭툭 던지는 말씀이 참 주옥같다. 포인트를 딱 집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서 옆에서 들으면서 참 좋은 이야기다,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영석 PD는 인터뷰에서 “예능인으로서 이서진의 매력은 카메라 앞이나 뒤나, 현실에서나 방송에서나 똑같다는 것이다.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일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영석 PD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어떤 디렉션을 주지 않았다. 무언가를 푸시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꽃보다 할배>는 나에게 예능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 같다. 그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내가 실제의 나와 가장 가깝다.
나영석 PD와의 작업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 친구와 작업하면서 대중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나도 머리로 무언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영석도 나에게 굳이 디렉션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상호 간에 신뢰가 자연스럽게 쌓인 것 같다. 뭐, 아직까지는 프로그램이 잘되고 있으니까 그렇겠지만.(웃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맺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들과 같이 잘 살 수 있는 정도의 여유로움만 있으면, 좋은 인생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배우로서는 드라마 <다모>를 함께했던 이재규 감독과의 영화 <완벽한 타인>의 가을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 이 작품은 어떻게 하게 됐나? 이재규 감독에 대한 어떤 신뢰가 있어서, 오랜만에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맡게 된 캐릭터가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라서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캐스팅도 너무 좋았고.
“오랜만에 만난 모임에서 휴대폰을 올려놓고 모든 걸 공유하는 게임이 시작되면서 옆 사람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시놉시스가 흥미롭더라. 어떤 사람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그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결국 “모르는 건 모른 채 두는 게 더 낫지 않나” 라는 거다.(웃음) 나도 그게 맞는 것 같다. 굳이 서로에 대해서 모든 걸 알려고 하는 것에 반대하는 쪽이다.
이서진은 개인주의자인 것이 어울린다. 옆 사람의 내밀한 모습을 알고 싶어하지 않고, 자신도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그게 편하다. 그런데 완벽히 모든 것을 정해놓는 스타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과는 가까워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선을 넘어가기도 한다. 마음과 마음이 통해서 사람을 사귀게 되는 것인데, 일처럼 치밀하게 계산할 수가 없다.
주위에 선을 넘어도 괜찮은 사람이 많은 편인가? 오래된 친구들이 많다. 그리고 사실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매일같이 밥을 먹으며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유해진, 조진웅, 염정아, 김지수 등 함께 출연하는 친구들이 비슷한 또래이다 보니까.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이 비슷한 또래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웃음) 진웅이가 조금 어리고, 유해진 씨가 조금 많다.(웃음) 어찌 됐든 촬영 내내 되게 재미있었다.
과거에 출연한 많은 작품 중에서 애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 마냥 사랑스러운 것도 없고 특별히 애증을 갖고 있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잊는다. 과거에 미련이 많지 않고, 항상 새로운 걸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지금 배우로서 흥미를 느끼고 있는 새로운 세계는 무엇인가? 어찌 됐든 멜로는 아니다.(웃음) 멜로를 하기엔 나이도 있고, 내가 그렇게 로맨틱한 사람도 아니고.
TV를 통해서 여행하는 모습을 워낙 많이 보다 보니까,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는 뭘 할지도 궁금하다. 일단 나는 해가 떠 있을 땐 거의 집에 없다.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한다. 옛날에는 보여주는 운동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체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아침에 운동을 안 하면 몸이 찌뿌둥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운동을 해야 하루가 산뜻하다.
해가 떨어지면 집에 와서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하기도 하나? 꽁치찌개가 유일하게 해본 음식이다. 아, 이번에 <꽃보다 할배> 촬영에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이서진의 김치찌개 레시피는 어떻게 되나? 이번에는 참치나 고기가 아닌 스팸을 넣었다.(웃음)
사랑, 우정, 돈, 명예, 가족 등 사람들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여러 가치 중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현재진행형으로 얘기했을 때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맺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금전적으로 뒷받침되어서 사람들을 여유롭게 대할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주변 사람들과 같이 잘 살 수 있는 정도의 여유로움만 있으면, 좋은 인생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