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상의 꽁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처음 알의 수는 적다. 곧 엄청난 개체 수가 된다. 그리고는 시대를 풍미해버린 꽁치의 생명력. | 박찬일,꽁치

예쁜 물고기를 들라치면 꼽히는 것은? 누구는 고등어라 하 (기름이 오른 배때기가 예쁘다고 한다. 변태인 듯.), 누구는 삼치라고 한다. 아, 한겨울 푸른 표범 무늬가 아로새겨진 싱싱한 삼치를 보면 맞는 말이다. 한치를 드는 이도 있다. 갓 잡혀 올라오는 한치의 투명한 몸! 누구는 오징어의 눈을 든다. 까맣고 겁먹은 듯한 오징어의 순결한 눈!(그래도 우린 먹는다.), 갈치의 투명한 몸통과 날카로운 이빨, 부릅뜬 눈도 빠질 수 없다. 갓 입을 벌린 굴이 명징하고도 밀도 있는 체액을 담은 채 푸르게 번뜩이는 모양도 아름답다. 나는 꽁치에 한 표. 금세라도 쏘아져 튕겨나갈 듯한 화살 유선형의 몸체, 검은색 외투에 아래쪽의 청회색 뱃가죽, 뾰족한 입과 까만 눈은 넋을 잃고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다고 마트에서 꽁치가 담긴 팩을 보면서 “아니, 이런 거무죽죽한 꽁치가 뭐가 예쁘다는 거야?” 하고 내 말을 씹지는 말라. 어디까지나 갓 잡았을 때의 꽁치를 말하는 것이니까. 아아, 뱃전에서 낚이어 이내 숨을 거두어버리는 불쌍한 존재여. 낚인 꽁치는 깊은 물의 심연을 닮은 몸빛을 번뜩이다가 이내 죽음의 시반을 드러낸다. 아름다움을 지속하지 못할 바에는 한시라도 빨리 그 빛을 잃게 하려는 듯이. 산 채로 잡히기 싫어하는 터라, 꽁치낚시를 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어졌다. 동해와 남해를 오고가며 산란과 먹이떼를 좇는 행진을 더 이상 잘 보여주지 않는 까닭이다. 물 온도가 변했다고도 하고, 먹이의 이동에 따라 꽁치가 더 먼바다로 옮겨갔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남획이 문제라는 이도 있다. 꽁치는 제일 싼 고기다. 마트에서 세 마리를 누인 팩 하나가 2천원이다. 저 먼 남중국 해에서 타이완 어선이 잡은 것들이다. 잡혀서 냉동된 것들이 한국과 일본에 수입된다. 세계에서 가장 꽁치를 사랑하는 두 나라에. 좋은 꽁치를 보지 못하는 탄식은 일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꽁치를 석쇠에 굽기 어려웠다. 기름이 너무 많아 속이 익기도 전에 기름이 떨어져 타오르는 불길에 생선살에 그을음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석쇠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수동으로 높이 조절을 했다. 처음 숯불을 일굴 때는 부채질을 세게 해서 화륵화륵 불땀이 좋게 한다. 숯이 발갛게 변하면 꽁치를 올리는데, 처음에는 부채질을 해서 겉을 익힌다. 그리고는 천천히 높이를 조절하며 속까지 익혀내는 것이다. 뱃살이 두툼한 가을 꽁치! 구워서 다 먹고 나면, 그 접시가 흥건할 지경이었다.(이건 비약이다.) 요즘 꽁치는 메마른 탓에 잘라낸 살이 입천장을 찌른다. 기름이 제대로 오른 나이 찬 꽁치는 배가 두툼해서 고등어랑 착각할 정도라고 한다.(이건 심한 비약이다.) 기름을 짜면 꽁치 살을 튀길 양이 된다고 한다.(과장이다.) 꽁치를 구울 때, 불을 제대로 받은 껍질은 불규칙하게 융기하는데, 이렇게 구워진 껍질은 바삭하다. 살에서 떼어져 껍질 그 자체로 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술 한 잔의 안주로 삼으면! 천천히 껍질을 먹고는, 젓가락으로 등살을 집는다. 참치라면 ‘아까미’라고 부를 수 있는 검붉은 살에 속한다. 철분이 많아 맛이 짙고 기름기가 적어서 담백하다. 굵은 소금이 함께 바삭, 하고 씹힐 때 몸서리가 쳐진다. 그 다음엔 뱃살이다. 봄 산란철에 뱃가죽이 부푼 놈이면 암놈이다. 이런 경우는 내장을 후벼서 그 안에 알이 들었는지 본다. 꽁치 알은 숫자가 적다. 그런데도 매년 엄청난 개체 수가 되는 꽁치의 생명력이란. 담백하고 고소한 탓에 일본에는 이 알만 모아서 젓갈을 담그는 것도 있다. 술 도둑이다. 알이 없는 수놈은 내장 자체의 맛이 있다. 씁쓸한 맛이 입맛을 당긴다. 이 맛을 아느냐가 어른과 아이를 가르는 기준이다. 큰 꽁치 한 마리면 내장만으로도 작은 술 한 병을 비울 것 같다. 다음은 천천히 등뼈를 바르는 일을 하는 게 좋다. 한 손으로 꽁치 머리를 누르고 등뼈를 머리에서 뚝 분질러내듯 젓가락으로 들어낸 후 곧게 떠낸다. 등뼈의 무늬가 그대로 음각으로 새겨진 아래쪽 살점들이 드러난다. 이때는 이미 꽁치의 맛이 반감된다. 꽁치 기름기에 접시 아래쪽 면이 잠기어 껍질의 바삭함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기름도 식어서 산뜻하지 않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어떤 형이 반대 의견을 냈다. 오히려 기름에 절여진 듯 축축한 아래쪽 살점이 더 맛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생선 카르파치오에 질 좋은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 먹는 느낌과 비슷하지 않냐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꽁치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살아 있는 촉감이 아주 묘해. 몸이 뜨겁지 않지, 바닷물 수온 정도랄까. 그것이 꿈틀대는 느낌이 지금도 간질간질하네.강원도나 울릉도에서는 ‘손꽁치’라는 오월의 원시 어로가 있었다. 처음 이 얘기를 속초에서 들었을 때 나는 어떤 신비로움에 사로잡혔다. 꽁치가 물가의 해조나 해초류에 알을 슬려는 것은, 어미의 속성이다. 꽁치 알을 잘 붙여주고 또 잘 감춰주니까. 그 속성을 이용하여 배를 바다로 내고, 해조를 매달아 유인하여 손으로 꽁치를 잡는 것이다. 산란철의 꽁치는 오직 알에만 집중하므로 조금 멍청해지는 것일까. 배가 있는데도 우선 급한 사정이니 알을 슬고 만다. 이때 꽁치는 그야말로 손으로 잡아도 될 만큼 움직임이 둔해진다. 한 속초사람은 이렇게 묘사했다. “꽁치를 손으로 슬며시 뜨면 아귀에 들어오는데, 그 살아 있는 촉감이 아주 묘해. 몸이 뜨겁지 않지, 바닷물 수온 정도랄까. 그것이 꿈틀대는 느낌이 지금도 간질간질하네.”꽁치는 원래 그물로 잡는다. 비싼 고기가 아니니 낚시를 하기도 뭣하고(미끼 값도 안 나온다.) 그물을 내려서 잡는다. 꽁치는 쳐둔 그물에 제 속력을 줄이지 못하고 처박힌다. 아가미가 걸려서 오도 가도 못한다. 걷어 올린 그물은 멸치를 털 듯 털어내기도 한다. 울진의 바닷가는 대게로 먹고산다. 대게가 아니면 행세를 못한다. 대게도 금어기이던 어느 쓸쓸한 날, 그 바다를 찾았다. 늙은 어부는 꽁치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걸로 경단처럼 만든 요리를 해준다고 한다. 꽁치를 넣은 국수도 삶았다. 예전부터 울진 어부들이 먹던 음식이란다. 요즘은?“그냥 라면이나 끓여 먹지.”손 가고 품 드는 일은 이제 어디든 잘 하지 않는다. 흥도 나지 않으리라. 오직 돈 되는 대게만 바라보며, 어촌은 강퍅해졌다. 그는 밥 한 술에 검은색의 젓갈을 얹어서 먹었다. 꽁치젓갈이었다. 이제 겨울 동해안이라면 수입이든 직접 잡은 꽁치이든 배를 갈라서 과메기를 만드는 게 큰일이다. 큰 공장도 들어섰다. 심지어 구룡포에는 과메기 박물관도 생겼다. 어부의 탄식도.“옛날에는 다 모여서 젓갈도 담그고 신도 났는데.”꽁치를 소금 많이 넣어서 절인 후 삭히면 등푸른 생선 특유의 감칠맛이 돈다. 멸치젓보다 풍성하고 더 기름지다. 생선이 크기 때문이다. 그 젓갈로 버무린 김치도 맛있다. 꽁치젓갈은 울진 봉산마을이 유명하다. 경상도식 진한 김장을 담글 때 쓸 수 있다. 등푸른 생선 특유의 강한 감칠맛이 있다. 김장 말고도 겉절이도 해먹고, 돼지고기를 볶을 때도 슬쩍 넣으면 맛이 강해진다. 꽁치는 한때 생선통조림의 대명사였다. 등푸른 생선이 그렇듯이 빨리 상하기 때문에 산지에서 바로 통조림 가공하는 게 유리했다. 값도 싼 생선이니까. 등푸른 생선 3대 통조림이 있다. 고등어, 꽁치, 정어리다. 이 세 가지가 서로 흔했다 귀했다 하면서 통조림의 시장 판도가 변했다. 한때는 꽁치가 안 잡혀서 정어리가 많았다. 이제 정어리 통조림은 일본에선 고급 제품으로 팔린다. 안 잡히니까. 정어리 통조림은 나도 많이 먹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때는 고등어 대용품이었던 것 같다. 정어리를 넣고 고등어 통조림이라고 속여 팔았다고 통조림 회사가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지금은 고등어 통조림 10개를 줘도 정어리 통조림 1개와 바꿀 수 없으리라. 배가 고파서 밥집에 들렀다. 메뉴판의 ‘꽁치김치찌개’ 옆에는 통조림이 아니라는 해설이 있다. 곧, 우리가 먹는 꽁치김치찌개는 거의 통조림이라는 얘기다. 그게 오히려 맛있다는 축도 있다. ‘마이너’한 조리법이 메이저가 되기도 한다. 꽁치김치찌개와 꽁치김치조림은 당연히 생꽁치가 원조다. 그것이 귀해지니 통조림을 쓴 거다. 그러다가 통조림은 대세가 됐다. 처음부터 통조림으로 먹기 시작한 사람은 생꽁치가 맛이 없다고 느낄 테지. 맛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탕과 미원을 왕창 넣고(이미 통조림에는 미원이 꽤 들어 있다) 조린 꽁치김치찌개는 이제 이 시대를 상징하는 맛이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의 신화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