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먹는 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기온이 들쑥날쑥한 봄철, 다채로운 나물이 쏟아지고 있다. | 박찬일,봄,나물

지금 할머니 세대가 지구를 떠나면 걱정되는 게 많지만, 그 중 하나가 나물이다. 제각기 거기서 거기 같은 작은 풀을 먹는 것 못 먹는 것 구별하는 능력이 할매들밖에 더 있겠는가. 이제 나물도 대부분 재배하는 것이니, 상관없을까. 시골장이나 재래시장 구석, 허가도 나지 않은 자리에 할매들이 자리를 깔고 있다. 서울이야 안 묻지만, 시골장에서 이런 할매들한테 나물 살 때 불문율이 있다. “이거 직접 캐신 거예요?” 더러 캐신 것도 있겠지만, 재배하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참나물이, 방풍나물이, 미나리가 어디서 캘 수 있는 존재인가. 쑥도 냉이도 이제 재배한 것이 시장에 더 많다. 아니, 솔직히 얘기하면 당신이 산 그것은 아마도 재배한 것이다. 그럼 어떤가. 야생을 구하자면, 개인적으로 선을 대어놓지 않으면 어려울 일이다. 시골의 이모에게나 부탁해두어야 가욋돈 벌러 나선 할머니들의 손을 기대해볼 처지다. 머지않아 자연산 나물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캘 사람이 없다. 실은, 재배하는 나물의 상당수도 외국인 계절노동자의 손을 빌린 경우가 많다. 도급으로 일을 받아 봉고차에 노동자들 싣고 수확을 하러 다니는 업자들이 있다. 우리의 서정을 대변하는 조물조물 나물무침에도 힘겨운 국제적 노동시장의 땀이 배어 있다. 어쨌든 지금은 좋은 계절이다. 나물 철이 겹치기 때문이다. 그냥 밭에서 기르는 걸 노지재배, 하우스에서 기르는 걸 시설재배라고 하는데 기온이 들쑥날쑥한 봄철이라 제각기 다른 종의 나물이 쏟아지고 있다. 보통 쑥 철이라고 해서 2월이니 3월이니 하지만, 이것도 참으로 폭이 넓다. 남쪽이냐 북쪽이냐, 응달이냐 양달이냐 나물이 들고 나는 시기가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남쪽의 쑥은 다 들어갔어도, 강원도 산골 응달의 쑥은 4월이 되어도 싹이 웃자라지 않은 것도 있다. 꽃 피우고도 남을 4월에 냉이의 뿌리가 아직 여린 것도 보게 된다. 여의도 벚꽃 피듯이 일제히 우와와, 하면서 피었다 져버리지 않는다. 다 제각기 궁리에 따라 자라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시장에 나물이 아주 풍성해진다. 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 국립공원은 채취 불가요, 국유림도 당연히 안 된다. 주인이 있는 사유지도 안 된다. 캐다 들키면 온갖 법률이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국립공원관리법에 절도죄까지 줄줄이 적힌 소환장을 받을 수도 있다. 봄에 신문 광고면을 보면, 여행 상품이 실린다. 그중에 ‘산나물 채취 산행’이라는 게 버젓이 실린다. 상당수가 국유림에 무단출입하는 거다. 걸리면 고약하다. 어떤 산 주인은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나물 캔 아주머니들 비닐봉지를 압수하고는 자체 벌금을 매긴다고도 한다. 절도죄로 고소 당하느니, 돈을 내고 나가는 게 낫긴 하겠지만. 땅은 개인 땅이되, 자연산 나물이야 어디서 씨가 날아와 하늘과 동업하여 제 스스로 자란 것인데도 땅 주인 것이 된다. 어쨌든 아는 산이 있어서 주인과 함께 들었다. 개두릅이 열리고 있다. 아직 순이 작은데, 조만간 맞춤해지겠다. 이름은 개두릅이지만, 이게 진짜 두릅이다. 여러분이 시장과 마트에서 만나는 두릅이 아니다. 그쪽이 생긴 건 그럴 듯한데, 땅두릅이라고, 떫기나 하지 대단한 맛이 아니다. 음나무순이 바로 개두릅인데, 잠깐 시기를 놓치면 억세어서 못 먹는다. 개두릅은 그래서 한량 차지란 말도 있다. 시간이 많아서, 딱 먹기 좋을 시기를 기다렸다가 딸 수 있는 사람은 한량밖에 없다는 뜻이다. 응달에는 막 얼음이 녹아 질척한 습기가 있다. 냉이가 꽃 피우기가 멀다는 듯 얇게 자랐다. 조심스레 캤다. 뿌리가 꽤 깊다. 냉이는 겨울에 추워야 맛있다. 거개 뿌리채소가 그렇다. 시금치도 마찬가지다. 겨울 혹한이 있어야 뿌리가 깊고 두껍다. 달고 맛있다. 추우니까 저 살자고 영양분을 뿌리에 쟁여두는 것이다. 그 영양으로 꽃 피우고 씨앗을 맺으려는 천지만물의 원리다. 쑥도 응달과 양달에 골고루 자라고 있다. 굵은 놈이 향은 세다. 너무 여린 건 향도 얕다. 어차피 향으로 먹는 나물, 좀 큰 것이 낫다. 쑥이 웃자란 것은 뜯어다가 말린 후 차로 마시면 좋다. 생각해보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처럼 나물 좋아하는 이들이 있나 싶다. 요리법도 가장 잘 발달했다. 일본도 아오모노(靑物)라고 하여 나물 비슷한 채소류를 통칭하는 찬이 많고, 중국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동아시아 어디든 먹고 살기에 넉넉한 곳이 없었느니 먹을 수 있는 풀을 뜯어서 배를 채운 건 다 비슷하다. 그래도 유독 한국의 나물이 유명한 건 우리 사정이 더 퍽퍽했기 때문일까. 일본에 가서 어느 중학교의 월간급식표를 보게 됐다. 햄버거에 돈가스도 있고, 일본식 요리가 쭉 써 있다. 어느 날에 ‘나무루’가 있는 게 아닌가. 가타가나이니, 외래어이고 그건 한국의 나물을 이르는 것이다. 직접 실물을 보지 못해서 어떤 나물일까 궁금하다. 일본의 길거리에도 마찬가지로 이런 메뉴를 써놓은 집들이 있다. 일식당에서도 그런다. 종류를 밝히지 않고 그냥 ‘나무루’ 하고 써 붙인 게 참 신기하다. 시켜보지 못해서 뭐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대단한 나물은 아닐 테고, 시금치나 콩나물 정도가 아닐까. 미츠코시 백화점 식품부에서는 한국식으로 맵게 무친 콩나물무침을 팔고 있으니까. 먹어보았는데, 예상하듯이 거의 스타벅스의 카라멜라테 못지않은 엄청난 당도. 혀가 얼얼하게 달다. 일본인들도 백종원설탕교의 신도들일까?음나무순이 개두릅인데 이게 진짜 두릅이다. 개두릅은 한량 차지란 말도 있다. 시간이 많아서, 딱 먹기 좋을 시기를 기다렸다가 딸 수 있는 사람은 한량밖에 없다는 뜻이다. 유명한 만화를 텔레비전 시리즈로 만든 에도 이 ‘나무루’가 나온다. 나물이야 한국에서는 외식으로 사 먹는다면 무엇이 나오는지 알 수 없다. 반찬으로 나오면 나왔나 보다 할 뿐이다. 더 시키면 주인이 좋아한다. 달걀말이 추가가 아니니까. 일본에서는 이걸 시켜 먹자면 당연히 돈을 별도로 낸다. 라멘집에서 파를 추가해도 돈 받는 일본답다. 은근히 일본 식당에서 한국 반찬이 많이 팔린다. 정통 일식당은 아니고 중식, 한식, 일식 짬뽕으로 막 파는 대중식당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나무루, 기무치, 비비바(비빔밥), 기무치치게(김치찌개)도 있다. 그럼 ‘유케’는 뭘까, 육회다. 소의 부속을 구워 파는 집에서는 ‘우루데’와 ‘데창’도 있다. 목울대와 대창이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한국 음식의 값은 어마어마하다. 김치 한 접시, 우리가 1인분 백반상을 받았을 때 나오는 딱 그 정도의 양에 2만원을 하는 집도 도쿄에 있었다. 진짜다. 한 접시 2만원! 소 안창살과 갈빗살 120g 1인분에 8천원인 집에서!(그러니 대신 소고기를 집중 공략하시라. 거의 한국의 반 값 이하다.)오사카의 재일한국인(조선인) 집단거주지역인 쓰루하시에는 한국식 재래시장이 있다. 여기서 시금치나물, 콩나물, 고사리나물을 파는 걸 보았다. 한국인은 어딜 가든 이 나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호주와 뉴질랜드 교민이 들에 나가서 고사리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걸 보고는, 너무도 반가워서 왕창 땄다가 자연훼손죄로 법정에 선 일도 꽤 많았다. 고사리 그까짓 걸 꼭 먹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들에서 저 혼자 피었다가 제때 안 따면 갓이 퍼져서 못 먹는 것이니 우리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아까워서 놔두질 않았던 탓이다. 냉이가 이제 거의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마지막 봄을 즐겨보시길. 웃자라기 전이라 향이 진하다. 냉이는 사실 엄청난 노동이 숨어 있다. 다른 나물이야 물에 슬슬 헹구거나 다듬어 시장에 출하하지만, 냉이는 흙을 워낙 단단히 붙들고 있기 때문에 세척 작업이 힘들다. 목욕탕 같은 수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사람이 전신 잠수복 같은 방한 고무 옷을 입고 직접 들어가서 씻어야 한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냉잇국 한 그릇을 드셨다면, 아 그 노고를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