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존재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퇴물 취급을 받던 트위터가 ‘트럼프 효과’와 함께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우리에게 트위터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 | 오바마,트위터,트럼프,뉴욕 타임스

아디다스가 제일 애통하지 않을까? 지난 11월 쿠바 공산혁명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원래 군복을 즐겨 입던 카스트로는 2006년 병상에 누운 뒤부터 아디다스 ‘삼선’ 운동복을 주로 입었다. 을 쓴 영화감독 정승구에 따르면 카스트로는 반미주의 때문에 나이키 대신 경쟁사인 아디다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디다스나 나이키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본부가 있는 나라만 다를 뿐 이미 국적을 초월한 기업들이다. 카스트로의 아디다스 사랑, 아니 나이키 증오는 사실 좀 우스꽝스럽고 모순적인 것이었다.이런 식으로 상품과 홍보대사가 매치되지 않는 사례로 요즘 눈에 띄는 것은 트위터와 트럼프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의 트위터 사랑은 지극하다. 대선 기간 내내 중요한 선거운동 수단으로 트위터를 활용했다. 대통령 당선 후에는 심지어 인사 발표까지 트위터에 했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37년 만에 이뤄진 대만 총통과의 전화통화 사실도 트위터로 알리면서 미·중 외교관계에 메가톤급 폭탄을 떨어뜨렸다.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미국은 대만에 수십억 달러어치의 군사 장비는 팔면서, 축하 전화도 받으면 안 된다니 웃긴다”는 말을 역시나 트위터에 남겼다.대통령 당선자의 ‘트위터질’이 너무 심하다는 여론은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언론이 나에 대한 기사를 정확하고 명예롭게 써준다면, 내가 트위트를 할 이유가 줄어들 것이다. 슬프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앙숙관계에 있는 의 비판 기사에 대해서도 트위터를 통해 “완전한 오보”라고 여러 번 공격했다.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내 팔로어가 1천6백~1천7백만 명이다. 이건 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데 내가 왜 그만둬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2009년부터 트위터를 해온 트럼프는 12월 10일 현재 3만4천1백4개의 트위트를 날린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트럼프라는 캐릭터는 트위터라는 매체의 본질과 거리가 아주 멀다. 정반대다. 트위터는 소통과 공유, 평등과 개방의 플랫폼이다. 트위터로 형성된 담론은 대체로 진보적이며 지적이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인물이며 극우파로 분류된다. 배제와 차별의 화신이다. 무슬림이나 이민자, 여성을 가차 없이 공격한다. 백인 중하류층으로 하여금 자유무역과 이민자 유입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착각하도록 만든 후 그들의 분노를 자극해 표를 모았다.트럼프의 트위터 활용 태도 역시 매우 반트위터적이다. 그의 트위터 매뉴얼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같은 건 없다. 일방적으로 내뱉고 지르고 허세를 부린다. 가끔씩 화제가 되는 ‘폭풍 트위트’는 감정적 배설 행위이다. 자신을 공격하고 나무라는 트위터리안은 차단해버린다. 트럼프가 ‘트위터 정치’를 한다는 표현은 틀렸다. 그는 트위터건 뭐건 일방향의 수단을 통해 ‘통치’를 하는 황제이고 싶을 뿐이다.트럼프의 전임자인 오바마 대통령의 트위터 활용법은 다르다. 오바마는 트위터에서 대중과 수다를 떨며 놀고 호흡한다. 가 지난해 “과카몰리(아보카도로 만드는 소스)에 완두콩을 넣으면 맛있다”는 트위트를 남긴 적이 있다. 그러자 오바마는 “콩은 아니다. 양파와 마늘, 핫페퍼를 넣는 고전적인 방법이 좋다”고 트위트로 논평했다. 여기에 대통령을 친구처럼 여기는 이들의 트위트가 줄줄이 달렸다. “대통령은 일이나 하세요.”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가 과카몰리를 만드는 방법은 미국적이지 않아요.”하지만 누구건 무슨 상관인가. 트위터의 정신은 오바마가 잘 구현하고 있을지 몰라도 이 시대 최고의 트위터 홍보대사는 누가 뭐래도 트럼프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 트위터의 주가는 4.1% 올랐다. 대선 전 6개월 동안 트위터의 주가는 35% 상승했고, 투표일 전 일주일 동안에는 9%의 상승률을 보였다. 트럼프에 의한 홍보 효과 때문이기도 했고, 트럼프에 절망한 이들의 탄식이 트위터에 실려 돌아다녔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많아진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예쁜 이미지를 소비하는 다른 SNS에 밀려 하락세를 걷던 트위터는 모처럼 웃을 수 있었다. 트럼프라는 어울리지 않는 홍보 모델을 가지게 됐지만 트위터는 아마도 트럼프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퇴행과 혐오, 인종주의라는 세계적 조류를 막는 방파제로 기능할 것이다. 카스트로와 아디다스의 관계가 그저 모순적이기만 했다면, 트위터는 트럼프에 의해 살아나 트럼프를 무너뜨릴 것이다.트위터의 존재감이 빛났던 경우를 돌이켜보면 트위터는 원래 그런 SNS였다. 대표적으로 2009년 이란에서 대통령 선거 불복 시위가 크게 일어났을 때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들이 단문 메시지를 빠르게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해 시위에 관한 정보와 의견을 신속하게 유통시켰다. 2011년 중동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격동이 일어났던 ‘아랍의 봄’ 때도 마찬가지였다.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지만 트위터의 가치와 위력은 건재하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 ‘문화계_내_ 성폭력’ 파문에서 트위터의 힘이 발휘됐다. 피해자들의 폭로·고발, 피해사례 수집이 트위터를 통해 이뤄졌다. 이런 움직임이 왜 사용자가 더 많은 페이스북이 아니라 트위터에서 더 활발했을까. 아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커뮤니티적 성격이 덜하고, 140자를 넘지 않으려면 직설적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는 트위터의 특성 때문이었을 거다. 트위터를 통한 이러한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한국 문단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수많은 트럼프들을 고발하고, 마침내 고개 숙이게 할 것이다. 해시태그 연대는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