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酒 를 찾아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술이 몸에 좋다는 플라시보일지 모를 망상을 좇아 바를 유랑해봤다. | 칵테일,위스키,바텐더

술을 약으로 먹던 시절이 있었다. 증류주의 역사는 치료약에서 출발했다. 진(Gin)도 원래 약용으로 사용되었던 술이다. 160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진을 이뇨제로 사용했다. 18세기 말에는 프랑스 의사가 비범한 식물로 만병통치약을 만들었다. 압생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술에도 치유의 기능이 있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지금 무척이나 애쓰고 있음이 느껴지는가? 대사 하나를 더 인용해본다. 고독사를 다룬 소설 의 노인이 말했다. “식전주는 페르노랑 보드카 섞어서. 한 잔 정도는 괜찮아. 약이지 뭐.”바에 가서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몸에 좋은 술 없을까요?” 나도 안다. 숙면하려거든 술이 적합하지 않다는 걸. “샤르트뢰즈라는 리큐어가 있긴 있어요. 불로장생하는 명약으로 쓰였던 술이죠.” 청담동 ‘미스터 칠드런 바’의 김지훈 바텐더가 말했다. 샤르트뢰즈는 1백30가지 약초로 만들지만 무엇이 들어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양조를 담당하는 두 명의 수도사만 알고 있다. 진과 1:1로 섞어서 클래식한 칵테일로 즐기거나 언더록으로 마실 수 있다.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신기한 술이 하나 더 있다. 도수가 69도에 이르는 엘리시르 베제탈(Elixir Végétal)이 바로 그것. 만화책 에도 이것을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얀 각설탕 위에 3~5방울 떨어뜨리면 표면이 초록색으로 뒤덮인다. 천천히 녹여 먹으면 된다. 술과 술 사이의 브리지로 좋은 방법이다. ‘식물의 영약’이란 뜻처럼 몇 방울이 몸에 좋은 기운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김지훈 바텐더가 말을 잇는다. “칵테일 대회에서 약방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던 칵테일이 하나 더 있어요. 홍삼 향이 은은하게 나는 위스키 베이스의 칵테일인데 마셔보면 어떤 기운을 받는 느낌이 들 수 있어요.” 홍삼, 생강, 레몬, 타임, 위스키 등의 재료가 들어가는 이 메뉴의 이름은 ‘Men Of Honor’. 영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름이다. 올해 5월 5일에 오픈한 미스터 칠드런 바는 철들고 싶지 않은 어른을 위한 바다.그 다음 목적지는 연희동 ‘책바’. 바의 정체성 때문인지 조금은 문학적인 처방전이 돌아왔다. “를 보면 그런 장면이 나와요. 주인공 험버트가 진과 파인애플로 만든 칵테일을 마셔요. 비율은 1:3 정도가 적당하죠. 과일엔 비타민 C가 많으니까 그걸 마시며 사랑에 필요한 원기를 회복하지 않았을까요?” 책바는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구매도 대여도 기증도 가능하다. 매달 주제 하나를 정해 손님들 간의 백일장이 열린다. 주인장 정인성 바텐더가 쓴 에세이집 이 바에 놓여 있다. 추천하고 싶은 칵테일은 ‘베네딕틴 토닉’이다. 베네틱틴 D.O.M은 베네딕틴 수도원에서 약초와 향초로 만들었던 약용 리큐어였다. 잠들기 전 10~15ml 정도 마시면 피로 회복에 좋다는 술이다. 책바에서는 토닉워터와 섞어서 하이볼로 만들어준다. 청량한 기포와 허브 향이 심신을 리프레시시켜준다.사실 칵테일에 본격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건 부산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부산 경성대 근처 ‘잭슨바’에서 ‘혼술’의 묘미를 만끽했다. 무엇보다 난해한 술 이름과 스토리를 시크한 사투리로 편안하게 풀어주는 바텐더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부산에서 가히 최고의 리스트와 퍼포먼스를 갖췄다며 부산 소믈리에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곳이다. “올드 패션드는 어떨까요? 물, 설탕, 버번 위스키 또는 라이 위스키가 들어가는데 여기에 몇 방울 떨어뜨리는 앙고스투라 비터스에 자양강장제 같은 효과가 있어요.” 바텐더에게 소금과 후추 같은 존재라는 칵테일 비터스(도수 높은 스피릿에 허브, 향신료 등의 재료를 담가 그 재료만의 풍미를 강렬한 진액으로 추출한 것)는 때때로 의사들의 독감 주사에 버금가는 처방으로 사용되었다. 좀 더 은은하게 술의 기운을 느끼고 싶다면 내수동 ‘쇼콜라디제이’로 가는 건 어떨까? 리큐어와 초콜릿을 접목한 이지연 쇼콜라티에의 작은 스튜디오다. “압생트가 여름밤 같은 술이라면 샤르트뢰즈는 한겨울 낮과 같아요.” 이곳에선 술은 팔지 않지만 술과 초콜릿이 팽팽하게 만나고 있다. 리큐어 파베를 입에 머금거나 베네딕틴 D.O.M이 살짝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맛보면 심신이 무르녹아 숙면을 위한 최상의 상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