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아시아 베스트 바 50' 2년 연속 2위에 오른 한국 바, 제스트

오너 바텐더 김도형이 말하는 지금 바 신에서 로컬리티를 구현하는 방식.

프로필 by 안서경 2025.11.10

DRINK LOCAL


‘로컬리티’는 미식과 문화예술을 넘어 지금 바(bar) 신에서도 유효한 명제다. 올해 ‘아시아 베스트 50’ 어워드에서 각 2위와 6위라는 성취를 이룬 두 곳의 바, ‘제스트’와 ‘참’에서 칵테일 한 잔에 고유함을 담는 것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바게트를 자르고 남은 부분을 작은 크루아상으로 재해석한 신메뉴 ‘라스트 피스’와 여러 칵테일을 만들고 남은 재료로 만든 다양한 가니시 모음.

바게트를 자르고 남은 부분을 작은 크루아상으로 재해석한 신메뉴 ‘라스트 피스’와 여러 칵테일을 만들고 남은 재료로 만든 다양한 가니시 모음.

제스트

5년 전 막 오픈한 제스트로 향하는 길은 달랐다. 소란한 청담동 골목에 나타난 산뜻한 인상의 1층 바. 어둑한 지하에 자리한 스피크이지 콘셉트 바에 익숙했던 나는 돌과 원목 소재의 차분한 인테리어에 모던 다이닝 혹은 찻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첫 잔으로 진토닉 ‘Z&T’를 마셨을 때는 또 어떻고. 군더더기 없이 청량한 탄산과 진의 조화, 허브와 한라봉 껍질의 그윽한 향이 즉시 기분을 경쾌하게 만들었다.

‘제로웨이스트’에서 따온 이름처럼, 제스트는 일회용 캔 사용을 줄이고자 직접 탄산수를 만들고, 칵테일에 쓰이는 과육의 과즙을 짜고 남은 껍질을 가니시로 사용하며, 직접 남양주 농장에서 허브를 공수하는 등 한 잔의 칵테일을 대하는 어떤 ‘태도’를 제시해왔다. 그런 노력이 쌓이는 사이, 이 작은 바는 해마다 아시아 베스트 바 랭킹을 경신해왔고 이제 주말이면 홍콩의 유명 바처럼 다국적 방문객의 웨이팅이 몇 시간이나 될 정도다. 물론 패션 하우스의 행사에 주류 담당으로 초청되거나 프리즈 나이트 기간 열린 파티에서도 여러 일정을 소화하는 등 색다른 음료가 필요한 자리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취재를 위해 오랜만에 만난 오너 바텐더 김도형은 공동 대표들과(제스트는 총 4명의 젊은 바텐더 우성현, 권용진, 박지수, 김도형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팀원들이 각자 다른 도시의 바에 게스트 바텐딩 일정을 소화하러 간 사이, 다음 날 뉴욕 한식당과의 협업을 치르기 위해 출국을 준비 중이었다. 하나의 브랜드가 된 한국 바의 탄생을 지켜보는 일은 꽤 흥미진진하다.


오너 바텐더 김도형.

오너 바텐더 김도형.

하퍼스 바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 ‘아시아 베스트 50’에서 2위를, 최근 ‘월드 베스트 50’에서 16위를 차지했다. 한국 바 신에서는 전례 없는 순위다. 바 애호가에게는 한 도시를 방문할 때 큰 영향력을 차지하는 이 리스트에서 좋은 순위를 받은 건 어떤 의미인가? 미슐랭 가이드처럼 미스터리 다이너의 평가를 받는 걸까?

김도형 각 나라와 지역마다 투표권자를 배분하는데, 바 업계 종사자, 미디어, 소비자 등에게 33%씩 배분해 해마다 자신이 방문한 최고의 바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아시아 베스트’는 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다루고, 월드는 그 범위가 더 넓어진다. 접점을 더 많이 늘리고자 여러 행사에 출국하다 보니, 올해만 50번 정도 비행기를 탔다. 1위를 기대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5년 연속 1위를 한 홍콩을 못 이기겠더라.(웃음) 바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으니 투자나 지원되는 자본이 다르다는 걸 체감했다. 2위라는 순위도 믿기지 않을 만큼 감사한 수치지만, 큰 상을 받아봤으니 이제 순위에 연연하기보단 변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려 한다.

하퍼스 바자 버터를 럼과 버번에 섞은 ‘팻 워싱’ 기법을 적용한 다음 간장을 더해 완성한 ‘소이 카라멜’ 등 제스트의 메뉴는 초창기부터 창의적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앞으로 어떤 부분이 변할 예정인가?

김도형 제스트라는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해, 2층 공간을 확장해 한국 술을 좀 더 활용하려 한다. 그동안은 최대한 재료를 남기지 않고 활용하는 방식으로 메뉴를 만들며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왔다. 오늘 선보인 신메뉴 ‘라스트 피스’ 또한 바게트의 남은 자투리를 작은 크루아상으로 해석해 가니시로 얹은 것이다. 지금처럼 지속가능성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로컬리티’를 더 잘 녹일 수 있을지 고민해오다 내린 결정이다.

하퍼스 바자 전통주를 베이스로 칵테일을 선보이는 바가 부쩍 늘면서 전통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바 콘셉트도 많이 보인다. 이와 달리 제스트는 현대적인 칵테일 메뉴를 선보여왔다. 가령 몇 년 전부터 미식 신에서 중요한 ‘발효’를 살리기 위해 직접 파인애플 껍질을 발효한 와인을 만든 것이 예다. 어떤 시각으로 로컬리티를 해석하려 했나?

김도형 국내 바 신을 돌아보면 여러 흐름이 있었는데, 한때는 클래식 재패니즈 바가 인기였던 시기도 있었고, 스피크이지 콘셉트가 유행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도쿄의 바나 미국의 금주법 같은, 다른 나라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외국 손님들이 한국에 왔을 때나 그 나라의 바를 가본 이라면 굳이 즐길 이유가 없다. 바 문화가 커질수록 전 세계 관광객들은 한 나라의 특징적인 걸 즐기고 싶어 한다. “가장 그 나라다운 바는 뭐지?” 물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게 중요하다. 공간을 처음 만들고 메뉴를 고안할 때마다 컨템퍼러리하게 보여주는 방향성을 고민해왔다. 칵테일을 미식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밝고 편안한 분위기의 공간을 구현한 것이고, 환경을 위한 가치가 바텐더로서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것이기에 지속가능성을 위한 메뉴를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 식재료와 우리나라에서 만든 술을 활용해 지속가능성을 지켜나가면, 해외의 서스테이너블 콘셉트 바와는 다른 모습일 거다.

하퍼스 바자 파인다이닝 음식처럼 항상 동일한 완성도의 칵테일을 내어놓는 일도 과제일 것이다. 해외 바와 교류하는 ‘게스트 바텐딩’과 외부 행사를 이어가면서도 일정 수준의 음료와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결국 그 수치가 좋은 순위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김도형 우린 약 20명 정도의 팀으로 이루어지는데, 국내 개별 바 중에서는 제일 많은 숫자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팀, 국내 케이터링이나 이벤트에 대응하는 팀, 매일 업장에서 서비스를 하는 팀, 나를 포함해 해외 출장 위주로 다니는 멤버로 나뉜다. 싱가포르 기반의 ‘지거 앤 포니’, 중국 ‘호프 앤 세서미’처럼 큰 브랜드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우리가 만들고 싶은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 비즈니스적으로도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왕성한 바 문화가 드물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레 알아봐주고 찾아주는 움직임이 감사하다. 우리 철학을 이해해주는 브랜드나 업체들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행사에 일회용 잔을 쓰지 않으니 일일이 잔을 챙겨 갔는데, 요즘에는 글라스를 대여해주기도 한다.

하퍼스 바자 궁극적으로 제스트가 표방해온 ‘파인드링크’는 어떤 의미인가? 파인다이닝처럼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수많은 공정을 거치고 타협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린다.

김도형 같은 칵테일이라도 바텐더의 선명한 의도가 담긴 음료와 단순히 레시피를 따라 만든 음료는 다르다. 아침 일찍 농장에서 사 온 허브를 쓰고, 포장재 사용을 줄이고,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은 칵테일을 마시는 건 분명 고객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하퍼스 바자 예전에 RTD 칵테일 음료로 제스트의 메뉴를 론칭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캔 사용을 줄이고자 거절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김도형 물론 함께하는 팀이 커질수록 돈을 버는 게 중요하지만, 처음 바텐더가 된 건 우리가 지향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초심을 잃는 순간 제스트의 색이 없어질 거라 생각한다. 우리 팀은 여전히 젊고, 이 신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일도 여전히 너무 많다!


Credit

  • 사진/ 박규태(제스트), 임준혁(바 참)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