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악동 장 폴 고티에와 듀란 랜팅크의 사적인 대화
그들이 말하는 계승과 도전, 강박과 반항이 필요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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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OPLE AND IDEAS SHAPING THE CULTURE
패션계의 대표적인 악동,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와 듀란 랜팅크(Duran Lantink)가 말하는 계승,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 시크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때로는 반항이 필요한 이유.
굳이 소개가 필요 없을 만큼 독보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이너는 그리 많지 않다. 허나 장 폴 고티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탈색한 머리와 브르타뉴 스트라이프, 체셔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환한 미소는 그의 상징이다. 마돈나의 콘 브라부터 지난 50여 년간 젠더의 경계를 허물고 서브컬처에서 영감받은 수많은 컬렉션까지, 그의 작업 역시 누구의 것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오랫동안 패션계의 악동으로 불렸던 그는 이제 업계를 대표하는 원로 디자이너가 되었다. 2020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쿠튀르 하우스에서 은퇴한 뒤, 세계 각지의 게스트 디자이너들에게 차례로 컬렉션을 맡겼다. 하지만 지난해 장 폴 고티에 하우스는 상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임명하며 새로운 장을 열었다. 주인공은 도발적이고 조형적인 디자인으로 알려진 장난기 넘치는 30대 네덜란드 디자이너, 듀란 랜팅크.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로 거처를 옮긴 랜팅크는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시작했으나 아카이브를 지나치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데뷔 무대인 2026 S/S 컬렉션의 피날레가 끝나고 조명이 잦아들 무렵, 장 폴 고티에 하우스는 다시금 논쟁의 중심에 섰다. 평론가와 온라인에서는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체모까지 재현한 누드 바디수트와 남성용 수영복, 오일을 바른 나체에서 불쑥 튀어나온 외계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패딩에 혐오하는 이들도 많았다. 일부는 랜팅크가 의도적으로 분노를 부추기는 ‘레이지 베이팅(rage-baiting)’을 한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옷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충격과 즐거움을 안기고,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장 폴 고티에는 알고 있었다. 랜팅크를 영입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티에의 행보를 돌아보면 늘 논란의 연속이었다. 나이와 체형,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모델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1980년대에는 남성에게 스커트를 입혀 런웨이에 세웠다. ‘젠더 뉴트럴’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훨씬 전부터 그의 작업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름다움과 우아함, 옷에 대한 고티에의 생각은 언제나 시대를 앞섰다. 클럽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부터 쿠튀르 고객에게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은 이유다. 햇살 좋은 파리의 어느 오후, 고티에와 랜팅크는 매달 함께하는 점심 식사에 <바자>를 초대했다. 장소는 마레 지구에 자리한 장 폴 고티에 본사에서 지척인 곳. 그곳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됐다.
하퍼스 바자 서로를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였나요?
듀란 랜팅크 어릴 때 이모와 어머니가 입은 장 폴 고티에 옷을 보면 정말 설레었어요. 그 옷에는 자유와 밤의 문화가 담겨 있었죠. 장 폴 고티에는 그렇게 늘 제 곁에 있었어요.
장 폴 고티에 아마 TV에서 당신을 처음 봤을 거예요. ‘오,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다르네’라고 생각했죠. 옷에서 전해지는 에너지가 젊은 시절의 저를 떠올리게 했어요. 스트라이프를 활용한 작업도 기억나요.
듀란 랜팅크 맞아요. 처음부터 그랬죠!
장 폴 고티에 그렇죠. 하지만 당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냈어요. 스트라이프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좋아, 우리에게는 통하는 무언가가 있구나.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표현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네.’ 그러고는 속으로 말했죠. ‘오, 새로운 고티에네.’
하퍼스 바자 다른 디자이너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요?
장 폴 고티에 현역 시절에는 굳이 찾지 않아서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은퇴한 뒤에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뚜렷하면서 제 작업과 흥미로운 연결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디자이너들을 찾았죠. 첫 번째는 사카이의 디자이너 아베 치토세였어요. 그녀는 자신만의 감성을 불어넣었죠. 그리고 듀란, 당신에게서는 제 모습이 조금 보여요. 당신이라는 걸 너무나 확신했죠.
듀란 랜팅크 그렇게 말씀하시니 쑥스럽네요! 저는 그 에너지를 이어가려고 노력해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자유와 실험 정신이야말로 고티에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지 마음껏 시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즐겁죠.
장 폴 고티에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정규 패션 스쿨 과정을 밟지 않았거든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여러 쿠튀리에에게 스케치를 보냈는데, 피에르 가르뎅이 저를 받아주겠다는 답장을 보내왔어요. 그전까지는 아무런 경험도 없었죠. 그 일을 통해 배웠어요. 무언가가 좋다는 확신이 있다면 스스로를 믿어도 된다는 걸요. 꼭 다른 조건까지 갖춰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만들고 싶은 옷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퍼스 바자 하우스의 창립자가 자신의 브랜드를 다른 디자이너에게 넘기는 순간을 함께하는 경우는 흔치 않죠. 창립자가 이미 세상을 떠난 하우스도 많으니까요.
장 폴 고티에 후임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패션 디자이너는 그리 많지 않아요. 대기업이 들어와 모든 것을 바꾸려는 경우가 많죠. 자부심이 지나친 말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하우스도 있다고 생각해요. 허나 우리 하우스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봐요.
듀란 랜팅크 맞아요. 중요한 건 고티에가 남긴 것들을 어떻게 가지고 노느냐죠. 저는 처음 떠오른 생각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바로 고티에의 세컨드 라인 ‘주니어 고티에(Junior Gaultier)’였죠. 거칠고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어린 시절, 장 폴 고티에를 처음 알아가던 때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그때 제가 알던 고티에는 신나는 밤을 떠올리게 했어요. 장난기 넘치고 색도 다채로웠죠. 고티에가 펼쳐온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해요. 두 번째 쇼에서는 매니시한 여성상을 그려보고 싶었고요. 그 안의 다양한 캐릭터를 조금씩 알아가는 게 즐거워요. 고티에의 세계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요. 얼마든지 비틀고 가지고 놀면서 지금 시대에 맞게 풀어낼 수 있죠. 과거의 컬렉션이 지금도 생생하고 흥미로운 만큼, 새로운 컬렉션 역시 그만큼 매력적이어야 하니까요.
하퍼스 바자 첫 컬렉션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죠!
장 폴 고티에 좋은 일이죠! 완벽해요.
듀란 랜팅크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보통은 이틀쯤 지나면 논쟁이 잦아들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2주가 지나도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었어요. 좀처럼 가라앉지 않더라고요.
장 폴 고티에 사람들은 제가 선보인 쿠튀르만 기억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쿠튀르를 시작한 건 1997년이었죠. 그전에는 끊임없이 충격을 던졌어요. 누군가가 정해놓은 ‘시크’라는 기준에 강하게 반발했죠.
하퍼스 바자 흥미롭네요. 2026년이면 세상이 좀 더 진보했을 법한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듀란 랜팅크 저희도 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1980년대에는 훨씬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시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고요. 정말 위험한 흐름이에요.
장 폴 고티에 1980년대는 펑크 운동 직후였잖아요. 런던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중심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죠. ‘평화와 사랑’을 외치던 시대가 지나갔으니, 패션에도 더 거친 에너지가 필요했던 거예요.
듀란 랜팅크 가끔은 펑크 같은 혁명적인 움직임이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런 움직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거든요. 반항과 음악에서 시작해 예술과 패션으로 번지고, 그러다 또 다른 무언가로 발전하죠. 하지만 2026년인 지금은 소셜미디어뿐이에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분노하며 작은 파장을 일으키지만, 정작 달라지는 건 없죠.
하퍼스 바자 저는 고티에가 늘 서브컬처와 퀴어 문화,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기꺼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삼아왔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기도 했고요.
장 폴 고티에 예전에 역사가 오래된 전통적인 쿠튀르 하우스들에서 일했을 때 그곳의 사고방식에 충격을 받았죠. 무엇이 시크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어요.
듀란 랜팅크 지루하죠!
장 폴 고티에 정말 지루했어요. 제 세대와는 전혀 맞지 않았죠. 저 혼자 “아니, 이건 정말 끔찍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제 컬렉션을 선보일 때는 기존의 쿠튀르 방식을 따르고 싶지 않았죠.
듀란 랜팅크 서로 다른 서브컬처를 뒤섞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게 정말 멋져요. 이제 저는 그 세계를 어떻게 가지고 놀지 고민하고 있어요. 아직 답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일단 해보면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려고요. 결국에는 제 나름의 표현 방식이 될 테니까요. 어렵지만 재미있죠.
하퍼스 바자 듀란은 올여름 첫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였죠. 오늘날 쿠튀르는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요?
듀란 랜팅크 쿠튀르는 정말 흥미로워요. 제가 해온 작업에도 늘 어느 정도 쿠튀르적인 면이 있었어요. 첫 컬렉션에서는 기술과 장인의 노하우를 어떻게 결합할지 고민했어요. 수작업과 기계 작업을 접목하면서 가장 좋은 균형을 찾고 싶었죠. 옷에서 생명력이 사라지는 건 원치 않아요. 기계는 자칫 생명력 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사람의 손에는 만드는 이의 혼이 담겨 있잖아요. 그 둘을 어떻게 결합할지가 과제예요.
장 폴 고티에 좋아요. 실험적이네요!
듀란 랜팅크 첫 쿠튀르 쇼에서 실제로 입기 좋은 옷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어요. 제 첫 컬렉션은 확실히 그런 쪽은 아니지만요!
장 폴 고티에 제가 왜 그랬는지 알아요? 1997년이었기 때문이에요. 당시 쿠튀르 하우스들은 그 시대의 감각을 지닌 디자이너들을 영입해서 쿠튀르를 한층 과장된 기성복처럼 만들려고 했어요. 현대적으로 보이려고 너무 애쓴 나머지, 정작 자신들이 하는 작업의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죠. 전혀 새롭지 않았어요.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반대 방향으로 갔어요.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옷을 만들고 싶었죠. 오히려 그게 더 반항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듀란 랜팅크 지금은 쿠튀르가 레드 카펫을 위한 옷이 됐죠. 저는 그게 때로 어렵게 느껴져요. 당신과 마돈나의 작업은 40년 가까이 이어온 관계에서 나온 것이잖아요. 그러니 자연스럽고 힘이 있죠. 하지만 요즘은 디자이너에게 아무런 인연도 없는 셀럽들의 옷을 맡기려 해요. 서로 무슨 연결고리가 있겠어요? 그걸 협업이라고 할 수는 없죠. 저는 진심으로 존경하는 아티스트를 찾아 그 사람의 옷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 폴 고티에 마돈나와 저는 통하는 게 있었어요. 그녀는 남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봤죠. 바로 제가 관심을 갖던 주제였어요. 남성성이란 무엇이고,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제 작업의 상당 부분이 그 질문에서 출발했거든요. 마돈나와의 작업에는 진정성이 있었어요. 그녀는 패션을 사랑했고,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일부였으니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고요.
듀란 랜팅크 당시에 스타일리스트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것도 좋았어요. 셀럽들이 직접 옷을 골라 입었으니까요.
하퍼스 바자 마돈나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스럽게 도발과 충격, 예술성이 떠오르네요. 패션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죠.
듀란 랜팅크 재미있게도 저는 제가 도발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저 저를 설레게 하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이죠. 그게 도발적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려워요. 누군가에게는 도발적이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제가 정할 수는 없잖아요.
장 폴 고티에 다만 도발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요. 억지로 꾸며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자신이 느끼는 무언가에서 비롯돼야 하죠. 어떤 면에서 지금의 패션계는 예전보다 작아졌어요. 잡지는 줄었는데 쇼의 규모는 커졌죠. 때로는 아이디어보다 돈이 더 중요해 보여요.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느냐가 더 중요해진 거죠.
하퍼스 바자 두 분을 두고 사람들이 ‘악동’이라고 표현하는 게 흥미로워요. 장 폴은 커리어 내내 그렇게 불려왔고, 듀란 또한 그런 수식어를 얻고 있죠.
듀란 랜팅크 그 타이틀을 저에게 넘겨주신 거네요.
장 폴 고티에 ‘프랑스 패션계의 악동’이라는 표현이 맘에 들었어요.
하퍼스 바자 사람들은 장 폴 고티에를 떠올리면 클럽을 비롯한 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 같아요.
장 폴 고티에 다들 제가 매일 밤 놀러 다니는 줄 알았어요. 사실은 전혀 달랐죠. 저는 늘 일만 했다고요! 영감은 주로 거리에서 얻었어요. 무언가를 보고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좋았어요. 잘못 해석한 것이 영감이 되기도 하니까요.
듀란 랜팅크 거리에서 무언가나 누군가를 보고 “정말 멋지다” 싶을 때가 있잖아요. 나중에 그걸 조금 다르게 기억하면서 이미 새로운 무언가로 바꾸고 있는 거죠.
장 폴 고티에 우리는 운이 좋아요.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원해서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즐겨야죠.
듀란 랜팅크 가끔 출근길에 웃음이 나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어서요. 기분이 좋죠. 물론 늘 그렇지는 않아요. “아, 다 때려치워!” 싶은 순간도 많거든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들이 참 좋아요. 그 힘으로 나아가는 거죠.
Credit
- 글/ Osman Ahmed
- 번역/ 채원식
- 사진/ Ava Van Osdol(인물), Launchmetrics(런웨이)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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