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는 왜 '저예산' 작품을 찍을까?
천만 감독이 자의로 택한 순환 사이클...'얼굴'과 '실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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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 <반도> 포스터
<부산행>(2016)으로 첫 상업 영화 흥행을 일궈낸 뒤, 연상호 감독은 <반도>, 넷플릭스 <정이>, <지옥>, <계시록>, 그리고 올 상반기 전지현·구교환·지창욱을 앞세운 <군체>까지 대규모 프로젝트를 쉼 없이 이어왔다. 그런 그가 유독 자꾸 돌아가는 자리가 있다. 자본과 규모를 스스로 덜어낸 '저예산' 작품이다. 지난해 <얼굴>에 이어 오는 10월 21일 개봉하는 <실낙원>까지, 그는 왜 자본의 안락함을 뒤로한 채 이 좁은 문을 다시 여는 것일까.
시작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포스터
애니메이션 <사이비> 포스터
'연상호'라는 작가적 인장이 찍힌 출발점은 거친 독립 애니메이션이었다. 학교 폭력을 정면으로 고발한 <돼지의 왕>(2011)과 종교의 맹목성을 비틀어낸 <사이비>(2013). 그는 자본의 규모 대신 사회적으로 첨예한 소재와 어둡고 거친, 그로테스크한 화법으로 충무로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후 <부산행>으로 상업 영화의 정점에 서고 <지옥>, <괴이> 같은 대형 시리즈로 영역을 확장하는 사이, 초기작을 지탱했던 특유의 저예산 감각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얼굴>, 자비 제작으로 복원한 창작의 자유
영화 <얼굴> 포스터
영화 <얼굴> 포스터
영화 <얼굴> 스틸
그 감각을 다시 수면 위로 건져 올린 계기는 지난해 개봉한 <얼굴>이었다. 시각장애를 딛고 일어선 전각 장인 아버지 임영규(권해효)와, 태어나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의 40년 전 죽음을 추적하는 아들 임동환(박정민)의 이야기다. 현장은 스태프 20여 명과 단 3주간의 일정으로 컴팩트하게 꾸려졌고, 제작비 상당액을 연상호 감독이 직접 투자로 충당했다. "투자를 받으면 책무감이 생기는데, 직접 투자하니 마음이 편했다. '내 마음대로 해보자'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상업적 눈치 보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결과물이었다. <얼굴>은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초청으로 작품성을 공인받은 데 이어, 국내에서도 누적 관객 108만을 기록하며 저예산 제작 모델의 강력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실낙원>, 멈출 수 없는 해방의 질주
영화 <실낙원> 스틸
자본의 간섭 없이 온전히 이야기를 통제했던 짜릿한 경험은 곧바로 차기작의 동력이 됐다. 연상호 감독 스스로 "<얼굴>에서 맛본 그 순수한 즐거움에 중독됐다"고 밝힌 영화가 바로 <실낙원>이다. 9년 전 실종됐던 아들(배현성)이 살아 돌아오며 모순된 진실에 직면하는 엄마(김현주)의 심리를 옥죄는 이 스릴러는, 불과 14회차라는 극한의 기동력으로 완성됐다. 군더더기를 털어낸 연출의 힘은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월드 프리미어 호평으로 직결됐고, 2년 연속 같은 무대에 서며 그의 '저예산 행보'가 지닌 단단한 경쟁력을 글로벌 시장에 각인시켰다.
영화 <군체> 포스터
넷플릭스 일본 시리즈 <가스인간> 한국어 포스터
이 기이한 행보의 해답을 연상호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순환론'에서 찾는다. "상업영화를 하면서 저예산 영화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상업영화 스트레스는 남의 나라 시리즈를 하면서 풀고, 그 스트레스는 저예산 영화를 찍으며 날린다." 실제로 올해도 블록버스터 <군체>, 일본 현지 프로덕션 <가스인간>, 저예산 <실낙원>이 나란히 그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 세 갈래 궤도를 맞물려 돌리는 것, 그것이 거대해진 산업 속에서 그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인 셈이다.
Credit
- 사진 / 넷플릭스·KT&G 상상마당·NEW·CJ ENM MOVIE·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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