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만의 마라톤은 왜 특별할까?
지금 접수 중인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부터, 후지산 속 100마일, 그리고 서울을 누비는 여성 크루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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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마라톤 출전이 금지됐던 시대를 지나, 이제 여성들은 100마일까지 달린다.
-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부터 라 파리지엔, 서울 여성마라톤까지 여성 러너를 위한 국내외 대회를 모았다.
- 혼자보다 함께 달리고 싶다면 서울 곳곳을 누비는 여성 러닝 크루와 커뮤니티도 주목할 것.
왜 여성 마라톤만 있을까
사진/ Unsplash
오랫동안 모든 마라톤 대회는 오직 남성들을 위한 마라톤이었다. 마라톤은 전쟁의 승전보를 알리는 달리기에서 시작된, 태생부터 남성들의 경기였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까지 여성의 마라톤 출전이 금지돼 있었는데, 이는 여성이 오래 달리면 다리가 굵어지고 자궁이 떨어질 수 있다는 낭설 때문이었다. 1967년 당시 올림픽에서 여성에게 허용된 가장 긴 트랙 종목은 800m. 42.195km가 아니라, 고작 800m였으니까.
그런데 같은 해 열린 보스턴 마라톤에 스무 살의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가 불쑥 나타난다. 당시 대회 신청서에는 성별을 적는 칸조차 없었다. 여성이 오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이니셜을 쓰면 성별 구분이 어렵다는 것을 이용했는데, 'K. V. 스위처'라고 적어 낸 신청서는 무사히 통과되어 733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6km 지점에서 여자가 달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 대회 감독관이 그녀를 끌어내리려 했다. 그러나 스위처는 손길을 뿌리치고는 피투성이가 된 발로 4시간 20분간 끝까지 달렸다. 감독관이 트랙으로 달려들던 순간을 담은 사진은 라이프 지가 선정한 '세상을 바꾼 100장의 사진'에 올랐다.
‘우먼스 마라톤’의 역사
사진/ Jeff Johnson 제공
스위처는 완주에서 멈추지 않고, 27개국에 여성 전용 달리기 대회를 만들며 1984년 올림픽에 여자 마라톤이 생기는 길을 닦았다. 2015년에는 비영리단체 '261 피어리스'를 세워 지금도 전 세계 여성의 달리기를 지원하고 있다. ‘261’은 감독관이 뜯어내려 했던 스위처의 배번이다. 당시에는 실격 처리됐지만, 훗날 협회 측은 그녀의 도전정신을 기려 참가번호 261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2017년 보스턴 마라톤에는 70세의 스위처가 그 261번을 다시 달고 출전해 50년 만에 같은 코스를 완주했다. “내 어깨가 젖을 정도로 많은 여성들이 품에 안겨 울었다”는 스위처의 말이 인상적이다. 1971년 뉴욕 마라톤이 세계 최초로 여성 참가를 허용했을 때, 출발선에 선 여성은 다섯 명. 여자 마라톤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건 1984년, LA 대회에 이르러서다. 여성이 마라톤을 '공식적으로' 달린 역사가 겨우 60년이 되어가는 셈이다. 여성 마라톤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응답이다. 출발선에 서기까지 반세기가 걸린 사람들을 위한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것.
주목! 달리는 여성을 위한 대회 5
1. 반짝반짝 바카라를 들고,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
보통 여성의 날(3월 8일)을 기점으로 개최되는데, 2027년인 내년은 3월 14일에 열린다. 세계 최대 여성 전용 마라톤으로, 내년은 정원을 무려 2,000명 늘려 총 22,000명의 여성이 42.195km를 달린다. 참가 자격은 19세 이상이면 가능하다. 완주 선물이 매우 특별하다. 과거엔 턱시도 차림의 진행자가 결승선에서 티파니 펜던트를 걸어줬고, 현재는 260년 역사의 크리스털 하우스 ‘바카라’가 대회를 위해 제작한 텀블러를 완주자 전원에게 수여한다. 충분한 의료 지원과 여유 있는 화장실·탈의 공간을 대회 원칙으로 명시해둔 점도 특별한 점. 해외 거주자 대상 접수가 이미 지난 8월 11일에 열렸다. 이 마라톤을 목표로 한다면 가을과 겨울 훈련은 지금 시작하기에 적기다.
2. 후지산 속 여자들만의 100마일, ROUND GIRLS 100
800m만 뛰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과 달리, 이제 여자들은 100마일(160km)을 달린다.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시에서 열리는 대회의 부제는 '여성 러너가 프로듀스하는 여성만의 100마일 레이스'. 39세에 트레일러닝을 시작해 다수의 울트라 트레일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일본의 트레일 러너이자 코치 우에키 카오(Ueki Kao)가 디렉팅을 맡았다. 일과 가사, 육아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고 있는 여성들이 처음 100마일에 도전할 때 스트레스 없이 달릴 수 있는 레이스를 만들겠다는 것이 출발점이라 더욱 특별하다. 100마일이라는 거리가 아득하다면 20km, 40km, 100km 부문도 함께 열리니 부담 갖지 말자. 20km 원형 코스를 여러 번 도는 방식이다. 100마일(160km) 종목은 8바퀴를 돌아야 하고, 100km 종목은 5바퀴를 뛰어야 한다. 100km 종목의 경우 누적 고도는 2700m다. 혼자서 참가해도 여성 러너들뿐이라 마음 맞는 친구가 생긴다는 후기가 대부분이다. 대회 첫 회부터 참가비 일부를 유방암 조기 검진을 알리는 핑크리본 운동과 여성 건강을 위한 화이트리본 캠페인에 기부해왔다.
3. 에펠탑을 보며 즐겁게 달리기, 라 파리지엔
꼭 달리기가 완주와 도전의 서사여야 하는 건 아니다. 파리 시내를 누비는 ‘라 파리지엔’은 하나의 축제를 표방한다. 올해는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열리는데, 달리기와 걷기 중에서 원하는 방식을 고를 수 있다. 보통 코스는 매년 조금씩 달라지지만, 이에나 다리에서 출발해 샹젤리제, 콩코르드 광장, 그랑 팔레, 앵발리드 등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를 지나게 된다. 무료 페스티벌과 요가 클래스, 깜짝 이벤트도 함께 즐길 수 있다고. 여성을 향한 폭력에 맞서 밤길을 함께 달리는 야간 연대 레이스 '리레즈의 밤'도 진행된다. 완주 기록보다 파리의 거리를 여자들이 채운다는 사실 자체가 대회의 진짜 의미일 것.
4. 산 달리는 아우라 뿜뿜, 우먼스 아우라 트레일
사진/ 쉘코퍼레이션 제공
'달리는 여자의 아우라'라는 이름으로, 오는 9월 13일 안성시 금광호수에서 열리는 여성만을 위한 트레일 러닝 대회. 대회의 주최는 건강한 라이프를 지향하는 지속가능 아웃도어 패션 브랜드 쉘코퍼레이션이다. 매출의 1%를 환경·여성 단체에 기부하고, 여성 트레일러닝 입문 프로그램 '걸스 온 더 트레일'을 직접 운영한다. 루프 방식으로 한 바퀴(5km)부터 최대 4바퀴, 원하는 만큼 도전할 수 있어서 트레일러닝이 처음인 사람도 부담 없이 자신의 체력과 컨디션에 맞게 코스를 설정할 수 있으니 충분히 소화 가능할 것. 보다 자세한 사항은 대회 인스타그램(@womens_aura_trail)을 참고하자.
5. 부케 들고 유아차 끌고, 서울 여성마라톤
국내에도 26년이나 된, 여성을 위한 달리기 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2001년 시작해 서울시와 여성신문사가 함께 여는 여성마라톤이다. 매년 5월 상암 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 7,000명이 모인다. 유아차에 아이를 태운 부모, 반려견과 함께 나온 참가자, 외국인 러너, 부케를 들고 달리는 사람들 모두 하늘색 기념 티셔츠를 입고 같은 출발선에 선다. 눈여겨볼 건 '동행달리기'다. 참가권을 두 장 사면 한 장이 아동복지시설 아이들에게 전달되어 아이들도 함께 달리게 된다. 올해 10km 코스는 일찌감치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다 같이 달리자, 서울을 누비는 여성 러닝 크루 4
여성 러닝 커뮤니티의 활발한 활동은 이미 전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기도 하다. 나이키는 인도 최대의 여성 전용 스포츠 커뮤니티인 '시스터즈 인 스웻'을 자체 브랜드 매거진에서 조명하기도 했다. 국내를 누비는 여성 러닝 크루와 커뮤니티를 소개한다.
1. 서울비너스(@seoulvenus)
2013년 서울 기반 러닝 크루 ‘PRRC’의 여성 러너 트레이닝 세션인 '비너스런'에서 출발했다. 여성들이 러닝을 통해 자신만의 속도를 찾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시작이었다고. 이제는 나이, 경험과 무관하게 열린 곳으로 점점 확장해 나가고 있다. 매주 바뀌는 훈련 장소와 집합 시간, 페이스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지되고, 별도 신청 없이 그 주의 장소로 가면 된다. 초보 러너부터 마라톤 완주자, 러닝 코치까지 다양한 여성 러너들이 함께한다.
2. 다뛰여(@feministrunningmate)
사진/ 다뛰여 인스타그램
2024년, 국내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 소장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크루다. 페미니스트 정치 친구를 만들어가고, 다시 뛰는 여성 정치를 염원하고 응원한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서울 상암에서 정기런을 진행한다. 토요 LSD 커피런, 금요 인터벌, 홍제천 빵런, 한강 야간런 등 다양한 러닝 라이프를 즐긴다. 함께 달리는 일이 여전히 연대가 될 수 있다는 걸 몸소 달리며 매주 증명하는 중이다.
3. 굿러너시스터즈(@goodrunner_co)
러닝 전문 편집숍 굿러너컴퍼니가 2022년부터 시작한 여성 러너 커뮤니티로, 목표를 정해 기수제로 운영한다. 매년 11월 굿러너가 개최하는 긍정 하프 마라톤이나 운탄고도스카이레이스 등 트레일러닝 대회 완주를 목표 삼는다. 혼자 도전하기 어려웠던 거리나 지형을 함께 통과하게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러닝을 통해 얻는 긍정적인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이윤주 대표의 말에서도 취지를 알 수 있다.
4. 필레이디(@feellady_girlcrush)
2016년에 시작한 국내 대표 여성 크루다. 달리기를 중심으로 마라톤, 트레일러닝, 사이클, 수영, 철인 3종 등 여러 아웃도어 스포츠를 함께 즐긴다. 세계 여성의 날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등에 기념 러닝 행사를 열고 기부 활동도 진행한다. 기수제로 운영해 신규 멤버를 모집하는데, 만약 신청을 못 했거나 선정이 되지 않더라도 게스트로 참여할 수 있다. 매주 목요일에 정기런이 열리는데, 로드뿐만 아니라 트레일러닝도 함께 진행한다. 자세한 일정은 인스타그램을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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