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CWI 2026, 그 뜨거운 현장 속으로
펠로우 3인이 말하는 여성, 커리어 그리고 꿈에 대하여.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THE POWER OF HER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2026년 에디션의 주제는 ‘길을 밝히는 여성들(Women Lighting the Path)’이었다. 길을 밝힌다는 것은 앞장서 걸어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뒤따라오는 누군가가 조금 덜 외롭게 걸을 수 있도록 불을 밝혀두는 일이기도 하다.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어워드 2026에서 그 놀라운 여성 연대의 힘을 목격하다.
“당신이 너무 작아서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방에 모기와 함께 잠을 자보세요. 우리는 방 안의 모기랍니다.” 방콕에서 열린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 이하 CWI)의 라운드테이블. 네덜란드 스킨케어 브랜드 푸드 포 스킨(Food for Skin)의 창업자 안젤라 우르섬이 말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지만, 곧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밤을 지배하는 것은 커다란 맹수가 아닌 작은 모기 한 마리다. 프랑스의 엘리스 토렐은 난민과 이주 여성 셰프들의 케이터링 기업 마리커리(Marie Curry)를 소개하며 “가정 요리의 75%는 여성이 하지만 전문 셰프의 10%만이 여성”이라는 현실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오메나 테크놀로지스(Omena Technologies)를 공동 창업한 박하현은 폐경을 더 이상 혼자 견뎌야 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할 건강 의제로 끌어올렸다. 한국의 김정은은 잼잼테라퓨틱스(GemGem Therapeutics)의 재활 게임으로 장애 아동들이 병원을 떠난 뒤에도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고, 미국의 키일리 캣웰스는 메이킹 스페이스(Making Space)를 통해 장애인이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일터를 조성하고자 한다. 그녀들이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 것이다. 안젤라의 은유처럼, 세상을 바꾸는 건 영웅이 아니라 작고 끈질긴 존재들이다.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두짓타니 방콕에서 열린 ‘까르띠에 다이얼로그’는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CWI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는 대화였다. 시릴 비그네론 까르띠에 문화 및 인류애 프로젝트 의장은 첫 번째 주제 ‘내면의 빛을 드러내다: 임포스터 증후군과 진정성 있는 리더십으로 가는 길’ 서두에 이렇게 말했다. “임포스터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만큼 이상하거나 드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니까요.” 이어서 심리학자 리사 오르베-오스틴이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첫 직장에서 그는 상사에게 공개적으로 무시당했고, 자신보다 적은 업무를 맡은 동료가 더 높은 급여를 받는 현실도 견뎌야 했다.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지만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스스로 자신의 커리어를 선택할 자격이 있다고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여성 임원 회의에서 찾아왔다. 누군가 회의실에 흐르던 음악을 가리키며 “무슨 음악인가요?”라고 묻자 누군가 대답했다.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입니다.” 리사는 그제야 자신이 겪는 일이 개인의 나약함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회사를 떠났고, 그 경험은 훗날 임포스터 증후군을 연구하는 심리학자가 되는 출발점이 됐다. 성공한 여성 리더들조차 자신의 자리를 의심하고, 능력을 과소평가하며, 때로는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
방콕에서 만난 서른 명의 여성 창업가들 역시 그 시간을 지나 온 사람들이었다. 사업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까지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던 사람들. 투자자 앞에서, 회의실에서, 고객 앞에서 “내가 정말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싸워온 시간은 국적과 산업을 막론하고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클루니 정의 재단의 공동 설립자 아말 클루니가 CWI의 가장 큰 자산으로 ‘자매애(Sisterhood)’를 꼽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방콕에서 내가 목격한 서른 명의 펠로는 경쟁자보다 동료에 가까웠다. 서로의 성취를 축하하고, 실패를 위로하고, 가치를 공유했다. 같은 여성이기에 가능한 연결이었다. 다음 페이지에서 만나는 김효정, 루비 리스뮐러, 마리크루스 라레아 페레스도 그중 하나다. 그러니까, 이들이 전하는 여성 연대, 선한 영향력 그리고 성취의 기쁨은 우리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커리어를 일구며 살아가는 동시대 여성이라면 한번쯤 귀 기울일 만한 이야기들. 그녀들이 밝힌 길을 따라가보자.
연결된 여성들
김효정은 여성 여행 커뮤니티 플랫폼 노매드헐(NomadHer)의 창업자이자 CEO다. 그녀는 스무 살에 혼자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공용 숙소에서 한 남성이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한동안 여행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라는 질문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대답 대신 그녀가 발견한 건 전 세계 여성의 80% 이상이 혼자 여행하기를 원하지만 74%가 안전 문제로 주저한다는 사실이었다. 여성의 안전한 여행을 돕는 노매드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는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She Can Travel Anywhere). 노매드헐의 모토다.
하퍼스 바자 스무 살, 혼자 떠난 이탈리아 여행이 노매드헐의 출발점이 됐어요.
김효정 처음부터 창업해야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없었습니다. 여행을 하다가 좋지 않은 일을 겪었고, 그 충격으로 거의 1년 동안 여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제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았더라고요. 여행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트라우마를 극복해서 다시 떠나는 것.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나도 다시 여행할 수 있다면 다른 여성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으로 시작한 서비스였어요. 창업도 제게는 치유의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가장 이기적인 동기가 가장 오래 간다고 믿어요. 제가 쓰고 싶어서 만들었는데 다른 여성들도 같은 필요를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하퍼스 바자 유럽 밖에서 혼자 여행해본 적 없는 여성이 78%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한국의 수치도 크게 다르진 않을 듯합니다. 반대로 노매드헐의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혼자 여행한 적이 있거나 기꺼이 혼자 여행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요. 이 간극은 어디에서 온다고 보나요?
김효정 나이와 상황에 따라 이유는 조금씩 달라요. 스무 살 전후에는 부모님의 반대나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시간을 내기 어렵죠. 은퇴 이후에는 시간도 있고 경제적인 여유도 생기지만 혼자 여행하는 문화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요. 결국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이 큰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여성이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한 번쯤은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해보고 ‘혼자하는 여행은 나랑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두려워서 출발조차 하지 못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하퍼스 바자 까르띠에와 노매드헐은 여성 연대의 힘을 믿는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까르띠에는 여성이 메종의 원동력이며 영감의 원천이라고 믿고, 노매드헐 역시 여성 커뮤니티의 힘을 긍정하기에 가능한 비즈니스죠. 살아가는 동안 여성 연대의 힘을 실감한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김효정 탈린에 갔을 때였어요. 하필 제가 도착한 날이 그 나라의 가장 큰 국경일이라 숙소가 전부 매진된 상태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한 여성분이 “그럼 우리 집에 와서 가족들과 하루 지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또 한 번은 베니스에서 공연을 보고 돌아가던 길이었어요. 기차가 모두 매진됐는데 한 여성분이 “그럼 같이 새해 일출을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낯선 도시에서 밤을 보내며 긴 이야기를 나눴죠.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 여성들은 서로를 아주 자연스럽게 돌본다는 사실입니다. 노매드헐도 결국 그런 경험에서 출발했습니다. 얼마 전 프랑스에 계신 한 어머니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딸이 한국을 여행하던 중 24시간 넘게 연락이 끊겼다는 거예요. 마지막 연락은 새벽 세 시, 술에 취한 채 낯선 남성들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뿐이었습니다. 저희도 커뮤니티 안에서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사람들을 하나씩 찾기 시작했고, 결국 응급실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홍대에서 약물이 든 술을 마신 상황이었어요. 그 일을 해결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결국 사람을 지켜주는 건 기술보다 연결이라는 걸요. 노매드헐이 모든 위험을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순간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용기를 채워줄 수 있다고 믿어요.
하퍼스 바자 혼자 여행하는 여성들이 안심하고 여행하려면 커뮤니티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대사관이나 경찰, 지방정부 같은 공공기관과의 협력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효정 그래서 정부 기관이나 여성 안전 커뮤니티와의 파트너십을 계속 확대하려고 합니다. 국가마다 접근 방식도 조금씩 달라요. 많은 분들이 인도는 혼자 여행하기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남인도는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도시 차원에서 여성 친화적인 관광 환경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거든요. 제가 자주 찾는 인도 남부 케랄라(Kerala)는 ‘여성 여행자가 여행하기 안전한 도시’를 캠페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와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요. 한국에서도 ‘성인지 관광’이라는 개념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습니다. 관광 산업 전반을 젠더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호텔이나 관광업 종사자들도 여성 여행자의 경험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거죠. 저는 노매드헐이 이런 움직임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하퍼스 바자 몇 년 동안 지원을 망설이다 올해 CWI에 도전했습니다. 무엇이 마음을 움직였나요?
김효정 창업 초기부터 지원서를 여러 번 열었다 닫았습니다. 당시에는 질문조차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펀드레이징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기업 가치는 얼마인지, 실제 경영 경험이 없으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처음으로 ‘이제는 준비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CWI가 던지는 질문이었어요. “당신의 엔드 게임은 무엇인가?” 창업을 통해 정말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죠.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걸까, 유명해지고 싶은 걸까. 저는 여든 살에도 서핑을 즐기고, 여전히 제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노매드헐의 의장으로 일하면서,재단을 만들어 오래도록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꿈꿉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이 사업을 지속 가능하게(sustainable) 만들 수 있을지, 덕분에 저의 고민은 거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로컬 여성들이 자기가 원하는 여행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여행 상품을 팔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어떨까, 요즘은 이런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있어요.
하퍼스 바자 젊은 여성 CEO로 일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많을 텐데 지치진 않나요?
김효정 미팅에 가면 저와 동행한 남자 직원에게 먼저 인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예요. “제가 대표입니다”라고 소개해야 깜짝 놀라며 저를 바라보곤 합니다. 예전에는 그런 상황이 힘들었는데 요즘은 생각을 바꿨어요. 제가 젊은 여성인 것이 약점이라면 오히려 그걸 강점으로 바꾸면 된다고요. 더 참신하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브랜드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CWI의 좋은 점이 매년 새로운 창업가에게 상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기존의 펠로에게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거예요. 작년엔 기존의 펠로를 대상으로한 어워드도 진행되었죠. 이번 펠로들끼리도 그런 말 자주했어요. “너무 힘들지만, 우리 조금만 더 해보자.” 아말 클루니도 오늘 아침 저희 펠로들과 아침 식사를 하면서 “우리 재단 행사에 여러분을 초대하는 방안을 까르띠에 팀과 논의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이 꼭 이렇게 들렸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요. 하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거예요. 힘내요.’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일의 가치에 대하여
루비 리스뮐러(Ruby Riethmuller)는 호주의 정신건강 플랫폼 우먼카인드(Womn-Kind)의 창업자이자 CEO다. 광활한 국토를 가진 호주에서 지역 청소년은 도시의 또래보다 정신건강 서비스를 접할 기회가 훨씬 적다. 시골에서 성장하며 그 현실을 몸소 겪은 그는 청소년을 위한 정신건강 서비스가 사는 곳을 막론하고 모두의 일상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먼카인드는 앱, 워크숍, 멘토링을 통해 젠더 다양성을 지닌 청소년이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퍼스 바자 수년 전 호주를 여행하며 뉴사우스웨일스(NSW)의 아름다운 풍경에 완전히 매료된 기억이 있습니다만 동시에 꽤 외딴 지역이라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보낸 청소년기가 우먼카인드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죠.
루비 리스뮐러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에서의 성장기는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복잡한 시간이었습니다. 드넓은 목초지와 끈끈한 공동체, 자연과의 깊은 유대는 지금도 제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지방에서 자란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현실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기회와 지원, 서비스는 언제나 내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죠. 10대였던 저는 불안과 씨름하며 제 정체성을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외부와 단절돼 있다는 감각, 막막함과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통을 혼자 감당했고요. 시간을 지나 돌아보니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래들 역시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그저 기회가 닿지 않았을 뿐죠. 제가 자란 지역의 인구는 25만 명이 넘지만, 지금도 정신과 의사는 단 두 명뿐입니다.
하퍼스 바자 도시 밖에 사는 청소년도 대도시 청소년과 같은 수준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 우먼카인드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루비 리스뮐러 지금까지 호주를 비롯해 37개국에서 5만 명이 넘는 청소년과 함께해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먼카인드는 처음부터 지방과 농촌, 오지에 사는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로 설계되었어요. 현재 저희가 만나는 청소년의 65% 이상이 대도시 밖에 살고 있습니다. 저희는 학교에서 워크숍을 열고, 청소년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어디에 살든 필요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지원 받을 수 있도록 디지털 플랫폼을 운영합니다. 시드니 한복판에 살든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든, 누구나 같은 수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청소년은 자기 자신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고, 지금 사는 지역의 크기가 미래의 가능성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하퍼스 바자 몇 년 동안 지원을 망설이다 올해 CWI에 도전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루비 리스뮐러 오랫동안 CWI 지원서를 여러 번 받아봤습니다. 지원서를 펼쳐 보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정받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먼카인드와 우리가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잠시 상상하곤 했죠. 하지만 늘 다시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누군가 한 번 더 지원해보라고 권했고, 그때 제 안에서 무언가 달라졌습니다. 비즈니스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여성들과 같은 무대에 설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세상은 종종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로 성공을 판단하지만 CWI는 우리가 세상에 무엇을 남기는지를 바라봅니다. 저 역시 그런 방식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었달까요.
하퍼스 바자 사업성과 사명감의 갈림길에 봉착할 때, 당신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루비 리스뮐러 창업자로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사회적 영향력과 상업적 지속 가능성은 결코 대립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서로가 필요하죠. 우먼카인드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없이 사회적 영향력에만 집중했다면 결국 자원이 고갈되어 더 이상 청소년들에게 다가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수익과 성장에만 집중했다면 존재하는 이유 자체를 잃어버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을 테고요. 제 목표는 영향력과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저는 항상 간단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곤 해요. ‘내가 진심으로 아끼는 청소년이 이 결정의 영향을 직접 받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아니요”라면 그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청소년은 고객이 아니니까요. 이들은 인생에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인간입니다. 저는 그 책임감을 기준으로 모든 결정을 내립니다.
변화를 목도하는 기쁨
마리크루스 라레아 페레스(Maricruz Larrea Perez)는 칠레의 애그테크 기업 팜타스티카(Farmtastica)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다. 쇼핑몰과 슈퍼마켓, 사무실 같은 일상 공간에 모듈형 수직농장을 설치해 식재료가 이동하는 거리를 줄임으로써 더 신선하고 지속 가능한 먹거리 시스템을 제안한다. 채소를 먼 곳에서 실어 나르는 대신 농장을 소비자 가까이로 옮겨 생산과 소비의 거리를 좁히는 것. 미래의 먹거리를 누가 만들 것인가. 여성 리더를 향한 세상의 의구심을 뒤로하고 팜파스티카의 비전은 언제나 이 질문을 향해 있다.
하퍼스 바자 칠레는 물론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가장 신선한 채소를 공급하는 것이 팜타스티카의 목표입니다. 사업을 이어오며 ‘우리가 변화를 만들고 있구나’라고 실감한 순간이 있었나요?
마리크루스 몇 가지 잊지 못할 장면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셰프들이 우리의 살아 있는 채소를 처음 마주한 순간입니다. 며칠 전에 수확하여 운송과 보관을 거친 채소 대신, 주방에서 직접 키우다가 조리 직전에 수확한 채소를 만난 것이죠. 신선함은 물론 맛과 식감, 시각적인 완성도까지 차이를 바로 느끼더군요. 코스타리카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역시 특별했습니다. 우리의 기술과 노하우가 칠레를 넘어 다른 환경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으니까요. 그 경험을 통해 우리의 사업이 물 부족과 기후 변화, 공급망 불안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에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확신도 커졌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변화는 채소를 생산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먹거리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농업이 더 효율적이며 회복력 있는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퍼스 바자 라틴아메리카에서 여성 창업자가 유치하는 투자금은 전체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애그테크는 더욱 남성 중심적인 분야일 텐데요.
마리크루스 벤처캐피털도, 농업도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분야입니다. 애그테크는 그 두 영역이 만나는 곳이고요. 특히 환경 제어 농업처럼 기술 집약적인 분야에서는 창업자나 CEO가 여성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끊임없이 제 신뢰를 증명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여성 창업자는 성장과 가능성보다 위험과 한계에 대한 질문을 훨씬 더 많이 받습니다.
하퍼스 바자 CWI 펠로가 된 뒤 울컥할 만큼 감동적인 순간도 많았을 거라 짐작합니다. 이 경험이 당신의 리더십을 키우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요?
마리크루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여성 창업가로서 마주하는 고민은 서른 명의 펠로 모두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회사를 키워가고 있다는 감각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CWI가 보여준 세심한 배려도 오래 기억에 남고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충분히 가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거든요. 특히 여성 리더가 많지 않은 산업에서 일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인정은 생각보다 훨씬 큰 용기가 되죠. 무엇보다 CWI를 통해 강인한 의지와 분명한 목적을 품고 복잡한 사회 문제에 맞서는 여성 창업가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은 감동적이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야심과 관대함을 함께 품고 더 나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글로벌 여성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낍니다.
※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2027년 에디션은 내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다. 내년 에디션 역시 9개 지역 어워드와 특정 주제인 과학 및 기술 선구자 어워드를 포함한 총 10개 부문으로 운영되며, 선정된 펠로들에겐 비즈니스 확장과 리더십 역량 강화를 위한 재정적·사회적·인적 자원 등 다양한 지원이 제공될 예정이다.
Credit
- 어시스턴트/ 신형진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이 기사엔 이런 키워드!
지금 주목할 트렌드
#자켓, #스타일링, #봄, #셔츠, #액세서리, #트렌드, #청바지, #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