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가 지지하는 1세대 여성 설치미술가들의 작업 세계
보테가 베네타와 리움 미술관의 세 번째 협업이 이루어진 전시 현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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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ONANCE IN OTHER SPACES
리움미술관의 새로운 기획전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은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자 하는 이들이 공명할 수 있는 감각의 장소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감각과 시선이 교차하는 이 여정에, 보테가 베네타는 기꺼이 동행한다.
야마자키 츠루코, <빨강(Red)>, 1956, 야외 구타이 미술전, 아시야 공원, 아시야, 일본, 볼트, 전구, 금속 장치, 비닐, 전선, 목재, 270x360x360cm, 1985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재구성, 야마자키 츠루코 재단 대여, 오사카 LADS 갤러리, 도쿄 타케 니나가와 제공 © Tsuruko Yamazaki. 사진: 홍철기. 리움미술관 제공.
패션과 예술의 만남이 어느 때보다 긴밀해진 지금, 어떤 창작자와 협업하고 어떤 기관과 문화적 파트너십을 맺느냐는 하우스의 정체성을 명민하게 드러내는 방식이자 결정적인 사건이 된다. 빠르게 콘텐츠가 휘발되는 시대일수록 피상적인 시도는 아무런 자극과 영감을 주지 못한다. 보테가 베네타는 고유한 미학적 태도를 각인시켜온 패션 하우스다. 시각예술, 건축, 디자인, 무용, 출판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에서 경계를 넘나들며 하우스의 예술적 언어를 정교하게 구축해온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례로 예술 독립 출판물 <마그마> 매거진을 창간부터 지원했고, 베니스 댄스 비엔날레 프로젝트를 후원하며 무용수의 퍼포먼스 의상을 함께 연출한 바 있다. 최근에는 프랑수아 피노가 이끄는 피노컬렉션이 운영해온 베니스의 전시 공간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2024년 피에르 위그, 2026년 로나 심슨 같은 현재 가장 뜨거운 작가의 전시를 지지하며 동시대 미술 신과의 접점을 확장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브랜드의 태생과 깊이 이어져 있다. 1966년 이탈리아 비첸차에서 장인들의 결합으로 탄생한 보테가 베네타는 ‘수공예’와 ‘창의성’이라는 가치를 기조로 삼아왔다.(비첸차 지역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건축과 금 세공 분야에 뛰어난 장인과 예술가들이 모인 곳이었다.) 60여 년의 시간 동안, 하우스의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촉각적 럭셔리’를 지향하며 손끝에 닿는 가죽의 부드러움과 묵직한 무게처럼 물성의 감각을 각인시키는 데 집중했다. 오직 장인의 손길과 소재로 브랜드 창작 공동체 안에서 예술적 비전을 공유하고 창의성을 도모하는 일은 보테가 베네타에게 공기처럼 일상적인 요소다.
지난 5월 5일 개막한,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하는 리움미술관의 새로운 기획전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여성 설치미술가들을 조명한다. 참여 작가 11인은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작품이 만든 ‘환경’ 안으로 직접 스며들어 감각할 수 있는 몰입형 예술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서로 교집합을 지닌다.
단순히 브랜드와 미술관의 협업을 넘어, 이번 전시는 시대와 공간, 감각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대화에 가깝다. 프리뷰 데이에는 동시대 창작자와 아티스트, 셀러브리티가 한자리에 모여 여성 예술가들의 선구적 작업을 함께 감상했다. 스트레이키즈 아이엔, 미야오 수인, 이나영, 일본 배우 미야자와 리에 등이 현장을 찾았고,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과 가수 정미조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공간의 감각을 더욱 깊게 채웠다. 빛과 소리, 색과 공기, 그리고 움직임까지. 관람객들은 작품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을 천천히 거닐며 감각하는 시간을 경험했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여성 예술가들의 실험적 시도는 오늘의 감각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과거의 언어는 동시대의 시선으로 새롭게 번역된다. 그들의 자취는 시간을 넘어 또 다른 감각의 미래를 향하며, 예술적 대화는 계속될 것이다.
1950년대 브라질의 네오-콘크리트 운동을 이끈 조각가 리지아 클라크, 1960~1970년대 한국의 전위예술 단체 ‘신전동인’과 ‘제4집단’의 거의 유일한 여성 작가 정강자, 1972년 로스앤젤레스에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들의 작업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우먼하우스’를 설립한 주디 시카고. 이번 전시에 참여한 11명의 작가 중 몇몇의 이력만 보아도, 1세대 ‘환경’ 작업을 한 여성 예술가들이 정해진 형식과 규범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도를 모색해 왔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2023년,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예술감독 안드레아 리소니와 밀라노의 박물관 MUDEC 관장 마리나 푸글리에세는 이 전시를 처음 선보이기까지 아시아, 유럽, 남미와 북미 등 전 세계에 흩어진 여성 예술가들의 작업을 면밀히 들여다봤다. 지금 우리가 ‘설치미술’라 부르는 작업의 시작부터 좇았다. 1949년 루초 폰타나가 어두운 공간의 천장에 형광빛 오브제를 매단 작업을 선보이며 이를 <환경(Ambiente)>이라 명명한 이후, 미술계에서는 1970년대 후반까지 이러한 형태의 작업을 ‘환경’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해왔다.
리지아 클라크, <집은 곧 몸: 침투, 배란, 발아, 배출>, 1968,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 브라질, 알루미늄, 풍선, 공, 왜곡 거울, 신축성 있는 천, 폼, 금속, PVC, 목재, 실, 332x720x226cm, 2023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재구성 © Lygia Clark. 사진: 홍철기. 리움미술관 제공.
정강자, <무체전(無体展/Incorporeal Exhibition)>, 1970, 국립공보관, 서울, 대한민국, 인조 가죽, 로우 포그 머신, 색조명, 무빙 라이트, 스포트라이트, 백열등, 라우드스피커, 작가의 목소리, 500x500x500cm, 2026 서울 리움미술관 재구성 © Jung Kangja. 사진: 홍철기. 리움미술관 제공.
여성 작가가 ‘환경’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 최초의 해는 1956년. 구타이 미술전에서 소개된 야마자키 츠루코의 <빨강>이 그 시작이다. 아시야 공원의 나뭇가지에 가정집 모기장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을 매달아, 관객이 작품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붉은 공간에 잠기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하고, 외부에서는 그 실루엣이 그림자로 드러나는 작업이다. 이후 이 개념은 197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설치미술로 자리 잡고 비평적으로 인정받기까지 20년 동안 이어졌지만, 그 사이에 존재했던 수많은 여성 작가들의 ‘환경’ 작업은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전시는 공백의 시간을 따라가며, 잊혀 있던 역사와 작업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이라는 전시 제목 역시 그 탐구의 결과로 완성되었다.
“환경 예술의 역사는 곧 파괴와 소실의 역사이며, 당시 작업들은 보존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에 여성 작가들은 미술사와 환경 예술의 역사 양쪽 모두에서 잊히거나 지워지는 이중의 소외를 겪었죠.” 전시를 기획한 안드레아 리소니와 마리나 푸글리에세의 말이다. 당시 여성 작가들은 충분히 제작 지원 투자를 받지도 못했고, 주류 미술계에 사용하는 소재를 사용하기 어려웠기에 비싸지 않은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지거나 즉각적으로 폐기되는 경우도 많아 남아 있는 작품이 소수였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구진들은 전 세계에 흩어진 당시 비평 기사, 도면, 서신을 조사하며 최초 공개의 모습과 가깝게 재현했다. “주디 시카고 같은 현존하는 예술가들과는 직접 소통이 가능했지만, 이미 작고한 작가들은 포렌식을 동원한 방식처럼 작가가 마땅히 구현하고 싶은 모습을 추적해갈 수밖에 없었어요.” 마리나 푸글리에세 관장이 말했다.
레아 루블린, <침투/배출(플루비오 섭튜날에서)>, 1970, 제2회 콜테헤르 미술 비엔날레, 메데인, 콜롬비아, 폼, 고리, 채색 및 비채색 티셔츠, 파이프, TPU, 회전 압축기, 밸브, 물, 목재, 200x2000cm(<침투/배출>), 275x275x275cm (<움직이는 남근>), 2023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재구성 © Lea Lublin. 사진: 홍철기. 리움미술관 제공.
주디 시카고, <깃털의 방>, 1966, 롤프 넬슨 갤러리, 로스앤젤레스, 미국, 1알루미늄, 동물학대 없이 채집된 거위 깃털, 다운, 천, LED 조명, 400x684x770cm, 2023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레플리카 © Judy Chicago. 사진: 홍철기. 리움미술관 제공.
2023년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로마 국립 21세기 미술관(MAXXI), 홍콩의 M+에서 먼저 선보인 이 전시는 각 기관마다 해석을 더해 다양한 변주를 주었다. 리움미술관은 같은 시기 한국에서 실험적 시도를 해온 여성 작가의 작업을 발굴했다. 1970년 공개된 정강자의 <무체전>이 그 예다. 국립 공보관 전시실에 검은색 비닐 장막을 두르고, 바닥에는 연기가 깔리고 공간 안에는 사이렌 속 작가의 음성이 퍼지는 작업이다. 당시 정치 선동으로 연루되어, 개막 3일차에 철거된 다음 56년 만에 다시 선보이게 된 작업이다. 또한 <드림 하우스>는 1962년 미국의 실험음악가 라 몬테 영과 파트너 마리안 자질라가 고안한 작업으로, 빛이 스며드는 창문에 유색 필름을 부착하고 내부를 진동음으로 채우며 빛과 사운드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해온 작업이다. 이후 2003년 한국의 최정희가 이들의 수제자로 합류했고, 이번 전시를 통해 리움미술관에 맞춰 장소특정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밖에도 미국 미니멀리즘 남성 예술가들이 강철과 같은 차가운 물성을 중심에 두었던 흐름에 반하듯, 따뜻한 깃털로 공간을 채운 주디 시카고의 <깃털의 방>, 색색의 풍선 터널로 구성되면서도 실은 생식기와 인간의 욕망을 은유하는 레아 루블린의 <침투/배출(플루비오 섭튜날에서)>까지. 어느 하나 빠짐없이 감각을 일깨우는 동시에, 각기 두터운 서사를 지닌 작업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3년 강서경의 «버들 북 꾀꼬리», 2025년 피에르 위그의 «리미널(Liminal)»에 이어 보테가 베네타와 리움미술관의 세 번째 만남이다. 작가 강서경의 조각이 촉각과 청각을 환기하며 전시장을 버드나무 사이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가 머무는 산수의 풍경으로 확장했다면, 피에르 위그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립적 생명체의 세계를 통해 낯선 감각의 지형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한층 능동적인 방식으로 관람객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예술은 사람을 다른 공간으로 데려다 놓는 방식으로, 우리가 현실을 감각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바꾸는 유일무이한 통로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타니아 무로, <한때 우리는 알았다>, 첸트로 아폴리네르, 밀라노, 이탈리아, 1970, 500와트 플러드램프, 유리문, 스피커, 고무, 사운드, 스테인리스강, 삼각대, 전선, 목재, 381x515x422.5cm, 2023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레플리카 © Tania Mouraud. 사진: 홍철기. 리움미술관 제공.
“정해진 형식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때, 어떻게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프리뷰 당일, 이 질문을 안고 전시를 기념한 특별 프로그램 ‘컬처 다이얼로그’가 열렸다. 안무가 겸 감독 송주원, 영화감독 이경미,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 시각예술가 문경원, 미술감독 류성희가 한자리에 모여 전시와 맞닿은 각자의 시선을 나눴다. 다음은 토크 이후, 미술감독 류성희와 영화감독 이경미가 건넨 말들이다. 각자의 삶 속에서 오랜 시간 체득한, 그들의 응답.
개막일에 진행된 컬처 다이얼로그에서 시각예술가 문경원과 미술감독 류성희.
미술감독 류성희
」이번 전시에서 11인의 작가들이 구현한 작업과 보테가 베네타의 작업은 손으로 만드는 감각을 잃지 않는 수공예 정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교집합을 지닌다. 영화와 드라마, 전시, 뮤직비디오를 넘나들며 공간과 시노그래피를 만들어 온 당신이, 전시를 보며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인가?
보존되지 않은 과거의 작업을 재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작품마다 경험하는 물질이 계속 달라지는 점 역시 기억에 남는다. 당시 여성 작가들이 지닌 시대적 정서가 직관적으로 전해졌는데, 육중하고 권위적인 소재 대신 가볍고 흩날리는 재료를 주로 택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가 새롭게 합류한 보테가 베네타의 쇼를 보면서, 텍스처가 빚어내는 질감과 그로부터 형성된 선의 구조가 겹쳐 떠올랐다. 두 프로젝트가 서로를 호응하는 전시라고 느꼈다.
1950~1970년대 여성 작가들이 기존 미술계의 견고한 규범 바깥에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태도는, 보테가 베네타가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라는 철학으로 로고 플레이의 문법을 거부해온 것과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다. ‘미술감독’이라는 타이틀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업계의 문법을 스스로 써내려 온 힘은 어디서 비롯됐나?
2000년 필드에서 영화미술을 시작했는데, 영화의 ‘Look’을 바꿔보고 싶다는 야심이 있었지만 당시 소품, 미술, 세트, 의상, 분장, 촬영, 조명 등 모든 시각적 분야의 키맨들이 개별적으로 알아서 일을 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모아 콘셉트를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직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자리의 직함과 직위가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이를 이해해줄 수 있는 프로듀서와 감독을 찾고 기다렸다. 감독들 역시 새로운 스타일을 향한 욕구가 팽배했고, 그 시대의 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시대에 따른 상황과 내면의 욕구를 읽는 일을 요하며, 지금 역시 달라진 환경 아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언제나 ‘비주얼 스토리텔러(visual storyteller)’로서 이 고민들을 안고, 콘서트·뮤직비디오·전시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려 한다.
환경 작업들이 시각을 넘어 온몸의 감각을 전했다면, 보테가 베네타는 눈에 보이는 디자인을 넘어 ‘촉각적 럭셔리’를 추구하며 강렬한 감각의 각인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토크 프로그램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을 전공하기 전 도예를 먼저 공부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 경험이 미술감독의 일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도자의 가장 매혹적인 지점은 물질이 완전히 변한다는 것이다. 흙은 굽기 전, 날씨와 온도 같은 외부 환경에 취약하지만,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으면 전혀 다른 성질의 물질로 탄생한다. 그 변화가 매력적이었다. 25년간 영화미술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예상대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일종의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문학의 본질”이라는 문장과 유사하다. 결국 하나의 세트가 만들어내는 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라는 결론이다. 무형의 답을 붙잡고 추구하는 과정, 그것이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관객의 상호작용 속에서 ‘환경’ 작업이 이루어지듯, 보테가 베네타의 인트레치아토 매듭은 여러 장인의 손에서 완성된다. 영화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이들의 공동체적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일이다. 오랜 시간 각기 다른 창의성을 요하는 프로젝트 속에서도 관습적으로 일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영화를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하지만, 고된 노동 강도 속에 몇 년이 지나면 그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학생 때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의 머리와 예술가의 마음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같은 스릴러 장르의 경찰서를 구현하더라도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답을 정해두는 순간, 새로움은 없다. <살인의 추억> 속 취조실이 지하 보일러실에 자리한 것은 영화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고, <헤어질 결심>에는 그 영화의 결에 맞는 경찰서가 필요한 것이다. 모든 영화에는 그에 맞는 세계가 존재하고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영화에 맞는 고유한 콘셉트를 찾아가며 영화에 시각적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보테가 베네타 그리고 이번 전시의 작가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개척해왔듯,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도 자기만의 형식을 만들어갈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대성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이야기든 지금을 사는 사람들과 유리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영화든 책이든 고전을 좋아하지만, 지금의 패션은 어떤지, 차트에 오르는 음악은 무엇인지를 살피며 동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철학적 흐름이 어디를 향하는지 주시한다. 과거를 배경으로 한 극이라도, 각본 속 시대를 고증하는 데만 충실하면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칠 수 있다. 빛, 조명, 색감, 형태, 볼륨 같은 장식적 요소는 그 시대의 것을 사용하더라도, 패브릭이나 벽지 패턴, 가구디자인 등에 교묘하게 현대성을 결합한다. <아가씨> 속 히데코의 방이 시대의 패턴을 따르면서도 당시 잘 사용하지 않은 민트 컬러를 선택한 것처럼. <헤어질 결심> 작업 당시에는 서양 중심 철학보다 동양 철학에 관심이 모이는 해외의 흐름을 감지하고, 그 요소를 반영하려 했다. 강박은 아니지만, 늘 안테나를 켜두는 것이다. 이 시대가 어디로 흐르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안무가 겸 감독 송주원, 영화감독 이경미.
영화감독 이경미
」이번 전시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
정강자의 <무체전>이 인상적이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 불이 꺼지고 연기가 피어오르며 방송이 흘러나오는 공간이 기억에 남는다. 박정희 정권 시절, 통금이 시작되고 해제될 때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환기시키는 사운드였는데,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기에 더 무서웠고 한국적이면서 날카롭고 서늘한 감각이라 생각했다. 난다 비고의 <거주 가능한 시간 환경>은 모든 면이 조명으로 채워져 있고 한쪽 면이 뚫려 있어 그 너머로 밖을 바라보면 안과 밖이 전혀 다른 세계처럼 분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유리들이 서로를 반사하며 공간을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그 안에서, 환상적인 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번 전시의 작가들이 눈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으로 작품을 전달했다면, 보테가 베네타는 ‘촉각적 럭셔리’를 추구하며 강렬한 감각의 각인을 중시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비롯해 감각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업을 이어왔는데, 평소 예술 작업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인 영상을 즐겨 찾아본다. 비디오 아트를 찾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는 영상물과 스틸 사진을 많이 모으는 편이다. 특히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늘 영감을 받는다. 책이든 예술 작품이든, 형태는 달라도 그 안에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직관적인 작업들이 있다. 소설도 마찬가지. 활자가 전달하는 정보 너머, 설명되지 않는 부분까지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의 작품,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여성의 작품 앞에서 연결되는 기분, 그것이 내게는 중요한 의미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창의력으로 발산하는 여성 작가들의 작업을 좋아한다. 여성의 목소리를 서포트해주는 층이 남성의 세계보다 훨씬 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용감함이 더 크게 와닿는다.
1950~1970년대 여성 작가들이 기존 미술계의 견고한 규범 바깥에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태도는, 보테가 베네타가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라는 철학으로 로고 플레이의 문법을 거부해온 것과 닮아 있다. <비밀은 없다>와 <보건교사 안은영>의 개성적인 여성 캐릭터처럼, 전형적인 문법을 거스르는 인물들을 만들어온 데에도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맞닿아 있는 것일까?
추상적인 이야기라 언급한 적이 없었지만, 그런 감각을 의식하기 시작한 건 <비밀은 없다>와 <보건교사 안은영> 이후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작업하면서 내가 간절하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함과 불안정함이 컸다. 이후 천천히 깨달았다. 내가 어떤 작품 앞에서 느끼는 그 감각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도 오래 품어온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을 알게 됐을 때 외롭지 않았다. 혼자 가지고 있던 느낌에 일종의 자신감이 생겼달까. 최근 5년이 그런 시간이었고, 요즘 그런 이야기를 새로운 시나리오로 쓰려 하고 있다.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시나리오를 쓸 때 “이렇게 쓰면 투자자들이 뭐라 할 텐데, 제작사부터 통과가 안 될 텐데”라는 자기 검열이 따라오지만 그때마다 나아간 경험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성 영화인으로서 현장에서 의견을 관철해온 방식이 있다면?
뭣모르고 작업을 하던 시절에는 ‘내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달랐을까’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려 했다. 그 고민을 시작하면 답이 나오지 않고, 의식할수록 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에너지는 오롯이 작품에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동시에 여성이기 때문에 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안다. 그것을 밀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해왔다. 현장을 보면 여성의 수는 많아졌지만 여전히 여성 감독의 수는 절대적으로 적다. 그 안에서 목소리를 유지하고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자신의 희소성 또한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 베네핏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작가들이 관객이 몸으로 들어와 경험하는 공간을 만들어왔듯, 보테가 베네타 역시 장인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온 전승의 정신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60년간 지켜왔다. 감독 이경미에게 나만의 공간은 어떤 곳인가?
나는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점이 사람과 연결되는 순간이 좋다.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그 사람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 내가 몰랐던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과정. 내게 이야기란 그런 것이다. 영화를 볼 때도 시각적인 화려함보다 인물의 복잡한 인간성에 더 매료된다. 내 공간은 결국 사람이다. 시나리오를 쓰며 사람 ‘이경미의 인생’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인물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현실에서 해보지 못한 행동을 경험하는 것. 작업을 마치고 퇴근길에 무한히 벅차오르는 그 감각과 다른 세계를 체험하는 시간들이 나의 공간이다.
Credit
- 사진/ Bottega Veneta, 리움미술관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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