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기록을 금지하는 전시를 연 작가, 티노 세갈 인터뷰
오직 해석자와 관객의 상호작용만 남은, 티노 세갈의 국내 첫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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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the Between
리움미술관에서 국내 첫 전시를 선보이고 있는 티노 세갈(Tino Sehgal)의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과도 같다.
리움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약간의 불순한 호기심으로 팽창된 기분이었다. 동시대 미술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존재로서 신화를 쌓아 온 티노 세갈. 25년 동안 어떤 기록이나 물질적 오브제를 생산하지 않는 그의 작업을 과연 스마트폰 없이 감상할 수 있을까?
개막 전 기자간담회에서 세갈은 “도시의 생산시설을 한눈에 다 보며” 자란 독일에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을 하지(What can we do instead)’라는 물음에서 태동한 ‘무엇으로 대신할지(instead of)’에 대한 생각은 무용과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실험적인 안무가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로 결실을 맺었다. 그는 물질적 대상을 생산하지 않고 신체와 언어, 그리고 관계를 매개로 형성되는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라고 부르는 작업을 만든다. 이 상황은 미술관이라는 맥락 안에서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노래하고 춤추거나 관객과 소통하는 ‘해석자(interpreters)’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현된다. 세갈은 자신 작품에 대한 기록을 금지하고 사진이나 설명 대신 해석자들이 음성으로 정보를 전달하게 한다. 그의 비물질적 논리는 판매 단계까지 이어지는데, 테이트와 모마에서는 그의 작품이 8천500만원에서 1억7천만원 사이에 거래되었으며, 구두 계약으로 구매가 이뤄졌다.
신작을 포함한 8점의 ‘구성된 상황’과 리움 소장품을 함께 선보이는 이번 전시 «티노 세갈(Tino Sehgal)»은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미술관 입구에서 보안 요원 복장의 해석자들이 활기차게 노래하는 작품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This is So Contemporary)>를 맞닥뜨리자 자동반사적으로 주머니 속 휴대폰을 어루만졌다. M2 전시 공간에는 해석자들이 바이올린, 사이클, 축구공 같은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서로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이 입장(This Entry)>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층 위에서는 느린 동작의 해석자(<무언가 당신 코 앞에 나타나게 놔두는 대신 춤추는 브루스와 댄 그리고 다른 것들>)와 리움 조각 컬렉션 26점의 신선한 배열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리움이 소장한 로댕의 조각 작품들이 둘러싼 공간에서는 세갈의 대표작 <키스(Kiss)>의 해석자들이 미술사적 정전에서 유래한 다양한 키스 장면을 재현하고 있었다. 어느새 휴대폰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도 잊었다. 처음엔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곧 해방감과 고도의 집중을 경험했다.
당신은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한국이 ‘좋은 시기’에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한국인의 역동성과 트렌드에 민감한 SNS 문화가 그 동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기록과 공유를 즐기는 한국의 관객들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오직 전시에만 몰입하는 풍경이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는 한국인들이 은근히 휴대폰 없는 시간을 바라왔던 것 같아요. 최근 전시를 했던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질문을 거의 받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질문을 유독 많이 받는 걸 보니 역설적으로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 관람객들이 저의 작품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해 활용한다는 것이죠.
이번 전시는 당신의 작품 세계를 리움미술관 M2 전시장과 로비, 정원 등을 통해 집약적으로 조망하는 동시에, 이전의 바이엘러재단, 루마 아를에서 열렸던 전시와 마찬가지로 그 미술관의 소장품을 함께 다루는 전시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M2 전시장 입구와 내부에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초록 비즈 커튼(<“무제”(시작)>)을 ‘구성된 상황’으로 진입하는 첫 관문이자 완벽한 통로로 설정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에게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무척 중요한 작가입니다. 제 시각예술의 여정을 살펴보면, 조각과 설치, 미니멀리즘이라는 매체와 사조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비평가들은 미니멀리즘을 해설할 때 “미니멀리즘 아트가 당신을 어떤 상황 안에 있게 하고, 그것이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한다”고 평하기도 하는데, 사실 저는 그런 평가는 조금 공허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이러한 ‘상황’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작가라고 믿습니다. 그의 대표작 ‘캔디(<“Untitled”(Portrait of Ross in L.A.)>, 1991)’는 관람객이 미술관 한 구석에 쌓인 사탕 무더기를 보며 가져가고 싶지만 작품이기에 가져가면 안 된다는 갈등을 느끼게 합니다. 결국 ‘가져가도 된다’는 문구를 보고 고민에서 벗어나게 되죠. 그는 미술관 한쪽에 사탕이나 인쇄물을 배치하고 이를 마음대로 가져가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의 작품은 “작품을 만지지 말라”는 미술관의 엄숙한 금기를 찾아내 그것을 스스로 파괴하게끔 하고, 사회적 편견에 도전하게 합니다.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고 싶었습니다. 2016년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Carte Blanche to Tino Sehgal»에서도 토레스의 비즈 커튼을 전시장 입구에 배치했었거든요. 두 전시 모두 말한 대로 어떤 의례(ritual)로 향하는 입구에 들어가는 행위를 위해 배치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장 누벨의 건축에 대응하기 위해서 토레스의 작품을 활용했습니다. M2 전시실의 ‘박스’들은 제 전시와는 뭔가 맞지 않았는데, 가벽을 쳐서 분절하기보다는 6점의 비즈 커튼을 통해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며 유희적인 방식으로 대응해 보고자 했습니다.
‘캔디’ 작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당신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키스>를 볼 때, 저는 ‘사탕을 가져가도 될까,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갈등을 느꼈습니다. 두 사람의 지극히 사적이고 친밀한 행위를 공적인 공간에서 바라보며, 그 자리에 더 있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는 걸 느꼈어요. 그 작품을 보면서 발생하는 미묘한 관음적 시선이나 경외감 또한 작품의 일부처럼 느껴졌는데요, 이와 같은 갈등 역시 작품의 요소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두 해석자가 “키스”와 “이천이”라는 캡션을 읊는 것이 다소 생경하기도 했습니다. 각 작품에서 해석자들이 캡션을 말로 하는 것은 단순히 기록을 대신하기 위한 것인가요?
이 갈등에 대한 부분은 사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니, 작품을 어떤 크기의 공간에서 보는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 누벨의 건축 공간은 지배적인(dominant) 느낌이 있는데, 이 리움이라는 미술관이 주거 지역에 지어졌기 때문에 건축 규제 등에 의해 실제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는 작다고 할 수 있어요. 만약 이 작품을 훨씬 큰 공간에서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했다면 다르게 느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개인전을 선보였던 뉴욕 구겐하임처럼요?
네, 맞습니다. 그곳의 로비는 높이가 30m에 이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조각’처럼 보이는 측면이 더 큽니다. 캡션 같은 경우, 리움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작품 안내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 작업을 쓰인 레이블과 함께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레이블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것을 어떤 물체의 사물로 만드는 것처럼 느껴져서, 2002년 이후에는 ‘스포큰 레이블’로 전환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 이는 이 상황이 구성된 것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아주 현실적인 행위와 인공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비결정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어, 관객들에게 ‘이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키스>의 해석자들을 선발할 때 ‘커플’을 조건에 두었다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맞나요? ‘구성된 상황’을 완성하는 핵심인 해석자들을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또한, 작업의 전수 과정에서, 기록물 없이 오직 작가의 구두 지시와 리허설로만 전달되는 과정에서 해석자의 개인적 기질이나 한국적 맥락이 섞여 들어가는 ‘변이’가 발생할 텐데, 이를 작품의 오염이나 변주로 보나요? 아니면 작품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유기적 확장으로 보나요?
한국에서는 해석자들 중 여러 분이 커플이며, 오디션할 때는 ‘파트너’와 함께 응모하라는 공고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 디테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그들의 결정에 따랐습니다. 키스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함을 가진 사이라면 커플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제 작품 중 한 단어로 두 사람이 인터랙션하는 작품이 있거든요. 똑같은 작품을 해도 어떤 나라에서는 해석자들이 서로의 눈을 덜 쳐다보거나, 다른 날에 같은 작품을 보러 왔을 때 이번엔 고개를 덜 마주칠 수도 있어요. 작품의 알고리즘은 동일하지만 해석자들끼리, 혹은 해석자와 관객 간의 상호작용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유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억에 근거한 구두 지시와 리허설을 통한 전수는 완벽한 복제를 보장하지 않기에 작품은 엄격한 알고리즘 아래에서도 매번 새롭게 구현될 수 있고, 영원히 현재적인 상태를 유지합니다.
당신은 “예술가는 자기 시대의 역사화를 그리는 사람이며, 그 방법 또한 시대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하며 ‘미술이라는 게임의 지속’을 추구해 왔습니다. 25년 전 당신이 세운 이 ‘게임의 규칙’은 당시엔 굉장히 선언적이고 파격적인 도전이었는데요. 이제 그 방식은 동시대 미술 안에서 티노 세갈의 확고한 ‘언어’이자 ‘형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초기의 ‘저항적 선언’이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굳어지는 과정에서 관객은 이제 당신의 전시에 ‘사진을 찍지 않아야 한다’거나 ‘해석자가 말을 걸 것이다’라는 것을 미리 알고 기대하며 옵니다. 게임의 룰이 공개된 것과 마찬가지인데요.
리움미술관을 찾는 관객 대부분은 저나 제 작품에 대해서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술계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리움에 방문하는 관객의 90%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를 거예요. 활동 초기에 사람들이 제 작품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란다는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어제 5월 중순부터 선보일 작품 <이 당신나나당신(This youiiyou)>을 좀 더 가다듬기 위해 작업하고 있었는데, 미술관 입구에서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를 만나 어떤 영향을 받았습니다. 20년 전에 만든 제 작업을 두고 자화자찬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3명의 해석자가 저를 둘러싸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어떤 에너지를 얻는 것을 거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무엇이든지 간에 이렇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어떤 기록을 남기면 안 된다는 것 같은 룰에 대해서는 사실 딱히 관심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이 현현하는 형태의 작업”이라고 설명한 <이 입장>입니다. 당신이 영향을 받았다는 사상가 중 한 명인 독일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레크비츠는 그의 책 <단독성들의 사회>에서 후기 근대 주체들이 SNS 등을 통해 자신의 특수성을 퍼포먼스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과잉 스트레스’ 사회를 분석했습니다. <이 입장>에서 4인의 해석자가 서로의 움직임과 소리에 반응하는 모습은 파편화된 개인들이 진실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묻는 듯했습니다. 오늘날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가 만연한 시대에(저 또한 그렇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진실한 연결의 가능성을 믿고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해 이번 전시 전체와 연결하여 답하고 싶습니다. 저는 안무를 할 때 사람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커튼이나 조명도 안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일종의 조각을 다루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조각 작품을 생각할 때, 이를 개별적인 존재로 간주하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관계 안에서 존재하고,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율적인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갖습니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을 떨어뜨려 놓고 관찰해보면, 그들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흥미를 갖는 것은 조각을 자율적인 존재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 위치시켜 선보이는 것입니다. 그들 간의 공간을 보게 하는 것이죠. 이번 리움미술관에서의 전시와 마찬가지로 몇몇 미술관에서 소장품을 가지고 그런 전시를 만들게 되었고 저 스스로 꽤나 즐기고 있습니다. “아무도 섬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 저는 그 무엇도 섬은 아닌 상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는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과 같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사회적이든 자연적이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상호 관계 속에 존재하며, 관계 밖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신 부분에 동의하며, 저는 인간은 ‘연결 존재들(Connection Beings)’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끊임없이 연결된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살아갑니다.
※ «티노 세갈(Tino Sehgal)»은 리움미술관에서 6월 28일까지 선보인다.
안동선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미술을 취재하는 작가다. 어마어마한 양의 디지털 기록이 실제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속에서 티노 세갈 전시를 통해 ‘기록할 수 없음’이 주는 역설적인 몰입을 경험했다.
Credit
- 글/ 안동선
- 사진/ 이우정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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