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바자’가 있기까지, 지나온 30년에서 길어올린 바자의 이름들
6명의 선배들이 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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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EX-BAZAAR
<바자>의 30년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들. 그 시절 <바자>의 에디터로 살며 온 마음을 다해 잡지를 만들었던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
2015년 9월호 <BAZAAR MAN> Nº8.
전미경
아티스트&인플루언서 컴퍼니 스피커 대표.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바자>의 편집장이었다.
가장 특별했던 기획은 첫째는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기획했던 10개의 멀티숍과 10명의 아티스트 협업 전시. 분더샵, 10 꼬르소 꼬모 등의 패션 멀티숍에서 권오상 작가를 비롯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전시를 열었는데, 지금처럼 전시 협업이 흔하지 않던 시기라 많은 주목을 받았고 <바자 아트>의 시발점이 된 기획이기도 해서 잊을 수 없다. 둘째는 첫 번째 <바자 맨> 커버를 장식한 퍼렐 윌리엄스와의 작업. 샤넬의 앰배서더로서가 아니라 아티스트 퍼렐 윌리엄스로서 <바자> 코리아 카메라 앞에 서준 그의 영민함과 프로페셔널함에 스태프 모두가 반했던 촬영이었고, 당연히 결과물도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처럼 K팝과 K컬처가 글로벌을 장악하기 전이었기에 한국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선입견 없이 응해준 그의 선견지명과 세련된 애티튜드를 보며 언젠가 패션 인더스트리에서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되리라 예감했었다. 셋째는 <바자 아트>. <바자>는 알렉세이 브로도비치가 아트 디렉터를 맡아 감각적인 서체와 폰트, 레이아웃으로 그래픽 디자인 신에서 압도적인 사랑을 받은 매체이자 당대 가장 핫한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이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트루먼 커포티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칼럼이 실린 매체로도 유명하다. 그 예술적인 DNA 때문에라도
<바자 아트>의 창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크 제이콥스가 루이 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합류하며 패션과 아트의 협업에 글로벌한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 이후로 패션과 아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가 되었으니, 이 모든 변화를 예감하고 대한민국 패션지 중에 가장 먼저 만들기 시작한 <바자 아트>야말로 시의적절하고 빛나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바자>를 만들면서 추구했던 한 가지는 <바자>는 아름답고 예쁜 것보다 ‘대담함(daring)’을 추구하는 매체다. 늘 새롭고 볼드한 기획을 빠르게 하고, 시공감각적으로 콘텐츠를 확장하는 일에 능숙하며, 다른 매체가 시도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겁없이 시작했던 모험적인 잡지다. 피처팀에서 주목하는 아티스트들의 콘텐츠를 패션이 있는 공간으로 확장해 오프라인 전시 형태로 보여주는 기획도, 루이 비통 트래블 팀이나 만들 것 같은 시티 가이드북이나 핫 플레이스 북을 제작한 것도, 창간호 때마다 한국 디자이너 한 명을 집중 조명하는 아카이브 북을 발행하고 그 과정을 장편 패션 필름으로 제작한 것도, 수많은 럭셔리 하우스에서 기획한 패션 필름을 모아 CGV와 함께 패션 필름 페스티벌을 연 것도, 모두 <바자>이고 <바자>였기에 가능했다. 그 대담한 기획들은 콘텐츠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에디터들이 있었기에 실행 가능했다. 그 시절 그 에디터들에게 한없는 감사를 표한다.
<바자>의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은 <바자 맨>을 만들면서 지드래곤과 태양이 파리 패션위크에 첫발을 내딛는 기획을 했을 때만 해도 파리 패션 하우스의 벽은 너무 높았고, 한국 셀러브리티에게 할당된 좌석도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장르에서 한국 셀러브리티들이 맹활약하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만큼 더 도전적이고 획기적인 기획으로 <바자> 코리아의 크리에이티비티를 전 세계에 알렸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맥도 네트워킹도 글로벌로 넓혀가야 한다. 지금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양혜규는 한때 <바자> 코리아의 베를린 통신원으로 활동했었고, DJ 신에서 글로벌 인플루언서가 된 페기 구도 어릴 적 <바자> 코리아의 런던 통신원이었다. 그들이 특유의 감각적인 뷰로 현지에게 채집해서 보내오곤 했던 칼럼들이 <바자>만의 유니크함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처럼, 글로벌 곳곳에서 <바자> 코리아의 위상을 높여줄 귀한 인맥을 잘 발굴하고 활용해서 글로벌이 주목하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드는 매체가 되길 바란다.
<바자>를 의인화하면 조지아 오키프, 메릴 스트립, 피비 파일로, 테일러 스위프트, 제니! 누군가의 레퍼런스를 따르기보다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는 여자들. 단순히 옷을 잘 입고 옷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서 패션과 예술의 경계에서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를 지키며 한 장르를 완성한 여자들이야말로 실험적이고 대담한 <바자>에 어울리는 존재라 하겠다.
2012년 12월호.
윤혜정
국제갤러리 사외 이사이자 작가. 2008년 <바자>의 피처 에디터를 거쳐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바자>의 피처 디렉터였다.
잊을 수 없는 칼럼은 <바자>가 지금처럼 현대미술에 완전히 몰두하기 전, 우리는 꽤 오랫동안 영화에 미쳐 있었다. 매년 5월호에는 낙원상가에 있는 서울시네마테크 후원 특집을, 9월호에서는 영화 문화를 풍성하게 지지하는 ‘시네마 엔젤’ 커버 특집을 치렀으며, ‘영화감독의 등용문’인 미쟝센단편영화제 10주년을 기념하고 알리는 대특집을 진행하기도 했다. 덕분에 내로라 하는 영화감독과 배우들을 지면에 모셨고, 카메라 앞에 세웠으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매번 밤잠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걱정했지만, 또 매번 잊을 수 없을 만큼 즐거웠다. 아니, 그렇게 기억한다. 2009년 5월호 ‘시네마테크’ 특집에서 한국영화의 ‘신스틸러’라 꼽을 수 있는 명배우들(스타가 아닌)과의 만남 이후 나는 지금까지도 이들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2012년에는 시네마테크 10주년을 기념해, 최고의 한국영화 감독과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아 영화 같은 우정의 순간을 포착했다. 어쩌면 앞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을 전무후무한 특집이었다고 감히 자신하고, 여전히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나라는 사람에게 그 시간들은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장 순수한 애정과 소명의식의 지점을 발견하는 누군가의 그 찰나의 순간을, 다름 아닌 내가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랄까. 분명한 건, <바자>만이 할 수 있었고, <바자>였기에 가능한 최고의 순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바자> 편집부의 분위기는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과연 <바자> 때처럼 살 수 있을까? 아니다. 다른 게 아니라, <바자>는 별로 길지도, 그다지 짧지도 않은 나의 삶의 한가운데서 나라는 인간을 가장 입체적으로 만들어준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이틀 밤도 거뜬히 새울 수 있는 직장인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였다. 후배들의 선배였다. 순수한 예술 애호가이기도 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인간이 하루하루 드라마틱한 일상을 살았고, 별로 잘나지도 못한 인간이 스스로 자부심과 자신감을 느끼는 순간도 만끽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끔 죽을 듯이 힘들었던 그 시간을 무엇엔가 홀린 듯 즐길 수 있었던 건 <바자> 특유의 에너지 덕분이었던 것 같다. 문화예술에 대한 전방위적인 호기심도, 나의 글이 단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삶의 즐거움을 전할 수 있을 거라는 어쭙잖은 소명의식도 모두 덕분에 활활 태워볼 수 있었다. ‘건강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바자>만의 에너지. 누군가가 ‘바자 에너지’라는 주제로 논문이라도 써주면 좋겠다. 나올 때가 된 것도 같은데.
<바자>의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은 <바자>는 에디터라는 직업의 기준을 바꾸는 매체였다. 조용히 주어진 칼럼을 쓰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또 괴로웠던 나는 <바자>에서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고 익혔다. 드라마 촬영장에 버금가는 세트를 벌여 놓고,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오가는 현장에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도 비슷한 순간을 자처하고, 그 안에 놓인 나 자신을 발견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세상에 없는 풍경을 포착하고자 하는 욕심과 세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싶다는 야심. 그 복잡성을 왜 더 누리지 못했을까 싶기도 하다. 에디터로 산다는 건 이를테면 MBTI를 구성하는 8개의 속성을 각각, 모두, 동시에 최고치로 끌어올린다는 것과도 같지 않을까 싶다. 혹여 내 안에 뭔가 특별한 게 있다면(감성이든, 이성이든, 능력치든, 감각이든), 바로 그것을 최고의 상태로 두면서 사는 것이다. 지금도 간혹 후배들에게 ‘오만과 편견’으로 일을 하라고 조언하곤 하는데, 그것이 인간으로서는 힘들지만 에디터로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고, 쓰고 있는 것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믿음, 뾰족하고 모나고 명확하게 나의 생각과 취향을 전달할 수 있는 권한은 바로 그때만 가능하니까. 모두 본인들에게 주어진 이 ‘에디터적’인 시간을 마음껏 즐기시기를.
2011년 6월호.
박혜수
매거진 <얼루어>의 편집장.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바자>의 뷰티 에디터를 거쳐 디렉터였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바자>의 편집장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칼럼은 미쟝센단편영화제 10회를 기념하며 진행했던 화보. 박찬욱, 김지운, 장준환, 이현승, 박진표 다섯 명의 감독이 함께했는데, 각 감독들이 배우 신민아를 주인공으로 서로 다른 영화 신을 오마주했다. 세트도 방대했고 준비 기간도 길었던 고된 촬영이었지만 한국영화를 이끌어가는 기라성 같은 창작자들과의 작업이었던 만큼 그 긴장감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바자>를 만들면서 추구했던 한 가지는 패션과 뷰티 제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사람, 시대의 변화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만의 소망이 아니라 당시 <바자>의 무드이자 결이기도 했다. 패션과 뷰티, 피처 에디터들 모두 트렌드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잡지가 아니라 트렌드가 된 이유 혹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는 점이 남달랐다.
<바자>의 독자로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칼럼은 <바자 아트>의 콘텐츠를 좋아한다. 요즘 패션과 아트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고, 패션 이야기 안에도 예술이 있으며 시대상을 반영하는 관점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 패션 매거진이 현대미술에 대해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경험을 독자에게 꾸준히 증명해온 것이 <바자>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바자>의 뉘앙스를 정의한다면 <바자>는 늘 자기만의 기준을 만드는 매거진이었다. 트렌드를 소개할 때에도 늘 새로운 미감 안에서 움직였고, 단순히 화제성만을 좇기보다는 주체적인 시선이 바탕에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반 보 앞서 있었다. 자신만의 선명한 결이 있지만 너무 우쭐하지 않는 태도가 <바자>만의 뉘앙스 아닐까.
<바자>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자>가 처음 한국에 론칭했을 때와 지금은 매거진과 미디어의 기능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좋은 에디터는 결국 좋은 취향을 전제로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조회수나 속도가 중요한 시대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콘텐츠는 결국 누군가의 시선을 바꿔놓을 수 있으니까. 알렉세이 브로도비치의 기념비적인 디자인, 리즈 틸버리스 시절의 과감하면서도 쿨한 커버는 지금 봐도 여전히 모던하다. <바자>가 여태껏 그래 왔듯, 트렌드 안에서도 오래 남는 감각을 만들어가고 제안하는 잡지가 되었으면 한다.
<바자>에 어울리는 여자는 자신의 취향이나 스타일을 굳이 설명하거나 시끄럽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 조금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실은 다정하고, 조용하지만 확신이 있고, 우아하지만 결코 무난하지 않은 사람. 새로운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하지만 그것을 과시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궁금한 여자.
2011년 6월호.
안동선
미술 전문 기자.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바자>의 피처 에디터였고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바자>의 피처 디렉터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칼럼은 <바자>의 150년 역사를 훑으며 매체를 만들어온 카멜 스노, 다이애나 브릴랜드, 리즈 틸버리스 같은 편집장들을 화보와 글로 조명했던 ‘Harper’s Bazaar Women at Work’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타일리시한 삶을 위한 재기발랄한 목록을 써 내려간 다이애나 브릴랜드, 패션과 문학의 경계를 무너뜨린 앤 스콧 제임스처럼, 반세기도 더 전에 활동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지금의 지면 위에 다시 세워 올리는 작업은 짜릿했다. <바자>라는 매체가 단순히 유행을 좇는 잡지가 아니라 시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성성과 우아함을 새로 정의해온 긴 계보라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바자>를 만들면서 추구했던 한 가지는 매우 독특한 결을 가진 인물들을 발견하고 그 사람만의 방식으로 소개하는 것. 그게 내가 에디터로서 붙들고 있던 한 가지였다. 예를 들어 유명 잡지를 수입 유통하던 사업가에서 압구정동 비밀 살롱의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궤도를 이탈한 여인명 같은 인물.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 안에 증권회사 기획팀 출신의 합리성과 30년간 2만여 장의 LP를 모은 집착, 그리고 잡지라는 매체의 흥망과 함께 스스로를 재발명해온 유연함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그들의 반짝이는 성취뿐 아니라 남들 눈에는 다소 별나 보일 수 있는 면까지도 그 사람을 온전하게 만드는 고유한 조각이라 생각하고 함께 담고자 했다. 우리는 저마다 이렇게나 다르고, 그 다름이야말로 한 사람의 정체성이다. 나는 <바자>가 그 다양함을, 어느 한쪽만 골라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지면이길 바랐다.
<바자>의 독자로서 즐겨 보는 칼럼은 요즘 <바자 아트> 지면을 훑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서울과 세계 각지에서 열리고 있는 굵직한 전시들의 기획자와 작가를 직접 만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인터뷰가 한자리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러 가기 전, 혹은 가지 못했을 때조차 기획자와 작가의 육성을 통해 그 전시의 맥락과 태도를 미리 읽을 수 있다는 것, 그게 <바자 아트>를 매번 열어보게 만드는 이유다.
<바자>만의 특별함은 한 사람이 명품 컬렉션 화보와 파리, 밀라노의 가장 반짝이는 이벤트를 취재하다가도,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는 통인시장 기름떡볶이집 할머니와 광장시장 구제상가 골목을 누비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게 <바자>만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세계가 한 매체, 한 호, 심지어 한 섹션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다는 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바자>는 아름다움과 스타일이 어느 한 종류의 삶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매체였다. 그 유연함과 포용력이야말로 <바자>의 진짜 특별함이 아닐까.
<바자>라는 여자는 1933년의 카멜 스노. 지루한 스튜디오 속 조명과 가짜 소품 앞에 얌전히 서 있기를 거부하고, 옷을 입은 채로 해변에 나가 바람을 맞으며 뛰어보는 여자. 자신이 입은 옷이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그 옷을 입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먼저 생각하는 여자다. 유행을 따라 입지 않고, 자기 자신의 직감을 믿고 입는다. 캐서린 헵번의 씩 웃는 입꼬리와 샤넬 드레스의 루스한 라인 속에 스며 있던 개인주의를 알아보고, 그 안에서 여성성의 해방을 읽어내는 사람이다. <바자>라는 여자는 제대로 입을 줄 아는 동시에, 제대로 아는 여자(well-dressed woman with a well-dressed mind)다.
2014년 3월호 <BAZAAR MAN> Nº5.
이미림
비주얼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TMN 대표. 2008년부터 <바자>의 패션 에디터였고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바자>의 패션 디렉터였다.
가장 뿌듯했던 칼럼은 2014년 지드래곤, 태양과 함께 파리 패션위크 일정을 담은 화보. 지금처럼 K팝 아티스트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전이었고, 브랜드 앰배서더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이었다.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아티스트들이 파리 패션위크의 중심에 서 있는 모습에 벅차 올랐던 기억이 난다.
<바자>를 만들면서 추구했던 한 가지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되, 클래식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빈티지 매거진이나 옛날 영화도 많이 보고 브랜드의 아카이브 북이나 헤리티지 관련된 서적들도 수집하면서 현재의 트렌드를 보다 깊고 입체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바자>의 독자로서 가장 좋아했던 칼럼은 짧은 질문들로 구성된 ‘Why Don’t You…?’.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특유의 엉뚱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전설적인 칼럼으로, 이후 많은 디자이너와 사진가, 아티스트, 영화감독 등이 이 형식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과 취향을 보여주었다. 짤막한 문장 안에 위트와 통찰, 묵직한 여운까지 담겨 있었다.
<바자>에서 배운 삶의 진리는 당시 전미경 편집장은 <바자>가 패션과 함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와 취향,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까지 함께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패션은 언제나 미술과 사진, 문학과 영화, 건축과 연결되어 있었고, <바자>는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패션을 하나의 문화적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매거진이었다. 무엇을 입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사랑하며,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덕분에 다양한 문화적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바자>의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바자>라는 이름이 지닌 가치는 특별하다.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 시간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고, 결국 그 경험들은 내가 세상을 바라는 방식까지 넓혀주었다. 더 많이 다니고, 보고, 듣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자>라는 여자는 우아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호기심 앞에서는 누구보다 자유롭고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
2016년 7월호.
최은영
주식회사 초이스컨텐츠 대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바자>의 뷰티 에디터와 디렉터였다.
가장 그리운 칼럼은 단연 ‘Why Don’t You…?’다. 뷰티 파트의 엔딩을 담당하는 만큼 시즌별 핫 피플을 만나 뷰티 팁을 중심으로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답변을 담은 칼럼이다. 새로운 분야의 사람을 만나 알아가는 그 시간은 내게 칼럼 그 이상의 즐거움이었다. 같은 질문을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을 들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꼈고, 나이 성별 불문하고 인연의 끈이 시작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시절의 인터뷰가 더욱 그립다.
<바자>를 만들면서 추구했던 한 가지는 남들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즌별로 이슈가 되는 포인트는 매체마다 동일하다. 컬렉션 시즌에는 모든 매체가 앞다투어 패션&뷰티 키워드를 짚어내지 않나? 주제는 같아도 글을 풀어내는 관점을 새롭게 하거나 숨어 있는 인터뷰이를 발굴해내면 칼럼은 완전히 달라진다. <바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비주얼, 남다른 시선으로 통찰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 시도가 얼마나 닿았는지는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늘 새로운 시선을 고민하는 에디터이고 싶었다.
<바자>의 독자로서 가장 흥미로운 칼럼은 패션과 뷰티 피플의 여행 이야기를 담은 ‘Escape’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다. 평소 공개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일기장을 열어 보는 기분이랄까. 실제 여행지를 고를 때 영감을 얻기도 했다. 자신만의 여행 팁은 물론 그곳에서 발견한 시크릿 스폿까지 볼거리, 읽을거리가 가득하다.
<바자>의 남다른 점은 감각적인 비주얼. <바자>에는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시선을 사로잡는 화보가 가득하다. 웨딩 업계에서 시안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 또한 <바자>의 커플 커버 아닌가. 시간이 지나도 <바자> 화보는 올드하거나 억지스러움이 없다. 브랜드의 광고 비주얼을 만드는 지금도 시안이 안 떠오르면 <바자> 잡지를 가장 먼저 꺼내 보는 이유다.
<바자>를 의인화하면 비슷한 옷을 입고 레드 립을 발라도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해석으로 완성하는, 그래서 오래 기억되는 존재
Credit
- 사진/ 이동현
- 어시스턴트/ 신형진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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