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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포착한 10가지 장면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개막했다.

프로필 by 손안나 2026.06.29

10 SCENES FROM VENICE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 «In Minor Keys»는 거대한 정치적 선언 대신 치유, 경청, 영성, 공동체에 주목하자는 섬세한 제언이었지만, 미술 밖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예술감독 코요 쿠오의 갑작스러운 사망부터 러시아관 복귀 논란, 이스라엘관을 둘러싼 시위까지. 전시장 안과 밖, 혼돈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난 결정적 장면 10가지를 정리했다.


프리뷰 마지막 날 문을 닫은 한국관 전경.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프리뷰 마지막 날 문을 닫은 한국관 전경.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끝나지 않은 전쟁

“자르디니 국가관이 파업에 들어갔대.” 프리뷰 마지막 날 아르세날레 전시장을 배회하던 중, 각국 기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르세날레 본전시장 곳곳에서 “팔레스타인은 세상의 미래다”라는 포스터를 마주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파업을 주도한 ANGA(Art Not Genocide Alliance)는 예술가·큐레이터·미술계 종사자들의 연합체. 비엔날레 개막 두 달 전, 약 240명의 서명으로 이스라엘 국가관의 참여 반대 성명을 낸 바 있다. 프리뷰 첫날부터 이스라엘관을 향한 행진 시위가 이어지며, 결국 131년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27개국의 국가관이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관 입구에는 ‘No Artwashing, No Genocide Pavilion’이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걸렸다.

같은 시간 나는 동굴 같은 방 안에서 본전시 참여 작가 하가르 오피르(Hagar Ophir)의 신작 앞에 서 있었다. 예루살렘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시온주의 틀 바깥에서 유대인 공동체의 연결을 모색해 왔다고 했다. 신작 <Bound With the Living: Gathering in Venice>는 주술적인 음악과 가이드북으로 비엔날레 관람객에게 실천적인 감상법을 제안했다. 테이블과 의자, 바닥까지 빈틈없이 붙은 지지 포스터들마저 작품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작가의 작업을, 131년 만의 첫 국가관 파업이 벌어진 비엔날레에서 마주한 이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혼란스러웠다.

프리뷰 기간에만 문을 열기로 한 러시아관에서는, 꽃과 프로세코로 채운 전시장에서 시간대별로 다른 퍼포먼스가 시연될 예정이었다. 프리뷰 첫날, 핑크색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무리가 러시아관으로 몰려와 색색의 연막을 터뜨리고 펑크 음악을 틀었다. 페미니스트 펑크 그룹 ‘푸시 라이엇’과 여성 단체 ‘페멘’이 합세해 40여 명이 “피가 러시아의 예술이다”를 외쳤고, 러시아관은 결국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심사위원단이 개막 직전 전원 사퇴하고, 폐막일인 11월 22일 일반 투표로 최우수 작가·국가관을 뽑는 ‘관객상’이 처음 신설된 데에는 이 모든 이해관계가 촘촘히 얽혀 있었다. <가디언>과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대표단의 참가는 EU 제재 위반 소지가 있었고 심사위원단 사퇴의 진짜 이유 역시 이스라엘의 법적 대응 가능성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모든 논란에, 베니스 비엔날레 측은 홈페이지 공식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어떠한 형태의 문화·예술 배제나 검열도 거부한다. 비엔날레는 베네치아 도시와 마찬가지로 대화, 개방성, 예술적 자유의 공간이며, 사람들과 문화 간의 연결을 장려하고 모든 갈등과 고통이 끝나기를 희망한다.”

정치적 논쟁이 베니스 비엔날레를 흔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1968년엔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1974년엔 피노체트 독재에 항의하는 ‘자유 칠레를 위한 비엔날레’가 있었다), 그 무게가 전시장 안쪽까지 유난히 깊숙이 파고든 현장이었다.


Hernan Bas, <A Tourist Trapped>, 2025, Acrylic on linen, 127x101.6cm. © Hernan Bas. Courtesy the artist, Lehmann Maupin, Perrotin and Victoria Miro.

Hernan Bas, <A Tourist Trapped>, 2025, Acrylic on linen, 127x101.6cm. © Hernan Bas. Courtesy the artist, Lehmann Maupin, Perrotin and Victoria Miro.

우리는 모두 관광객이다

언젠가 헤르난 바스가 언급한 대로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 콜필드와 닮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모르는 젊은이들. 늪지, 숲, 유령 이야기, 고딕 문학의 세계를 떠돌던 그 잘생기고 아둔한 백인 청년들이, 이번엔 관광객으로 변했다. 카 페사로에서 열린 전시의 주제는 ‘The Visitors’다. 이 기간 동안 열리는 다수의 위성 전시가 베니스의 유구한 역사나 천혜의 자연을 노래한다면, 바스의 시선은 사뭇 낯설다. 그는 이 도시를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베니스는 과잉 관광의 상징 같은 곳이며 오늘날의 관광객은 장소를 경험한다기보다 장소를 자신의 이미지 생산을 위한 무대로 소비할 뿐이다.(인스타그램에 #Venice를 검색해보라.)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프리허그를 자처하거나 돈을 구걸하는 청년, 교토에서 포크로 스시를 먹는 청년, 시장 가판대의 치즈를 만지작거리며 ‘만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청년, 크리스마스 섬의 게 이동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하는 청년 등등.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리숙하거나 무지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어딘가 외롭고, 길을 잃은 듯 보인다. 바스의 목표는 당연하게도 관광객을 비웃고 조롱하는 게 아니라 무례함, 순진함, 집착, 외로움, 나르시시즘을 뒤섞어 현대인의 욕망과 불안을 표현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림 속 그들을 비웃다가 이내 서늘해졌다. 결국 나 역시 한 명의 관광객이었다.


카타르관의 오프닝 퍼포먼스. Photo: La Biennale di Venezia 카타르관의 오프닝 퍼포먼스. Photo: La Biennale di Venezia

환대의 카타르관

1995년 한국관 건립 이후 30년 만에, 자르디니 공원에 30번째 국가관이 들어섰다. 카타르관이다. 본전시장으로 가는 길목, 아랍의 전통 문양 마슈라비야 패턴으로 장식된 적갈색 철제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건축가 리나 고트메가 설계할 영구관이 완성되기 전까지, 올해 비엔날레의 이 자리는 아티스트 리크리트 티라바니자가 만든 구조물이 채운다. <Untitled 2026 (a gathering of remarkable people)>이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카타르 전통 모임 공간을 본떴고, 이름처럼 놀라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협업자들을 초청해 아이디어와 식사를 나누는 작업을 오랫동안 이어온 티라바니자답게 이번에도 영상, 공연, 설치, 음식까지, 레바논 출신 사운드 아티스트 타렉 아투이를 비롯한 여러 작가와 셰프, 음악가들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았다.

카타르관의 시작이 순조로웠던 건, 카타르 국왕의 여동생이자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 카타르 국립박물관(Qatar Museums) 의장인 셰이카 알 마야사가 이번 전시의 커미셔너를 맡은 영향이 크다. 그녀는 이 파빌리온이 분열과 갈등의 시기에 개방성과 공동의 인간성을 표현하는 자리이며, 문화가 아랍 세계 전역의 시선과 소리와 맛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한다고 말했다. 11월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새롭게 출범하는 대규모 현대미술 쿼드리엔날레(4년제 비엔날레) ‘루바이야 카타르(Rubaiya Qatar)’ 역시 그녀가 이끄는 카타르 국립박물관의 프로젝트다. 음악과 음식 냄새가 뒤섞인 공간에서, 카타르의 현대미술 바람이 앞으로 국가관 전시와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일본관과 한국관 사이에 놓인 한국관 작가 최고은의 작업 <메르디앙>. 사진: 감동환

일본관과 한국관 사이에 놓인 한국관 작가 최고은의 작업 <메르디앙>. 사진: 감동환

한국관과 일본관의 나란한 거리

폭우가 쏟아지던 한국관 오프닝 날, 한국관과 일본관의 거리는 유독 가까웠다. 가수 이랑이 신곡 ‘우리의 ㅁ’을 부르기 시작하자, 몇몇 관람객들이 일본관 작가 에이 아라카와 나시의 <Grass, Moon and Babies>에 등장하는 아기 인형들을 품에 안고 서 있었다. 한국관 입구 위쪽에 빼꼼히 자리를 잡고 있던 그 아기 인형들이다. 일본관과 한국관 사이 수풀에는 최고은의 조각 <메르디앙>이 지나간다. 한국관 내외부를 관통한 파이프는 벽과 기둥, 천장 틈새를 비집고 나가 수풀 경계를 넘어 일본관 부지까지 이어진다. 두 국가관이 함께 만든, 자르디니에 그어진 경계선 하나를 흐리게 하는 시도다.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기념비. 한국관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를 기획한 최빛나 감독은, 일본관이나 독일관을 거쳐야 비로소 발견되는, 작고 구석진 곳에 있는 이 한국관에 왜 이렇게 겹겹이 레이어를 쌓으려 했을까. 옥상과 2층까지 이어진 최고은의 <메르디앙>과 노혜리의 <베어링> 속 8가지 스테이션을 감상하기 위해선, 가만히 작품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한국관 구석구석을 적극적으로 돌아다녀야 한다. 한국관이 파업에 동참해 문을 닫았던 날, 오후 약 1시간 동안만 개방이 이뤄졌다. 전시장 입구에 줄지어 서 있던 관람객들은 ‘탑돌이’ 하듯, 오간자 천 4천 장으로 지은 세포막 같은 반투명 벽을 따라 코리아 파빌리온을 빙 돌다가, 다 같이 옥상까지 올랐다. 전망대의 파노라마 뷰 같은 광경 속, 푸릇한 나무들 사이로 일본관과 독일관 사람들이 한국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저 멀리 영국관 앞 광장의 인파와 자르디니 반대편 아드리아해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국경처럼 공고해 보이던 국가관 사이에는 사실 어떠한 벽도 없다. 종종걸음으로 길 찾기 하듯 국가관을 찾아나설 때와는 다른 감각으로 자르디니 전시장이 다가왔다.


아르세날레에 설치된 작가 요이의 <숨 오케스트라> 설치 전경. Photo: La Biennale di Venezia 마이클 주의 신작 화석 석판. Courtesy of Michael Joo Studio. 사진: Michael Joo Studio

한국 작가들의 활약

“더 귀 기울이세요. 불의 목소리, 말을 건네는 물의 목소리, 바람의 목소리, 흐느끼는 숲의 목소리에. 그것은 조상들의 숨결입니다. 죽은 이들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를 둘러싼 어둠 속에 존재합니다.” 코오 쿠요 팀은 애도를 표하며, «In Minor Keys»를 향한 이야기를 아프리카 전통 시로 갈음했다. 마이클 주와 요이. 총 111명의 본전시 작가 중, 아르세날레에 놓인 한국 작가 두 사람의 작업을 보며 이 시를 떠올렸다. 그만큼 전시 주제에 집중한 작업들이 시선을 오래 붙들었다.

2001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서도호와 함께 한국관 작가로 참여한 마이클 주는 당시 베니스에서 구한 목재를 작업의 일부로 활용한 적 있다. 이번에는 북아프리카 화석층을 재료로 삼았다. 천장에 매달린 바다나리 화석이 모빌처럼 천천히 흔들리는(<That Which Evaporates All Around Us>) 광경이 보인다. 20년에 걸쳐, 작가는 사라지는 화석층을 전 세계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 모로코의 왕실과 광부들로부터 모았다. 2013년, 허리케인 샌디로 물에 잠긴 작업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5억 년 만에 처음으로 이 화석들이 다시 물속에 잠겼다는 걸 깨달았고, 작업을 시작했다. 화석판 아래에는 골전도 변환기가 달려 있다. 돌마다 다른 밀도와 주파수를 진동으로 재생한다. 그 진동들이 모여 판 주변에 일종의 주파수 장을 만들고, 귀 기울이면 그 진동 사이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작가의 어머니 목소리다. 작가는 1948년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다리로 어머니를 다시 모셔갔고, 그날의 음성을 녹음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날 그들이 목격한 다리는 과거의 장소가 아니었다는 것. 작가는 이 작업을 “기억과 위치,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르세날레의 또 다른 통로 사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신예, 요이의 작업에서는 숨소리가 울려퍼진다. 제주 바다 앞 새하얀 옷을 입고 휘파람을 부는 어린아이들과 바닷파람을 피해 언 몸을 녹이는 해녀들, 삼삼오오 모여 낮잠에 빠진 할머니들의 소리가 들린다.(<숨 오케스트라>.) 작가 요이는 팬데믹 시기, 미국에서 제주로 베이스를 바꾼 후 해녀들과 5년간 함께 생활하며,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현실의 삶을 살아내며 연대하는 여성 공동체의 영상은, 영적인 주술과 신화로 가득한 전시장에서 신선했다. 땅의 진동이든, 바다의 숨이든, 들리지 않던 것에 귀 기울이게 하는 두 작가의 작업은 여러 외신의 ‘머스트 시’ 작업에 꼽히며 호평을 받았다.


«황금빛 영웅(Eroi d’Oro)» 전시 전경. © Georg Baselitz. Photo: Celestia Studio

«황금빛 영웅(Eroi d’Oro)» 전시 전경. © Georg Baselitz. Photo: Celestia Studio

바젤리츠의 마지막 음성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을 맞아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신작을 선보이는 전시 «황금빛 영웅(Eroi d’Oro)»이 열리기 6일 전, 작가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섬의 조르조 치니 재단 전시장은 3~5미터 크기의 황금빛 대작 16점으로 채워졌는데, 작가가 작고하기 전 2년 동안 그린 작업들이다. 금빛 바탕 위로 가느다랗고 정교한 검은 선이 인물의 윤곽을 새기고, 그 사이사이 색색의 거친 붓질이 절제된 듯 더해져 있다.

“나에게는 돌이켜볼 긴 삶의 궤적이 있다. 이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실로 엄청난 수의 그림을 그려왔다는 뜻이다. 나의 예술 여정의 끝자락에 선 지금, 그간의 여정을 갈무리하는 일종의 결론을 내야 할 시점이라 생각했다.” 전시장 한편 영상에는 타계 열흘 전 촬영한 작가의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전형적인 회화 기법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화가의 고백이 담겨 있다. 가령 자신의 작업에 색채에 관한 평이 많지만 오히려 흑백의 미학에 다가서고 싶었고, 나아가 중립적인 바탕으로 황금색을 택했다고 고백한다. 원근법이나 명암 같은 기교를 덜고자 회화의 평면성을 고심했고, 구체적인 공간에서 탈피해 인물을 배경 없이 허공에 띄웠다. 이렇듯 전형성을 피하고자 하는 시도 가운데, 예외적으로 작가 빌럼 데 쿠닝에 대한 존경을 ‘작은 인용’이라 표하며, 이번 신작은 붓질과 색채를 데 쿠닝의 작업에서 영향받았다고 했다.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앉아 바닥에 펼쳐진 캔버스 위 황금빛 배경에 선묘를 얹어 나갈 때, 문득 서글픈 마음이 들어 데 쿠닝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특별한 구성을 의도하기보다 그의 필치를 경배하는 마음을 담아, 데 쿠닝 특유의 화법을 여기저기에 덧입혔다. 그게 전부였지만,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거꾸로 매달린 인물의 대부분은 아내 엘케를 그린 작업이고, 유일한 자화상에서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던 자세처럼 몸을 굽힌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1965년 <영웅> 작업에서 따왔다. 당시 20대였던 바젤리츠는 러시아 내전 소설에서 가져온 가상의 군인들을 그린 ‘영웅’ 연작을 시작했다. 베니스에 남겨진 어느 영웅의 생애 마지막 순간이었다.


불가리 파빌리온에서 열린 로터스 강 개인전 «The face of desire is loss» 전시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Bvlgari, Commonwealth and Council, Franz Kaka, Kukje Gallery and Esther Schipper Berlin/Paris/Seoul Photo: Andrea Rossetti

불가리 파빌리온에서 열린 로터스 강 개인전 «The face of desire is loss» 전시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Bvlgari, Commonwealth and Council, Franz Kaka, Kukje Gallery and Esther Schipper Berlin/Paris/Seoul Photo: Andrea Rossetti

룰 브레이커

베니스 산마르코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수상 버스를 타고 지나는 거의 모든 풍경마다 불가리가 있었다. 황금사자의 머리를 색색의 원석과 다이아몬드로 새긴 포스터, 메종의 유산과 예술,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담은 매거진 <Titolo>의 론칭을 기념하는 팝업 부스. 불가리는 2030년까지 베니스 비엔날레 최초의 독점 파트너를 맡았다. 일회성 후원을 하는 스폰서의 개념과 다른 대우는 자르디니에 등장한 ‘불가리 파빌리온’이 증명한다. 어떤 국가가 돈을 지불해도 쉽사리 입성하지 못할 만큼 자본에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어온 비엔날레의 역사가 무색해진 사건이다. 자르디니에 전시관이 없는 국가를 위해 일회성 전시 공간으로 쓰이던 ‘스파치오 에세드라’ 자리에 스틸과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새 건물이 들어섰다. 일각에서는 브랜드의 팝업으로 비엔날레가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첫 커미션 전시 작가 로터스 강의 «The Face of Desire Is Loss»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작가가 ‘피부’라 여기는 필름 시트들은 빛과 공기와 반응해 색이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작업들은 파격이나 국수주의에 지친 관객에게 명상의 시간을 선사한 채, 본전시의 주제와 충실히 맞닿아 있었다.


오스트리아 파빌리온에서 공개된 «SEAWORLD VENICE» 전시 전경. © Nicole Marianna Wytyczak «Étude» 개막 퍼포먼스 전경. © Helena Manhartsberger

충격은 목적이 아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난 수백 명의 아티스트 중 가장 기억 남는 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하나의 이름을 댈 수 있을 것이다. 플로렌티나 홀칭어!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한 대기 시간만 3시간 남짓. 올해 베니스에서 가장 흥행한 전시였다. 그는 노출, 폭력, 섹스, 신성 모독, 자해 같은 충격적인 모티프를 작품 안에 거침 없이 활용하는 안무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다. 2024년 홀칭어의 첫 번째 오페라 연출작 <Sancta>에서 공연 중 구토 증세를 느끼거나 실신한 관객만 18명이었다.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 오스트리아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 홀칭어는 신작 «Seaworld Venice»를 공개하기 몇 시간 전, 베니스 본섬으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망망대해에서 자신의 장소 특정적 연작 <Étude>를 개막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선보였다. 한국에서 단 두 명만이 초대받았다는 귀한 자리였지만, 장대비를 맞으며 작은 보트를 타고 섬으로 향할 때 조금 주저했던 것도 사실이다. 만약 퍼포머가 공연 중에 배변을 하고 그걸 먹기라도 한다면(<Apollon>) 도대체 나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단 말인가?

베네치아 석호 한가운데 바지선 위에선 전라의 여성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크레인 위를 위태롭게 오른다. 크레인이 서서히 움직이며 물속에 잠겨 있던 거대한 종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 안에는 거꾸로 매달린 홀칭어가 들어 있다. 가부장제와 종교적 권위를 온몸으로 흔들어 깨우겠다는 듯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부딪혀 종을 울린다. 한동안 종소리가 바다로 퍼져 나간 뒤 인양된 종과 그녀들은 보트를 타고 유유히 자르디니의 오스트리아관으로 사라졌다. <Études>는 그렇게 «Seaworld Venice»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Seaworld Venice»에서 홀칭어는 오스트리아관을 성소이자 수중 테마파크, 그리고 하수 처리 시설이 공존하는 거대한 생태계로 탈바꿈했다. 침수된 전시장 내부를 제트스키가 빙글빙글 돌고 교회 첨탑을 장식했던 풍향계는 그 위를 끊임없이 오르는 여성 퍼포머들에 의해 점령당했다. 전시장 안마당에 마련된 공용 화장실은 그 옆에 놓인 거대한 수조와 연결되어 있다. 퍼포머는 비엔날레 기간 내내 관람객의 소변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폐쇄 순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 한편 가짜 하수 처리장에서 배설물 폭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퍼포머들의 모습은 마치 부조리극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그러나 웃을 수 없다. 홀칭어가 던지는 질문은 지극히 인류보편적이다. 우리가 매일 마시고 배출하는 물, 생명을 유지하는 자원이자 철저히 관리되는 관광 상품으로서의 물, 그리고 인간의 몸을 변화시키는 매개체로서의 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질서는 과연 얼마나 견고한가. 홀칭어는 물을 통해 종교적 신념과 사회적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묻는다. 그것도 물과 더불어 살아온 도시, 침수와 생존의 위협 속에서 유지되어온 도시, 그리고 자연을 향한 인간의 개입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도시 베니스에서. 잔혹하기보단 처절했고, 충격적이기보단 인간적이었다. 그날 아침 보트 위에서 내가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아르세날레 야외에 설치된 왕게치 무투의 조각 <SimbiSiren>과 전시장 내부에 설치된 케냐 작가 칼로키 냐마이가 밧줄과 신문지를 활용해 만든 캔버스에 그린 대형 회화 연작. ©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Marco Zorzanello

아르세날레 야외에 설치된 왕게치 무투의 조각 <SimbiSiren>과 전시장 내부에 설치된 케냐 작가 칼로키 냐마이가 밧줄과 신문지를 활용해 만든 캔버스에 그린 대형 회화 연작. ©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Marco Zorzanello

전시장 안의 낮은 목소리

케이프타운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코요 쿠오(Koyo Kouoh)가 지난해 전시를 준비하는 도중 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5명의 큐레토리얼 팀이 그의 계획을 이어받아 전시를 완성했다. 아프리카 내에서 가장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큐레이터라는 평을 받은 그녀답게, 상실을 메우는 듯 «In Minor Keys» 전시장 길목마다 애도의 흔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르세날레 입구 정면에는 팔레스타인 시인 리파아트 알라에르의 시 ‘If I Must Die(내가 만약 죽어야 한다면)’가 쓰여 있다. 2023년 가자 공습으로 세상을 떠난 이의 목소리다. 자르디니 본전시장의 한 파빌리온, 큰 벽면에 위치한 마리아 막달레나 캄포스폰스의 회화 <Anatomy of the Magnolia Tree for Koyo Kouoh and Toni Morrison>는 어떤 커미션 작업보다 직관적인 헌사였다. 코요 쿠오와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거대한 추상 주위로, 목련 꽃이 세라믹 형태로 번지며 추모식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낮은 주파수로, 조용하고 섬세하게 연대하는 작가들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In Minor Keys» 전시장에는 영적인 의식이나 신화, 식민주의와 생태에 관한 주제가 구역마다 이어진다. 텍스타일과 점토, 식물과 같은 재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닉 케이브나 왕게치 무투처럼 국제 미술계에서 익히 알려진 작가들의 작업이 여러 번 소개되기도 하는 반면, 케냐 태생의 화가 마이클 아미티지가 이끄는 나이로비 컨템퍼러리 아트 인스티튜트(NCAI)처럼 낯선 이름도 보였다. 본전시의 첫인상은 어딘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내 노골적으로 유사한 작업 방식의 작가를 배치해둔 아르세날레 전시장을 걸으며, 밀도 높은 사운드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2024년 아드리아노 페드로사의 «Foreigners Everywhere»에서 비서구권 국가의 온갖 악기들이 모든 음계로 다성 음악을 연주했다면, «In Minor Keys»의 각기 다른 악기들은 낮은 소리로 하나의 음으로 수렴된다.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팀 코요 쿠오의 다섯 큐레이터들은 돌아가며 각각 코요에 관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한 큐레이터는 이렇게 운을 뗐다. “만약 코요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름을 한 명씩 불러가며 감사를 전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녀와 함께 기획했던 마지막 전시, 함부르크의 가브리엘레 전시에서도 전기 기술자까지 포함해 모든 참여자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했다. “그녀는 세상에 대해 본능적인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 사랑하는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고, 늘 새로운 예술가와 텍스트, 시인과 언어, 문화와 음식을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연결해주는 사람이었죠. 협업은 그녀에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팀 안에 만들어낸 리듬 역시 즉흥적이면서도 편안하고 유기적이었습니다.” 전시 역시 마찬가지다.


Amar Kanwar, <The Peacock’s Graveyard>, 2023, Pinault Collection. © Palazzo Grassi, Pinault Collection. Photo: Marco Cappelletti Studio

Amar Kanwar, <The Peacock’s Graveyard>, 2023, Pinault Collection. © Palazzo Grassi, Pinault Collection. Photo: Marco Cappelletti Studio

전시장 밖의 낮은 목소리

비엔날레 전시장 속의 낮은 소리는 바깥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편에 서서 선명히 목소리를 내는 작가들 가운데, 인도 태생 작가 아마르 칸와르의 영상 전시 «동행자들(Co-travellers)»은 그 방식이 무엇보다 명상적이고 시적이어서 더욱 내면을 파고든다.

어두운 방에 들어서면 보이지 않는 일곱 개의 스크린 위로 이미지와 텍스트가 떠오른다. 28분 동안 사람의 얼굴도 목소리도 등장하지 않는다. 꽃과 석양 같은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이미지로 펼쳐지고, 피아니스트 우트사브 랄이 연주하는 라가 사운드가 천천히 흐르며 관객을 서서히 몰입의 상태로 이끈다. 2023년 작 <공작의 묘지>는 칸와르가 직접 쓴 다섯 편의 우화로 채워진다. 부패한 권력을 향해 분노하는 사제, 죽은 자와의 약속을 어기고 그 대가를 손가락에 평생 매단 집주인, 자신의 부고를 미리 써오라 명령했다가 그날 밤 살해당하는 대통령, 끝없는 논쟁 덕분에 학살에서 살아남는 두 친구. 칸와르는 이 주제를 두고 직접 쓴 다섯 편의 시를 아름다운 영상과 교차시킨다. 관객은 그저 말을 건네는 서신 같은 텍스트를 짐작하며 추상적인 광경을 상상할 뿐이다.

한편 방 바깥에 놓인 <찢겨진 첫 페이지들>은 미얀마의 민주주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영상이다. 제목은 한 서점 주인의 작은 저항에서 따왔다. 그는 독재정권이 정치적 목표를 책의 첫 장에 인쇄하도록 하는 체제에 저항하며, 자신이 판매하는 모든 책의 첫 페이지를 찢었다. 칸와르의 작업은 폭력이 지속되는 시대에, 차분히 세계의 권력과 폭력에 관해 사유할 수 있는 시공간이 된다.

Credit

  • 에디터/ 안서경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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