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빌리온 아래 삼천만 년'을 상상하는 양예나의 작업
2025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마치 고고학자의 태도로 한국관의 지난 시간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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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예나
아트 듀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의 일원으로 2023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참여했다.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에 참여한 이후 올해는 건축전 한국관 참여 작가로 홀로서기에 나섰다.

양예나는 건축, 예술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다학제적 실험 듀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로 활동 중이다. 이들의 작업은 공기와 투명한 재료를 활용해 건축의 경계를 확장하고, 감각과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는 공간을 창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듀오(양예나와 마르코 카네바치)는 팬데믹 기간 국내에서 전시를 열었다. 호흡의 가치를 강조 (피크닉의 <숨 쉬는 공간>)하거나 보호와 은신처의 개념을 실험(코오롱스포츠 한남의 <Whether Weather>)하면서 일상과 감각의 재조정을 추구했다. 그럼에도 이들과 친숙해진 계기는 2023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현장 프로젝트로 진행한 <나무와 흔적들: 보이(지 않)는 파빌리온>을 통해서였다. 송현녹지광장 한 구석에 지름 12미터, 깊이 1.5미터의 구덩이를 파서 안과 밖,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구조물. 지상으로 솟아오른 다른 파빌리온과 달리 땅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공간과 존재들을 드러냈다. 전시 기간 동안 이곳에 머문 듀오는 땅속에서 발견한 깨진 도자기들을 흙벽에 전시하고 흙 인형들을 사이사이에 박아 넣는 식으로 우리와 시공간을 공유한 미지의 존재를 표현했다. “송현녹지광장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흔적을 간직한 장소였고, 그 땅을 직접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현장에 머물면서 관객이 파빌리온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지켜봤어요. 그 과정에서 장소성과 시간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습니다.” 양예나는 이 프로젝트의 경험이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의 기초가 되었다고 귀띔한다.
양예나는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의 일원으로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에 참여한 바 있다. 당시 베네치아관에서 선보인 <블러리 베니스(Blurry Venice)>는 물 위에 떠 있는 공간을 통해 베니스의 역사적 정체성과 도시 환경을 탐색했다. 반면 이번에는 30주년을 맞이한 한국관을 중심으로, 건축의 영속성과 임시성이라는 개념을 조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건축전이라는 이벤트, 공간과 의미가 다른 프로젝트이자 동시에 양예나라는 이름으로 나선 홀로서기라서 더욱 무게가 실린다. 그의 작품은 <파빌리온 아래 삼천만 년(30 Million Years under The Pavilion)>.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목이 선언하듯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AI가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는 것처럼 태곳적 시대의 지능을 탐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인식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요? 기술과 지능의 본질을 돌아보며 우리가 간과했던 또 다른 형태의 존재방식을 상상하는 실험입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픽션이나 판타지에 머물지 않는다. 생물학자, 사회진화학자, 문화인류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협업하여 가상의 생물종 나노기나(Nanogyna acephala)를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적 해석을 확장했다. 그동안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진화와 생명의 개념을 재고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가 리서치를 위해 한국관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건물이 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지하(아래 공간)에 애착을 느낀 것처럼 한국관의 역사와 특징에 대한 이해가 작업의 기반이 되었다. 한국관은 나무 뿌리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기단 위에 띄워진 구조다. 즉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구조인데 그가 흥미를 가진 것은 바로 아래 부분이었다. 그 공간이 대청마루 밑이나 미지의 고고학적 유적지처럼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을 통해 물리적인 건축뿐만 아니라 시간의 층위를 탐구하는 전시로 발전시켜나갔다. 아래에는 400여 개의 작은 토우들이 숨 쉬고 있다. 한국관 아래에서 발견된 고대 화석으로, 삼천만 년의 나이를 가졌음에도 살아 있다고 가정되었다. 이들은 건축과 땅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서 숨겨진 것들이 드러나는 과정 자체를 상징한다. 단순히 점토로 만든 인형인 토우(土偶)가 아니라 토우(土友)로 해석한다면, 흙과 연결된 존재가 된다. 이들은 흙 속에서 태어나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체로 볼 수 있다. 반면 한국관 내부에 설치된 커다란 버블 구조는 이러한 지층의 기억과 감각적 경험을 증폭하는 요소다. 두 요소는 서로 대조적이면서도 연속적인 개념으로 연결되고 있다. 작가가 제안하는 전시 탐색 방식은 두 가지다. 먼저 내부 벽돌방을 거쳐 밖으로 나가 한국관 아래의 흙 인형들이 있는 공간으로 내려가는 동선이다. 관람객은 숨겨진 역사를 발견하듯 층층이 쌓인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다른 하나는 야외 공간에서 출발해 한국관 내부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먼저 나노기나의 지하 공간을 발견한 후 벽돌방으로 들어와 그들의 기원과 연구 기록을 살피며 전시의 퍼즐을 맞춘다. 둘 중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관람객이 직접 탐험자가 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서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의 프로젝트들은 대규모 팀워크가 필수적인 작업이었고, 주로 공공 야외 공간에 설치되는 대형 구조물이었죠.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표현의 영역이 다소 제한적이라고 느끼곤 했습니다. 한국관 프로젝트를 통해 대형 팀 작업을 지속하면서도 개인적인 표현을 깊이 탐구할 수 있는 균형을 찾아서 즐겁습니다.” 송현녹지광장과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경험을 발판 삼아 공간이 품고 있는 역사성과 시간의 층위를 고찰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잃어버린 시간과 잊힌 이야기를 발견하는 경험은 언제나 양예나의 예술적 여정을 충만하게 할 것이다.
전종혁은 프리랜스 에디터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가 만들어내는 포근한 공간에 누워 오수를 즐기고 싶지만 아직 실천한 적은 없다.
Credit
- 글/ 전종혁
- 사진/ 전미연
-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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