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한국관 옥상을 돛을 단 배로 변모시킨 건축가 김현종

2025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잊혀진 공간이었던 옥상을 다시 전시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5.04.30

김현종


2025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한국관 옥상이라는 잊혀진 장소를 들여다본다. 사라진 것들을 새로이 회귀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모두를 위한 견고하고 유려한 돛을 단 배를 탄생시켰다.


7년 전 ‘아뜰리에 KHJ’를 연 뒤 김현종이 쌓아온 이력은 기성 건축가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다. 해마다 작가로서 개인 작업인 ‘빌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트 퍼니처 및 오브제 전시에 참여하고, 수십여 개의 국내외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공간을 디자인하며 설계 외에도 다방면의 작업을 펼치고 있다. 그는 젊은 건축가로서 자신의 고유한 작업을 알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태연히 말하지만 유연한 태도, 다양한 관심사와 맞닿은 결과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사진, 영화, 아트 등 좋아하는 게 많았고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프랑스 건축 학교에 진학했어요. 유럽 건축가들은 건축을 꼭 디자인과 분리하지 않는 성향이 있어서, 파리 건축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도 오브제나 가구를 만드는 데 관심을 줄곧 두어왔죠. 요즘은 점점 경계를 허무는 이들이 늘어나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작업을 시작한 초창기만 해도 두 분야를 명백히 나누는 게 낯선 분위기였죠.”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 왜 존재하는지 부재하는지. 김현종은 모든 작업의 시작점이 건축물과 환경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격, 즉 구조에 관해 되묻고 비틀어보는 것이라 말한다. 가령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오브제 <유니온>은 한국 전통 건축 구조 중 기둥머리 부분에 여러 부재가 맞물려 처마를 지지하는 요소인 ‘공포’를 달리 바라본 결과물이다. 재작년 MMCA 과천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전에서 세 개의 기둥을 다르게 보여준 <범위의 확장> 또한 마찬가지. “미술관을 갈 때 우리는 보통 잘 배치되고 꾸며진 전시 현장을 보게 되죠. 저에겐 철거 후 남겨진 기둥이 흥미로웠어요. 기둥을 애물단지 취급하지 않고 스틸·거울·무늬목을 더해 확장·변화·해체시키는 시도를 꾀한 작업이었죠. 표현의 한계를 실험해볼 수 있는 작업에 늘 시선이 머뭅니다.”

베니스비엔날레 제19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의 참여 작가로 제안받았을 때에도 그의 접근법은 명료했다. 한국관 과거 도면을 살펴보다가 옥상에 ‘전시실 4번’이라고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 본래 전시 용도로 만들었지만 쓰임을 다하지 못한 공간을 다시 활성화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 <새로운 항

해>는 펼쳐진 돛을 형상화한다. 관객들이 잊혀진 공간을 누리고, 한국관이라는 장소를 다시 상상해보게 만드는 작업이다. “비바람을 막지 않고 자연스레 흐를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다가 배를 떠올리게 되었죠. 베니스와 한국, 두 지역에서 배라는 수단이 과거부터 다른 나라와 교류하기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했고요. 돌이켜보면, 이번에는 주로 사라진 요소를 회귀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온 것 같습니다. 낙엽, 비, 바람을 견뎌내야 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게 예상보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요.(웃음).”

어떤 작가들은 특정 키워드나 픽션적인 상상에서 작업을 발전시키는 반면, 김현종은 철저히 한국관의 역사와 정체성을 좇으며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이번 작업에 임했다. 가령 옥상에 남아 있던 기존 두 지지대는 단지 장식이 아니라, 과거 옆에 위치한 일본관보다 높은 위치에 설치해 역사·정치적인 관계를 건축으로 드러낸 상징적 장치였다. 또한 한국관을 공동 설계한 김석철 건축가의 초기 도면에서 격자 형태로 지대를 나눈 그리드를 보고 작업의 단서를 얻었다. 지지대와 격자, 두 요소를 축으로 형태를 고안해나갔다.

이런 접근은 실체적인 것에 집중하는 그의 성향과 맞닿아 있다. 건축가 페터 춤토르를 동경하는 마음에 지은 스튜디오의 이름처럼(아뜰리에 춤토르를 따라) 공간을 설계할 때 김현종은 최대한 직관적인 경험을 줄 수 있도록 집요하게 구조와 디테일에 집중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공간과 주변의 맥락을 바라보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포착한 다음, 구조를 프레임별로 나누는 게 작업의 거의 전부입니다. 빛, 무게감, 분위기 같은 인상을 직감적으로 이미지화하고, 구조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유연하게 접근하려 하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그 장소가 말을 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스테인리스스틸과 실버 패브릭. 단단하고 매끈한 소재를 주재료로 택한 이유 역시, 주변 환경을 흡수하고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데 최적화된 재료이기 때문이다. 거울처럼 작업이 한쪽으로는 다른 국가관과 나무들을, 다른 쪽으로는 아드리아해를 비추어서 관람객이 작품을 전망대 삼아 더 먼 곳을 탐방할 수 있길 의도했다.

“건축은 한 시대의 문화적·정치적 맥락을 필연적으로 담음으로써 사회를 비추기 마련이죠. 한국관의 숨겨진 근원을 재조직하고 재구성하면서 새롭게 변모하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어요. 건축가를 꿈꾸던 학생 시절 한국관을 방문한 적이 있기에 보다 본질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기도 했죠. 개인적으로 지금 시대에 국가관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내내 자문하며 작업에 임했어요. ‘국가관을 통해 특정한 경계를 나누는 게 의미를 갖지 않는 시대에 국가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제 작업을 통해 자르디니 속 모든 국가관이 공유하는 하늘과 바다 같은 자원을 다시 비춤으로써 앞으로의 가능성을 상상해보면 좋겠습니다.”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지난해 낙엽이 가득 쌓인 한국관 옥상에 오른 기억을 떠올리며 반짝이는 돛이 달릴 새로운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Credit

  • 글/ 안서경
  • 사진/ 김형상
  •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