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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꼭 읽어야 할 도서 5

뜨겁게 타올랐다가 아스라히 사라질 계절의 감각을 붙잡는 다섯 편의 작품들.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4.22

한 계절의 얼굴이 이토록 다양할 수 있을까. 여름은 찬란하고도 뜨겁고, 또 동시에 무너지고 사라지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작열하는 열정의 시기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힘든 나날들이기도 하다. 사랑이 시작되었거나, 끝났거나, 혹은 오래 전 가족의 부재를 처음으로 받아들였던 날처럼. 그래서일까. 문학은 여름을 가장 잘 붙들어 버린다. 작품을 읽음으로써 한때 지나간 여름을 품은 문장들을 떠올릴 수 있다. 전부 다른 형식과 시선을 지닌 작품을 통해 ‘여름’이라는 계절 속 삶의 어떤 한 단면을 진하게 새겨 넣어 보자. 마음에 오래 남을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한다.



소설 <두고 온 여름>, 성해나, 창비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사진/ 창비 제공

사진/ 창비 제공

오해와 결별로 얼룩진 관계를 다독이는 소설. 작품은 두 가지 시점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진다. 4년 남짓의 시간 동안 잠시나마 ‘가족’이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과 잠시 가족으로 살았던 새어머니가 데리고 온 동생의 시선이 번갈아 교차한다. 사진관집 외아들이었던 기하는 어느 날 재하와 형제가 된다.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버릴까, 멀어져버릴까 언제나 주춤.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망설이고 가까이 다가설 수 없도록 엇갈리는 마음과 뒤늦은 깨달음. 두 소년이 함께 보냈던 여름의 시간을, 소설은 흐리게 인화된, 혹은 오래되어 바랜 필름 사진처럼 기억해낸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우리는 늘 과거에 두고 온 것들을 더듬는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함께. 아버지가 찍은 기하의 사진에서 시작한 소설은 아버지가 건넨 카메라로 찍은 두 사람의 사진으로 아련하게 끝이 난다.


에세이 <결혼ㆍ여름>, 알베르 카뮈, 녹색광선


"아닌게 아니라 20년도 더 전에 나는 그곳에서 폐허 사이를 헤매어 다니고 압생트 풀냄새를 맡고 돌에 기대어 몸을 데우고 봄이 지나도 살아 남았다가 금방 꽃잎 지는 작은 장미꽃들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아침 나절들을 송두리째 다 보냈었다."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20대 한창 불타오르는 연애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겼는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 카뮈가 알제를 여행하면서 자신이 보고 느낀 감각들, 결혼에 대한 단상을 담아냈다. 아름다운 문체가 마음을 자극하고, 깊은 성찰로 인생에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여름의 상쾌함과 싱그러움을 사랑하는 이라면, 서로를 잃어버릴 정도로 뜨겁게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있다. ‘뭘 좀 아는 출판사’ 녹색광선의 양장 제본으로 출간되어 소장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만큼 아름답다. 사라지는 계절을 붙잡기 위해 필요한 건, 그것을 기억하는 문장 한 줄일 테다. 독자들은 책을 펼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여름의 알제리를 무척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비채


"오벨리스크에는 ‘오늘은 나, 내일은 당신’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예전에 ‘숲의 예배당’을 위한 스케치에 아스플룬드가 써 넣은 말은 ‘오늘은 당신, 내일은 나’였다. ‘나’와 ‘당신’은 언제 바뀐 것일까?"

사진/ 비채 제공

사진/ 비채 제공

여름 휴가에 들고 갈 책 목록을 만든다면 꼭 캐리어에 넣고 싶은 책이다. 한 건축 사무소에 갓 취업한 주인공과 건축 장인 '무라이' 선생을 중심으로, 여름 한철 가루이자와의 고급 빌라에서 대형 건축 프로젝트에 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후덥지근한 여름이 인간의 삶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30년 뒤의 회상하는 장면이 겹치는 구조로 이루어진 소설은 건축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와 조류, 식물, 음악, 음식 등 다양한 분야의 일상이 아름답게 녹아 있다. 그리 놀랄 만한 사건도, 특별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뒤 마음 한 구석에 여름 별장에서 현대 도서관 건축을 위해 보내던 주인공을 비롯한 무라이 슌스케와 그의 사무소 가족들의 따스한 마음들이 아련하게 오래토록 남는다. 소설의 제목 그대로.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고선경, 문학동네


"개복치의 학명을 아십니까 /그건 몰라 / 정답! 개복치의 학명은 Mola mola 입니다 / 나는 비범하지 않으면서 눈에 띄기를 바랍니다/ 돌연사를 해서라도 말이지요! 교수님이 무서워서 돌연사! 인생이 너무 심심해서 돌연사! 애인이 생기지 않아서 돌연사!"

사진/ 문학동네 제공

사진/ 문학동네 제공

아슬아슬하게 빵! 터지는 농담을 던지며 자신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는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시인, 고선경의 첫번째 시집. 넘치는 “시적 패기”로 써나갈 시의 힘이 기대된다는 평을 받은 시인답게 수록 시들은 뜨겁게 내리쬐는 한여름의 햇살만큼이나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여름 오후의 슬러시, 샤워젤과 소다수처럼 듣기만 해도 청량감과 시원한 바람과 같은 시들이 마구 쏟아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특히 ‘살아남아라 개복치!-몰라 몰라 내가 죽은 진짜 이유를’는 꼭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터져 나온 웃음을 막지 못해 깔깔거리다가 보면, 어느새 더운 여름이 훌쩍 당도했음을 여실히 깨달을 테다.


소설 <여름>, 앨리 스미스, 민음사


"가장 짧고 가장 붙잡기 어려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계절이 여름인데, 왜냐하면 여름은 이른바, 그보다는 상상 속의 존재일 뿐 결코 존재했던 적 없는 완벽한 여름이란 것의 조각들과 부스러기들과 기억 속 순간들이 아니고는 애당초 '전혀' 잡히지 않아서다."

사진/ 민음사 제공

사진/ 민음사 제공

소설의 제목과 달리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는 풍경이나 장면 묘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부터 독자의 예상을 빗나가고 새로움을 보여준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두가 말했다. ‘그래서?’ 마치 ‘그래서 어쨌다고?’ 하듯, 어깨를 으쓱하거나 ‘그래서 나더러 어떻게 해달라는 건데?’나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어’나 ‘사실 나는 찬성이야, 좋다고 봐’라고 하듯이.” 냉소적이고 방관적인 태도를 버리고, 인류애를 바탕으로 우리 모두 화합해야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다고 거듭 외치는 작품이다. 계절 4부작 중 마지막 작품은 2021년 가장 뛰어난 정치 소설에 수여하는 오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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