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씨앗폭탄으로 DMZ의 숲을 되살리는 꿈을 품은 작가, 최재은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자연국가'에서 그 여정에 참여할 수 있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5.04.26

FROM HERE TO NATURE


작가 최재은에게 예술은 지금 여기에서, 자연과 세계를 끌어안는 방식이자 존재들을 부르는 목소리,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만드는 힘이다.


<새로운 유대(New Alliance)>, 2025, Wood structure with pressed flowers on 112 urushi lacquered wood panel, framed, 212.6x238x6.9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새로운 유대(New Alliance)>, 2025, Wood structure with pressed flowers on 112 urushi lacquered wood panel, framed, 212.6x238x6.9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태계, 살아 있는 건 동시에 다 움직이고 있어요. 굉장히 카오틱한 거죠, 모두의 감정들이 다른 거죠. 그것처럼 아름다운 건 없다고 생각해요.” 작가 최재은은 조각,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생 동안 생명의 순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해왔다. 매일 숲에서 만난 들꽃과 고목, 새소리와 빗소리. 혼돈스럽고 아름다운, 이 모든 것들은 작가의 시선에서 새로운 서사를 입는다. 이름 불리지 못한 것들의 초상을 남기고, 각양각색의 소리는 캔버스에 각인되며.

<종자 볼(Seed Bomb) 매뉴얼>,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종자 볼(Seed Bomb) 매뉴얼>,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최재은은 10여 년 전부터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 DMZ의 숲을 회복하는 프로젝트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지구상 가장 아이러니한 장소인 DMZ를 방문한 작가는 예기치 못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원초적 경이로움으로 가득할 거라 예상한 곳이 실상 분단의 경계를 지키는 이들에 의해 황폐해져 있던 사실을 깨달은 그는 땅을 되살릴 상상을 한다. <대지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작업은 점차 모두의 참여를 모색하는 <자연국가(Nature Rules)>라는 작업으로 확장되었다. 프로젝트의 면면은 이렇다. DMZ의 생태 환경이 어떤지 조사해 현황도를 만들고, 환경에 알맞은 종자를 ‘종자 볼’ 형태로 만들어 뿌리는 것이다. 마른 진흙과 씨앗에 물을 천천히 넣으며 섞어 반죽을 만든 다음, 직경 3~5cm 크기로 빚어 말린 종자 볼은 드론을 활용해 목적지에 다다르게 된다. 생태학자와 액티비스트, 예술가의 정체성을 오가며 최재은은 복원에 필요한 데이터를 채집하고, ‘새로운 유대(New Alliance)’라는 플랫폼을 완성했다. 웹사이트(naturerules.net)에서 관객은 ‘종자 볼 기부’를 통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의 의미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유대관계를 형성해 세상에 정착시키는 것. 제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매뉴얼을 가지고 누군가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가능한 많은 작가들이 생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세상은 바뀔 거라고 믿어요. <자연국가(Nature Rules)> 프로젝트는 희망이에요.” 그의 말에 빗대어 우주를 알기 위해 진화하는 과정을 ‘자연 법칙’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의 예술 세계 안에서 이 법칙과 질서를 따라 새로운 땅, 국가를 세울 수 있을지 모른다. 개인전 «자연국가»에서는 작가가 이어온 예술 실험과 함께 플랫폼에 접속할 수 있다. 작가가 매일 수집한 꽃을 말려 만든 병풍 사이에 놓인 노트북으로 사이트를 둘러본다. 씨앗 폭탄이 다다를 장소를 선택했다. 문득 “삶은 나이아가라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매가 될 것이다.”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말이 떠올랐다.


※ 최재은 개인전 «자연국가»는 국제갤러리 K2, K3 전시장에서 5월 11일까지 열린다.

Credit

  • 사진/ 최재은 스튜디오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