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한국 디자이너' 1탄

김인태 김해김 / 김도훈 앤더슨벨 / 김지용 지용킴 / 이혜미 잉크

프로필 by 서동범 2025.03.06

ENTER THE ERA OF K-FASHION


독자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있는 이들. 기묘하게 아름답고 차가운 겨울과 봄 사이, 젊은 K-패션 디자이너들의 2025 S/S 뉴 룩과 함께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베개 모티프 톱은 2백23만원대, 벨티드 플리츠 스커트는 83만원대 Kimhēkim. 양말은 에디터 소장품.



레터링 장식 셔츠는 97만원대, 팬츠는 96만원대 Kimhēkim. 양말은 에디터 소장품.



김인태 김해김


하퍼스 바자 인터뷰를 진행하는 곳은 어디인가?


김인태 삼청동의 아틀리에다. 바깥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이 꽤 따뜻하다. 작업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하퍼스 바자 매 시즌 런웨이 위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


김인태 쇼를 찾아주는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이다. 10분 남짓한 짧은 순간이지만, 관객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SNS에 올리는 작업 영상 또한 결과물로만 평가되는 진부한 방식에서 벗어나 창작 과정을 함께 공유하며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를 즐겨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하퍼스 바자 2025 S/S 컬렉션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김인태 ‘Dreamer(꿈꾸는 자)’. 침대에서 꿈꾸는 이들부터 더 나아가 셀럽처럼 유명해지길 바라는 이들까지 모든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컬렉션이다. 침대와 잠옷을 연상케 하는 아이템부터 내가 잠들기 전 끄적이는 연필과 노트와 같은 요소를 더해 아날로그 감성을 담았다.


하퍼스 바자 이번 시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김인태 동심에서 비롯한 창작의 즐거움, 미래를 향한 희망 어린 마음가짐이다. 작곡가 아니스 벨카디(Aniss Belkadi)와 협업한 런웨이 배경음악에는 내가 직접 작사한 주문이 가사로 들어갔다. “우리는 김인태 김해김처럼 꿈꾸고 있어. 너도 웃으며 내 손을 잡고 달리고 있어.” 꿈을 향한 여정이 난관으로 가득할지라도 즐겁게 나아가자는 메시지다.



베스트는 29만원대, 카고 팬츠는 45만원, 볼캡은 9만원대, 슈즈는 30만원대 모두 ADSB Andersson Bell.



김도훈 앤더슨벨


하퍼스 바자 ‘앤더슨의 종’이란?


김도훈 앤더슨벨을 시작할 때쯤, 북유럽 문화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곳의 여유로우면서도 멋스러운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시골촌놈이던 내게 문화 충격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자문했다. ‘이 감동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거기서 착안해 브랜드 이름을 만들었다. 스웨덴의 흔한 성 ‘앤더슨(Andersson)’과 한국 절의 종인 ‘벨(Bell)’을 합친 것. 왜 절이냐고? 사실 불교 신자다.(웃음) 마음이 답답할 때면 지방의 절을 찾곤 하는데, 스스로 ‘전생에 스님이었나’ 싶을 정도로 편안함을 느낀다. 앤더슨벨은 이렇게 전혀 다른 요소가 만나 이루어진 스파크다. 뻔한 것보단 ‘어라?’ 싶은 의외성이 좋다.


하퍼스 바자 2024년부터 해외 런웨이에 문을 두드린 계기와 그 도시가 밀라노인 이유가 궁금하다.


김도훈 처음에는 파리에서 진행하려 했으나 당시 연결된 글로벌 쇼룸이 밀라노에 있었다. 덕분에 이탈리아국립패션협회와의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구축됐다. 현재는 밀라노와 파리 두 곳 모두에서 쇼룸을 운영하고 있다.


하퍼스 바자 2025 S/S 컬렉션의 키워드는?


김도훈 아메리칸 컬처, 웨스턴 스타일, 커트 코베인, 클로이 세비니…. 그리고 무엇보다 실용성을 강조해 일상에서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을 원했다.


하퍼스 바자 앞으로 패션이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도훈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 패션은 ‘보는 패션’과 ‘입는 패션’으로 더욱 뚜렷하게 나뉘고 있다. 앞으로 디자이너와 브랜드도 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며 그 결과는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날 것이다. “패션은 결국 인문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다시 본질로 회귀하는 흐름을 보일 것도 같다. 효율성과 심미성을 지혜롭게 조율할 줄 아는 사람이 이 패션 세계에서 살아남지 않을까?



카디건은 가격 미정, 셔츠는 73만원, 슬리브리스 톱은 28만원, 스트랩 디테일 쇼츠는 78만원, 헤드피스는 가격 미정, ‘Jiyong Kim×Clarks Originals’ 슈즈는 39만원대 모두 Jiyong Kim. 양말은 에디터 소장품.



김지용 지용킴


하퍼스 바자 2025 S/S 컬렉션에 대하여 직접 설명 부탁한다.


김지용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이 전체적인 테마다. 브랜드의 시그너처 기법인 ‘선블리치드’뿐만 아니라 실험적인 드레이핑과 곡선 실루엣을 통해 흐르는 듯한 원단 특성을 강조했다. 여기에 주름 가공과 불규칙한 질감을 더해 깊이 있는 조합을 완성했다.


하퍼스 바자 이번 시즌 선블리치드 기법에서 발전한 부분이 있다면.


김지용 밝은 컬러 원단이 자연에 노출되면서 생기는 흔적과 색감의 변화를 포착해 질감으로 활용했다. 또 선블리치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원단과 텍스처를 연구했으며, 후가공과 컬러 선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하퍼스 바자 최근에 아빠가 됐다.


김지용 아이가 탄생한 지 벌써 1백50일째다. 가끔 나를 보고 아빠인 걸 아는 듯 웃어주는데, 덕분에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웃음) 최대한 많은 시간을 아내, 아들과 보내려 노력한다.


하퍼스 바자 패션계에 종사하고자 고민하는 10~20대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김지용 시작하지 않으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크롭트 트렌치 재킷, 시스루 롱 재킷, 이너 셔츠는 모두 가격 미정 Eenk.



이혜미 잉크


하퍼스 바자 매 컬렉션을 ‘특정 알파벳+단어’로 명명한다. 레터 프로젝트의 의의는 무엇인가?


이혜미 브랜드 잉크(Eenk)는 메시지와 이미지를 프린트하는 매개체인 잉크(ink)와 동음어다. 나의 이름을 표기할 때 ‘Li’ 대신 ‘Lee’를 쓰는 것처럼, 브랜드명을 ‘Eenk’로 선택해 로고 자체에 심미적 효과와 정체성을 담았다. 알파벳 순으로 컬렉션을 전개하며 각 철자에 맞춰 아이템과 테마를 정하는 방식은 컬렉션의 스토리 라인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동시에, 다음 시즌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하퍼스 바자 2025 S/S 컬렉션의 테마는 ‘A for Aesthetic’다.


이혜미 몇 시즌째 한국 전통 미학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다. 조각보처럼 다양한 소재와 컬러가 어우러진 패치워크, 보자기와 매듭에서 착안한 디테일은 과거와 현재, 여러 문화를 견고하게 연결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자연을 담은 듯 편안하고 로맨틱한 컬러 팔레트는 이번 시즌 협업한 아티스트 니나 콜치츠카이아(Nina Koltchitskaia)의 작품과도 맞닿아 있다. 동양의 산수화와 한국의 오방색을 접목해 풍요로운 무드를 자아내면서도, 부드러운 컬러와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가벼운 느낌이 특징이다.


하퍼스 바자 이번 시즌에 가장 중요시한 부분은 무엇인가?


이혜미 한국 디자이너로서의 본질. 파리 패션위크에 다섯 시즌 연속 도전하며 나와 브랜드의 근간인 ‘한국적 미학’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됐다. 이 부분이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가 차별화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 생각한다.


하퍼스 바자 그렇다면 K-패션의 강점은?


이혜미 변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독창성, 창의성, 상업성과 실용성 사이의 균형.


Credit

  • 사진/안니콜라이
  • 모델/ 클로이 오
  • 헤어/ 장해인
  • 메이크업/ 황희정
  • 어시스턴트/ 김진우, 이동영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